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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9화 (29/225)

29화. 초여름의 눈꽃.

폴라와 스키르를 맞는 백작의 표정은 모호했다.

“그래요. 루카스의 친구들이군요.”

“말씀을 낮추시지요. 저는 오닐가의 차남 스키르 오닐 이라고 합니다.”

정갈한 귀족의 예법에 맞춰 인사를 해 보인 스키르가 활짝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폴라예요. 폴라 펠레브.”

“그래요. 어서 와요. 스키르 군, 폴라 양.”

둘의 모습을 보는 블레인의 입가 역시 미세하게 부자연스러웠다.

“아, 저희 부모님께서…… 친구 집에 빈손으로 가는 것은 큰 결례라며 작은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서, 선물을?”

자신들의 원수와도 같은 오닐 공작가에서 보낸 선물이라니 의심이 먼저 피어올랐다.

하지만 아이가 들고 온 선물이니 풀어보지도 않고 내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하…… 선물씩이나 보내주시다니…….”

백작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그의 옆구리를 살짝 찌른 블레인이 얼른 말을 받았다.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혹시나 싶어 제가 교수님께 먼저 가져가 확인을…… 해봤습니다.”

작은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가슴 아팠다. 친구 부모에게 혹시라도 해가 되는 선물을 제 부모가 했을까 싶어 먼저 의심해 본 것이 아닌가.

“아…….”

그 모습을 본 백작 부부는 둔기로 뒤통수를 한 대 후려 맞은 것 같았다.

작은 손을 꼼질거리며 어른 행세를 하는 아이의 속내가 얼마나 시커멓게 탔을지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찡해왔다.

“우리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 자, 들어가자꾸나.”

그제야 정신이 든 시비에 백작이 두 아이를 한번 꼭 끌어안았다.

***

“우와, 진짜 맛있어요!”

멀리서 온 아이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내어주자, 아이들은 허기가 졌는지 눈앞에 음식들을 열심히 비워내기 시작했다.

“저희 공작가의 요리사를 여기로 보내 가르치고 싶습니다.”

눈앞에 스튜를 게눈 감추듯 감춘 스키르가 왠지 모를 민망함에 머리를 한번 긁적였다.

“맛있게 먹었다니 나도 기쁘구나.”

활짝 웃어 보인 블레인이 제 앞에 있던 먹음직스러운 꼬치구이를 하나씩 들어 아이들의 그릇에 놓아주었다.

“자, 먹어보렴. 이곳 시타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란다.”

“감사합니다!”

꼬치구이의 정체는 시타타에서만 잡히는 노루의 한 종류인 푸른 노루의 고기였다.

척박한 땅에 맞춰 제 몸에 항상 지방을 쌓아두는 푸른 노루의 육질은 최상의 품질을 자랑했다.

하지만 고기를 손질하기가 어려워 맛있는 부위를 맛보기가 힘들었고, 금세 상해버리는 탓에 다른 지역으로의 수출 또한 어려웠다.

“오오! 정말 맛있습니다!”

“진짜, 진짜 맛있어요!”

푸른 노루의 꼬치구이를 맛본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풍부한 육즙의 고기는 수도에서도 보기 드물었다. 힘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기 살기로 축적한 지방은 고기의 부드러움을 더했으며, 바위틈을 넘나드는 탓에 단단하고 쫄깃해진 육질은 식감을 최상으로 끌어올렸다.

“호호, 그렇지?”

“그래. 많이 먹으렴. 고기는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야.”

시비에 백작과 블레인이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잘들 먹는구먼…….’

그들을 바라보는 루카스의 입에도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식사를 마친 루카스와 일행은 응접실에 모였다.

“저희 아버지께서 백작님께 보내시는 작은 성의입니다.”

스키르와 함께 온 하인이 내려놓은 두 개의 상자에, 백작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아직 고민이 되는 것이 분명했다.

“열어 보시지요.”

혹시 몰라 루카스 역시 탐지마법을 진작 발동시켜 보았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어떤 악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그래. 뭘 이런 걸 다…….”

루카스의 말에 상자에 손을 올린 백작이 조심스레 첫 번째 상자를 열었다.

상자에 든 것은 은은한 향이 나는 고급 포푸리와 옷감이었다.

포푸리는 애정을 뜻했으며, 옷감은 화합을 의미했다.

