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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52화 (52/225)
  • 52화. 시비에는 참지 않아!

    깨어난 넬라는 아직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이럴 때일수록 어린아이의 입맛에 맞는 즐거운 것이 필요했다.

    “자, 얼른 가자!”

    넬라의 손을 잡아끄는 폴라.

    그런 폴라의 손을 꼭 붙잡은 넬라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새로운 공기에 조금씩 웃음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제 열 살 난 아이는 무엇이든 빨랐다.

    게다가 넬라의 곁을 항상 맴도는 나이아스들은 지금도 크고 작은 기운들을 모아서 넬라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고, 덕분에 아이의 회복은 더욱 빨라졌다.

    엄청난 자연 친화력.

    엘프를 웃도는 수준인 넬라의 자연 친화력에, 루카스와 아만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정령들이 먼저 나서서 아이를 돕다니? 이 정도면 거의 정령 그 자체인 수준이 아닌가 싶었다.

    “천천히 가지! 그러다가 또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나!”

    그래도 가장 연장자라고 스키르는 아이들을 나름대로 잘 챙겼다.

    스키르 가문의 마차를 얻어타고 시내로 나서자, 넬라의 몸이 다시 떨려오기 시작했다.

    “야! 키르. 우리 걸어가자!”

    “그게 좋겠군. 마침 날씨도 좋으니 말이야.”

    마차가 무서운 것인가 싶어 아이들은 당장 마차를 세우고 걷는 것을 택했다.

    “자, 걸어가면 돼.”

    “맞다. 이곳부터는 바로 코 앞이다.”

    애초에 마차를 타고 나올 거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코 앞인 거리도 마차를 타던 버릇이 든 스키르가 아이들을 무작정 끄집고 항상 마차에 태웠다.

    “야,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걷자고 했지?”

    “언니, 나는 괜찮아…….”

    폴라의 날카로운 타박에 넬라가 그녀의 손을 한번 잡아 끌었다.

    “알겠어.”

    넬라의 머리를 한번 쓸어준 폴라가 스키르를 찌릿 째려봤다.

    “크흠…….”

    그러자 스키르는 그녀의 눈을 피해 먼 산을 바라봤다. 이제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마차에서 내리고 난 다음에도 넬라의 몸은 조금씩 떨려왔다.

    ‘아…… 이곳에 온 적이 있겠군.’

    생각이 짧았다. 넬라는 에스나 이민족 출신이었다.

    황성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숲속에 있던 에스나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시내로 나오기도 했고, 축제 때엔 자신들이 만든 수공예품들을 가지고 나와 팔기도 했다.

    이민족 아이들 중 그 누구도 황성 주변에 와보지 않은 아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를 좋은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다시 데리고 나왔으니……. 루카스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넬라! 우리 저기 가보자.”

    하지만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폴라는 그저 해맑게 넬라의 손을 이끌고 이곳저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넬라는 어느 지점을 지나칠 때마다 몸을 흠칫 떨었다.

    분명 아는 곳이겠지. 제 엄마의 손을 잡고, 제 아빠의 목마를 타고 지났던 곳이겠지.

    단란했던 한 가족이 무너져 내린 것은 한순간이었고, 제 아빠와 엄마를 눈앞에서 잃은 아이에게 지금은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넬라는 잘 버텨주고 있었다.

    폴라의 손을 꼬옥 붙잡은 넬라는 몸을 떨면서도 그녀를 따라 발을 열심히 놀렸다.

    “자, 이거 먹어봐.”

    “으응…….”

    폴라가 주는 작은 사탕을 손에 받아 든 넬라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왜? 먹기 싫어?”

    “끅…… 끅…….”

    손에 든 사탕을 먹지 못하고 바라만 보던 넬라가 돌연 흐느끼기 시작했다.

    “왜, 왜 그래? 넬라 사탕 맛없으면 먹지 말자. 응? 언니가 미안해.”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 리 없었던 폴라는 당황하며 아이의 손에 든 사탕을 다시 가져가려 했다.

    “아니…… 끄흑! 아니, 맛있어…….”

    손에 든 사탕을 입가에 가져간 넬라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사탕을 입에 문 아이가 가여웠다.

    “으흑…… 끄윽…… 어, 엄마…….”

    넬라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손에 든 사탕을 먹지 못한 채 품에 꼭 안은 아이가 엄마를 부르짖었다.

