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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8화 (28/225)
  • 28화. 새로운 가족.

    식탁에 둘러앉아 루카스의 학교생활을 듣던 제 부모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했다.

    “아니, 그래서! 그자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게냐?!”

    “예. 아닙니다.”

    황성 밖에서도 이미 이민족들에 대한 소문은 파다하게 퍼졌는지, 아버지인 시비에는 놀란 얼굴로 루카스의 말을 들었다.

    “아들은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느냐?”

    “그것을 조사하시던 아만 교수님께서 제게만 넌지시 말씀해 주셨습니다.”

    “허! 이것 참… 또 이렇게 가엾은 사람들만…….”

    “여보,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잖아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중대한 죄를 이민족에게 뒤집어씌운다는 말이오!”

    식사하다 말고 분개한 백작이 콧김을 씩씩 불자, 블레인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자신들이 당한 과거의 일이 떠올랐는지 블레인 역시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그래. 그래도 네가 나쁜 일을 당하지 않았으니 괜찮다.”

    작게 한숨을 내쉰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게 웃음 지었다.

    “네. 저는 괜찮습니다. 아, 그리고 광장에 구울이 나타났었습니다.”

    “구울?!”

    놀란 백작이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머, 이 사람이. 채신머리없게…….”

    그런 그의 손을 잡아 이끈 블레인이 그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크, 크흠…… 미안하구나. 너무 놀라서.”

    멋쩍은지 헛기침을 작게 해 보인 그가 입술을 씰룩였다.

    “네. 구울이요.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구울 때문에 황성과 아카데미가 모두 발칵 뒤집혔습니다.”

    “하! 나라가 미쳐 돌아가는군.”

    목이 타는지 백작은 제 앞에 놓인 와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래서, 그 구울은 다 처리되었니?”

    “예. 아만 교수님께서 때마침 오셔서 처리하셨습니다.”

    “오셔서 처리를 해?! 그럼 네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말이냐!”

    분개한 백작이 다시 자리를 들고 일어나려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 모습을 본 루카스는 ‘아차’ 싶었다.

    “있긴…… 했지만 뭐 구울은 워낙 느리고…….”

    “이, 이런!!! 내 당장 황성에 찾아가서!!!”

    “여보!!!”

    당장에라도 황성으로 뛰쳐 갈 기세인 백작과 그를 말리는 블레인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무엇이 웃겨서 웃느냐! 이 아비는 심각하다!”

    갑작스러운 루카스의 웃음에 입술이 댓 발 나온 백작이 발을 쾅 굴렀다.

    “아닙니다. 그저…….”

    그는 다음에 올 말을 한번 삼켰다.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평온함과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감정. 그는 그 감정을 표현할 말을 머릿속에서 잠시 골라냈다.

    “행복해서 그렇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백작의 화는 눈 녹듯 사그라졌다. 제 아들이 행복하다는데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렇게 즐거운 식사가 이어졌다.

    ***

    집으로 돌아온 루카스는 온종일 먹이기만 해대는 제 부모와 사용인들에게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물론 음식은 훌륭했다.

    “으어어…… 배 터지겠네.”

    드래곤이었을 땐 음식을 먹어도 크게 배부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그저 유희 중 맛보는 인간들의 맛있는 음식 정도였던 것이, 인간이 되고 나니 너무나도 필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욕심부려 과식을 하고 나면 찾아오는 불편함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똑똑똑

    “도련님, 과일 좀 드셔 보세요.”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유모의 손에 들려 있는 과일 꾸러미를 본 루카스는 속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아니…… 유모, 그만…….”

    “어머나, 과일은 배 안 불러요. 소화에도 좋고요!”

    ‘제발…… 제발 멈춰!’

    그렇게 유모가 욱여넣은 과일까지 꾸역꾸역 먹고 나니 더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방에 누워 빵빵하게 부푼 배를 어루만지던 루카스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했다.

    식사 시간에 뱉은 ‘행복하다.’라는 말이 자꾸 제 귓가를 맴도는 듯했다.

    ‘행복이라…… 그래…….’

    삼켰던 말이 뱉어지는 순간 그는 왠지 모를 해방감에 속이 다 시원했다.

    저도 모르게 부정했던 것이었다.

    최상위 포식자인 고고한 드래곤으로 살아왔던 반만년의 세월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드래곤으로 살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행복이라고는 성공적인 유희를 마쳤을 때나, 귀한 아티팩트를 수집했을 때 느꼈던 것이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유희를 했을 때 느꼈던 행복은 지금 느끼는 행복과는 질이 달랐다.

