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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37화 (37/225)
  • 37화. 노루 상회 (1)

    “하…… 도대체 얘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바닥에 쓰러져 있는 넬라를 지켜보는 루카스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 내려앉았다.

    갑작스레 느껴진 정령의 짙은 기운에 넬라를 뒤쫓았던 루카스는 눈앞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고 말았다.

    드래곤으로 살아왔던 지난 5천 년 동안에도 몇 번 마주한 적 있었던 그였다.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인간인 그의 몸에 견디기 힘든 엄청난 기운이 몰려왔다.

    물의 정령왕. 엘라임.

    그가 자신의 기운 대부분을 눌렀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기운이 더했다면 넬라 역시도 혼절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엘라임…….”

    오랜만에 마주한 그의 모습은 예전과 같았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위대한 자. 모든 자연을 관장하는 정령왕.

    그중 공격과 수비 모두에 능하다고 알려진 물의 정령왕 엘라임.

    그가 직접 명령한 하위 정령인 나이아스와의 계약은 소녀를 단숨에 정령사로 만들었다.

    하위 정령은 자연 친화력이 높은 엘프라면 누구나 부릴 수 있는 정도였지만, 인간은 타고난 자연 친화력이 높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하위 정령이라도 소환할 수만 있다면 좋은 대접을 받았다.

    게다가 치유력을 가진 물의 정령이라면 어느 나라에 가나 환영받을 것이었다.

    물론 하위 정령만으로는 부귀영화를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열 살 난 아이가 소환한 정령은 수준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천재. 몇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희대의 천재가 눈앞에 있었다.

    1서클 마법사이자 나이아스와 계약한 정령사.

    복덩이라면 복덩이였다. 하지만 루카스는 걱정이 앞섰다.

    아직 기반을 잡지 못한 백작가에서 아이를 끝까지 잘 지켜낼 수 있을지, 지켜낸다 해도 국왕이나 마탑에게 넬라를 빼앗길 수도 있었다.

    백작부부는 아이의 능력이 아닌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에게서 사랑하는 의붓딸을 누구도 빼앗아 가게 두고 싶지 않았다.

    ‘잘 키워봐야지.’

    잘 키워내는 것도 문제였지만, 이제는 아이를 지켜내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백작가도 자신도 힘을 키워야 했다. 아이를 지켜낼 힘을.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루카스가 방을 빠져나갔다.

    ***

    “호오, 정령을요? 그것도 엘라임이 직접 말입니까?”

    “그래. 나도 놀랐다.”

    루카스를 찾은 아만은 뜻밖의 얘기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물의 정령왕 엘라임이 직접 찾아온 것도 놀랍지만, 인간의 계약을 돕다니? 정말이지 듣고도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엘라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랍니까? 아니, 드래곤도 아니고 한낱 인간의 계약을 돕다니요?”

    “나도 그게 의문이다. 도대체 엘라임이 넬라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어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러게요? 도대체 뭐가 마음에 들었지? 아니, 나도 분명 마음에 드는 인간은 맞는데…… 자연 친화력이 그렇게 높았던가?”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백작저를 빠져나와 한참을 걷는 중이었다. 아만이 백작저에 들른 것을 안다면 시비에의 극진한 대접과 아이들의 관심을 절대로 떨쳐버릴 수가 없을 것을 알기에.

    “그런데 그 모습은 괜찮으십니까?”

    “뭐가?”

    “크흠…… 아, 아닙니다.”

    “실없는 놈.”

    아만이 묻는 것은 폴리모프한 루카스의 모습이었다.

    백작저를 빠져나오기 전 시타타를 한번 둘러보기로 한 그들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폴리모프를 한 상태였다.

    아만은 푸른 머리와 눈동자만 유지했을 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했다.

    또한 루카스 역시 흑발과 흑안은 그대로였지만, 겉으로 보기엔 아주 곱상(?)한 성인의 모습이었다.

    루카스가 그 모습을 알았더라면 노발대발했을 터였지만, 그는 아직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로드, 오늘따라 아주 고우십니다.”

    그런 상황이 재밌는지 아만은 그를 마치 레이디를 대하듯 하고 있었다.

    “미친놈. 징그러우니까 저쪽으로 꺼져.”

