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노루 상회 (2)
술집을 빠져나온 아만과 루카스는 주변을 한번 둘러본 뒤 그의 레어로 빠르게 텔레포트했다.
“그래, 어디까지 알아봤지?”
“휴! 숨좀 돌리구요.”
아만이 숨이 찬다는 듯 가슴께를 붙잡자, 루카스는 기가 막혔다.
“……텔레포트했잖아. 누가 보면 뛰어 온 줄 알겠군.”
“흠흠. 사실 저번부터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만, 조금 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할 것 같아서…….”
“본론만 빠르게 말하지 그래?”
“……안 할래요.”
미칠 노릇이었다. 도대체 저 드래곤은 어떻게 된 게 정상적인 구석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조금 다그쳤다고 안 한다니? 게다가 고개를 홱 돌리고 팔짱을 척하고 낀 저 모습은 뭐란 말인가?
“……해봐.”
“아니, 로드가 자꾸 닦달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 얼마나 뒤에서 혼자 애썼다구요!”
“……알겠으니 해봐.”
“됐습니다. 안 할 겁니다. 로드는 제가 고생한 것도 몰라주고!”
루카스는 저 뒤통수를 한 대 시원하게 쥐어박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고 자신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래…… 쟤는 나보다 4천 년은 어린 드래곤이다……. 저 어린 용이랑 말싸움을 하는 것부터 말이 되질 않는다…… 참아야 된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가 한숨을 길게 뽑아냈다.
“후우우…… 그래, 네가 고생이 많았겠군.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는지 정말이지 너무 기특하구나. 자, 이제 말해볼 수 있겠느냐?”
“흠! 기특한 일이긴 하지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 아주 기특하다. 어쩜 네 아비인 하셀은 너를 이렇게도 잘 키워냈는지…… 내가 언젠가 하셀을 꼭 칭찬해 주어야겠다.”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꾹꾹 눌러낸 루카스가 싱긋 웃자 아만 역시 표정과 팔짱을 풀어냈다.
“예, 그럼…… 저자들은 이미 로드리고 백작가가 시타타로 오기 전부터 있던 상회였습니다. 일전에는 그저 영지민들을 화합하고 영지를 가꾸는 데 힘을 쓰는 청년회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런데 로드리고 백작가가 시타타를 영구 귀속 받은 시기에 수도에서 몇몇이 이주해 왔다고 합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상회는 이주해 온 사람들이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왔다고 하더군요.”
여기까지만 들었을 때는 상회가 절대 나쁜 곳이 아니었음이 확실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주해 온 외지인들이 상회의 간부 자리를 한 자리씩 차지했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노루 상회의 본질이 조금씩 변모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맨 처음엔 그들이 간부 자리를 차지하면서 영지민에게 꽤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다고 하더군요. 수도와의 교역을 중개한다든지, 수도에 일자리를 얻어준다든지 하는 것들요.”
여기까지만 들어도 새로운 간부들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노루 상회가 소개하는 일자리나 교역에 대해 수수료를 받기 시작했답니다. 그것도 처음엔 작은 수수료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월급의 30퍼센트 가까이를 착취했다고 하더군요.”
“월급? 그럼 매달 그 돈을 가져갔다 그 말인가?”
“예.”
“그럼 영지민들은 그들이 소개한 일자리를 그만두면 될 것 아닌가. 뭣 하러 그런 멍청한 짓을 계속한 거지?”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아 또 알아 왔습니다.”
아만의 입에서 그다음 말을 기다리던 루카스는 그의 표정을 보고는 아차 싶었다.
“오오, 그, 그렇구먼. 아주 기특해. 얘기를 계속하게.”
“하하! 감사합니다. 아니, 그래서 제가 알아봤더니 이 미친놈들이 일자리를 그만두고 나가면 다른 곳에 취업을 못 하게 막았답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일자리에 어렵게 취직을 한다 해도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거나 점주에게 나쁜 말을 해서 그곳에서 일하지 못하게 했다더군요.”
“아주 쓰레기들이군. 전형적인 악독한 놈들이야.”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게다가 이 자들이 언젠가부터 무슨 물건들을 들여와 팔기 시작했는데 맨 처음엔 수도나 변방에서 나는 작은 견과류부터 시작해서 나중엔…….”
“나중엔?”
“환상약을 제조해 팔았답니다. 그것도 주민들을 시켜 다른 지역이나 나라로 팔아넘겼다고 하더군요. 어두운 세력들에게는 공공연하게 드러난 사실이랍니다. 환상약 제조로 먹고 사는 영지 시타타…… 라고 말입니다.”
환상약은 중독성이 강한 약물이었다. 본래는 고통이 심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환상 버섯을 이용해 만든 약이었으나, 이것이 오용되기 시작하면서 누군가 불법으로 제조해 팔기도 했다.
“하…….”
어이가 없었다. 영지민이 먹고 살 것이 없어 환상약을 제조해 내다 팔았다니? 여기까지 듣고 나니 수도에서 온 자들의 속셈이 확실하게 내비쳐졌다.
누구도 눈을 두지 않는 척박한 땅에 들어온 외지인들은 처음부터 그럴 목적이었던 것이었다.
가진 것 없는 영주에, 힘없고 보잘것없는 땅.
“어이가 없군……. 환상약 제조라……. 게다가 남들은 공공연하게 아는 사실이라?”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저들이 아무것도 없는 농지를 대여해 가는 것 역시 꿍꿍이가 있는 것 같더군요.”
“그게 뭐지?”
“노예상을 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그것도 농지 아래 던전을 지어 노예들을 가두고 관리하려는 듯합니다.”
