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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30화 (30/225)
  • 30화. 발현

    “하, 같잖은 것들이?!”

    루카스를 만나기 위해 시타타로 돌아온 아만은 아직도 치가 떨렸다.

    루카스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만이 잡은 끄나풀들의 정체는 루카스의 경고대로 진짜 함정이었다.

    그들의 함정은 꽤 정교해서 하마터면 아만 역시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뻔했다.

    하지만 루카스의 경고를 들은 덕분에 진짜 끄나풀 역시도 조금이나마 알아낸 것이 있었다.

    드래곤의 눈도 속일 만큼 정교한 함정. 하지만 그 함정엔 작은 실수가 있었다.

    “요망한 늙은이…… 이제 칠십밖에 안 먹은 인간이 어쩜 그렇게 요망스러운지!”

    텅 비어있는 루카스의 침실을 서성이며 혼잣말을 구시렁거리는 아만의 모습은 소름이 끼쳤다.

    주인 없는 방에서 은푸른 머리를 흩날리며 구시렁거리는 사내.

    달빛 아래 비친 유려한 외모가 아니었으면 영락없이 도둑놈이나 미친놈 같았다.

    주변의 기척이 느껴지자 얼른 모습을 숨긴 아만이 문을 바라봤다.

    루카스였다.

    ‘돌아오셨네!’

    루카스는 제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자연스럽게 샤워를 마치고 나온 뒤 옷까지 스스로 척척 잘 갈아입었다.

    ‘아유…… 건실하네…… 건실한 어린이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만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푸흐… 루카스님?”

    “으앗!”

    침대로 들어가던 그의 귓가에 바짝 붙어 이름을 부르자, 깜짝 놀란 루카스의 몸이 크게 튀어 올랐다.

    “이런 미친 도마뱀 새끼가!!!”

    그 모습을 보고 배꼽을 잡는 아만에게 시원하게 욕지거리를 날린 루카스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손에 마나를 끌어모으고 있었다.

    “어? 아픈데 그거?”

    “아플 줄 알면…… 안 했어야지!”

    -퉁!

    ‘퉁?’

    마나가 튕겨져 나간 소리가 요상했다.

    “하! 막아?”

    “아니, 그럼 이걸 막지! 어떡합니까? 아픈 걸 아는데요!”

    “이런 망나니 같은 도마뱀 자식. 너네 아부지 어디 있어!!”

    “어? 진짜 불러 드립니까?”

    아만의 떳떳한 태도에 루카스는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아만의 아빠인 하셀이 온다면 일이 복잡해질 것이었다.

    “후우…… 후우…….”

    화를 삭이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루카스를 바라보는 아만의 눈은 아직도 즐거움에 반짝이고 있었다.

    ‘저 망나니 같은 도마뱀은…! 내가 신이 되는 그 순간! 꼭… 꼭!!!’

    지금의 이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 루카스는 어디 비밀 일기라도 써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왔어?”

    이제야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침대에 털썩 걸터앉은 루카스가 시큰둥하게 물어왔다.

    “아, 루카스님의 말이 맞더군요. 함정이었습니다.”

    “흥, 그럼 내 말이 맞았겠지. 틀렸겠는가?”

    “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지켜봤지 말입니다.”

    “……그랬더니?”

    무슨 극적인 효과를 주겠답시고 저렇게 끊어서 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만은 항상 루카스가 되묻기를 기다렸다 입을 열곤 했다.

    “그랬더니 다른 끄나풀이 또 있더라고요?”

    “……한 번에 쭉 말해라.”

    “대화가 아닙니까? 이건 주고받고가 되…….”

    -펑!

    “윽!”

    이번엔 성공이었다. 그가 방심한 사이에 한 방 먹여준 루카스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이, 이건 반칙 아닙니까!”

    제 복부를 어루만지는 아만이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흥. 네깟 게 내 수를 읽으려면 아직 삼천 년은 이르다!”

    속이 다 시원했다. 저 깐족거리는 도마뱀에게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한방으로 제 속이 이리도 시원하니 너무나도 좋았다.

    “그래서? 엄살 그만 부리고 말이나 계속해 봐.”

    “엄살 아닌데… 아, 알겠습니다. 그만 때려요!”

    루카스가 다시 한번 손을 치켜들자, 아만은 과장되게 양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의 자세를 취해 보였다.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그자들을 쫓다 보니…… 나온 게 누군지 아십니까?”

    “스무고개 하자고?”

    “흠흠…… 그건 아니고요. 그게 바로 마탑주였습니다.”

    “뭐? 마탑주? 알베르토?”

