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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54화 (54/225)
  • 54화. 몰렉의 숨결 (1)

    “자네, 그게 정말인가?”

    “그래.”

    “아니, 뭐 볼 게 있다고 시타타까지 이사를 간다는 말인가?”

    주점에 모인 사내 둘은 심각한 표정으로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자네는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먼 그래.”

    “뭘 말인가?”

    “그곳에 지금 마나석 광산이 나온 건 알고 있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제국에 있기는 한가?”

    시큰둥하게 눈앞에 놓인 안주를 집어 먹은 사내가 입맛을 다셨다.

    “그래, 그곳에서 지금 인력이 모자라 난리라고 하더군.”

    “그런데?”

    “보수가 엄청나다는 말일세. 게다가 광산뿐만이 아니라 무슨 고기며 특산품까지 줄줄이 수출하느라 난리라고.”

    “허, 자네도 참. 그런 곳에 가서 밥벌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맨 처음에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했을 때는 뭐, 먹고살 것이 없다 소문이 나서 왔는가?”

    비어버린 맥주잔을 말없이 높이 들어 보인 사내 앞에 새로운 맥주가 얼른 내어졌다.

    “크으…… 그뿐이 아닐세. 로드리고 백작가 있지? 그곳 아이들이 줄줄이 마법사가 되었다더군. 그런데 그것이 마나석 광산 덕분이라는 소문이 있어.”

    “뭐?! 그것이 정말인가?”

    “내가 뭣 하러 실없는 소릴 자네에게 하겠는가.”

    “허! 이것 참…….”

    “애들까지 전부 데리고 갈 걸세. 자네도 생각 있으면 나랑 같이 가는 게 좋을걸세.”

    그의 말을 들은 사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시타타로 이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새롭게 열린 일자리를 얻으려, 누군가는 자식들이 혹시라도 마법사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부푼 기대를 안고 말이다.

    ***

    로드리고 백작가.

    “백작님? 우리 마을을 좀 재정비해 볼까요?”

    “마을을 말입니까?”

    응접실에 앉은 앨리와 시비에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네, 저번에 낸 공고 있잖아요? 그 공고를 보고 사람들이 슬슬 이주해 오기 시작하는데…….”

    “……?”

    “마을이 너~무! 후져요. 살러 왔다가도 그냥 막 나가고 싶달까?”

    이주해 오는 이주민들에게 집까지 지어 팔고 있는 앨리는, 결국 줄곧 생각했던 말을 입 밖으로 뱉어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시타타는 후졌다.

    워낙에 사는 사람도, 교류하는 사람도 많이 없는 곳이었기에 척박한 건 둘째 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조차 갖춰진 게 없었다.

    흔한 광장 하나 없었으며, 주민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상점조차도 똑바로 된 것이 없었다.

    “그렇게…… 후집니까?”

    “네, 마을에 나갈 때마다 후져 죽겠어요. 어떻게 제대로 된 여관 하나도 없어요?”

    “…….”

    “아니, 이런 건 영주가 좀 지원해서 짓고 그러지 않나?”

    시큰둥한 표정으로 제 앞에 놓인 쿠키를 한 입 베어 문 앨리는 말로 백작을 후드려 패고 있었다.

    “…….”

    “왜 그러시지? 뼈 맞았나?”

    “으윽…….”

    앨리의 순박한 언어 폭행에, 백작은 손에 든 생강 절편을 차마 입에 넣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희 상단에 이걸 좀 맡겨주시면 환골탈태를 좀 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또요?”

    “하하~ 또라뇨? 내가 뭐 백작님한테 나쁜 거 시킨 적 있나?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해맑게 웃어 보인 앨리가 손사래를 쳤다.

    그녀의 말대로 나쁜 걸 시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맡은 일은 놀랍도록 확실하고 완벽했다.

    이미 전체적인 도로의 보수와 백작저의 리모델링을 맡은 앨리의 실력을 백작 역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작은 앨리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 때마다 두려웠다.

    이번엔 또 어떤 사업을 벌일까…… 어떤 달콤한 말로 자신을 꼬드겨 돈을 벌어낼까……!

