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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43화 (43/225)
  • 43화. 노루 상회 (7)

    배에 태워져 이송되던 9명의 이민족은 모두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타고 있던 배는 ‘바다를 오염시키지 말아 달라.’는 세이렌의 의견에 따라 침몰시키는 대신 아만이 깔끔하게 없애 주었고, 그곳에 남아있던 사람들 역시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렇게 아만의 레어로 돌아온 그들은 노루 무역에서 가져온 서류들을 훑어보는 중이었다.

    “좋겠군.”

    갑작스러운 루카스의 말에 아만이 되물었다.

    “예? 뭐가요?”

    “아까 보니 이민족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더군.”

    “아~ 그거요? 하! 하! 그거야 뭐 당연한 거죠. 제가 또 멋진 드래곤 아니겠습니까?”

    “흥, 멋진 드래곤이 다 죽었네.”

    이상했다. 본 적 없는 루카스의 비아냥거림.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저 표정까지.

    “로드…… 그거 혹시 저 따라하시는 겁니까?”

    “무슨 개소리지?”

    “아니, 지금 행동이 너무 이상하신데? 그거 내가 삐졌을 때나 서운할 때 하는 건데?”

    “하! 삐져!? 서운? 내가 그런 거나 할 정도로 파렴치하고 속이 좁아 보이는가!? 아니 게다가 내가 지금 삐, 삐지거나 어? 할 이유가 뭐가 있다고!”

    “엥? 맞는데? 지금 속내를 들켜 당황하시는 것 같은데?”

    -타악!

    “됐다! 내가 네 놈이랑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하!”

    손에 든 서류뭉치를 테이블 위에 내려친 루카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님 말고요. 되게 예민하시네.”

    그 모습을 본 아만은 어깨를 한번 으쓱인 뒤 다시 서류에 시선을 가져갔다.

    “하, 질투라니 웃기지도 않는군.”

    “……?”

    “이 루카스 로드리고. 아니, 라노스 알브란테가 질투를 한다고? 하!”

    “질투라고는…… 한 적 없는데요.”

    “…….”

    그랬다. 루카스가 보인 반응은 모두 질투였던 것.

    아만의 눈꼬리가 점차 휘기 시작했다.

    “호오…… 로드 사실…….”

    “시끄럽다!”

    “제가 드래곤이라서 부러우신 거구나?”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사실 아만이 드래곤이라 부러운 것이 아니라, 이민족들을 구했을 때 아만이 펼쳤던 고대 마법이 부러웠다.

    지금 루카스는 고대 마법이 아니라 상위 마법 하나 잘못 써도 마나가 고갈되어 죽을 수도 있는 인간의 몸이었다.

    하지만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지닌 드래곤은 그런 걱정 따위를 할 필요가 없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루카스 역시 그랬었고.

    드래곤으로 살았던 그 기억이 모두 사라지기만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오늘과 같은 기분을 느낄 필요가 없었을 텐데. 지금 루카스는 환생의 길에 들어서던 그 순간을 후회하고 있었다.

    “맞으시네. 아니, 그럼 드래곤으로 다시 환생하시지 그러셨어요.”

    “......네가 부러운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처한 이 상황이 오늘 싫었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드래곤으로 살라니? 이미 오천 년이라는 긴 시간을 드래곤으로 살았다. 나는 그 시간이 아주 지루하고 지겨웠어.”

    “이해가 안 되네요. 나는 너무 재밌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최강의 마법 생물! 신이나 정령왕이 아니라면 우리를 이길 자가 없는데? 이게 얼마나 좋은데요!”

    아만의 해맑은 말에 루카스는 그저 고개를 작게 저을 뿐이었다.

    “너도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너도 알게 되겠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아만.

    “개의치 마라. 인간으로 살며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문제이니. 나도 곧 완벽히 적응하겠지.”

    “……그리고 저도 있지 않습니까?”

    “……?”

    “로드 곁을 지킬 지상 체강의 생명체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로드께서는 저를 지금처럼 막 부려먹으세요! 그럼 되지 않습니까!”

    아만의 말에 가슴이 찌르르했다. 그 긴 세월을 살면서도 이런 말은 들어본 적 없었다.

    아만의 말대로 그 역시 지상 최강의 생명체였으며 그들을 통솔하는 로드였기에,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아만의 순수한 도움의 말에 가슴이 먹먹했다.

    “……고맙다.”

    “뭘요. 로드께서는 언제까지나 제 로드이십니다.”

    아만을 바라보는 루카스의 눈에 감동이 가득했다.

    “크, 크흠. 알겠다. 그럼 이 자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해 봐라.”