미칠 노릇이었다. 나라마다 달랐지만 이곳 아란트는 노예가 법적으로 금지된 나라였다.
그런데 아란트에서 노예상을 하겠다니? 이것은 필시 뒤에 다른 자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다른 나라일 수도, 다른 중앙 귀족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척박한 땅에서 상회를 차지하고 약이나 제조해 팔아넘기는 인간들이 독단적으로 벌일 짓이 아니었다.
“노예의 종류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종족입니다.”
“…….”
할 말이 없었다.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표현이 더 맞는 듯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종족을 팔아넘기는 인간이라. 기가 막힌 인류애를 뽐내는 잔혹함이었다.
“뒤에 누가 있는지 혹시 아는가?”
“라크메르입니다.”
“!?”
아만은 모든 정보를 다 알아온 듯 보였다.
라크메르. 황제의 곁에서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모르는 마법사 집단. 그들이 여태 벌인 짓은 수도 없이 많았으나, 이곳 시타타에까지 손을 뻗친 이상 당장에라도 그들을 찾아내 모두 척결해야 맞았다.
“아직도 그들의 위에 누가 있는지 찾아낸 것이 없나?”
얼마 전 시타타에 나타난 변이된 웨어울프 역시 이들의 소행이었다.
“아직은 없습니다. 이들을 모두 끊어내려면……. 아란트를 몰락시키는 것이 빠를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벌인 짓을 보면 그 뒤에 또 누가 있을지는 모릅니다.”
루카스는 마음이 급해져 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라크메르라는 이 집단은 자신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이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인간들은 어떻게 돼 먹은 건지……. 정말 인간 없이는 세상이 안 돌아가는 것이 맞습니까? 이렇게 개 같은 짓을 많이 하는데도요?”
“인간이 문제가 아니다. 인간들이 이루고 있는 사회가 문제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다. 인간은 본디 선하다. 아주 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말이지. 하지만 이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잘못되었다. 욕심이 모든 것을 그르치지.”
“도통 무슨 말씀이신지…….”
백 년째 유희 중이라는 아만 역시도 아직 인간에 대해 모두 아는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드래곤의 몸으로 유희의 일종으로 세상을 즐기기만 할 뿐, 그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나 역시도 모두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인간이 꼭 필요한 종족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니 내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려 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아만은 루카스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저 그가 저질렀던 일이 실수라 칭하는 것을 보고 일단 수긍하기로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주 저질인 집단입니다.”
“혹시 내 아버지…… 시비에 백작 역시도 이 모든 사실을 아는가?”
“아, 그것은 아닌 듯 보였습니다. 시비에 백작은 노루 상회 사람들이 그저 인사권을 쥐고 청탁 정도만 받을 것이라 생각한 듯 보였습니다.”
“……그런가.”
아만의 말을 들은 루카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만이 하는 모든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혹여 시비에 백작이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을까 하는 작은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예, 뭐. 그들에게 진 신세가 있는 것은 확실하니 청탁을 받아 주머니를 조금 불리게 하는 것은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던 듯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직접 금전을 쥐여주는 것은 힘드니 말입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비에는 아주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분명했다.
그들에게 인사권을 쥐여주는 것이 사실 금전을 직접 쥐여주는 것보다 훨씬 나쁜 생각이었다.
금전보다 권력이 무서울 때가 있는 법이다. 그들에게 광부들의 인사권을 쥐여주는 그 순간부터 노루 상회는 영지민을 휘두를 엄청난 권력을 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시비에 백작이 노루 상회에 사람을 하나 보내 인사에 개입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백작은 그 사람을 믿는 듯 보였습니다만…… 그 역시도 노루 상회에서 먼저 백작에게 심어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 하하하! 크하하하!”
루카스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결국 웃음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정말이지 아둔하고 멍청하리만큼 착해빠진 인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자가 자신의 아버지니 이것 또한 감내해야 될 일이었다.
“로, 로드… 괜찮으신 겁니까?”
“하하… 하…….”
루카스의 웃음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괜찮다. 그럼 괜찮고말고. 그래서 그자의 이름이 뭐지?”
시비에의 곁을 지켰던 사람이라면 루카스 역시도 아는 인물일 수도 있었다.
“이름까지는 모르겠군요. 하지만 생김새는 알고 있습니다. 갈색 머리에 초록 눈동자를 지닌 사내더군요. 키는 이 정도에…….”
“됐다. 내가 아는 자다. 처음 봤을 때부터 눈빛이 거슬렸는데…… 이렇게 사고를 치는군.”
예상대로였다. 갈색 머리의 초록 눈동자를 가진 사내. 조니 헤튼.
그는 똑똑한 사내였다. 시비에 백작의 곁에 머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백작의 신뢰를 빠르게 얻어낸 사내는 개발되는 광산 사업의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노루 상회에서 보낸 스파이라니? 조니 헤튼이 스파이라면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분명 상회에 인사권을 주게끔 백작을 꼬드긴 것 역시 그자의 소행일 것이다.
“괜찮으신 것 맞으시죠?”
“그럼, 아주 괜찮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야. 기분이 상쾌하기까지 하군.”
“……예?”
분명 루카스의 표정은 썩다 못해 문드러져 있었다. 그런데 상쾌하다니.
아만은 그런 그의 표정을 다시 한번 깊게 살폈다.
‘로드가 충격이 심하신가……? 어디 아프신가……?’
루카스는 그런 아만의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는 듯 피식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더러운 것을 깔끔히 청소해 낼 생각을 하니…….”
그의 한쪽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아주 기분이 상쾌해.”
그런 루카스의 모습을 본 아만의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