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36화 (36/225)
  • 36화. 넬라 (2)

    “예? 넬라를 말이에요?”

    “……그렇소.”

    “아니, 넬라도 이제 열 살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저 아이에게 마법사의 재능이라니요!”

    “……그러게나 말이오.”

    백작은 아만의 제안을 즉시 수락하지 못했다.

    아만의 부탁이라면 그 어느 것도 들어주리라 생각했었지만, 막상 부부가 정을 붙이기 시작한 제 수양딸까지 황성으로 보내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하아…… 이걸 좋아해야 할지.”

    “루카스 역시도 아카데미에 잘 다니고 있지 않소? 우리 형편도 곧 나아질 테니 아이들 생활비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게요.”

    “그래도…….”

    “그리고 루카스가 곁에서 잘 보살필 테니 그것도 어느 정도 안심이 되고 말이오…….”

    블레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제 어린 아들과 어린 딸이 척박한 수도에 가서 또 아카데미 생활을 해야 한다.

    그것도 어른의 도움 없이 저들끼리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래요. 넬라가 괜찮다고만 한다면…… 그렇게 해요.”

    마음을 굳힌 듯 블레인이 눈가의 눈물을 찍어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블레인. 그때 그 점술가의 말이 맞았는지 싶소.”

    “그때 그 점술가라면…… 아, 시타타에 왔을 때 그 노파 말인가요?”

    “그래요. 우리에게 아이가 둘 있을 거라는 말도…… 하지만 그 아이들이 곁에 없을 거라는 말도…….”

    백작이 말하는 점술가는 이들이 수도에서 시타타로 막 쫓겨났을 때 백작저를 찾았던 한 노파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이들을 찾아온 비루한 행색의 노파를 안타까워한 백작부부가 음식을 한 그릇 내어준 것이 전부였지만, 감사의 표시로 점괘를 알려주고 떠난 나이든 여인이었다.

    그때를 회상하는 백작과 부인의 얼굴에 씁쓸함이 깃들었다.

    “정말 그 점괘가 맞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겠어요?”

    “아이들이 곁에 머무르진 않아도 자식 노릇을 톡톡히 할 거라는 그 말이라면…… 허허, 그래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소이다.”

    “저는 자식 노릇은 하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 곁에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좋겠어요.”

    “나 또한 그렇소. 하지만 아이들의 재능이 이리도 출중하니 어찌할 방도가 있겠소? 그저 우리도 부모 노릇을 톡톡히 해내야지요.”

    백작이 쓴웃음을 짓자 블레인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네. 우리 부모 노릇 톡톡히 해보자구요.”

    “그럽시다. 훌륭한 부모는 아닐지라도 아이들에게 누가 되는 부모는 되지 말아야지요.”

    말을 마친 백작이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

    ***

    루카스의 방에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아만이 와 있었다.

    “알고 계셨죠?”

    “뭘?”

    그곳에 찾아온 아만이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저 넬라라는 꼬마 말입니다. 저만한 재능이면 모르셨을 리가 없을 텐데요?”

    “아, 알고는 있었지. 마나를 꽤 잘 받아들이더군.”

    “힘겹긴 했지만 1서클까지 그려 내더군요.”

    아만의 말을 들은 루카스의 눈이 일순 커다래졌다.

    “그래? 서클을 그려냈어?”

    “모르셨습니까? 그걸 알고 계속 아이를 밀어붙이신 것이 아닙니까?”

    “내가 어떻게 알겠어? 한낱 인간인데. 그저 마나가 잘 흘러 들어간다…… 정도만 알았지.”

    인간은 드래곤과는 달랐다. 다른 인간의 마나의 양과 진척도를 지레짐작으로는 알 수 있어도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 그러다가 애 잡으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나는 또 루카스 님이 일부러 1서클까지 밀어붙이신 줄 알았습니다.”

    “흥, 이런 게 바로 살아온 세월에서 나오는 연륜 같은 거다. 정확히 보이지 않아도! 딱, 응? 느낌이 있다~ 그 말이야.”

    루카스가 팔짱을 척 껴 보이며 거만한 태도를 보이자, 아만 역시도 크게 콧방귀를 꼈다.

    “흥! 애 잡아도 저는 모릅니다.”

    “아니, 그리고 네가 곁에 있었는데 어련히 애가 잘못될 것 같으면 알려주겠지 싶었다.”

    “……저를 믿으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루카스의 말을 들은 아만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하자, 부담을 느낀 루카스는 팔짱을 풀어내고 한 발짝 슬쩍 물러섰다.

