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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47화 (47/225)
  • 47화. 오닐 공작가 (3)

    “그게 무슨…… 제가 잘 들은 게 맞나요?”

    제 남편에게 되묻는 공작부인인 소셋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요. 스턴이 가문의 이름을 버렸소.”

    “말도 안 돼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스턴을 만나봐야겠어요.”

    소셋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공작이 얼른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소용없소…….”

    “제가 가서 만나보면 달라질 거예요. 우리 스턴은 그런 애가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식에 소셋은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랐다.

    제 소중하고 마냥 어린아이 같은 아들이 가문의 이름을 버렸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잠시 화가 나서, 그저 잠시 방황하는 것이어야 했다.

    “비켜 주세요. 제가 만나볼게요. 제가… 제가…….”

    제 남편의 팔을 붙잡은 소셋은 이제 몸까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소용없다 하지 않았소. 이미 황제 폐하께 가서 새로운 성을 내려주길 청했다고 하더군요.”

    -털썩.

    공작의 말을 들은 소셋이 결국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흐흑… 말도 안 돼요… 말도!!!”

    “여보…….”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소셋의 어깨를 감싸 안은 공작의 눈시울 역시도 붉어졌다.

    “스턴…… 스턴!!!”

    “크흑…….”

    “당신이라도 가서 말 좀 해보세요. 우리 스턴은, 스턴은 그런 애가 아니잖아요…… 아니잖아요…….”

    공작의 손을 꼭 붙잡은 소셋이 흐느끼며 애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셋 역시도 알고 있었다. 황제에게 가서 새로운 성을 청했다는 게 어떤 뜻인지.

    그저 화가 나서 한 행동이라기에는 정도가 지나쳤다.

    로드리고 백작가와 주고받았던 선물과 편지의 내용을 전한 것은 화가 나서 한 행동일 수도 있었다.

    제국에서 명망 있는 공작가이니 황제가 이런 것쯤은 충분히 눈을 감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문의 이름을 버린 것은 달랐다.

    스스로 파문을 청한 것은 둘째 치고, 황제에게 직접 찾아가 새로운 성을 내려 줄 것까지 요청했다면 모두 진심일 것이다.

    아니, 진심이어야만 했다.

    치기 어린 행동으로 벌인 일이라기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이었다.

    “여보…… 여보! 우리 스턴 좀 어떻게 해봐요. 네!?”

    “잊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래요! 우리 아들인데…… 내 자식인데!!!”

    반쯤 정신이 나간 듯 스턴의 이름을 부르짖는 소셋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아들을 잃었다.

    ***

    시러스 공작의 집무실.

    “로드리고 백작가로 가야겠다.”

    “지금…… 말씀이십니까?”

    “그래. 시타타로 가는 스크롤을 준비해라. 아무도 모르게 갈 것이니.”

    “예. 알겠습니다.”

    집무실에 앉은 공작은 결국 시타타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제 아들을 잃는 큰 시련이 찾아왔는데 이 마음을 하소연할 곳이 하나 없었다.

    오랜 친구를 보고 싶었다. 염치없지만 십 년 만에 찾아가 제 하소연을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었다.

    그가 받아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번에 제게 온 편지와 선물에서 왠지 모를 확신이 느껴졌다.

    그가 자신을 용서해 줄 것이라는 확신.

    ‘보고싶네. 친구…….’

    시비에가 제게 욕을 한 사발 한다 하여도 괜찮았다.

    아니, 차라리 배신자라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한 사발 퍼부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제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덜 테니 말이다.

    한참을 집무실에 앉아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돌아온 비서가 시타타로 향하는 스크롤을 한 장 준비해 가져 왔다.

    돌아오는 스크롤 역시도 한 장 잘 말아서 공작의 가방에 조심스레 챙겨 넣어주는 센스도 보였다.

    “내일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오도록 하겠네.”

    “예, 다녀오십시오.”

    말을 마친 공작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망설임 없이 스크롤을 주욱 찢었다.

    공작의 몸이 밝은 빛에 한 번 휩싸이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시타타에 도착한 공작은 주변을 살폈다.

