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노루 상회 (4)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을 구출해 내는 것.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지하 공장 그 어디에도 경비를 서거나 아이들을 지켜보는 사람이 없었다.
“로드…… 그런데요……. 여기 너무 조용한 거 아닙니까?”
아만 역시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지 목소리를 낮추며 물어왔다.
“나도 안다. 내가 탐색 마법을…… 이게 아니지. 뭐 하고 있어? 얼른 마법 안 쓰고?”
“아, 맞네.”
루카스의 말에 그제야 생각이 난 듯 눈을 한번 찡긋 해 보인 아만이 탐색 마법을 넓게 펼쳤다.
-사아아아
“흠……. 위험한 건 없는데요. 그냥 적당히 알람 마법 정도만 걸어두고 비워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애들이니까 그냥 간 거 아닐까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자들이 분명 무슨 조치를 취한 것일게다.”
“그럼 아이들은 왜 아직도 환상약을 만들고 있습니까?”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루카스의 입에서 힘겨운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렇네요. 뭐 저깟 애들쯤은 죽어도 상관없으니 이런 위험한 일을 시키는 거겠죠. 젠장할 놈들!”
사실 아이들은 넬라나 자신의 또래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몸집이었다. 그 말인즉 열다섯도 넘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데려다 위험한 독극물을 취급하게 했다는 것.
인간의 탈을 쓰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자, 우선 쟤들을 구해 나가는 게 먼저겠네요.”
“그러지.”
-쾅!
아만의 손에서 쏘아져 나간 마법이 순식간에 문의 잠금쇠를 풀어냈다.
-쉬이익…… 쉬이익…….
하지만 아이들은 커다란 굉음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거친 숨을 일정하게 내뱉을 뿐이었다.
“후…….”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이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래도 환상 버섯에 중독된 듯 보입니다.”
환상약의 주요 재료인 ‘환상 버섯’은 잠깐은 괜찮았지만, 저렇게 장기간 노출 시에 사람을 멍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 때문에 환상약을 잘 정제해 진정제로 사용하기도 했고 말이다.
“전부 재워서 데리고 나가는 게 좋겠군.”
“예. 로드.”
-털썩!
아만이 시전한 슬립 마법에 아이들은 모두 바닥에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일단 네 레어에 모두 데려다 놓는 게 좋겠군. 그곳이라면 인간들도 찾을 수 없을 테니.”
“하, 제 레어가 무슨 탁아소입니까?”
당연하다는 듯 제 레어로 가라는 루카스의 말에 아만이 입을 삐죽였다.
“창고.”
“어이구~ 우리 집에 가시죠~ 우리 가여운 어린이님들! 그럼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하지만 루카스의 한마디에 삐죽이던 입은 쏙 들어가고, 막 만들어 낸 푸딩처럼 부드러워진 아만은 아이들을 데리고 재빠르게 사라졌다.
-피식.
그 모습을 본 루카스 역시 참혹한 현장에서 잠시나마 웃음을 되찾았다.
“하아…….”
하지만 비어버린 공장을 다시 바라보자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인간들의 욕심은 도대체 어디가 끝이라는 말인가…….’
진짜 인간이 되어 살고있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루카스가 지켜본 인간들은 도대체 만족이라는 것을 몰랐다.
인간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저택에 살면서도 다른 집을 탐냈고, 더 나아가 한 나라를 통치하는 왕이 되어서도 다른 나라를 탐냈다.
그 때문에 일어난 전쟁은 수많은 피와 살육을 불러왔고, 지아비를 잃은 여인과 아비를 잃은 자식을 수없이 만들어 냈다.
피와 고통이 가득한 승리를 안고 수많은 희생자는 뒤로한 채, 단 하나의 영웅을 내세워 그것이 진정한 애국자라 칭했다.
-파앗!
인간에게 애처로움이 들 때쯤 아만이 돌아왔다.
“됐습니다. 혹시 몰라 결계도 발동해 두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고생했다. 다음은 어디로 갈 생각이지?”
“안 그래도 이놈들이 이동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어디로 가나 대충 지켜봤는데 항구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배를 타려는 심산인가 봅니다.”
