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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7화 (27/225)
  • 27화. 다녀왔습니다.

    아카데미의 한적한 후원에 모인 루카스와 일행.

    “야, 너 아까 어떻게 한 거야?”

    “그, 그것은 사일런스 마법이 아닌가?!”

    “다음부터 밥 먹을 땐 밥만 먹겠다고 하면 가르쳐 주지.”

    주변을 확인한 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자, 루카스는 단호한 표정으로 단순한 공약을 내세웠다.

    “으응! 그럴게!”

    “그렇게 하겠다.”

    쉬운 요구에 걸맞은 빠른 대답이 튀어나오자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가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마나를 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가장 답답했던 것 중 하나였다.

    기초반은 물론이고 한 학기 다녔던 초급반에서도 마나의 운용에 대한 수업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마치 요리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요리법은 가르치지 않고 재료만 주구장창 가르치는 느낌이랄까.

    그러니 마나를 운용하는 방법만 잘 가르친다면 제국에 뛰어난 마법사는 훨씬 많아질 것이었다.

    “마나는 아주 단순해. 자, 상상해 봐. 네 몸에 있는 무언가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상상. 그게 무엇이 되었던 좋아. 작은 구슬들을 상상해도 좋고, 물이나 흙 같은 것도 좋아.”

    “그게…… 무슨 말이야?”

    루카스의 말에 폴라와 스키르는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 그러니까…….”

    막막해 왔다. 숨을 쉬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그가 자연히 알고 있는 방법을 설명하려니 이처럼 어려운 게 또 없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한참을 말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눈만 굴리는 루카스를 보던 폴라가 그를 채근했다.

    “자. 마나를 느껴봐.”

    “그걸 어떻게 느끼나?”

    “맞아. 그걸 어떻게 느껴?”

    루카스에겐 ‘숨을 쉬어봐.’와 같은 맥락의 말이었다. 아니 어떻게 더 설명한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그 배 속에 있는 건데…….”

    “배 속에?”

    “여기?”

    멀뚱멀뚱 제 배를 바라보는 둘의 모습에 깊은 한숨이 올라왔다.

    “그래…… 배 속인데…… 심장 부근에 있는 그게 마나야.”

    “아니 그걸 어떻게 느끼…….”

    “끝까지 들어!”

    답답함에 소리를 버럭 지른 루카스가 제자리를 맴돌았다.

    “자, 할 수 있는 마법 아무거나 써봐.”

    “…….”

    “없는데…….”

    말문이 막혔다.

    “아니, 그럼 캠프 때 마나석은…….”

    말을 하면서도 아차 싶었다. 그때 폴라와 스키르가 가져간 마나석은 자신이 찾아서 넣어준 것이 아닌가.

    “그때도 그냥… 감으로 찾았는데.”

    “맞다. 나도 그냥 감으로 마나석 같은 것을 주웠을 뿐인데. 하, 이런 게 재능인가?”

    ‘지랄들 하고 있네. 너희는 감으로 돌을 주웠겠지.’

    입 밖으로 막 튀어나오려는 말을 급하게 삼킨 루카스가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하…… 내가 뭘 한 것인지.”

    루카스가 내쉬는 깊은 한숨에 그들의 얼굴에도 깊은 근심이 드리웠다.

    “……아무래도 안 되겠지?”

    시무룩한 표정의 폴라가 바닥을 구르는 돌을 툭 찼다.

    “아니. 할 수 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왠지 모를 투지가 불타올랐다. 이 꼬마들에게 제대로 된 마법을 쓰게 하고 싶었다.

    ‘너넨 오늘부터 내 수제자로 키워주지.’

    이왕 받아들인 인간으로서의 운명이라면, 이들 또한 제대로 된 친구일 필요가 있었다.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따라가겠다!”

    “응! 나도 열심히 할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둘의 모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의 한쪽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스키르와 폴라의 팔에는 왠지 모를 소름이 돋아났지만 말이다.

    ***

    “그래서 그냥 다 죽였다고?”

    “네. 다 죽였지요.”

    “하!”

    “아니, 그럼 어쩐답니까? 분명 뭔가 걸려 있긴 한 것 같던데요.”

    “너는 어떻게 된 게…! 아니다…….”

    루카스는 퍼런 도마뱀의 해맑은 보고에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후…… 그걸 풀 생각은 못 했나?”

    “오, 그런 방법이! 라고 할 줄 아셨습니까? 저 바보 아닙니다.”

    “…….”

    “물론 풀려고 해 봤죠. 하지만 피의 서약인지 절대 풀리지 않더군요.”

    ‘피의 서약.’ 신을 제외하고는 깰 수 없는 강력한 서약이었다. 하지만 신이 한낱 인간들의 서약을 깨러 내려올 이유는 없었다.

    서로의 목숨을 내걸고 하는 서약이기에 그것을 깨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미 내놓아진 목숨이라면 그것을 깨지 못할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은 자신들의 목숨보다 소중한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피곤하게 됐군.”