    이득이 되지 않는 사업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저…… 무서웠다.

    “싫으신가? 마을 진짜 후진데~”

    “……그렇게 하시죠.”

    “하하~ 역시 백작님은 화끈하셔. 그럼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활짝 웃은 앨리가 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그 손을 맞잡은 백작의 입가에 작은 경련이 일어났다.

    ‘무서워… 너무 무서워……!’

    ***

    알베르토의 집무실.

    “그게 무슨 말인가?”

    “죄송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곳에 마법사가 있었다는 말인가? 아니, 아니지. 그보다…… 백작을 공격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

    “이런! 황제 폐하의 명을 어긴 것도 모자라 누구인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당하기까지 했다는 말인가?!”

    알베르토의 앞에 선 스턴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을 질끈 물었다.

    “제게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그게 무슨 말인가? 기회라니? 내가 언제 자네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말인가?”

    “…….”

    알베르토는 자신의 충실한 말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던 스턴이 보기 좋게 당하고 오자, 그 패를 손에서 당장 버렸다.

    “허허! 참 큰일 날 젊은이로구먼.”

    “……죄송합니다.”

    완벽한 명분. 알베르토의 말 그대로 스턴은 독단적인 행동을 한 것뿐이다.

    알베르토가 시켜서 한 것도, 황제의 명을 받들어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인정받기 위해 독단적으로 저지른 행동이었다.

    무언의 허락이 있었다 한들 그것이 진짜 허락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앞으로 어쩔 생각인가? 자네는 내 양자일세. 어찌 되었건 내 아들이란 말일세.”

    알베르토 역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황제의 명을 받들어 스턴을 제 아들로 받아들이긴 했으나, 황제 역시도 문제가 생기면 당장이라도 제 탓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저 인정받고 싶은 마음 하나로 시타타까지 쳐들어가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죄송합니다.”

    연이은 스턴의 사과에 알베르토는 제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 여자의 생김새가 어떻던가?”

    “금발에 금안을 가진 젊은 여자였습니다.”

    “금발에 금안이라…….”

    금발은 어디에도 너무나 흔했다. 게다가 4서클인 스턴의 실력을 웃도는 마법 실력이라면 알베르토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아, 그리고 시비에 백작을 ‘고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고객님?”

    “예, 시비에 백작에게 꽤나 친근하게 고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혹시 붉은 늑대 용병단 소속이 아닐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붉은 늑대라…….”

    붉은 늑대 용병단. 로드라타 시국에 본거지를 둔 용병단.

    최북단에 있는 섬나라인 로드라타에서 나고 자란 그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골치 아픈 일들은 모두 해결할 만큼 뛰어났다.

    4계절이 겨울인 그곳에서 나고 자랐기에 뛰어난 육체 능력을 바탕으로 몸집을 키워온, 명실상부 최고의 용병단이었다.

    ‘아니, 용병이 아니다.’

    붉은 늑대 용병단을 떠올린 알베르토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들에게 그만큼 뛰어난 마법사는 없다.”

    “…….”

    “금발에 금안이라…… 골드 나인?”

    “예?”

    그때 알베르토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인물.

    “어째서 내가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래, 골드 나인. 그 상단주가 틀림없다!”

    “상단주……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여자가 틀림없다. 금발에 금안, 게다가 뛰어난 마법 실력까지.”

    스턴은 알베르토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을 도저히 조합하기가 힘들었다.

    상인이라니?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한낱 상인이었다.

    “네가 이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여자는…… 돈에 미쳐 대마법사의 칭호를 버린 여자니까.”

    “……예?”

    알베르토는 몇 년 전 앨리를 만난 적이 있었다.

    마탑에 찾아왔던 앨리는 알베르토의 가르침에 코웃음을 쳤었다.

    제국에서 최고라 불리는 자신을 비웃었던 그녀를 똑똑히 기억한다.

    세계에서 난제라 불리는 문제를 두고 논쟁하던 자리였다.

    그녀는 깃펜을 들고 끙끙거리는 연구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문제를 휘리릭 풀어냈다.