“……배를? 인원은 그들 셋이 전부가 맞는가?”
“네. 주변에 다른 인기척은 안 느껴집니다.”
시타타에서 바다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항구까지 가려거든 라스칸 왕국과의 경계까지 가야 했다. 그러려면 마차를 타고 다섯 시간은 족히 이동해야 하는 거리였다.
‘어째서지? 디바노스로 가려는 것인가? 하지만 디바노스 사람은 죽었는데…….’
루카스가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자 아만이 물어왔다.
“어떻게 할까요? 그들을 쫓아갈까요?”
“네가 이번 일은 알아서 한다고 큰소리 치지 않았나?”
“무, 물론입니다! 혹시 로드께서 의견이 있을까 해서 여쭤본 겁니다. 그, 그럼 가시죠!”
“어디로?”
“쫓아갈 겁니다!”
“……항구로 향하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면 그들이 배를 타기를 기다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고작 셋이 아닌가? 다른 노루 상회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는 아는가?”
“…….”
노루 상회는 시타타에서 가장 클 뿐 아니라 하나뿐인 청년회였다. 회원 모두는 아닐지라도 저들이 전부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이만한 규모의 일을 벌였는데 저들이 전부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무, 물론이죠!”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러니 조금 도움을 주는 수밖에.
“그래, 그럼 다른 이들을 한번 찾아보지. 내가 알기로는 저번에 갔던 술집 근처에 잡화점이 하나 있다.”
“오, 그곳에서 혹시 수정구를 사용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대부분의 서민들은 수정구를 살 돈이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수정구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마나가 필요했다.
그래서 마을에 있는 잡화점에서는 마나를 응집해 둔 작은 마나석을 이용해 이용료를 받고 수정구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두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럼 가서 좌표를 한번 추적해 보면 되겠네요. 역시 로드십니다!”
“……가지.”
***
-딸랑!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잡화점에 들어선 그들은 곧장 주인장에게로 향했다.
“예, 무엇을 찾으십니까.”
“수정구를 좀 사용하고 싶습니다.”
“수정구 번호는 아시죠?”
“물론입니다. 입력하는 방법도 모두 알고 있으니 안내만 해주시면 됩니다.”
“예, 1분당 1실링입니다. 선불로 먼저 10실링 내시고 저쪽 문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나가실 때 남은 돈은 돌려드리니 걱정하지 마시고. 혹시 시간이 초과되…….”
주인장의 말을 끊어낸 아만이 그의 손에 금화 하나를 쥐여주고는 얼른 몸을 돌렸다.
“이, 이런 큰돈은 자, 잔돈이 없습니다만…….”
“예. 다음에 받으러 오겠습니다. 그럼 바빠서 이만.”
-달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은 방 안에는 단출한 테이블과 함께 기다란 벤치가 놓여있었다.
즉각 수정구 위에 손을 올린 아만이 지그시 눈을 감자, 수정구에는 작은 숫자들이 실처럼 나열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았던 눈을 뜬 아만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오늘 것은 없네요.”
“그럴 리가 없다. 비켜라.”
정말 그럴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루카스 역시 그들에게 표식을 남겨뒀기 때문.
‘표식을 남겨 뒀다더니……. 일을 건성으로 하는 용 같으니라고.’
그들 중 하나는 분명 이곳에 들렀다.
“하, 정말 나 못 믿으시는 건 언제쯤…….”
루카스가 수정구에 손을 얹자 다시 한번 숫자들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그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실처럼 나열되던 숫자들 중 몇몇이 커다랗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 없다니까 그러…… 있네?”
마법이란 수학과도 같았다. 떠오르는 숫자들의 배열이 어딘가 이상할 때엔 분명 누군가 임의로 숫자를 비틀어 둔 것이 분명했다.
“마법의 배열이 이상할 땐 그 숫자를 다시 뒤집어 맞춰보면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예.”
“가지.”
“와…… 이런 게 바로 고룡…….”
“시끄러워.”
***
잡화점을 빠져나온 그들은 곧장 수정구 번호의 좌표로 향했다.
