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장사꾼.
“자, 이번에 캔 마나석이랑 보석…… 뭐 금이랑 은 등등. 여기 목록 확인하시고!”
백작저에 머물며 광산을 집중 관리하는 앨리는 신이 났다.
‘돈이 최고는 아니지만 그만한 것도 없다.’ 이것은 골드나인의 사훈이자 그녀의 좌우명이었다.
그런 그녀가 시타타에 머무르며 돈을 쓸어 담고 있으니, 가만히 있어도 엉덩이춤이 절로 춰질 지경이었다.
앨리가 건넨 목록을 받아 든 백작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몸을 흠칫 떨었다.
어찌나 신이 났는지 콧노래를 하루 종일 흥얼거리는 앨리를 보면, ‘아, 저런 것이 장사치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모든 것이 계산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머릿속은 정말 엄청났다.
시타타에 있는 모든 것을 돈으로 바꾸라고 해도 바꿀 위인이었다.
그녀는 붉은 멧돼지를 쫓을 장치를 설치하자마자, 동네에 널브러진 붉은 멧돼지를 모두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필두로 ‘붉은 멧돼지 육포’를 가공해 팔 준비를 했으며, 시타타에만 있는 푸른 노루 역시도 상품화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앨리님께서는 계산이 빠르십니다.”
“그럼요오~ 계산을 못~ 하면 장사를 못~! 하지요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앨리는 정산 역시도 빠르게 처리했다.
어찌나 빠른지 백작에게 지급한 계약금 천만 골드는 어느새 목표를 거의 다 해가고 있었다.
백작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만큼 앨리의 주머니 역시도 두둑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계획이 있었으며, 그 계획 속에 모든 계약이 존재했다.
그녀의 계약서에는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좋은 계약 조건이 들어있었고, 앨리는 그 속에서 최대치의 이윤 대신 최대치의 효율을 내 장사를 하고 있었다.
마나석과 보석들은 모두 체계적인 등급을 나눠 가공, 판매를 계획하고 있었으며, 시타타에서 나는 특산품들 역시도 모두 상품화시킬 준비를 마쳤다.
백작은 그런 그녀가 조금은 무서웠다.
그녀는 지나가는 길에 핀 들꽃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모아 돈이 되게 만들었고, 시타타 주민들 역시 앨리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잘 얹어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냈다.
척박한 땅 시타타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자, 그럼! 돈 벌러 갑시다!”
박수를 크게 한번 쳐 보인 그녀가 풀어헤쳐 진 머리를 한데 잘 모아 높이 묶어 올렸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는 그녀만의 루틴이었다.
그녀의 머리가 높게 틀어 올려질 때마다 백작은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이번엔 또 뭘 내다 팔려고…….’
***
넬라가 깨어나자 아만은 조용히 루카스를 찾아왔다.
“로드. 넬라가 깨어났습니다.”
“아, 그래. 아만.”
방에서 잠시 쉬고 있던 루카스는 아만의 방문에 얼른 몸을 일으켜 세웠다.
“넬라 상태는?”
“나쁘진 않습니다만…… 차라리 기억을 좀 지울까요?”
아만 역시도 어린 소녀가 겪는 끔찍한 일들을 조금은 덜어내 주고 싶었다.
“아니, 그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뿌리를 잊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야.”
“……그것도 그렇겠군요. 나쁜 기억만 골라 지워낸다 해도 쉽게 납득하기 힘들겠지요.”
넬라에게서 나쁜 기억을 지운다면 분명 도움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제 부모를 잃은 과정을 지워내야 하니, 현재의 상황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제 부모를 눈앞에서 잃은 아이에게서 그 기억을 건져낸다면, 맞물리지 않는 기억의 파편들이 아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었다.
“그래. 넬라는 그렇게 약한 아이가 아니다. 이겨낼 방법을 찾아야지.”
“……안타깝군요.”
“그래. 그러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모든 상황에 이가 갈리고 치가 떨렸다.