그것을 본 백작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는 자신들을 몰아내기 위해 오닐 공작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뻔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백작은 얼른 표정을 고쳐잡고는 두 번째 상자를 열었다.

잘 벼려진 장검이 하나 들어있었다. 세공이 굉장히 정교한 것을 보아 드워프가 만든 검인 것 같았다.

장검은 화해를 의미했다. 포푸리, 옷감, 장검. 모두 제 아들을 믿고 맡기는 공작의 뜻이 가득 담긴 선물이었다.

제 아들을 믿고 적진에 보냈을 땐 필시 공작도 무슨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백작이 제 아들의 친구를 볼모로 잡을 만큼 모나고 모자란 사람이 아닌 것쯤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고, 아이들을 계기로 화해해보자는 의미겠지.

“값진 선물들을 보내주셨구나. 공작님께 감사하다는 뜻을 내가 꼭 전하마.”

스키르의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긴 시비에가 부드럽게 웃었다.

“예, 백작님께서 뜻을 직접 전해 주신다면…… 분명 제 아버지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스키르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

“야, 너희 집 진짜 크다!”

함께 백작저를 둘러보던 폴라는 연신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흥, 이… 아, 아니다.”

분명 제집 자랑을 하려던 스키르의 입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닫혔다.

‘오, 꼬마 많이 발전했는데?’

역시 반복된 교육은 한낱 강아지에게도 효과가 있다. 드디어 스키르 놈이 제 잘못을 깨닫고 주둥이를 조심하기 시작하자 루카스는 그가 기특했다.

“우리 백작저보다 스키르네 집이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클 거야.”

그것이 기특해 칭찬을 한 숟가락 얹어주자 스키르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흠, 흠.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여기 백작저도 훌륭한 저택이다.”

“우와, 진짜? 스키르네 집이 여기보다 더 크다고?! 그것도 두 배나 넘게??”

루카스의 말을 되묻는 폴라의 말에 우쭐해진 스키르가 나름의 겸손을 떨어댔다.

“뭐, 그 정도까진 아닌데…….”

제 입으로 꺼내 보인 자랑이 아닌 타인이 해주는 칭찬에 그는 발까지 꼼질 거리고 있었다.

‘귀여운 것. 그래, 이렇게 배우는 거다.’

겸손을 한번 떨어주자 폴라는 그에게 다가가 집이 어떻게 하면 더 클 수 있느냐며 천진하게 묻고 있었고, 그녀의 말에 쑥스럽게 대답해 주는 스키르의 볼 역시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어? 저 꼬마는 누구야?”

한참을 그렇게 백작저를 구경하던 폴라가 정원을 향해 나 있는 창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쟤는…….”

‘뭐라고 해야 하지?’

갑작스러운 물음에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입을 살짝 닫았다.

“응? 쟤는 누구야? 이 집 하인 같은 거야?”

“저렇게 어린 하인을…… 아니, 하인의 자식일 수도 있겠군.”

“아냐. 쟤는 내 동생이야.”

그래. 어찌 되었건 저 아이는 동생이 되었다.

아직 제국에 정식으로 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식사 자리에서 결정된 이야기였다.

그 뒤로 마주친 적은 없어 잠시 잊고 있었을 뿐. 저 아이는 제 동생이다.

“동생? 너 동생도 있었어?”

“동생이라고? 나는 아직 이 백작가에 너 말고 여식이 있다는 말을…….”

“있어. 내 동생 맞아.”

그들의 말을 일갈한 루카스가 정원으로 향했다.

가족의 일원이 된 동생을 정식으로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

“자, 봐봐. 손가락을 이렇게, 이렇게 해야지!”

정원에 모인 네 사람은 폴라를 따라 새로운 놀이를 배우고 있었다.

일명 땅따먹기.

저마다 마음에 드는 돌을 하나씩 주워 제 차례가 올 때마다 손가락으로 튕겨 선을 그어나가는 놀이었다.

다른 사람의 선을 침범하거나 자기 선을 다른 사람이 넘어도 처음부터 다시 선을 그려 나가야 하는 그런 단순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단순한 놀이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맨 처음 폴라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을 때만 해도 화들짝 놀라던 넬라는 제 손가락을 꼼질꼼질 접어가며 돌을 튕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루카스와는 고작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유난히 체구가 작은 넬라에게 일명 ‘꼭다리’라는 자리를 내어주었다.

