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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44화 (44/225)
  • 44화. 그래드의 음모.

    아란트의 황제인 그래드 루클라이어의 집무실.

    황제는 벽장에 놓인 수정구를 보며 연신 굽실거리고 있었다.

    “예, 예. 물론입니다.”

    수정구 속에 비친 사내의 모습은 인간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형상이었다.

    거무스름한 피부를 가진 사내의 머리엔 한 쌍의 뿔이 돋아나 있었다.

    붉은 안광은 건조했으며, 피를 머금은 듯 새빨간 입술까지.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나, 그 모든 것이 위협적이었다.

    “마탑주는… 잘 해내고 있습니다.”

    -확실한가?

    쇠를 긁는듯한 거친 목소리.

    “그, 그럼요. 확실합니다.”

    -내게 다시 실망을 안기지 마라. 그래드.

    “……예. 물론입니다.”

    -네가 말한 물건은 조만간 준비해 보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고개를 푹 숙인 황제가 고개를 들었을 땐 수정구에는 이미 주변과 같은 어둠만이 남아있었다.

    “크윽…… 왕께서 알게 되시는 날엔…….”

    방을 배회하는 그래드의 발걸음이 초조했다.

    “아니, 아니지…….”

    그러다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그래, 왕께서 내게 그것을 주신다 하셨으니……! 그래, 그래! 걱정할 것 없다. 이번 일만 잘 처리되면…….”

    누군가 황제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미쳤다 할 것이 분명했다.

    “크하하하하! 머지않았다. 머지않았어!”

    황제의 탐욕스러운 웃음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

    “그 이야기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요?”

    “그 있잖아요. 옛날에 시타타로 쫓겨났던…….”

    “아아, 그 로드리고 백작가요?”

    “예예, 거기 시타타에 뭐 광산이 발견 됐다나 봐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여느 때와 같이 수다에 한창이었다.

    “예? 광산요?”

    “예, 그 돌 캐는 광산 있잖아요. 보석 같은 거.”

    “아아, 그런데 그게 왜요? 다들 그런 거 하나쯤은 영지에 나오고 그러지 않나? 시타타에도 광산은 하나 있다고 들은 것도 같고…….”

    그녀의 말에 다른 여인이 목소리를 낮추며 가까이 다가섰다.

    “이건 비밀인데요…….”

    “뭔데 그래요?”

    덩달아 목소리를 낮춘 여인이 되물었다.

    “아휴, 이건 진짜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머나, 리안 엄마. 내가 어디 입 가벼운 사람이에요? 얼른 말 해봐요.”

    그녀는 리안 엄마라는 사람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럼 이거 리나 엄마만 알고 있어야 해요…….”

    더는 낮출 수 없을 만큼 목소리를 낮춘 그녀가 리나 엄마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얼른 고개를 끄덕여 보인 여인이 귀를 가져다 댔다.

    “글쎄, 그 광산에서, 마나석이 나온대요…….”

    “예에?! 그게 참말이에요? 아니, 그러면 그건 원래 국가에 귀속…….”

    어찌나 놀랐던지 한껏 낮췄던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졌다.

    “그렇죠! 그런데 그게! 그 땅이 하도 척박하니까…… 게다가 그 집이 원래 중앙귀족 아니었겠어요? 그러니 주변 반발을 잠재운답시고 그 땅을 완전히 줘버린 거래요.”

    어지간한 큰 자원들은 본래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이 맞았다.

    귀족들에게 하사되는 영지 역시 국가의 것이었으니, 커다란 자원이 발견되면 국가에 자연히 돌려주는 것이 법도였다.

    하지만 풀 한 포기 잘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을 내리면서도 황궁 측은 주변 조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었다. 혹시라도 있을 이런 대박에 대비해 철저히 조사하고 온전히 귀속시켜주었던 땅인데 이런 사달이 나고 만 것.

    “오마나, 세상에나! 그럼 그건 전부…….”

    “예, 그렇죠. 대단하지 않아요? 어휴! 그게 다 돈이 얼마겠어요?”

    먼 허공을 바라보는 여인이 달뜬 숨을 내뱉었다.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 액수가 제 머릿속을 채워가자, 다른 이의 행운이 언젠가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허황된 상상을 잠시나마 하는 듯 보였다.