이민족들이 모두 이단으로 몰려 쫓겨난 것은 물론이고, 죄 없는 아이들의 부모까지 싸그리 처형당했다.
그 내막을 모두 아는 루카스와 아만은 이들을 찾아내 뿌리 뽑겠다 다짐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은 조용한 상태였다.
이들 뒤에, 마탑주가 있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알아냈다.
하지만 그가 독단적으로 이 모든 일을 벌였다? 어딘가 석연찮았다.
분명 그 뒤에 무언가 더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만이 그들의 뒤를 캐기 시작하자, 그들은 모든 행동을 중단하고 숨을 죽였다.
시타타에 있는 웨어울프를 조종한 그들을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려 했던 아만은, 그때 이후로 한시도 조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들을 찾아내 먼지까지 탈탈 털어낼 심산으로 샅샅이 뒤졌건만, 그들은 머리카락 한 올조차 증거로 남기지 않았다.
정말 이대로 모든 행동을 그만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뒤에서 더욱 끔찍한 짓을 꾸미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놀라울 만큼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흠……. 그렇게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던 작자들인데 말이지…….”
흑마법은 물론이고 네크로맨서까지 동원해 일을 벌이던 자들이다.
그런데 이토록 조용하다……?
“불안하군요.”
“……불안하군.”
***
황제의 집무실.
“이번에 실수하면…… 알고 있겠지?”
“예, 물론입니다. 폐하.”
황제의 앞에 선 알베르토가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니, 실수할 자신이 없었다.
제 손에 쥐어진 물건을 바라보는 알베르토의 눈이 번뜩였다.
영혼석. 그것도 최상급의 영혼석이었다.
‘이 영혼석만 있으면…….’
황제가 어떻게 얻었는지는 몰라도, 이 영혼석만 있다면 연구는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아무리 질 좋은 영혼들을 모아도 그것을 담는 그릇인 영혼석의 품질이 낮다면, 영혼들을 오래 가두어 놓기는 힘들었다.
그 때문에 여태껏 모으던 영혼들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방해하는 세력의 눈을 피해 그들은 제국 밖으로 영역을 넓혔지만,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만 같던 시타타마저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로드리고 백작가는 무슨 천운을 타고난 것인지, 닥쳐오는 위기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손쉽게 넘어가고 있었고 말이다.
“아, 그리고 로드리고 백작가 말입니다…….”
“건들지 말게.”
“예?”
“로드리고 백작가는 건드리지 말라는 이야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되묻는 알베르토의 말에 황제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내 말이 어려운가?”
“아, 아닙니다.”
“나가보게.”
“예. 그럼…….”
알베르토가 집무실을 빠져나가자, 황제는 치밀어오르는 부아에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황제 역시도 로드리고 백작가를 당장이라도 쓸어버리고 시타타를 국고로 환수하고 싶었고,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어느 밤, 제 집무실을 찾아온 궁정 예언가 헬로즈 어넷의 예언에 모든 것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날 밤. 예언을 받은 헬로즈는 황제를 찾아와 ‘서쪽에서 흥하거든 그것을 탐하지 말라’ 하였다.
그것이 무슨 소리냐 되물었지만, 헬로즈는 그저 몸을 떨며 ‘탐하지 말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
처음엔 알아차리지 못했다.
서쪽에서 흥하다니? 하지만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는 데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서쪽에 위치한 로드리고 백작가의 영지. 그곳에서 발견된 어마어마한 규모의 광산.
황제는 너무 당연하게 탐하였던 그곳을, 예언가의 말 한마디에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탐하면 대의를 이루지 못한다.’던 예언가의 단 한 마디.
그래. 대의를 이루어야만 했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깟 광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생각을 마친 황제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며 입맛을 다셨다.
***
황제의 집무실을 빠져나온 알베르토는 갑작스러운 황제의 태도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당연히 황제가 시타타를 빼앗아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시타타를 제게 달라고 언젠가 청할 생각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건드리지 말라니?