    “예, 그 마탑주요. 학교장 하고 있는 그 늙은이 말이에요! 그 늙은 구렁이 같은 게 뒤에서 그런 술수를 부리고 있더라니까요?”

    ‘하!’ 하며 크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아만이 점차 목소리를 높여갔다.

    “아니! 제가 이래서 인간들이 정말 무섭다는 겁니다! 요즘 인간들은 너무나도 영악해요! 어쩜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그런 나쁘고 해괴망측한 짓을 한답니까?!”

    “목소리 좀 낮춰.”

    혹시라도 누군가 들을까 불안해진 루카스가 주변을 한번 살피자, 아만은 무심하게 손을 한번 허공에 휙 내저었다.

    “자, 이제 여기서 폭탄이 터져도 모를 겁니다.”

    그쯤은 알고 있었다. 용언으로 쌓아둔 마법을 인간이 무슨 수로 몰래 와 듣겠는가.

    “하여튼! 그 마탑주 놈이 흑막이었습니다. 아주 못된 짓을 뒤에서 하고 있더라구요!”

    “어떻게 알았지?”

    “그놈이 쓰는 주문을 제가 몇 번 본 적이 있거든요. 아시잖아요? 인간들은 저마다 습관이 있다는 거.”

    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언젠가 만났던 인간 마법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간단한 주문은 제 방식에 따라 입으로 읊거나, 복잡한 주문 같은 경우에는 술식과 마법진을 그려 마법을 일으켰다.

    하지만 글씨를 쓰는 필체가 모두 다르듯 인간들 역시 주문을 쓰는 순서나 방식, 계산법이 제각기였다.

    그 때문에 복잡한 주문일수록 시전 자의 특징이 더욱 잘 드러났다.

    아만 역시 그 주문의 잔재나 시전되어 있는 형태를 보고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흠…… 우선은 지켜봐야겠죠. 라크메르의 잔당들을 하나씩 처리하는 제가 마음에 안 들 겁니다. 그러니 그들의 함정은 비껴가 주고, 진짜일 때 확! 덮쳐야겠죠.”

    “그 진짜가 언제일 줄 알고?”

    “하하! 저 아만만 믿으십쇼!”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만의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지가 뭘 알아서 해? 한낱 인간이 파놓은 함정도 내다보지 못한 게!’

    깊은 한숨을 내뱉은 루카스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휙휙 내저었다.

    “아, 그럼! 좋은 밤!”

    해맑고 또 해맑은 도마뱀이 사라지고, 밀려오는 피로에 침대에 몸을 누인 루카스가 눈을 감았다.

    ‘내일은… 또…….’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한 채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

    “자, 오늘부터 시작할 거야.”

    “응! 나 준비됐어!”

    “나도 준비됐다.”

    한적한 후원에 모인 루카스의 일행들은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이제 천천히 숨을 들이쉬어 봐.”

    “스읍~”

    “내뱉고…….”

    “하아아…….”

    루카스의 주문에 따라 한참을 숨을 들이쉬고 내쉬던 아이들의 표정이 점차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우리 넬라도 잘하네.”

    “……응.”

    그들을 따라 한쪽에 자리를 잡은 넬라 역시도 숨을 들이쉬고 내쉬길 반복했다.

    “자…… 다시 한번 들이쉬고…….”

    “스으읍~”

    “내뱉고…… 다시 들이쉬면서 아랫배에 공기가 차오른다는 느낌으로.”

    그렇게 아랫배를 빵빵하게 부풀리던 아이들의 주변에 마나가 모이기 시작했다.

    “잘하고 있어. 그럼 이제 배꼽을 중심으로 들이마신 공기를 모은다고 생각해 봐.”

    자신의 말에 따라 배가 꿀렁이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살살 새어 나왔다.

    “그래. 잘하고 있어.”

    나오는 웃음을 살짝 삼킨 루카스가 주변의 마나를 느끼기 시작했다.

    ‘숨 쉬듯 마나를 끌어모으는 걸 알려주는 게 가장 낫겠어.’

    마나의 흐름을 느끼던 루카스가 주변 마나를 운용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가장 편안해 보이는 때. 이때였다.

    “자…… 공기의 흐름을 천천히 느껴. 배꼽을 타고 심장 부근에 모이는 공기를 느껴봐.”

    루카스는 그들의 몸에 미량의 마나를 주입했다.

    “끄으으…… 으으…….”

    그러자 스키르가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캠프에서 마주친 픽시가 마법석에 걸어준 주술이 꽤 효과가 있었는지, 스키르의 마나는 조금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자, 그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감각을 받아들여야 해.”

