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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49화 (49/225)
  • 49화. 트라우마.

    골드 나인과 계약을 마치자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앨리와 함께 온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광산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맡아 정리하기 시작했으며, 그중엔 백작저의 리모델링 공사 또한 포함이었다.

    “감사합니다. 백작저까지 신경 써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아, 아니에요. 어차피 하실 공사였잖아요? 저희도 공짜로 해드리는 것도 아니고 뭐.”

    앨리는 엄청난 장사꾼이었다. 언젠가 백작저를 한번 손 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앨리는 골드 나인 산하에 있는 건설 업체를 얼른 끼워 넣어 백작저의 리모델링 공사를 냉큼 진행했다.

    물론 다른 곳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진행해 주긴 했어도 돈을 받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아, 혹시 붉은 멧돼지에 대해서 아십니까?”

    공사를 지켜보던 백작은 아만이 했던 말이 떠올라 그녀에게 얼른 물었다.

    “네. 알죠.”

    “그럼 혹시 붉은 멧돼지를 쫓는 방법도 아십니까?”

    “네. 왜요? 붉은 멧돼지 때문에 고민이세요?”

    앨리가 제 손톱에 붙은 거스러미를 정리하며 시큰둥하게 물었다.

    “예. 정말 고민입니다. 저희 영지민들이 짓는 농사를 다 망치고 있습니다.”

    “네. 뭐, 해결해 드릴게요.”

    “그게 정말이십니까?!”

    “해결은 쉬운데 돈이 좀 들어요. 괜찮으신가?”

    앨리는 싱긋 웃으며 제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아 짤랑거렸다.

    그 모습에 잠시 움찔했던 백작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금으로 그 큰돈을 받았는데, 여태 고생한 영지민들에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예. 물론입니다.”

    “오케이. 그럼 뭐! 어디에 필요한지 말씀하세요. 아, 그리고 마나석이 들어갑니다. 상급은 아니고 뭐 하급도 괜찮으니까, 저희 상단에서 알아서 골라서 설치할게요.”

    “설치라면…….”

    “마나석에 전격 마법을 입혀 전기 울타리 같은 걸 만드는 거예요. 멧돼지들이 접근하면 치지지직!”

    앨리는 전기가 치직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한손으로 제 목을 찍 그어 보였다.

    “그, 그럼 영지민들이 혹시 다치거나…….”

    “아, 그건 산짐승들에게만 발동돼요. 영지민 중에 멧돼지는 없죠?”

    “…….”

    “있으신가?”

    백작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앨리와 대화를 하다 보면 그녀의 엉뚱한 페이스에 쉽사리 휘말리고 말았다.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아뇨…… 없습니다.”

    “오케이. 혹시 걱정되시면 피곤한 동물 몇 가지만 말씀하세요. 걔네 한테만 발동되게 할 수도 있거든요. 대신 돈이 쪼오끔 더 듭니다?”

    졌다. 그녀의 장삿속엔 이길 재간이 없었다.

    백작은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을 할 의지조차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럼 설치할 곳만 알려주세요. 휘리릭 설치해 드릴 테니!”

    “예…….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돈 받고 하는 건데요, 뭐.”

    앨리가 한쪽 눈을 찡긋 해 보였다.

    ***

    루카스와 넬라는 아카데미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그럼 언제든지 연락하렴.”

    백작저의 상황이 나아진 것은 넬라와 루카스의 짐가방에 각자 챙겨 넣어진 수정구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꽤 값이 나가는 수정구를 하나도 아닌 두 개나 턱턱 구입해 아이들의 가방에 넣어줄 만큼, 백작저는 부유해져 가고 있었다.

    “네. 걱정 마세요.”

    “그래, 네가 넬라를 잘 챙겨주렴. 넬라도 오빠 말 잘 듣고 있어야 한다.”

    블레인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작게 끄덕여 보인 넬라가 루카스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자, 그리고 이것 받으려무나.”

    시비에 백작이 루카스에게 주머니를 하나 건넸다. 무려 실링도 아닌 골드가 가득 든 주머니였다.

    “모자라거든 언제든지 얘기하려무나.”

    “감사합니다.”

    백작의 표정이 의기양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루카스는 감동이 물밀듯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 거지 같은 집구석이 드디어…….’

