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노루 상회 (3)
백작저로 돌아온 아만과 루카스는 먼저 가까운 곳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자, 마나 유지하는 거 잊지 말고.”
“예, 걱정 마세요. 저 그렇게 바보 아닙니다!”
루카스는 아만에게 벌써 같은 이야기를 두 번째 당부하고 있었다. 그는 폴리모프를 그대로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만이 꾸준히 마나를 유지해 주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 바보 아닌 거 안다.”
아만 역시도 자신만 믿으라며 호언장담을 했다.
‘그래, 쟤가 진짜 무슨 바보도 아니고… 아니, 쟤 좀 바보인데… 아냐, 그래도 갓 태어난 해츨링도 아니고… 그래, 믿어야지. 믿자.’
그 때문에 루카스는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정말 애써서…….
“그럼, 이따 정리해서 뵙지요! 아, 그래도 너무 날뛰시면 안 됩니다. 아시죠?”
“허허, 이 드래곤도 참. 누가 보면 내가 화를 못 이겨 날뛰는 줄 알겠구먼.”
“와, 꼭 거짓말하실 때 말투 그렇게 하시더라? 제가 모를 줄 아셨나 본데, 이거 안 되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어차피 뭐 시간도 얼마 차이 안 날 거고.”
들켰다. 루카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주 바보는 아닌 듯싶었다.
“허허, 이 드래곤이 정말?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것인가? 걱정 말고 가게.”
“아뇨, 이미 알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모자라면 제가 혼자라도 정리할 테니 같이 가시죠.”
“그, 그게……!”
-파앗!
루카스는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한 채, 아만의 손에 이끌려 텔레포트당하고 말았다.
“아따, 아니라니께? 그때 내가 거그서 갸를 어떻게 잡았냐면!!!”
처음 보인 것은 한 사내가 탁자 위에 앉아 걸출한 목소리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장면이었다.
“어? 너그는 뭐여? 뭔디 여그 갑자기 나타났어?”
하지만 갑작스레 나타난 두 인영에 놀란 그는 하던 말을 멈추고 인상을 험악하게 구겨 보였다.
“아, 우리?”
“그려, 너거 여기 어떻게 들어왔냐고!”
“아, 왜! 하던 얘기 계속해 봐. 그래서 걔를 어떻게 잡았다고?”
하지만 아만은 사내가 인상을 구기든 말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런 우라질 놈이!?”
-쿠당탕탕!
그가 테이블을 순식간에 테이블을 박차고 뛰쳐나오는 순간.
-콰직! 콰지직!
“끄어어억! 끄아아아아악!!!”
그의 몸에 라이트닝 스톰이 사정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푸쉬이이이…… 털썩!
거구 사내의 몸에 꽂힌 라이트닝 스톰은 그를 순식간에 통구이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으음~ 고기 냄새! 너희 노루 상회라 그런지 노루 많이 먹었나 봐? 사람이 구워졌는데 맛있는 노루 냄새가 나~”
눈까지 지그시 감은 아만은 제 쪽으로 손까지 파닥이며 향을 음미했다.
“저, 저게 무슨!”
그러자 방 안에 있던 다른 사내 셋은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몸이 그대로 굳어 입만 달싹일 뿐이었다.
“자, 얘 말투 들어 보니까…… 디바노스 사람 같던데. 맞지?”
남쪽 끝에 있는 디바노스. 외따로 떨어진 섬나라인 디바노스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해역 탓에 타국과의 교류가 적은 나라였다.
조금 전 노릇하게 구워진 사내는 바로 디바노스의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그, 그건!”
“내가 알기에는 시타타에 디바노스 사람은 없거든. 그 따뜻한 나라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뭐하겠어? 거기 엄~청 예쁘고 따뜻한 나라잖아?”
아만이 천천히 가까워져 오자 사내들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었다.
“자, 이제 다들 앉아봐. 나 다음 얘기가 궁금했거든. 쟤가 뭘 잡았는지 너희는 알지?”
의자에 털썩 앉은 아만의 잔망스러운 윙크에 사내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미, 미친놈이다…… 저건 미친놈이야!’