    “그, 그래.”

    “이 아만을 말입니까……?”

    한 발짝 물러선 루카스에게 다시 다가선 아만이 제 가슴께에 한 손을 가져다 얹었다.

    “……그렇대도?”

    루카스의 대답에 아만의 얼굴엔 감동이 일렁거렸다.

    “로, 로드!”

    웨어울프 무리를 처리한 이후로 아만의 태도는 무척이나 바뀌어 있었다.

    예전엔 그저 제 창고만을 탐내는 탐욕스러운 드래곤이었다면, 요즘은 어딘가 모르게 충성심을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거 너무 부담스러운데…….’

    자신과 둘만 있을 때는 꼬박꼬박 로드라고 하질 않나, 때때로 제게 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가지고 와 잔잔하게 챙긴다든지 하는 것들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좀 떨어져…….”

    “아, 예!”

    아만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자 부담이 극에 달한 루카스가 결국 한소리 했다. 그러자 아만은 한 발짝을 넘어서 두어 발짝을 폴짝 뛰어 멀어졌다.

    “……미치겠네.”

    “왜 그러십니까?”

    자신의 혼잣말을 되묻는 아만에게 손을 휙휙 내저어 보이는 루카스.

    곧 무언가 생각난 루카스의 손이 허공에서 딱! 소리나게 튕겨졌다.

    “아, 그것보다 뭣 좀 물어보자.”

    “예.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혹시 인간 마나에 대해서 좀 아는 게 있느냐?”

    루카스는 도통 늘어나지 않는 제 마나에 대해 결국 아만과 상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흐음…… 인간의 마나요?”

    “그래. 6서클이 안 만들어지더군.”

    “예, 제가 봐도 5서클에서…… 조금 더 되는 정도인 것 같네요.”

    “이유를 아는가?”

    “예. 알지요.”

    루카스는 아만의 저 말버릇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질문 하나에 대답 하나.

    “……알면 말을 하지?”

    인상을 찌푸린 루카스가 결국 되묻자. 아만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단순하지 않습니까?”

    “…….”

    “지금 로드의 몸에 담을 수 있는 최대치를 담았으니 어떻게 더 늘어나겠습니까?”

    “하, 그게 전부?”

    “예. 제가 봤을 때는 그렇습니다. 지금 보이는 게…… 흠 5서클 하고 절반 정도.”

    “그래.”

    “이것도 대단한 것은 알고 계시지요? 그게 최대치입니다. 하지만 이제 몸이 커가면서 마나를 담을 수 있는 양도 점차 늘어날 겁니다.”

    “아! 폴리모프로 어떻게 안 되나?”

    루카스는 조바심이 났다. 해답은 찾았지만 그저 크기를 기다리기엔 인간의 성장 속도는 너무나도 더뎠다.

    그러니 드래곤의 힘을 빌려 완벽한 폴리모프를 해낸다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흠…… 한번 해보죠 뭐.”

    -사아악

    허공에서 빛이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부서진 빛들이 루카스의 몸을 감싸 안았다.

    단숨에 높아진 시야에 적응을 하는 것도 잠시, 루카스는 고개를 한번 흔든 뒤 몸에 마나를 결집시키기 시작했다.

    “흐으음…….”

    “좀 닥쳐봐라.”

    한참을 눈을 감고 몸에 마나를 모아가던 루카스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안 되죠?”

    “…….”

    “안 되네…….”

    “닥쳐, 좀!”

    “옙.”

    앞에서 깝죽거리는 아만의 말이 맞았다. 몸이 크는 것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라 생각했는데!

    “후……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루카스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금방 지나갈 겁니다. 이제 한 오 년만 있으면 다 크시지 않겠습니까?

    “……그러길 빈다.”

    이제 8월 중순이었다. 수도는 한참 여름이겠지만, 이곳 시타타는 이제 초가을에 접어들었다.

    9월 중순이 되어 새학기가 시작되면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쏜살같이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열두 살이었다.

    드래곤이었던 시절엔 오 년, 십 년쯤은 그저 동굴 안에서 잠만 자도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동면에 오래 들기로 소문난 드래곤들은 일이백 년 정도는 잠만 자는 이도 있었으니 말이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금방 클 겁니다.”

    루카스의 머리 위로 손을 슬쩍 댄 아만이 제 키만큼 손을 쑤욱 높여 보였다.