    아이들이 놀러온 것이 엊그제인데, 그때만 해도 밥상을 차리는 걸로 끙끙댔던 집안이었다.

    하지만 아만이 내어준 광산 하나로 졸지에 엄청난 부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루카스와 넬라를 한 번씩 꼭 끌어안은 블레인은 어쩐 일인지 울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떠나는 생각만으로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던 블레인은, 웃으며 아이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역시 돈이 좋기는 좋았다. 언제든지 아이들을 찾아갈 수 있는 경제력과, 아이들과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눈물 따위는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아이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 아이들이 교수님을 귀찮게 해드리는 것이 아닌지…….”

    “하하, 아닙니다. 덕분에 즐거운 여행길이 될 것 같습니다.”

    아이들끼리 수도에 가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만에게 매번 신세만 지는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 그리고 이거…….”

    블레인이 아만에게 작은 상자를 하나 건넸다.

    “이게 뭔가요?”

    “저희 백작가에서 보이는 작은 성의입니다.”

    시비에 백작이 대신 대답했다.

    상자를 여니 작은 팬던트가 하나 들어있었다. 아이의 주먹만 한 크기의 팬던트에는 정교하게 세공이 된 마나석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마나석 주변에는 크고 작은 보석들이 촘촘하게 박혀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했다.

    ‘……앨리의 취향이군.’

    팬던트를 본 아만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분명 백작이 엘리에게 부탁해 만든 팬던트가 분명했다.

    “가, 감사합니다. 이런 것까지 주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아닙니다. 저희가 아만 교수님께 신세 진 것이 얼마인데요. 이런 건 몇십, 아니 몇백 개라도 드릴 수 있습니다.”

    “하하,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멋쩍게 웃어 보인 아만이 상자를 닫아 제 품속에 조심히 넣었다.

    드래곤인 아만에게 이런 팬던트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지만, 백작 부부의 성의가 아닌가.

    게다가 이렇게나 화려한 팬던트라니! 어디에 걸고 다니기도 부담스러웠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볼게요. 아버지, 어머니.”

    루카스를 한번 꼭 안아준 블레인이 그의 이마에 작게 키스했다.

    “……안녕히 계세요.”

    “어머, 넬라. 안녕히 계세요라니? 다녀오겠습니다~ 해야지.”

    넬라가 우물쭈물하며 뱉은 인사말을 다정하게 타박한 블레인이 아이를 품에 꼬옥 끌어안았다.

    “사랑한다. 우리 딸.”

    “네…… 어, 엄마.”

    “흑! 넬라…… 고마워, 고맙다.”

    결국 터지고 말았다. 넬라가 처음으로 뱉은 ‘엄마’라는 단어에, 블레인의 눈물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한참을 그렇게 눈물 바람을 한 블레인은,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마차가 떠난 방향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들어갑시다. 날이 차요.”

    “네…… 조만간 아이들을 만나러 가고 싶어요.”

    “그럽시다.”

    블레인의 어깨를 감싸 안은 백작이 다정하게 그녀의 뺨에 키스했다.

    ***

    오리하 마을에 들러 하루를 보낸 아만과 아이들은 다시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여관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일행들이 마차에 올랐다.

    “넬라, 괜찮아? 배 안 고프겠어?”

    “……응.”

    백작저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넬라는 도통 뭘 먹지 못하고 있었다.

    마차를 오래 타 멀미가 난 것인가 싶어 아만이 치유마법까지 써 주었지만, 상태가 도통 나아지지 않았다.

    “흠…… 그럼 물이라도 좀 마셔.”

    “……응.”

    넬라는 대답도 겨우겨우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마차에 타자마자 안색이 파리해지기 시작하더니, 마을을 벗어나 숲길로 들어서자 손발이 저리는지 자꾸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넬라는 결국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넬라, 넬라!”

    “마차를 세우게!”

    다급하게 넬라의 이름을 외치는 루카스와 마차를 세우는 아만.

    넬라는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잿빛이 되어가고 있었다. 손은 차가웠으며 거칠게 몰아쉬는 숨은 뜨거웠다.

    다급하게 마차를 세우고 넬라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온 아만과 루카스는 아이의 손발을 열심히 주물렀다.

    아만은 열심히 넬라에게 치유마법을 시전하고 있었지만, 도통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넬라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이제 헛소리까지 중얼거리고 있었다.