‘꼭다리’란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거나 모자란 친구가 있을 때 조금 유한 룰을 따로 적용해 놀이에 끼워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너는 이런 놀이에 굉장히 능숙하군.”

“야, 우린 할 게 없으니까 어릴 때부터 언니들이랑 오빠들 따라 하던 거고! 너희는 귀하게 자라서 이런 거 모르는 거거든?!”

스키르의 말에 왠지 모르게 욱한 폴라가 와다다 받아치자, 스키르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우린 이렇게 많은 친구가 모이지도 못했다.”

“그래. 폴라. 우린 어른들에게 어릴 때부터 감시당해서 그런 거야. 할 수만 있다면 스키르도 이렇게 놀고 싶었을 거야.”

“……그, 그래. 미안.”

서로가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기에 조금씩 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루카스와 친구들은 그것이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루카스는 이 관계가 마음에 들었다.

철없고 순수한. 옳고 그름이 아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착한 아이들.

“자, 다시 해봐. 넬라! 너는 꼭다리니까 두 번 하는 거야!”

꽤 언니다운 폴라의 친절한 가르침에 넬라 역시 점점 표정이 밝아지고 있었다.

“넬라, 폴라. 꼭 자매 같네.”

“어! 진짜네! 헤헤. 우리 이름 되게 비슷하다 그치?”

“……응.”

처음이었다. 넬라가 제 목소리를 낸 것은.

이 또한 누구 하나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아이가 마음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단하네. 꼬맹이들.’

수천 년을 살아왔어도 몰랐던 방법이었다. 입을 열게 할 때는 고문만큼 좋은 것이 없었으며,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땐 회유를 했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지는 못했다. 이것은 아이가 마음을 열어준 것이었다.

“우와! 우리 넬라 목소리도 예쁘네! 앞으로 언니랑 재밌는 거 많이 하자. 알겠지?”

“응…….”

그 모습이 귀여운지 넬라를 꼭 안아준 폴라가 볼을 비볐다.

“자! 그럼 우리 다시 해보자!”

이 놀이엔 돈도 명예도 필요하지 않았다. 선을 그을 수 있는 땅과, 손가락으로 튕길 수 있는 작은 돌멩이만 있으면 되었다.

“그래, 이 스키르가 다 이겨주지!”

“푸흡! 야! 너는 손가락으로 돌을 맞추지도 못하면서 무슨!”

“그, 그건! 연습이었다!”

“웃기시네! 넬라가 훨~씬 잘하더라. 꼭다리는 넬라가 아니라 네가 해야겠던데!”

“무슨 소리! 나는 꼭다리가 아니다! 여기서 가장 연장자인 내가 꼭다리라니…… 잘 봐라!”

저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넬라와의 비교에 분했는지 스키르가 제 돌을 바닥에 냉큼 내려놓았다.

-팅!

“푸하하하하!! 봐봐! 또 못 맞췄어!!”

손가락 바로 앞에 있는 돌도 못 맞춘 스키르의 볼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야! 네가 꼭다리 해!”

“으으…… 아니야!”

돌을 저쪽에 틱 던져버린 스키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몸을 홱 돌려 뛰어가고 말았다.

“어…… 화났나?”

그 모습을 본 폴라는 무척 당황한 모습이었다.

여태 자신이 아무리 구박하고 타박해도 저렇게 자리를 박차고 가버린 적은 처음이었다.

“……어쩌지?”

자신이 너무 심했나 싶어 죄책감이 스멀스멀 몰려온 폴라는 이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걱정되면 따라가 봐.”

“그래야겠지?”

루카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폴라 역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둘만 남았나.’

편안하게 대해줬던 폴라마저 자리를 뜨고 나자, 넬라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겁먹지 마라. 난 네 오빠니까.”

최대한 다정한 어투로 말을 꺼낸 루카스가 한 손을 들었다.

“자, 이것 봐.”

손 위에서 피어난 작은 얼음 조각들이 넬라의 머리 위로 푸스스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

“그래. 눈이야.”

“우와! 눈!”

시타타의 여름은 이제 막 시작이 되려 했지만, 꽤 뜨거운 날씨에 제 오라비의 손에서 피어난 눈송이는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우와아…… 우와아……,”

연신 감탄을 내뱉는 넬라를 보던 루카스의 입에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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