    그나마 다행인 건 루카스의 얼굴을 제외한 나머지는 완연한 남성의 모습인 것 정도.

    “오, 저기 가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만이 가리킨 곳을 본 루카스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즐거운 술집? 하, 나는 시타타에 있으면서 백작저를 벗어난 적이 없다. 옛날엔 한두 번 와본 적은 있지만…… 그것도 지나쳐 가는 정도였고.”

    “그럼 우리 저기 한번 가보죠!”

    “……미친놈.”

    정말 해맑고도 또 해맑은 드래곤이었다. 구태여 고른 곳이 ‘즐거운 술집’이라는 해맑은 간판의 주점이라니? 게다가 이곳 시타타에 있는 주점이라고 해봤자, 질 나쁜 위스키나 찌꺼기로 만든 맥주뿐일 것이 분명했다.

    “어서요!”

    하지만 아만은 이런 루카스의 반응에도 그를 술집으로 잡아끌었다.

    -딸랑!

    “어서 오십쇼!”

    술집의 문을 열자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주인장의 인사가 들려왔다.

    ‘사람이 꽤 많군. 사람이 없는 곳이…….’

    한적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술집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루카스는 눈을 돌려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려는 때였다.

    “우리 저기로 가요!”

    하지만 루카스의 발걸음은 아만의 손에 그대로 막히고 말았다.

    “꼭 그래야겠나?”

    아만이 고른 곳은 사람이 가장 북적이는 곳 한복판에 있는 테이블이었다. 구태여 저런 복잡한 자리를 고른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마당에 아만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하아…….”

    루카스는 아만이 저런 눈을 하면 왠지 모르게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로드 시절에 보았던 해츨링 시절 아만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가지.”

    사람이 북적이는 곳 한복판에 있는 것도 하루쯤은 괜찮겠지 싶기도 했고.

    ‘앞으로 큰 변화가 있을 텐데 앞서 상황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들이 테이블로 향하자 사람들의 눈이 따라왔다.

    처음 보는 외지인인 것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들의 보기 드문 출중한 외모 역시 한몫했다.

    “휘익!”

    멀리서는 휘파람을 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곱상한 외모만 보고 불어대는 휘파람은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루카스의 미간이 살짝 좁아지는가 싶었지만, 이내 표정을 풀어내고 자리에 앉았다.

    “자, 어떤 걸로 드릴까?”

    “주인장 마음대로 한번 줘보세요. 우리는 여기가 초행이거든.”

    “크하하! 그럽시다. 두 분 다 술은 좀 하시고?”

    아만이 눈을 찡긋 해 보이자 주인장은 호쾌하게 웃었다.

    “술은 됐소. 술 말고 물이나 한잔 주시게.”

    “하하! 곱상한 얼굴만큼이나 곱상하신 취향이시구먼? 물이라니! 내 한번 찾아보겠소만 있을지는 모르겠구먼!”

    그렇게 주문을 받은 주인장이 떠나자 주변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외지인인가?”

    “그런가 보구먼. 역시 마나석 광산이 발견되었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드는구먼?”

    “크핫! 저자들이? 어디 귀족가 곱상한 자제들이 사업에 손이나 댈 수 있다던가?”

    테이블을 흘끗거리며 말을 잇는 사내들의 어투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신경 쓰지 마시죠. 인간들 하는 소리에 신경 써서 뭐 한답니까?”

    루카스의 표정이 좋지 않자 신경이 쓰인 아만이 말을 덧붙였다.

    “흥. 신경 안 쓴다.”

    사실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들의 말에 동요할 만큼 루카스의 멘탈이 약하지도 않았다.

    “자, 자. 다들 말들 조심하라고! 진짜 어디 지체 높은 귀족이라도 된다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술이나 먹자고!”

    그렇게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 이야기는 어느새 다른 주제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아, 그보다 자네 이번에 농지 대여 건은 어떻게 됐는가?”

    “크으~ 좋다. 무슨 농지? 아아, 그거? 나는 하기로 했네.”

    “흠…… 노루 상회에서 하는 일이라고 하니…… 나도 해야 하나 싶긴 한데. 근데 어딘지 모르게 찝찝하다는 말이야?”