    어색한 분위기에 괜스레 헛기침을 해 보인 루카스가 서류철을 툭툭 두드렸다.

    “하하! 벌써 부려먹으시네요!”

    루카스가 가리킨 서류철을 들어 보인 아만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그대로 두는 편이 낫겠습니다.”

    “어째서지?”

    뜻밖의 대답이었다.

    “뭐, 저 역시도 이 개 같은 족속들을 당장에라도 가서 처단하고 싶으나…….”

    “싶으나?”

    “로드께 피해가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명단에 있는 대부분은 아란트 제국 중앙 귀족들이고, 다른 나라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더군요. 그런데 시타타에 거점을 둔 노루상회가 순식간에 와해되는 것도 모자라, 바마라스에 있는 노루 무역까지 하루 새에 끝장났습니다.”

    루카스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에 연루된 귀족들까지 전부 화를 입는다? 그렇다면 로드리고 백작가 역시 의심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게다가 새로 발견된 광산 때문에 벌써 시타타에 눈독 들이는 자들도 생겼구요.”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저들을 저대로 두기엔 어딘가 찜찜하고 짜증 나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 이들을 당장 처리한다면 로드리고 백작가에 분명 화살이 돌아올 겁니다. 광산을 발견하기 전에는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 행동하지 못했다가 금전과 확실한 명분이 생기니 그들을 쳤다고 생각할 겁니다.”

    “흠…….”

    “로드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잘 압니다. 그래서 이 아만이 또 한 가지 해결 방법을 생각했지요.”

    “호오…….”

    갈수록 기특해져 갔다. 자신의 표정을 읽고 답까지 하다니!

    “크흠. 뭐, 그렇게 기특하게 안 보셔도 됩니다. 이 아만은 생각보다 똑똑하니 말이죠.”

    아만의 우쭐거림에 기특했던 그 기분이 순간 차게 식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은 뭐지?”

    “팔려갔던 노예들을 모두 꺼내올 생각입니다. 그러고 나서 조용히 경고하는 거지요.”

    “그럼 그들을 직접 처단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차피 다 알게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또 생각했지요. 노예로 잡혀간 이의 일족. 그들의 힘을 빌리는 겁니다. 어찌 되었건 자신의 일족을 잡아가 노예로 부린 것 아닙니까? 그러니 그들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지요.”

    이것 또한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들을 혼내준다는 말인가?

    귀족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순순히 당해줄 리도 없고 말이다.

    루카스의 의뭉스러운 표정에 아만이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려 보였다.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

    백작가로 돌아온 루카스는 방에 앉아 멍하니 지난 일을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는 약해빠진 집안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아…… 이걸 어쩌면…….”

    절로 나오는 한숨에 인상이 찌푸려지길 여러 번.

    -똑똑똑

    “도련님, 식사하셔야죠.”

    “그래.”

    밖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든 루카스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에 들어서자 정신이 없어 잊고 있었던 사람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루키! 너 아만 교수님이랑 어디 다녀왔다며? 그 어디라더라…… 나 분명 들었는데……!”

    “바마라스. 바마라스라고 들었다.”

    한나절을 넘게 자리를 비웠으니 그에 맞게 아만이 무어라 핑계를 댄 듯했다.

    “그래. 바마라스에 다녀왔어.”

    “우와! 키르 너 바마라스 가봤어?”

    “흥. 그런 상인들이 득실대는 곳에 내가 뭣 하러?”

    “얘랑은 말을 말아야지. 어휴!”

    스키르와 폴라가 말을 주고받는 사이 들어온 백작부부가 환히 웃었다.

    “오! 우리 아들!”

    마치 며칠은 못 본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루카스를 끌어안는 시비에 백작.

    “예. 아버지.”

    “그래. 아만 교수님께 전해 들었다. 같이 바마라스에 다녀왔다고?”

    “예.”

    그의 품에 안겨 어색한 웃음을 짓는 루카스의 머릿속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라고 얘기한 거지?’

    식당 안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아만과 함께 바마라스에 다녀온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다녀왔는지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바마라스에서 겪은 재밌는 일이 있느냐? 아니, 그보다 그곳은 어떻더냐? 나도 오래전 한 번 가본 것이 전부인지라 궁금하구나.”

    “그래. 엄마도 궁금하구나.”

    의자를 꺼내 앉으며 묻는 백작부부의 말에 루카스는 이제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도대체 뭐라고 얘기한 거냐고! 이 망할 놈의 도마뱀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혹시나 다른 정보가 나올까 싶어 최대한 천천히 의자를 빼내는 중이었다.