    비서가 백작저 근처 좌표의 스크롤을 준 것인지, 고개를 전부 돌리기도 전에 저택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저긴가…….’

    제 공작저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가문을 상징하는 대문에는 흔한 금장식은 커녕 은박조차도 없었으며, 대문을 지키는 기사들 역시도 서서 주변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보이는 나이였다.

    대문을 시작으로 한 담벼락은 낡았으며, 벽돌이라고 보기 힘든 것이 켜켜이 쌓여 있을 뿐, 담벼락의 역할을 충실히 잘 해낼지도 의심스러웠다.

    “누구십니까?”

    대문에 가까이 다가서자, 경비를 서던 기사들이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작저에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었으며, 게다가 공작의 차림새가 무척이나 고급스러웠다.

    그의 차림을 보자 수도에 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기사들은 몸을 흠칫 떨기까지 했다.

    “수고가 많네. 나는…… 시러스 오닐일세.”

    “시러스…… 오닐? 오닐 공작가?”

    마치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그때의 나쁜 기억의 주인공을 마주한 기사들은 검집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너무 경계하지 말게. 그저 시비에…… 아니, 시비에 로드리고 백작님께 내가 왔다 전해줄 수 있겠는가?”

    “하, 대단하신 오닐가에서 이곳 시타타까지는 어쩐 일이시랍니까? 아직도 우리가 더 쫓겨날 곳이 있습니까?”

    공작의 공손한 태도에도 기사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아냥거렸다.

    “……그저 내가 왔다고 전해주기만 하게. 자네들이 생각하는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걸세.”

    “우리가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예? 백작님을 이곳 변방까지 쫓아낸 장본인 아니십니까?”

    수치스러웠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제 친구를 이 척박한 땅까지 쫓아 보내놓고, 자신은 권력에 취해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죄책감이 느껴진 것도 잠시였다. 한때는 자신이 친구의 목숨을 구했다는 착각까지 했었다.

    그리고 제 아들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니었는가.

    공작은 자기 자신을 설득했고, 자신과 타협했다. 그렇게 천천히 자기 자신을 이해시켰다.

    “…….”

    “하, 됐고, 험한 꼴 보기 전에 가쇼. 나는 내 목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백작님이 다시 그런 꼴 당하는 것은 못 보겠으니까!”

    “그만하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서 있는 공작에게 거칠게 대항하는 기사를 다른 기사가 막아섰다.

    “가서 알리고 오게나. 우린 백작님을 따르는 사람들일세. 백작님께서 저택을 찾아오는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말라 하지 않으셨는가.”

    “크윽! 백작님만 아니었으면…….”

    “어서.”

    “알겠습니다.”

    그 기사가 자신보다 선임이었는지 사내는 원통하다는 듯 쓴 숨을 크게 삼킨 뒤 백작저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돌아오자, 굳게 닫혔던 백작저의 문이 열렸다.

    기사들의 쓰라린 눈총을 받으며 백작저에 들어선 공작은 중정을 지나는 짧은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다.

    마치 단두대에 올라서는 죄수가 된 기분이었다.

    십여 년 동안 묵어있던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백해야 하는, 그 죄를 모두 고백한다 해도 용서받을지 알 수 없는 심정은…… 참담했다.

    답답한 마음을 못 이겨 괜한 짓을 했나 잠시 후회도 들었다.

    가방 속에 있는 귀환 스크롤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저택의 문 앞에 다다랐다.

    계단. 저 계단을 오르면 제 오랜 친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화가 났을까? 제게 욕을 할까? 그것도 아니면 검을 뽑아 제게 겨눌지도 모른다.

    -달칵.

    문이 열리고 싸늘한 밤공기와 대조되는 백작저의 온기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시비에……,”

    그가 있었다. 십여 년을 보지 못했던, 볼 수 없었던 제 오랜 친구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인 백작이 제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와락

    갑작스러운 그의 포옹에 놀란 공작의 몸이 이내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흑…… 크으윽…… 시, 시비에…….”

    “울지 말게. 어찌하여 우는가. 괜찮네. 괜찮아…….”

    그를 끌어안은 시비에가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나직한 음성으로 그를 달랬다.