    터져버리고 말았다. 곪고 곪았던 아이의 상처가 제 부모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에서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루카스 역시도 눈가가 시큰했다.

    저 작은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신이 주워온 인형 하나에 모든 마을이 풍비박산이 나다 못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힘들었지만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던 이민족들을 제 손으로 박살 낸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 부모를 제 손으로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이 모든 죄책감을 혼자 짊어진 아이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당사자들은 이미 세상에 없거나, 이곳을 떠났다.

    혹여 입 밖으로 꺼내면 그 모든 것이 사실이 될까 차마 말도 하지 못했다.

    부모를 사지로 몰아놓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파멸로 몰아놓고 제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 한 조각이 맛있다 느끼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축제 날, 부모가 등에 이고 머리에 지고 나온 찻주전자를 겨우 몇 개 팔아, 제 손에 쥐여준 그 사탕.

    아이는 사탕이 아닌. 잃어버린 제 부모와 죄책감을 품에 안고 울부짖고 있었다.

    “엄마아…… 아빠아아…… 으아아앙!”

    죽어가는 엄마를 뒤로하고 도망쳐 나온 그 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백작 부인의 손은 너무나도 따스했다.

    그 손길이 넬라를 살렸지만, 그녀의 손을 붙잡은 뒤로 넬라는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언제 깨어져 버릴지 모르는 이 행복의 끝을 붙잡은 아이는 죄책감에 밤잠을 설쳤다.

    제깟 게 가져도 괜찮은 행복인지 제깟 게 누려도 될 호사인지 몰라 아이는 매일 남몰래 떨었다.

    “넬라, 넬라…… 언니가 미안해. 응? 언니가 미안해…….”

    넬라를 끌어안은 폴라 역시도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끄아아앙! 나도… 나도 데려가… 엄마…… 아빠아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스키르 역시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하, 눈물바다구먼.’

    모두 힘든 시기를 겪는 아이들이었다.

    제국을 지탱하는 중앙귀족 가문의 차남인 스키르도 전에 없던 고난을 겪고 있었고, 폴라 역시도 매일 매일 잃어버린 제 언니를 생각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 부모의 일이 모두 제 탓이라고 생각하는 넬라까지.

    아이들은 그렇게 한참이나 주저앉아 눈물 바람을 했다.

    ***

    눈물을 그친 아이들을 데리고 한 식당으로 들어온 루카스는 기분을 내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단순하다. 한참을 울었으니 배가 고플 것이다.

    그의 생각이 맞았는지 아이들은 루카스를 따라 순순히 식당으로 들어왔다.

    “자, 먹고 싶은 거 다 먹자.”

    “……히끅!”

    아직까지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넬라는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끅끅거리고 있었지만, 표정은 한결 나아졌다.

    곪아있던 상처가 드디어 터졌으니 상처는 점차 아물 것이다. 아니, 아물게 만들어야 한다.

    ‘내 동생이니까.’

    테이블 위에 음식이 가득 차려지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기 시작했다.

    “자, 먹자.”

    “잘 먹겠습니다!”

    폴라가 밝게 외치자 아이들도 그 뒤를 따라 한마디씩 했다.

    “잘 먹겠습니다.”

    “잘…… 히끅! 먹겠습니다.”

    아이들이 식사를 시작하자, 루카스도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폴라는 넬라의 접시 위에 고기를 작게 썰어 올려주고 있었으며, 스키르는 빵에 버터를 정성스레 발라 폴라의 접시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오빠도 먹어…… 끅!”

    그때였다. 넬라가 앞에 놓인 꼬치를 하나 집어 들더니 루카스의 접시 위에 조심스레 놓아주었다.

    “……고마워.”

    자신의 접시 위에 놓인 꼬치를 바라보던 루카스가 활짝 웃었다.

    즐거웠다. 아이들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불편하고 짜증 날 때도 많았지만, 가끔가다 아이들이 보이는 이런 행동 하나에 모든 짜증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이래서 애들 키우는 맛이 난다고 하는 건가…….’

    꼬치에서 고기를 하나 빼 입에 문 루카스가 아이들을 바라봤다.

    이 아이들을 잘 키워내고 싶었다. 눈앞에 작은 인간들이 받은 크고 작은 상처들을 모두 말끔히 낫게 해주고 싶었다.

    힘이 닿는다면 자신이 죽고 나서 신이 되어서도, 이 아이들의 후손까지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많이 먹어.”