    “뭐가 그리 찝찝한가? 어차피 농지에 지을 농사도 없는 마당에. 게다가 이번에 농지를 대여해 주면 광산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지 않는다는가!”

    루카스와 아만은 흥미로운 대화 소재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도 그렇지…… 게다가 왜 백작님께서는 노루 상회에 광산 인사권을 모두 맡기셨냐는 말이야! 그러니 우리에게 농지를 빌미로 협박……하는 것이 아닌가!”

    사내가 ‘협박’이라는 단어에 조심스레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 말 말게! 어? 아니, 노루 상회에서 백작님께 해드린 것이 얼마인가? 맨 처음 수도에서 오셨을 때부터 말일세. 영지민들이 땅 주인 바뀌는 것에 얼마나 치를 떠는지 알지 않는가?”

    그의 말이 맞았다. 나라에서 하사하는 영지는 이처럼 주인이 바뀌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죄를 짓거나 눈 밖에 난 귀족이 있으면 영지와 재산을 몰수당하고 쫓겨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영지민들은 그럴 때마다 적대심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이 바뀐 땅에는 피바람이 불기 일쑤였으니.

    “그런데 응? 노루 상회가 나서서 백작의 입지를 다져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말일세! 먹고살 거 하나 가져오지 않는 백작에게 영주님, 영주님 하며 추켜 세워준 것이 노루 상회 아니냐고! 게다가 이곳 시타타를 황제께서 로드리고가에 영구 귀속시켰지 않은가?”

    “크흠…… 그 말도 맞네만은…….”

    “그러니 로드리고 백작가도 노루 상회를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느냐는 말일세! 한낱 짐승도 은혜는 갚는데 시비에 백작이라고 그걸 모르지는 않을 거라는 말일세.”

    “알겠네, 알겠으니 진정 좀 하게. 나 원 참…… 이 친구는 어째 노루 상회 이야기만 나오면 이리도 노발대발하는지…….”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던 루카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노루 상회라고?’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다. 게다가 그들에게 광산 인사권을 모두 위임했다니?

    ‘인사권을 두고 농지를 가져간다라…….’

    루카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자신의 아버지인 시비에 백작은 은혜를 갚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좋은 마음에서 베푼 선의를 두고 영지민들의 농지를 가져간다?

    ‘백작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루카스는 머릿속이 복잡해져 왔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시비에가 묵인하는 것이라면?

    게다가 농사도 잘되지 않는 농지를 구태여 대여받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이 거듭될수록 이상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 농지는 그렇다 치고. 이번 달 상납금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하…… 나도 상납금을 빨리 맞춰 내고 싶은데 도저히 방법이 없다는 말일세.”

    “나도 그건 마찬가지네. 저번에 잡은 노루 가죽은 세공도 아직 덜 끝났네. 고기 판 돈으로는 도저히 맞추기가 힘들고…….”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시비에 백작은 영지민의 생활고를 생각해 세금조차 걷지 않고 있었다.

    세금을 걷는 곳이라고는 용병 길드뿐이었다. 그조차도 의뢰를 받아가는 외지 용병들에게 걷어내는 세금이었다.

    그런데 상회가 거둬들이는 상납금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알고 있었느냐?”

    루카스의 물음에 아만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였다.

    아만이 갑자기 찾아와 밖에 나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던 이유도, 폴리모프까지 해가며 이 술집으로 자신을 이끈 이유도 모두 이것 때문이었던 것.

    “하…….”

    “조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기 전에 제가 대충 알아봤는데…… 저들이 하는 짓이 이뿐이 아닌 것 같더군요.”

    “그게 무슨…….”

    루카스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는 때였다.

    “자! 여기 주문하신 주인장 스페셜! 그리고 겨우 찾은 물 한잔도 있수다.”

    -탁!

    그가 힘차게 내려놓은 주인장 스페셜이라고 불린 메뉴는 다름 아닌 감자튀김과 요상하게 생긴 수프였다.

    “……먹어도 되는 건가?”

    “뭐, 독은 없는 것 같으니까요.”

    “대충 하고 나가지. 노루인지 사슴인지 하는 것들을 이대로 둘 수는 없으니 말이야.”

    “예,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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