    “어휴, 그런 일이 어디 흔하겠어요? 그 백작가가 원체 사람들이 좋았다면서요? 그러니 뭐…….”

    “맞아요.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 알죠? 저번에 아들 잃었던…….”

    “누구…? 아, 거기?”

    “예, 그 집이 원래 백작가에서 일했었나 보더라고요.”

    “어머, 그래요?”

    한번 시작된 가십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이렇게 시작된 작은 소문은 살이 붙고 말이 더해져 눈덩이처럼 불어나 온 제국을 돌기 시작했다.

    식당에서도, 작은 카페에서조차도 모두가 시타타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더불어 잊혀 가던, 중앙 귀족이었지만 이미 몰락해 버린 가문 역시도 새롭게 떠오르는 화두였다.

    적통을 몰아내고 반란을 일으켜 피로 쟁취한 황관은 다들 입 밖으로 꺼내지만 않았을 뿐,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

    “역시, 언제나 선이 악을 이기지요.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지 않겠어요?”

    “맞아요, 맞아.”

    권선징악. 항상 악한 것이 승리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제국민에게 찾아온 단비 같은 소식은 황권을 흔들고 있었다.

    ***

    “뭐라?!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이냐!”

    “조사 중입니다.”

    황제의 앞에 선 커시스 레노엄은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천재였다.

    38세의 나이인 지금은 황궁의 기사단장이자, 황제의 호위를 맡은 검은 기사단의 단장까지 역임하는 인재.

    그런 그가 발 빠르게 접수한 제국의 소문은 어느새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제국에 소문이 돌기 시작한 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말도 안 된다! 시타타에는 그 흔한 풀 한 포기조차도 특산품으로 내세울 것이 없었다!”

    황제인 그래드의 얼굴이 분노에 일그러지고 있었다.

    “……조사해 보겠습니다.”

    -쾅!

    분을 못 이긴 황제가 결국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아니, 백작령에 뭐가 있든 상관없다. 그들을 몰아낼 방법을 생각해라.”

    “그게 무슨…….”

    -쾅!

    “젠장! 이런 쉬운 말조차 알아듣지 못하다니! 그들을 그냥 그 영지에서 몰아내고, 국고로 환수시킬 방법이나 생각하라 그 말이야!!!”

    커시스는 황제의 원초적인 분노에 할 말을 잃은 듯 그저 입을 꾹 닫고 시선을 내렸다.

    “…….”

    “왜 대답이 없느냐? 응?”

    “알겠습니다.”

    “뭘 어떻게 알겠느냐? 검이나 휘두르는 놈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나가봐라. 네깟놈이 나설 일이 아니다.”

    황제의 모욕적인 처사에도, 커시스는 그저 고개를 한번 푹 숙여 기사의 예를 보인 뒤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커시스는 어릴 때부터 기사인 아버지를 따라 검술을 익혀 뼛속까지 기사도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황실에서 황제를 위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제 손을 더럽힌 적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합당한 명분이 있었다.

    황제에게 위험이 될 수 있는 싹을 자른다든지, 제국민에게 해가 될만한 그런 자들을 몰아내는 것 따위의 일들이야 내키진 않아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타타에 있는 로드리고 백작가는 달랐다.

    황제를 위협하지도 않았고, 제국민에게 해를 끼칠만한 일도 하지 않았다.

    시타타는 지리적 위치나 다른 무엇으로 보아도 전혀 해가 될만한 곳이 아니었다. 최북단에 위치한 영지였지만 변변찮은 항구조차 없어 무역선이 오가지도 않았으며, 라스칸 제국과 가깝긴 했지만, 황성으로 향하는 자들은 그곳을 지나치지도 않았다.

    그들은 국경이나 바다에 인접한 다른 영지에 비해 부가적인 수입을 꾀할 수도 없었다.

    영지민은 항상 굶주렸으며, 그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백작가가 무던히도 노력했다는 것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광산은 이제야 백작가에 찾아온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 비가 달아도 너무 단 것이 화근이었다.

    ‘로드리고 백작가…….’

    하지만 황제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죄를 뒤집어씌워 영영 이 세상에서 몰아내려 하고 있었다.