    “제발… 살려줘… 살려줘요… 제가 잘못했어요…….”

    “넬라, 넬라! 정신 차려!”

    아이의 손을 열심히 주무르는 루카스의 손길이 바빴다.

    “제가… 주운 거예요……. 인형… 주웠어요… 믿어주세요…….”

    “이거 몸이 아픈 게 아닌가 봅니다…….”

    정신없이 중얼거리는 넬라를 지켜보던 아만이 입을 뗐다.

    “제발…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그제야 루카스는 고개를 들어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확인했다.

    아차 싶었다. 이곳은 넬라가 발견되었던 그 숲길이었다.

    제 엄마가 죽는 모습을 지켜봤던 넬라가 살기 위해 작은 발로 정처 없이 걸었던 그 숲길.

    넬라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잠시 말을 잃었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다시금 이 숲길로 데리고 들어왔으니 아이의 정신이 온전할 리 없었다.

    “애를 재워. 아만.”

    아만의 마법이 아이의 몸을 한번 감싸자, 거친 숨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애를 이쪽으로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생각이 짧았군요.”

    잠이든 넬라는 아직도 괴로운지 인상을 찌푸린 채 간간이 신음을 뱉고 있었다.

    “쭉 재워서 가는 게 나을 것 같군요.”

    “그래. 그리고 넬라가 잃은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아만이 조심스레 넬라를 안아 들어 마차에 올라탔다.

    앞으로 반나절 정도면 아카데미에 도착할 것이었다.

    땀으로 젖은 넬라의 앞머리를 조심스레 넘겨준 아만은 안쓰럽다는 듯 아이를 바라봤다.

    어린 나이에 겪은 끔찍한 일은 아이의 정신을 좀먹어 가고 있었다.

    “가여운 어린이…….”

    아만은 쓴 숨을 한번 삼킨 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아카데미에 도착한 루카스는 아만에게 넬라를 맡긴 뒤 곧장 오닐 공작가로 향했다.

    오닐가에서 사람이 찾아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제 아버지인 시비에가 오랜 친구였던 시러스 오닐 공작을 용서한 것도, 또한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밤새도록 살아왔던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회포를 푼 것도 알고 있었다.

    루카스는 시러스 공작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루카스의 눈에는 그저 권력에 눈이 멀어 제 친한 친구를 배신한 같잖은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버지인 시비에 백작이 그 같잖은 인간을 용서하고 다시 친구로 받아들이겠다는데.

    오닐 공작저 앞에 선 루카스가 경비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리고 스키르를 만나게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열리고 멀리서 스키르가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루카스. 여기까지 무슨 일인가?”

    “내가 돌아온 것을 알리고 싶었어. 이제 아카데미에서 만나겠지만 말이야.”

    사실 루카스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스키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만을 통해 들은 것이 사실이라면, 스키르는 지금 집을 나간 제 형인 스턴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스키르는 루카스가 반갑기나 한 건지 애매한 표정이었다.

    “고맙군. 백작님과 부인께서는 안녕하신가?”

    아직 어린아이여도 귀족은 귀족이었다. 어릴 때부터 표정을 숨기는 것을 철저히 배웠는지, 스키르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백작가의 안부를 먼저 묻는 의연함을 보였다.

    “그래. 덕분에 잘 지내고 계셔. 공작님과 부인께서는?”

    “아, 아버지께서는 황성에 가셨고…… 어머니께서는 몸이 조금 편찮으시다. 괜찮다면 다음에 인사해도…….”

    “물론이지. 걱정하지마. 나는 그냥 형이 괜찮은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고맙군.”

    루카스의 입에서 처음으로 뱉어진 형이라는 단어에,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스키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카데미에 언제 돌아올 생각이야?”

    “……레벨 테스트에 맞춰 가려고 했다.”

    “그냥 지금 같이 가자. 나랑.”

    “…….”

    루카스의 말에 그의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자신보다 네 살이나 어린 루카스였지만 왠지 모르게 언제나 형 같았다. 가끔 보면 루카스 안에 백 살쯤 된 노인이 들어 앉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가자. 형.”

    “……그래. 가자.”

    루카스의 채근에 스키르는 아랫입술을 한번 꽉 깨문 뒤, 슬프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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