    그런 그녀를 보고 모두가 놀라 자빠졌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탑에 남아달라는 부탁에도 유유히 등을 돌려 떠났다.

    ‘너네가 사는 꼬라지를 보니 돈이 안 되는 것 같다.’라는 말을 남긴 채 말이다.

    “스턴. 이리 가까이 와 보거라.”

    돌연 태도를 부드럽게 바꾼 알베르토가 스턴에게 손짓했다.

    “안타깝구나. 나의 양자가… 내 아들이 이렇게 속이 상한 것을 보니 말이야.”

    “알베르토 님…….”

    “그 여자를 이기고 싶으냐?”

    “꼭…… 꼭 그 계집을 제 앞에 무릎 꿇리고 싶습니다.”

    지난날의 수모를 떠올린 스턴이 이빨을 으득 갈았다.

    “하지만 어쩌면 좋으냐……. 그 여자는 나와 비슷한 실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크윽……!”

    “하지만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을 듯싶구나.”

    “제게……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이걸 알아두어라. 선택은 네 몫이니 말이다.”

    “그 계집을 이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무엇이든 말입니다.”

    마음이 다급해진 스턴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제 가슴께를 쳤다.

    어찌나 분한지 지금이라면 제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알베르토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그래, 그래……. 그 마음 내가 잘 알지…….”

    모두 이해한다는 듯 알베르토가 스턴을 차분히 달랬다.

    “허나 알아두어라. 이것은 위험한 힘이다. 아주 강력하지.”

    “더할 나위 없이 좋군요.”

    ***

    지금은 마족들이 마계로 모두 쫓겨나 지상에 남아 있지 않지만, 옛날에는 아니었다.

    마족들 역시도 자신들만의 자치구를 만들어 그곳에서 함께 살았으며, 생김새와 탄생의 방법이 달랐을 뿐 그들 역시도 다른 종족과 같은 대우를 받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물들의 기세가 등등해져 인간을 비롯한 다른 종족들을 해치기 시작했다.

    그런 마물들의 움직임을 두고 인간을 비롯한 다른 종족들은 그 화살을 마족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물들의 움직임은 마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엘프가 자연과 친해 동식물과 소통이 가능한 것처럼, 마족들 역시도 마물들과의 소통이 조금 더 수월했을 뿐이었다.

    마물들의 움직임을 제어하지 못한 것. 아니 안 한 것은 다름 아닌 드래곤이었다.

    천여 년 전 드래곤과 인간의 마찰이 극에 달했을 때, 드래곤은 고의로 마물들을 구속하지 않았다.

    당대의 드래곤 로드가 직접 나서 인간들의 제국 하나를 쓸어버린 뒤로 시작된 마찰은, 내로라하는 인간 기사들이 나서서 드래곤 토벌대를 만들었을 만큼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크으윽…… 끄으아아아!!!”

    지하 던전에 울려 퍼지는 사내의 비명 소리. 그 소리의 주인공은 스턴이었다.

    몰렉의 숨결.

    알베르토가 전해준 아티팩트.

    이는 마족들이 억울하게 마계로 쫓겨나기 전 마왕이 남긴 아티팩트였다.

    마왕이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만든 아티팩트는, 사용자의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주지만, 점차 사용자를 갉아먹어 결국엔 영혼까지 잠식한다.

    인간이 아닌 마족이 사용한다면 그런 위험은 덜겠지만, 하위 마족에게도 역시나 위험한 아티팩트였다.

    알베르토는 스턴에게 그런 몰렉의 숨결을 준 것이다.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알베르토의 충실한 말.

    스턴은 그저 쓰다 버리면 되는 그런 패였다.

    “끄으윽… 끄으으으… 끄아악!!!”

    비어있는 지하 던전에서 몰렉의 숨결을 제 몸에 흡수시킨 그 순간부터 스턴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것은 점차 제 몸을 좀먹어 갈 것이다.

    ‘이것만… 버티면 된다… 이것만……!’

    고통스러운 듯 숨을 몰아쉬는 스턴은 바닥을 기면서도 오로지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개 같은 계집년! 그년을…… 그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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