갑작스레 방 한복판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 자신의 동료를 순식간에 통구이로 만들었다. 게다가 저렇게 잔망스럽고 짜증 나는 말투라니!
사내들은 험난한 삶을 살았어도 이런 당황스러움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서~”
그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루카스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하…… 인간들이 저 자식이 드래곤인 걸 알면 안 될 텐데…….’
***
“아니, 그래서 그자들을 그대로 살려두겠다는 말인가?”
“네, 어차피 저놈들 한 시간도 안 돼서 뛰쳐나갈 겁니다. 자신들이 하는 말을 순순히 믿어준 바보라고 생각하겠죠.”
조금 전 아만은 남아있던 사내 셋이 하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는척하며 ‘고맙다’라는 말까지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 뒤에 선 루카스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말 한마디 보태지 않았고 말이다.
이번 기회에 아만이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싶기도 했고, 자신이 말을 보태면 상황이 혹여 나빠질까 싶어서였다.
‘말 한마디 꺼냈다가 인간 놈들이 기어오르기라도 하면……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아만은 인간들을 그저 재밌는 유흥거리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루카스는 달랐다. 그는 진짜 인간의 몸이었다. 드래곤이었다면 또 말이 달랐겠지만, 지금은 분명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다음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저자들이 혹시 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하하, 로드도 참. 저 그렇게 바보 아닙니다. 제가 예? 다 생각해 둔 방법이 있다구요!”
“……그렇지. 나도 자네를 믿네.”
루카스의 어색한 대답에 아만이 눈을 흘겼다.
“그거 또 거짓말이죠?”
“어어? 아닐세. 나는 정말로 자네를 믿네. 굳게 믿고 있다 그 말일세.”
“진짜 거짓말 못 하시네…… 아만 상처받았어…….”
젠장 할 드래곤! 도대체 저 드래곤이 어떻게 자신의 거짓말을 이렇게도 속속들이 알아차리는지 정말이지 모를 일이었다.
“허허, 자네도 참. 어찌 이런 일에 상처를 입고 그러는가? 내 말이 거짓처럼 느껴진다 그 말인가?”
“……됐습니다. 로드랑 말 안 할 겁니다.”
큰일이다. 이제 말까지 안 한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이건 뭐 육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미칠 노릇이었다.
“크흠, 나랑 말을 안 하면… 루, 루카스도… 사, 상처받는데…….”
최후의 수단이었다. 이래도 싫다 저래도 싫다 하니 어디선가 보았던 아이를 달래던 엄마를 따라 해본 것인데 아무래도 역효과가 난 듯 보였다.
“……그거 뭡니까? 저 따라 하신 겁니까?”
“…….”
“다시는 하지 마세요. 그때는 진짜 말 안 할 겁니다.”
아만의 눈이 가늘어지자, 루카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옘병할 놈을 내가 언젠가…… 뒷통수를 크게 한 대 후리고 말 것이다!’
가늘게 했던 눈을 풀어낸 아만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건 그렇고. 거짓말은 조금 전 그자들처럼 하는 겁니다. 뭘 잡았냐 물었더니 아주 뻔뻔하게 노루를 잡았다고 하더군요! 하! 나 원 참 어이가 없어서. 누굴 바보로 아나.”
“그런데도 그 인간들을 살려두다니. 아주 강한 인내심이구먼.”
“그거 비꼬는 거잖아요. 다 압니다. 저들에게 표식을 남겨 뒀습니다. 저들이 움직이면 제가 알 테니 다음 행선지는 걱정 안 하셔도 좋습니다.”
“호오…….”
“보세요! 지금 이 쉬운 거 하나에도 감탄하시잖아요! 제가 바보인 줄 아셨다~ 그거 아닙니까!?”
“절대 아니래도!”
“하, 정말. 그리고 저자들은 대륙을 넘어 움직이는 자들입니다. 맨 처음 제가 구웠던 그놈만 해도 디바노스 놈입니다. 아니 디바노스 인간이 왜 여기까지 와서 설치는지!”