    지금 느끼는 행복은…….

    ‘진짜 행복. 이게 진짜였군.’

    이제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찰나의 시간을 사는 인간들이 왜 그렇게 아득바득 사는지, 인간들이 어찌하여 가족에 목숨을 내거는지.

    아이가 울고 웃을 때, 부모가 웃고 기뻐할 때.

    그 작은 기쁨과 슬픔에 어찌하여 이렇게 목을 매는지. 어찌하여 다들 그것을 위해 그리도 노력하는지.

    ‘……좋군.’

    다른 인간들과 같이 찰나의 시간을 살게 되니 느껴지는 이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

    “루카스님~? 루카스님~”

    부른 배를 두드리며 누워있다가 깜빡 잠이 든 루카스를 누군가 부드럽게 부르고 있었다.

    “으음…… 응?!”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살짝 뒤척인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구…….”

    저도 모르게 손끝에 마력을 모은 그가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어어? 그거 나쁜 겁니다?”

    루카스의 손을 가리키며 놀란 시늉을 해 보이는 저 능글맞은 얼굴은…….

    “아만. 하, 지금 그건 또 뭐지?”

    말투와 푸르딩딩한 머리를 보고 아만임을 알아차린 그는, 지금 보이는 색다른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아만이 아닌 다른 모습이죠.”

    “……어이가 없군.”

    “아카데미에 있어야 할 제 모습을 누가 보면 곤란하니까요.”

    아만의 눈꼬리가 장난스럽게 휘었다.

    “그래. 여기까지는 왜…… 아니 그것보다 왜 내가 자는 방에 몰래…… 아니, 됐다.”

    “뭐, 말이 정리가 안 되는 걸 보니 잠이 덜 깨셨…… 윽!”

    갑자기 쏘아진 마력에 복부를 한대 얻어맞은 아만이 작게 신음했다.

    “말이나 해. 왜 왔는지.”

    “이거 반칙 아닙니까? 아이고 아파라…….”

    하라는 대답은 안 하고 얻어터진 복부를 어루만지는 아만에게 다시 한번 마나를 쏘려고 할 때였다.

    “아, 알겠습니다. 제가 온 이유가 뭐겠습니까! 잘 도착하셨나 보고 싶기도 하고…… 또, 어어! 쏘지 마세요!”

    “본론.”

    “끄나풀을 하나 잡았습니다.”

    “끄나풀?”

    “예. 라크메르의 끄나풀 말입니다. 이자들의 속셈이 뭔지 이번엔 제대로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흠…….”

    여태까지 아무리 알아내려 해도 잡히지 않았던 그들의 꼬리가 마침 방학이 시작한 지금 딱 잡혀줬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끄나풀을 잡았다며 냉큼 찾아온 아만의 들뜬 얼굴을 보자 의심은 확신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지켜보기만 해. 증거를 잡는다고 그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마라.”

    “예? 아니, 그래도 이건 확실한…….”

    “아니. 함정일 가능성이 높다.”

    “하! 제가 무슨 바보도 아니고!”

    루카스의 말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항변하는 아만의 입을 대번에 닥치게 할 단어.

    “비밀창고.”

    “옙. 그렇게 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단순하고 해맑은 드래곤의 조련은 누구네 집 강아지보다 쉬웠다.

    한쪽 눈을 찡긋 해 보인 뒤 손까지 살랑살랑 흔들어 보인 아만이 텔레포트해 떠나자, 루카스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네놈들 수에 놀아날 만큼 어리석은 드래곤은 없을 것…….’

    그런 드래곤이 방금 떠났다.

    “하! 하셀은 도대체 저 자식을 어떻게 키운 거야?”

    ***

    아만이 떠난 뒤 아침 식사 자리에 간 루카스는 처음 보는 얼굴에 미간을 찌푸렸다.

    “루카스. 왔니?”

    “예.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먼저 안부 인사를 건넨 루카스가 제 자리로 가 앉았다.

    제 자리 옆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 저보다 두어 살은 어려 보이는 아이는 멍하니 식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나 없는 사이에 낳은 건 아닐 거고…….’

    “루카스.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자리에 앉아 여자애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엄마인 블레인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널 만나러 아카데미에 갔을 때… 그때 내가 돌아오는 길에 이 아이를 만났단다. 이민족… 사건 때 가족과 헤어진 듯하더구나.”

    “…….”

    “열 살이라고 하더구나. 안타깝게도 그 사건으로 부모를 모두 여의었어.”