    여태껏 황제를 위해 묵묵히 충성했던 커시스는 한계가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안 된다. 그런 일까지 벌여서는 안 돼.’

    복도를 걷는 커시스가 제 검집을 꽉 붙잡았다.

    ***

    “로드, 상황이 조금 안 좋은 것 같은데요.”

    “갑자기 뭐가?”

    “제가 조금 전 황성 쪽에 다녀오던 참인데…….”

    아만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듣던 루카스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

    “그래서 지금 황성 분위기가 조금 뒤숭숭한 것 같더라고요.”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보다 어떻게 벌써 소문이 황성까지 났지?”

    “하하, 아시지 않습니까? 인간들이 옮기는 소문은 제피로스의 바람보다 빠르다.”

    제피로스는 바람의 정령왕의 이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바람보다도 소문이 더욱 빠르다는 인간들의 속담이었다.

    “그래… 알고 있지. 하지만 시타타는 온전히 백작가의 소유로 알고 있는데.”

    “그러니 조심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군.”

    지나고 보니 자신이 조금 섣불리 행동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작가의 생활고를 조금이라도 해결해 보고자 했던 일이, 해맑고 또 해맑은 드래곤과 함께 대형 사고를 쳐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후… 이걸 생각 못 했군.”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작가의 존폐가 걸려있는 문제에도, 해맑은 드래곤은 그저 하하하고 웃을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광산을 없앨까요?”

    정말이지 드래곤다운 발상이었다. 화근? 없애면 그만이지!

    “인간들이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을 거다.”

    “흠… 그럼 제가 나타나 브레스라도 한번 쏠까요?”

    아만이 팔을 양옆으로 작게 펼쳐 불을 뿜는 시늉을 해 보였다.

    “하, 영영 레어에 유폐되어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해라.”

    “흐음…….”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미 파내어진 광산은 물론이고, 그 광산에서 나온 광물들도 이제 차곡차곡 쌓여 감정에 들어가고 있었다.

    아만은 그들을 도와 판로를 뚫었으며, 제국 옆 섬나라이자 무역의 요충지인 바마라스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출발했다.

    “바마라스에서 오는 인간들을 우선 막아야 하나?”

    “아, 안 됩니다.”

    루카스의 말에 냉큼 손사래를 쳐 보인 아만이 고개까지 세차게 흔들자, 이상함을 느낀 루카스가 되물었다.

    “왜? 반응이 수상한데?”

    “그, 그게…….”

    “바마라스에서 오는 상단이 어디라고?”

    노루상회 이후 아만이 직접 상단을 연결해 주었다.

    하지만 저 찝찝한 반응은 뭐란 말인가?

    “……골드 나인 상단입니다.”

    “골드 나인이라…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하하, 뭐 꽤 큰 상단이니까요. 어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저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아만은 말을 얼버무리며 있지도 않은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는 척까지 했다.

    “분명 어디서 들어봤는데…….”

    골드나인. 분명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 있는 듯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을 되새기자 왠지 모르게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는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넘어가는 것이 좋겠지.

    “어디로 가는가?”

    “아, 저는 우선 에스나 왕국에 돌아갔다가 아카데미로 복귀할 계획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시타타에 들러 루카스님과 함께 갈 생각인데. 괜찮으십니까?”

    “아, 에스나.”

    유희 중인 아만의 신분은 에스나 왕국의 왕실 마법사였다.

    아카데미가 방학을 맞았으니 제 고국에 잠시 들르는 것이 맞았다.

    “네.”

    “그래, 오는 길에 들러서 같이 가면 좋겠군.”

    “그럼, 가보겠습니다.”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 아만이 방을 빠져 나갔다.

    어느새 백작 부부와도 인사를 마쳤는지 아만은 백작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창밖으로 그 모습을 본 루카스 역시도 그를 정식으로 배웅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교수님, 우리 아카데미에서 또 보는 거죠?”

    “그럼, 물론이지.”

    폴라의 물음에 아만은 눈을 접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백작은 아만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몇 번을 전해도 모자란 지 백작은 아만을 볼 때마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이, 이러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그런 백작의 모습을 보는 아만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루카스의 속 역시도 말이 아니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무탈하시길 빕니다.”

    “교수님,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아만이 백작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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