누구도 알지 못했던 숨은 보석 같은 땅이었다.
벌써 시타타는 온 대륙에 소문이 번져 그곳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작은 영지에서 큰 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백작가에 영구 귀속된 영지이니, 그들에게서 빼앗아올 명분이 충분치 않다면 가져오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명분은 언제든 만들면 된다. 제국민의 비난이 거세겠지만 시타타를 취할 수만 있다면 그깟 비난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도대체 왜……!’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버린 황제의 결정에 알베르토는 당혹스러움을 넘어 분노하기 시작했다.
복도를 걷던 그의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스턴…… 그놈이 잘 해줘야 할 텐데……!’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자신이 부리는 말이 제 명령을 충실히 수행해 주길 바라야 했다.
황제가 직접 제게 시타타를 건드리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렸으니 당장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지시한 게 아니라면?
과잉 충성을 보이는 제 양자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면?
그렇다면 말이 달라질 것이다.
잘 되면 좋고, 안 되더라도 제 책임은 피할 수 있으니.
그렇다면 자신도 지금 확실하게 해두어야 했다.
제 집무실로 돌아온 알베르토가 수정구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이미 떠나버린 스턴을 데려올 필요는 없으니, 이렇게라도 연락을 취해두면 훨씬 확실하게 명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수정구가 몇 번 반짝이더니 이내 수정구 속에 인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알베르토 님.”
“허허, 그래. 스턴. 시타타로 가는 중인가?”
“예. 그렇습니다.”
4서클의 마법사인 스턴은 아직 시타타로 한 번에 텔레포트 하기엔 마나가 모자랐다.
텔레포트 한 번에 마나를 모두 쏟아붓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그렇기에 스턴은 중간 지점까지 텔레포트한 뒤에 그곳에서 마차를 빌려 가는 중인 듯했다.
“고생이 많네.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이 있네만…….”
“그것이 무엇입니까?”
스턴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옳은 길로 인도해 주는 은인과도 같은 알베르토의 걱정이라니? 그것은 제 걱정과도 같았다.
“황제 폐하께서 시타타를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셨네.”
알베르토의 말을 들은 스턴의 표정이 일순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국의 반역자나 다름없는 자들입니다!”
“허허……. 그런 말 말게. 황제 폐하의 뜻이니 어쩌겠는가?”
“……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알베르토는 알고 있었다. 스턴이 집을 나와 제 가문을 버린 가장 큰 이유가 로드리고 백작가라는 사실을.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 역시도 자네의 뜻은 알고 있네만, 폐하의 뜻이 그러하시니…….”
“……폐하께서 제가 시타타로 떠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옳다구나. 이 멍청한 것이 이렇게나 쉽게 넘어와 주다니!
알베르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 아닐세. 그 사실은 모르고 계시네.”
“그렇다면… 저는 그저 머리를 식히러 떠난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는… 그저 연구에 지쳐 머리를 식히러 여행을 가는 길입니다.”
“오, 그래그래. 자네의 걸음이 헛된 걸음이 되게 할 수는 없지. 그러니…… 즐거운 여행 되길 바라네.”
“예, 알베르토 님.”
“그래, 항상 몸조심하게나. 혹여 여행 중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날 찾게.”
“예, 감사합니다.”
수정구에 불어 넣던 마나를 끊어내자, 이내 수정구엔 어둠만이 남았다.
“클클클……. 멍청한 것! 아주…… 아주 좋군.”
이제 저 멍청하고 우매한 어린양은 제 뜻에 따라 움직여 줄 것이다.
시타타를 가지지 못해도 괜찮았다. 가지지 못한다면 괴롭히고 못살게 굴면 되었다.
그게 어떤 방법이든지 말이다.
“가지지 못한다면…… 누구도 가질 수 없게 해야지…….”
제 수염을 쓸어내리는 알베르토의 입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