    루카스의 따스한 한마디에 아이들 역시도 활짝 웃었다.

    “응!”

    “너도 많이 먹어라.”

    “……오빠도!”

    그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만큼이면 되었다. 이 정도의 평화만 있다면…….

    ***

    로드리고 백작가. 그 앞에 도착한 마차에서 한 사내가 내렸다.

    “여긴가?”

    “예, 도련님. 이곳이 로드리고 백작가입니다요.”

    “그래, 고생했네.”

    마부의 손에 은화 몇 개를 쥐여 준 사내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주변을 보니 백작저를 보수하는 중인지 인부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제국의 반역자나 다름없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부를 얻자마자 제집부터 싹 뜯어고치는 꼴이라니, 같잖고 눈꼴이 시렸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1황자를 죽이고 황제가 된 서자가 반역자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자신이 속해있던 오닐 공작가가 그래드 황제의 편에 섰었다는 사실은 변치 않으니.

    그러니 자신이 반역자가 되지 않으려면 다른 이들을 반역자라 칭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피어난 생각이 어느샌가 사실처럼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제국을 배신하고 황제 폐하의 반대편에 선 반역자. 로드리고 백작가.

    어린 시절 우연히 보았던 제 아버지인 시러스 공작의 후회의 눈물. 그 눈물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물을 볼 때마다 짜증이 치솟았었다. 제 아비라는 자가 나약해 보였다.

    자신의 손으로 내쳐놓고 어찌하여 궁상맞게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이나 찔찔 짜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그를 달래는 어머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 남편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으면 바로 잡지는 못할망정 그 옆에서 같이 찔찔거리고 있는 꼴이라니!

    “짜증 나는군.”

    떠오르는 과거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때, 그의 곁으로 노쇠한 기사 한 명이 다가왔다.

    “누구십니까?”

    “아, 저는 스턴 오…… 아니, 스턴 님로드 입니다. 백작님을 만나 뵙고 싶군요.”

    “스턴…… 님로드요?”

    “예, 알베르토 님로드. 마탑주님의 양자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마탑주의 이름을 이야기하자, 기사는 고개를 한번 갸웃해 보인 뒤 백작저 안으로 사라졌다.

    기사의 행동을 보니 아직 이 촌구석까지 알베르토가 양자를 들였다는 소문이 나지 않은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돌아오고, 닫혀있던 백작저의 문이 열렸다.

    백작저에 들어서자 멀리서 시비에 백작이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백작의 모습을 보자 옛날에 보았던 백작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에 푸른 눈동자. 스턴은 저 눈동자를 알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스턴의 인사에도 백작은 그를 바라만 볼 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뭐야? 이런 짜증 나는……’

    “잘 왔다. 스턴.”

    “하, 저를 기억하시는가 봅니다?”

    크게 바람 빠지는 소릴 내는 스턴을 보는 백작의 표정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백작은 지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복잡한 기분이었다.

    십여 년 만에 본 자신의 대자는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져 있었다.

    자신을 왜 찾아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 비슷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잘못된 길을 가려 하거든 이 아이를 바로잡겠다 다짐했었다. 하지만 제 친구인 시러스 공작의 손마저 떠난 아이였다.

    “그래. 기억하지. 너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

    그 복잡한 감정을 애써 외면한 백작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쉬워지겠군요.”

    “그래.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어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하!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그저 당신 때문에 우리 아버지…… 아니, 시러스 공작이 큰아들을 잃었다는 걸 알려주러 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감정에 치우쳐 뱉은 말에 아차 싶었지만, 이미 말은 뱉어지고 말았다.

    사실은 시타타에 적당히 머물며 그들의 약점을 캐내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백작의 인자한 웃음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제깟 게 뭔데……!’

    자신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치기에 집을 나와버린 것인데 제 화를 못 이겨 너무 섣부른 판단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자신이 한 선택을 후회하는 어리석은 제 아비처럼은 되지 않겠다고.

    이것이 옳은 길이라고 말이다.

    “허허, 아주…… 되바라지게 컸구나. 처맞아야겠어.”

    허허롭게 웃어 보인 백작이 자신의 소매 춤을 한 단 걷어 올렸다.

    “뭐, 뭐라고…….”

    -퍽!!

    “윽!!”

    눈앞이 번쩍했다.

    “이런 쥐알만 한 자식이…… 어디 대부님한테 눈을 똑바로 뜨고! 어?!”

    시비에는 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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