    “맞아! 마법상점에 갔다며? 새로운 책을 찾으러 갔다고 하던데! 무슨 책이었어?”

    됐다. 성격이 급한 폴라 덕에 드디어 정보 하나가 톡 튀어나왔다.

    “아, 그래. 책을 찾으러 갔었어. 아만 교수님께서 필요한 고서가 있다고 해서 갔었는데 내가 같이 가게 해달라고 했어.”

    “오! 우리 아들이 직접 청했다는 말이냐? 그런 부탁은 통 하지 않더니만…… 그래! 무슨 책이 보고 싶었느냐? 이 아비에게 말해보아라. 혹시 구하지 못했다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구해줄 테니!”

    “호호, 여보도 참! 그래, 루카스. 아버지께서 네가 배움에 필요하다는데 무엇을 아끼시겠니? 어서 말해보렴.”

    제 부모는 백작저의 사정이 나아지기 시작하자 이처럼 무엇이든 해주려 발을 동동 굴렀다.

    “아닙니다. 그저 고서가 궁금해 따라갔던 것이지 필요한 책은 모두 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것 참……. 이 아비가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이리도 안달인데 어째 말을 하지 않는지 원…….”

    백작은 어려웠던 사정 때문에 못 해줬던 것들이 마음에 걸리는지, 루카스가 거절의 말을 전할 때마다 이처럼 울상이 되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이 모든 것이 썩 나쁘지 않았다.

    지금의 삶은 어떤 것을 갖게 되더라도, 못 가진 것 없이 누렸던 전생에 비하면 절대 풍족할 수는 없겠지만, 이처럼 자신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하는 제 부모를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간지러웠다.

    “제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루카스가 눈을 접어 활짝 웃자, 백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작은 한숨과 함께 웃어 보였다.

    ***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오자 그곳엔 아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그래. 이렇게 일찍 올 거였으면 같이 들지 그랬나?”

    “하하, 저도 이렇게 일찍 끝날 줄은 몰랐는데…… 그럴 걸 그랬네요!”

    아만의 들뜬 목소리를 들으니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일은 잘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흠…….”

    “예.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죠. 하지만 이 이만이 일을 기가 막히게 처리했죠!”

    의심의 눈초리에 맞서 재빨리 항변하는 아만.

    고개를 한번 끄덕인 루카스가 테이블에 앉자, 아만의 입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누구를 만났으며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장황한 과정과 계획이었다.

    들어보니 아만은 대여섯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해냈다.

    세이렌을 제외한 사건에 엮인 모든 종족의 수장을 만났으며, 그들과 함께 언제 어디를 어떻게 공략할지까지 이야기를 끝낸 상태였다.

    이 모든 것이 이토록 빨리 이뤄질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제가 드래곤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드워프 족장까지 아주 쌍수를 들고 환영하더라고요! 자신들 역시 잃어버렸던 동족을 찾을 수 있겠다면서 말입니다!”

    그럴 수밖에. 드래곤을 등에 업고 복수를 할 기회가 어디 흔한가?

    그러다 보니 제 발로 직접 찾아와 도움을 주겠다는 드래곤을 쌍수, 아니 쌍족까지 들어 환영해야 맞았다.

    “뭐, 드워프가 그렇게 싱겁게 끝났으니 엘프는 오죽하겠습니까? 벌써 활이며 검까지 다 챙겨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니까요? 하하! 엘프가 검이라니! 얼마나 급했으면 가보까지 들고나오더라고요. 게다가 토토족은 또 어떻고요! 제 몸집만 한 스크롤을 등에 짊어지고 나와서 당장 가자고 하는 걸 말리느라 얼마나 혼났는지……!”

    “일을 정말 잘했군. 믿음직스러워.”

    신이 나서 말하는 아만에게 건넨 진심 어린 칭찬 한마디. 그의 말에 아만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로드?”

    “그래, 진심이다. 아주 잘했다.”

    루카스가 다시 한번 쐐기를 박듯 건넨 말에, 아만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잘했다…… 아만은 잘했어……!”

    “하하. 그래, 잘했다. 아주 잘했고 말고.”

    “크흡……! 저 앞으로도 잘할 수 있습니다! 아니, 잘할게요!”

    아만의 감격스러운 표정에 루카스 역시도 기분이 좋았다.

    해결이 어려울 것만 같았던 문제를 이렇게나 쉽게 처리하다니. 사실 기대 이상이었다.

    ‘드래곤이 좋긴 좋군…….’

    환생의 문에 들어서던 순간을 다시 한번 후회하는 루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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