    마나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것을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그릇의 크기를 늘려야 했으며, 자신의 기운과 충돌하는 마나를 제 몸에 맞게 변형시켜 받아들여야 했다.

    “자, 그 불편한 기운을…… 그래, 폴라 잘하고 있어.”

    “끄응…….”

    얼마 지나지 않아 폴라 역시도 어깨를 살짝씩 비틀며 마나를 점차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 조금씩 천천히 미량의 마나를 주입하던 루카스 역시도 자신의 마나를 동시에 운용하고 있었다.

    “……?”

    한참 정신을 집중하던 때였다. 자신이 주입하지도 않은 마나가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마나의 줄기를 따라가 보니…….

    ‘넬라?’

    작은 몸뚱이에 마나가 꼼질꼼질 모이고 있었다.

    언니 오빠들을 따라 하느라 가부좌를 틀고 앉은 것도 모자라, 심호흡하는 것까지 열심히 따라 하던 넬라의 심장 부근에 마나가 조금씩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롯이 아이의 몫이었다.

    누구에게나 마나를 인위적으로 주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 마법사가 될 수 있다면 지금 세상에 마법사는 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고품질의 마나석을 지녔다 한들, 일평생을 바쳐 마법을 연구했다 한들 그 쌀알만큼의 재능이라도 타고나지 못하면 마법은 쓸 수 없었다.

    “자, 오늘 수고했어. 내일 또 해보자.”

    루카스의 말투는 어느새 눈에 띄게 부드러워져 있었다. 백작저에 아이들이 온 그때부터 그는 어느새 모든 경계를 풀어낸 듯 보였다.

    ‘그저 아이들일 뿐이다. 잘 대해줘서 나쁠 것은 없겠지.’

    “하아…… 하아…….”

    온몸에 힘을 줬는지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땀까지 맺힌 아이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맞아, 진짜 그…… 공기가 내 뱃속을 돌아다니는 그런 기분이었어.”

    “그래, 딱 그런 기분이더군. 이런 게 바로 마나라는 건가?”

    “야, 우리 이러다가 대마법사 되는 거 아냐? 쿠쿡!”

    마나가 조금 뱃속을 돌아다니는 것을 느꼈다고 벌써 대마법사까지 생각하는 귀여운 폴라의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하! 그래. 대마법사 될 수 있어. 열심히 하자.”

    루카스가 힘을 보태주자 아이들의 눈은 이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길 가다 운 좋게 동전을 한 닢 주운 이가 ‘혹시 이렇게 돈을 줍다 보면 재벌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상상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지만 말이다.

    “자, 밥 먹자.”

    ***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언니 오빠들을 따라 숨을 들이쉬고 내쉬다 보니 제 뱃속에도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불편하고 짜증이 나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니 가슴 한편이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니 그 기분이 싹 날아갔다.

    “잘자. 넬라!”

    폴라의 배웅에 짧게 손을 흔든 넬라는 방으로 돌아와 오늘 일을 생각했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침대로 들어가니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날 보러와.

    어둠이 가득 내려앉은 새벽. 어디선가 들려오는 예쁜 목소리에 절로 눈이 떠졌다.

    -날 보러와 줘.

    혹시나 잘못 들었나 싶어 살짝 실눈을 떴는데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여기야. 여기로 와.

    목소리가 들리는 곳은 창가였다.

    창가를 바라보니 작은 불빛이 반짝였다.

    루카스가 보여줬던 눈송이와 비슷한 푸른 불빛이었다.

    “우와…….”

    잠결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불빛이 너무나도 예뻐 눈으로 열심히 그 빛을 좇았다.

    푸른 빛은 창밖으로 나가더니 언젠가 간 적 있었던 연못가로 쏙 하고 사라졌다.

    잠옷 바람으로 밖에 나가는 게 나쁘다는 것쯤은 이제 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잠이 들었을 테니…… 이 정도는 아무도 모르겠지.

    고양이 걸음으로 향한 연못엔 조금 전 보았던 푸른 불빛이 수없이 많았다.

    “와아…….”

    손을 뻗어 만져보려 했더니 손이 채 닿기 전에 와스스 흩어졌다.

    -날 보러 와줘서 기뻐.

    -와줘서 기뻐.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미성에 홀린 듯 그 불빛들을 한참을 바라봤다.

    불빛들을 눈으로 좇다 보니 왠지 모르게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풀썩.

    “넬라!! 넬라!!!”

    루카스 오빠의 목소리다. 하지만 눈꺼풀이 너무나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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