    혹시라도 아이에게 상처가 갈까 말을 아낀 블레인이 루카스를 바라봤다.

    다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작게 끄덕인 루카스가 작게 미소 짓자,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린 너의 의견을 듣고 싶구나. 이 아이를 우리가…… 우리 가족이 되게 해도 괜찮을지…….”

    “네가 싫다면 우리는 절대, 절대! 쉽게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말이 어미의 입을 타고 나오자, 루카스는 가슴 한쪽이 살짝 찌릿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감정은 미약하지만 ‘질투’였다.

    이제야 제대로 살아 보겠다 마음을 먹었는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런 맹한 꼬마가 제 가족이 된다니. 왠지 모르게 제 자리를 한편 내어준 것만 같았다.

    ‘그러라고 해야겠지.’

    입술 안쪽을 살짝 깨문 루카스가 티 나지 않게 숨을 살짝 들이켰다.

    “예. 저도 동생이 생기면 좋지요.”

    루카스의 대답에 부모가 활짝 웃었다.

    “루카스…….”

    아버지인 시비에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블레인은 이미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울지 마세요.”

    그도 그럴 것이 둘은 아이를 가지기가 힘든 몸이었다.

    신께서 내려주신 아이라며 저를 금지옥엽 키웠다. 제 어미가 아카데미에 왔을 때 폴라를 바라보았던 눈빛을 어찌 모르겠는가.

    여의치 않은 백작저의 사정 때문에 양자를 들이지 않은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만난 가엾은 아이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얘는 근데 왜 이렇게 넋이 빠졌어?’

    제 부모가 무어라 하든지, 앞에서 울든지 짜든지 아이의 눈은 아직도 멍한 상태로 식기류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식사하시죠.”

    부드럽게 웃어 보인 루카스가 제 부모를 안심시켰다.

    “안녕? 나는 루카스야. 얼른 밥 먹자.”

    그가 아이의 손에 숟가락을 조심스레 쥐여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제 손을 한번 루카스를 한번 바라보더니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우…… 웃었어요!”

    “어머! 넬라!”

    그렇게 또 하나의 가족이 생겨났다.

    ***

    “도련님! 도련님!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응? 무슨 손님?”

    정원에 앉아 책을 보던 루카스에게 달려온 라일라가 숨을 헉헉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루카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대문을 바라봤다.

    “저게 뭐… 응!?”

    마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렇게나 떠들어 대던 위대한 오닐 공작가의 거대한 마차가 대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오, 오닐 공작가에서 사람이 왔어요!”

    그제야 숨이 조금 돌아왔는지 라일라가 헐레벌떡 말을 이었다.

    “알아. 나도 지금 보고 있거든.”

    루카스의 미간이 험상궂게 구겨졌다.

    ‘저것들이…….’

    연락을 하고 오랬더니 자신이 백작저에 도착한 지 삼 일 만에 저것들이 들이닥쳤다.

    그 말인즉 자신이 출발한 다음 날 저것들도 바로 출발했다는 이야기겠지.

    ‘저런 미친!’

    아직 제 부모에게 오닐가의 친구가 놀러 와도 되겠느냐는 형식적인 물음조차 하지 않았다.

    들어오는 마차를 멍하니 바라보던 루카스가 저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

    아니나 다를까 마차의 문장을 알아본 제 부모가 굳은 표정으로 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려줘서 고마워, 라일라. 내 친구가 왔나 보네.”

    최대한 태연하게 말해 보인 루카스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저런 미친 망아지 같은 꼬마들이!’

    굳은 표정의 부모를 한 번 더 흘끗 바라본 루카스가 빠르게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작저에 가까워질수록 제 부모의 표정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어찌나 놀랐는지 블레인은 손까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제 친구들일 겁니다.”

    “……친구? 오닐가에?”

    “아, 그때 봤던 그 친구니?”

    “예. 제가 한번 놀러 오라 얘기했었는데…… 이렇게 연락도 없이 올 줄은.”

    루카스의 말에 살짝 벌어져 있던 입을 닫은 백작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그래. 아들의 친구인데…….”

    미세하게 경련하는 백작의 얼굴을 바라보던 루카스의 눈이 멈춰 선 마차에 향했다.

    마차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내린 얼굴들을 바라본 루카스는 헛웃음이 나왔다.

    “루키!!!”

    “루카스!!!”

    제 속도 모르는 꼬마들이 손을 신나게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지랄 났네, 지랄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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