“바마라스 아닙니까 여기?”
“맞군.”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바마라스였다. 중앙 대륙과 북부 대륙 사이에 있는 큰 섬나라인 바마라스는 예로부터 무역의 요충지 역할을 했다.
그들의 눈에 바마라스의 특징 중 하나인 북부 대륙과 중앙 대륙을 섞어 놓은듯한 건물 양식이 들어왔다.
“여기가 맞는 듯싶군.”
“확실하네요.”
그들 앞에 있는 건물에는 ‘노루 무역’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프론트에서 직원 하나가 그들을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노루 무역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 너희 사장 어딨어?”
“예? 사장님은 왜…….”
“왜긴 왜야. 할 말이 있으니까 그렇지.”
아만은 그에 맞서 친절한 말투로 직원과 말장난을 하고 있었다.
-펑! 콰쾅!
하지만 그의 말장난은 루카스의 손에서 쏘아진 마법에 끝이 나고 말았다.
“앗! 제가 물어보고 있었는데!”
“시간 낭비 그만해라.”
루카스가 쏘아낸 마법은 천장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2층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콜록…… 콜록!”
구멍이 뚫린 바닥을 향해 천천히 기어오는 사내는 희뿌연 먼지 속에 미친 듯이 기침을 하고 있었다.
-파앗! 쾅!
순식간에 그곳으로 텔레포트한 루카스의 손에서 마력이 쏘아져 나가고.
“끄억!”
속절없이 공격당한 사내는 벽에 부딪혀 피를 토하고 있었다.
“찾았군.”
“크억! 컥!”
사내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루카스의 눈에는 그 어떤 감정조차 깃들어 있지 않았다.
“네 놈 하나 때문에…….”
-투캉!
“끄아아아악!”
날카로운 얼음 창에 꿰뚫린 사내의 왼쪽 팔은 그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투캉!
다음은 오른쪽 다리.
“끄아아악! 사…… 살려주…….”
-투캉!
오른쪽 팔.
“끄어어억…… 제…… 제발…….”
-투캉!
마지막 남은 왼쪽 다리까지. 사내의 모습은 마치 짚단으로 엮어진 저주 인형처럼 얼음 창에 사지가 꿰뚫려 바닥에 처박힌 모습이었다.
“살려주는 것은 조금 어렵겠군. 하지만 대답을 잘하면…….”
루카스의 눈이 벽에 걸린 초상화로 향했다. 그곳에는 눈앞에 사내와 함께 다정히 서 있는 그의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네 가족들을 살려주는 것은…… 한번 생각해 보지.”
“크억… 어어억… 가족, 가족들은… 제발…….”
사내의 처절함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초상화 속에 있는 그의 어린 아들딸은 환상약 공장에 있던 그 아이들과 또래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었다.
“더럽군. 네놈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조차 더러워.”
“무, 무엇이든… 말… 크윽! 하겠습니다…….”
사내에게 다가선 루카스의 얼굴에는 역겨움이 가득 묻어나왔다.
“그래야지. 너 같은 벌레에게도…… 처자식은 소중하다니. 이것 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다는 듯 말려 올라간 한쪽 입꼬리가 매서웠다.
“그, 그러니… 커억! 제발…….”
“아만.”
“예, 예? 저요?”
그 모든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아만이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그래. 이 벌레 같은 자의 처와 자식을 살려둘지 말지를 네게 맡길 테니…… 모든 정보를 알아와라.”
“재밌는 건 로드께서 다 하시고 저는 질의응답만 하라 그…….”
루카스는 깐죽거리는 아만을 한번 째려봤다.
“말씀이시구나~ 저 질의응답 진짜 좋아하는데! 하하하! 재밌겠다!”
“레어로 가있을 테니. 네가 하겠다고 말한 일 처리를 한번 보여줘 봐라.”
“예엡!”
-파앗!
루카스가 떠나고 그곳에는 사내와 아만만이 남게 되었다.
“자, 나도 재밌는 거 좀 해야겠는데. 해도 되지?”
아만이 히죽 웃자, 사내의 눈동자에 공포가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