    그런 그를 루카스가 찌릿하고 째려봤지만, 아만은 그저 능글맞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옘병할 놈!’

    ***

    -달칵…… 달칵…….

    바람이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그락…… 달칵…….

    하지만 찬찬히 그 소리를 듣다 보니 그것이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린 소녀가 다가간 창가엔 저번에 봤던 푸른 불빛이 옹기종기 모여 아이를 불러내고 있었다.

    ‘어…… 저건…….’

    하지만 지난번에 그것들을 따라갔다가 쓰러져 주변 사람을 걱정시킨 적이 있었다.

    “아니! 안 갈 거야!.”

    넬라는 불빛들에게 냉큼 소리쳤다. 또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킬 수는 없다.

    창밖엔 신경도 쓰지 않으려 이불까지 뒤집어썼다. 하지만 불빛들은 포기를 몰랐다.

    -달칵…… 달칵! 덜컥! 덜컥!

    “아잇, 진짜!”

    결국 창문이 곧 깨어질 것처럼 흔들리고 나서야 소녀는 못 이긴 척 방문 손잡이를 비틀어 열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불빛들은 저번과 같이 연못가로 사라졌다.

    -여기야.

    그때와 같이 아름다운 미성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다시 와주어서 기뻐.

    -정말 기뻐.

    옹기종기 모인 푸른 불빛들은 연못을 맴돌기도 하고, 물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저번과는 달리 몽롱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조금씩 맑아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너희 뭐야?”

    -우리?

    -우리는…….

    -우리 말이야?

    넬라의 한마디에 작은 불빛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보태느라 정신이 없었다.

    “야! 너네 시끄러워. 너네 중에 대장 나와! 대장만 말해!”

    허리춤에 손을 척 얹어 보인 넬라가 사뭇 단호하게 소리치자, 불빛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장? 우리 대장은…….

    -안 돼.

    -대장 무서운데.

    -우리랑 놀자.

    “아잇! 진짜 시끄럽게!”

    수없이 쏟아지는 소리에 넬라가 제 귀를 콱 틀어막았다.

    “대장 없으면 나 간다!”

    -대장…… 대장 안 되는데…….

    -가지 마. 우리랑 놀아.

    -네가 가면 슬퍼.

    -기다렸어. 널 기다렸어.

    마치 정신 사나운 벌레를 쫓듯 제 귓가에 손을 파닥거린 넬라가 몸을 홱 돌려 돌아가려던 때였다.

    -파앗!

    순간 제 뒤에서 터져 나온 밝은 불빛에 깜짝 놀란 넬라가 홱 하고 뒤를 돌아봤다.

    “……누, 누구”

    “귀여운 꼬마네.”

    돌아본 곳에는 인영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밝은 빛에 휩싸여 있어 정확히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순간 넬라의 몸이 휘청였다.

    “어, 어지러워.”

    저번에 느꼈던 그 몽롱한 기분과는 차원이 달랐다.

    속이 울렁거리고 바닥으로 한없이 푹 꺼져버리는 그런 기분.

    -왕이시여.

    -왕께서 오셨다!

    -으아아…….

    작은 불빛들 역시도 그 인영에게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우욱…….”

    헛구역질이 올라오는가 싶더니.

    -풀썩!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정신을 잃은 소녀 앞에 선 인영이 작게 미소지었다.

    “대장을 만나기엔 아직 약하군.”

    소녀를 살핀 인영이 뒤돌아 연못으로 향했다.

    “이리 오너라.”

    인영의 손짓에 푸른 불빛 하나가 그의 손끝에 살포시 앉았다.

    “저 아이와 함께 해 주거라.”

    -명을 받듭니다.

    인영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의 손에 있던 불빛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내 이름은 나이아스. 나의 동반자가 되어주겠어?

    아이의 귓가에 다가선 푸른 불빛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으으으…….”

    -내 이름은 나이아스. 왕의 명을 받들어 너와 계약하고 싶어.

    “끄으으응…….”

    귓가를 간지럽히는 잔잔한 미성에 넬라는 몸을 비틀었다.

    -내 이름은 나이아스. 나와 계약하자.

    “으으응…….”

    신음인지 대답인지 모를 음성이 아이의 입에서 새어 나오자, 푸른 불빛은 소녀의 작은 이마에 한 번, 입가에 한 번 내려앉은 다음 소녀의 심장 부근에 천천히 다가갔다.

    -파앗!

    푸른 불빛이 부서지듯 가슴께에서 사라지자, 소녀의 이마에 작은 문양이 한 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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