“엘프겠지. 분명 엘프를 잡아 여기 중앙 대륙으로 넘기는 자들일 것이다. 아르페 섬 엘프들이 디바노스에 넘어가 사는 일이 많으니…… 그들을 잡아다 넘기는 것이겠지.”
디바노스 옆에 있는 아르페 섬은 주변 험난한 해역을 방패 삼아 엘프들의 터전이 되어준 작은 섬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삶의 모든 것들을 해결하기에 어려웠던 아르페 섬 엘프들은 옛날부터 디바노스와의 교역을 통해 그들의 삶을 이어나갔다.
그 때문에 인간에게 적대심이 많은 엘프들 조차도 디바노스 사람이라면 먼저 적대를 풀고 다가가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도 그런 작자들이 있다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도 옛날에나 봤지 뭐… 이종족들 잡아다 노예로 쓰는 족속들이 아직도 있네요. 인간들은 이럴 때 보면 정말 치가 떨립니다. 안 그런가요?”
“…….”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도 치가 떨렸다. 3천 년 전 그 사건을 생각해 보아도 인간들을 멸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지만 참아냈다.
“이래도 인간을 놔둬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래야지. 그래야만 한다. 우리는 그 잘난 주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작은 존재들일 뿐이다. 주신이 인간을 만든 데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 로드. 생각을 해보십시오. 신계에 사는 무서운 신들은 전부 인간을 벌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뭣 하러 그런 짜증 나는 짓을 한답니까? 형벌의 신이라뇨!”
형벌의 신. 말 그대로 형벌을 관장하는 신이었다. 루카스 역시도 드래곤으로 지낼 때에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형벌의 신이 관장하는 종족은 오직 인간뿐이라고 말이다.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살육을 하는 것도, 자신의 부모나 자식을 죽이는 것도 꺼리지 않는 잔혹한 종족. 인간.
그들의 거듭되는 악행을 보다 못한 주신이 만들어 낸 것이 형벌의 신이었다.
“게다가 나쁜 짓을 저지른 다른 종족들은 형벌로 인간으로 환생한다면서요?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그래?”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쁜 짓을 저지른 종족이 환생하는 게 인간이라니?
그럼 루카스는 남들이 형벌로 받는 것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래서 천사들 표정이…….”
“예?”
“아니, 아니다. 그보다 지하에 잡혀있는 이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하! 하! 하! 이 똑똑한 아만이 전부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로드는 이번에 제가 어떻게 이들을 혼내주는지 지켜만 보시라구요!”
아만은 이 기회에 자신을 바보로 보는듯한 루카스의 시선을 확실히 바꿔 놓을 심산인 듯 보였다.
“……그러지.”
“자, 그럼 다음 장소로 가시죠!”
-파앗!
아만과 함께 텔레포트한 곳은 겨우 촛불 몇 개만 켜 둔 어두운 지하였다. 아만이 앞장선 곳에는 작은 문이 하나 있었고, 희뿌연 창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열 명쯤 되어 보이는 인영이 무언가를 분주히 하고 있었다.
-쉬이익… 쉬이익…….
일정하게 들려오는 숨소리와 함께 문 사이로 풍겨오는 매캐한 냄새.
-달그락… 달그락…….
그와 함께 들려오는 유리가 부딪치는 소리.
-탁! 탁!
무언가 털어내는 듯한 소리까지.
“환상약 제조 공장입니다.”
“……뭐?”
환상약을 제조한다는 말은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두꺼운 천을 코에 뒤집어쓰고 거친 숨을 내쉬며 약을 만드는 사람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루카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린아이?”
“맞습니다.”
놀랍게도 열 명쯤 되어 보이는 사람은 모두 어린아이들이었다.
“이래도…… 모두 살려 두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아니, 모두라고는 하지 않았다. 이런 개자식들은 모두 죽여도 마땅하지.”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새어나왔다.
“모두 죽여라. 이 일에 연관된 자는 단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라. 살려달라 애원할 시간조차 주지 말고… 모두 갈기갈기 찢어 죽여라.”
“예. 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