    “크으윽…… 시비에!!! 내가, 내가…… 내가 잘못했네, 내가…….”

    “울지 말게…… 울지 말아……. 괜찮네, 괜찮으니 울지 말게.”

    공작은 열 살 난 아이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내가, 내가 못났네. 내가…… 내가!!!”

    중정을 걸으며 했던 모든 생각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제게 욕을 하면 어찌하나, 제게 검을 뽑아 들면 어찌하나 했던 그 모든 생각은…… 틀렸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이 틀렸다. 제 친구인 시비에는 그 자리에 있었다.

    “시비에…… 시비에…… 내가, 내가…… 크흐윽!”

    “괜찮대도…… 울지 말게. 나는 항상 이 자리에서 자네를 기다렸네. 자네가 오기를 기다렸어…….”

    자신의 등을 토닥이는 시비에를 끌어안은 공작의 눈물이 그의 어깨를 적셨다.

    “차라리 내게 욕을 하게… 차라리 검을 뽑아 들게! 어찌하여, 어찌하여 자네는……!”

    “허허… 내 어찌 자네에게 욕을 하겠는가. 내 어찌 자네에게 검을 겨누겠어…….”

    “시비에… 크흑……!”

    말을 잇지 못하는 공작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백작은 그저 그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시비에도 처음엔 괜찮지 않았다. 그래드 2황자의 편에 서서 1황자를 몰아낸 주역이 시러스 오닐 공작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그 역시도 분개했었다.

    어찌하여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를 찾아가 따지려 했었다.

    따지고 욕하고 그에게 검을 겨누고 화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비참하게 이곳 시타타까지 내쫓겼었다.

    시타타로 쫓긴 지 1년여가 되었을 때까지도 그는 시비에를 용서하지 못했었다.

    매일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자신을 배신한 가장 친한 친구의 등에 언젠가 칼을 꽂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제 아들인 루카스가 태어나고 모든 상황이 변했다.

    자식이라는 존재가 제 품에 안기자, 세상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혹여 자신이 복수를 꿈꾸다 아비 없는 자식으로 키우게 되진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다음엔 저보다 자식을 먼저 가진 시비에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 시작했고, 또 그다음엔 그저 제 친구에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거니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분노는 옅어졌고, 그 분노에 가려있던 친구를 향한 감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었다.

    보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직접 묻고 싶었고, 그 이유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유와 같다면 그를 용서하고 싶었다.

    게다가 자신의 집에 찾아온 스키르를 보니, 그를 향한 그리운 감정이 더욱 확실히 모습을 드러냈다.

    같이 검술 아카데미에 다니던 그 꽃 같던 나날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제게 온 선물들을 받아본 백작은 그길로 같은 선물들을 마련해 공작에게 보냈다.

    짧은 한 줄의 편지와 함께.

    -시타타에는 푸른 노루 고기가 참 맛있네.

    제 오랜 친구를 향한 한 줄의 용서. 그것이 뜻하는 바는 컸다.

    스키르가 수도로 돌아간 그날부터 사실 그를 기다렸다.

    머지않아 제 친구가 오리라 믿었다.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다가도 창밖을 흘끗거렸으며, 괜스레 중정을 거닐기도 했고, 광산을 보러 백작저를 떠나는 일도 줄였다.

    언제든 제 친구를 이 문 앞에서 맞이하고 싶었다.

    “크흑…… 시비에……!”

    “그만 울게. 자네가 올 줄 알고 내가 푸른 노루 고기를 창고 가득 쟁여뒀네.”

    한참을 울던 공작은 백작이 장난스레 무슨 비밀이라도 되는 듯 ‘푸른 노루 고기’를 속삭이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크흡! 푸른 노루 고기가 그리도 맛있는가?”

    검술 아카데미에 있을 적에도 몰래 숨겨온 술이 있을 때 했던 버릇이었다.

    “그럼! 자, 들어가세. 자네 얼굴이 엉망이 되었구먼그래! 하하하!”

    “크흐흡! 그래, 들어가세!”

    어린아이처럼 코를 훌쩍이며 웃어 보인 공작이 제 친구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먼 길을 돌고 돌았지만 그들의 우정은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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