    “요즘 인간들이 옛날 같지 않다니까요? 아주 영악한 것이… 으휴!”

    반만년을 살아온 자신 앞에서 옛날이야기를 하는 같잖은 드래곤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런가 보군.”

    “예, 로드의 유희가 언제 마지막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된 유희는 저 태어날 때쯤 아니십니까?”

    “그건 맞지. 오십 년 전쯤에 잠시 나갔던 것 빼고는…….”

    “그렇다니까요! 저는 이미 백 년쯤 나와 있지 않습니까? 뭐…… 중간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쉬긴 했지만. 진짜 인간들이 하루가 다르게 영악해져 갑니다.”

    제 팔을 감싸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이는 아만을 보던 루카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렇겠지.”

    “예. 그러니 걱정 마세요. 어떻게든 이 같잖은 인간들의 술수를 제가 밝혀낼 테니 말입니다. 아, 그리고 비밀창고는…….”

    “스읍. 나 죽을 때쯤 준다니까?”

    “……죽는 날을 아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만, 그만! 나는 가야겠구나.”

    그는 혹시라도 창고에 관한 이야기가 더 나올까 싶어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아직 못 찾은 걸 들키면 안 돼…….’

    ***

    황제의 집무실.

    “하! 그래서 그자들이 전부 몰살당했다?”

    “예. 이미 그들을 찾았을 땐 전부 불타 없어진 상태였습니다.”

    “흔적은?”

    “없었습니다.”

    -쾅!

    “도대체! 어떻게 된 게 이깟 거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분개한 황제가 책상을 거칠게 내려쳤다.

    그의 분노에 마탑주이자 학교장인 알베르토가 잠시 움찔했다.

    “찾아내라! 제깟 게 해봤자 5서클이나 6서클의 마법사나 되겠지!!”

    “단체일 수도…….”

    -퍽! 쨍그랑!

    알베르토는 갑작스럽게 날아든 작은 수정구에 말을 마치지 못했다.

    수정구는 다행히도 비껴 나가 바닥에 처박혀 깨어지고 말았다.

    “그게 단체면 자네도 단체로 움직이면 될 것 아닌가!!!”

    “알겠습니다.”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손을 휙휙 내저은 황제가 등을 돌리자, 방을 빠져나온 알베르토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도대체 어떤 개자식이!’

    차질 없이 계획되던 일이었다.

    물론 소환 술식이 잘못되어 황성 근처로 떨어진 구울들은 라크메르의 실수가 맞았다.

    라크메르는 황성에서 움직이는 비밀 마법 조직이었다.

    맨 처음엔 검은 기사단과 같이 황실이 직접 나서지 못하는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려 만든 조직이었지만, 지금의 황제가 집권을 시작하면서 본질이 점차 퇴화되었다.

    흑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는 선대 황제 때도 라크메르에 존재했었지만, 지금과 같이 네크로맨서까지 들이진 않았었다.

    흑마법사가 내린 저주나 술식을 쉽게 풀기 위해 황실 마법사들 역시 흑마법에 대해선 조금씩 배워두고 있었다.

    하지만 죽음과 언데드를 다루는 네크로맨서는 금기시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황제 그래드 루클라이어는 어느 날 받은 계시 하나로 물불 가리지 않고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었다.

    ‘꼭… 잡아내겠어.’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복도를 지나는 마탑주의 모습은 제국에 널리 알려진 인자하고 지혜로운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욕망에 물든 노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어느새 한 학기가 모두 끝이 났다.

    7월에 접어든 아란트의 햇살은 눈이 부시다 못해 뜨거웠고, 곳곳에는 냉기를 뿜어내는 마도구인 냉기구 앞에 로브 자락을 펄럭이는 학생들이 보였다.

    두 번째 방학을 맞이한 루카스는 제 엄마인 블레인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이번엔 가야지…….’

    원래는 며칠 정도 더 머무르다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창밖을 바라본 루카스는 제 계획이 쓸모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제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가 다른 마차들과 함께 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던 것이었다.

    “루키! 너도 집에 가지?”

    “응. 너는?”

    “음…… 나는 안 갈 것 같아.”

    보육원에서 자란 폴라는 하나뿐인 혈육인 언니가 입양된 뒤 소식이 단절되자 스스로 그곳을 떠났다고 했다.

    마법사로서의 자질을 알아보게 된 것은 홀로 떠난 길에서 만나게 된 아만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돌아갈 곳을 잃었다고 생각하게 된 폴라는 언젠가 성공해서 제 언니를 찾고, 자신을 거둬준 보육원에 돌아가 은혜를 갚고 싶다고 했다.

    “아, 그래…….”

    그녀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 루카스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그녀가 활짝 웃었다.

    “잘 다녀와!”

    “흠흠, 그럼 너는 뭘 할 것인가?”

    그런 그녀가 걱정되었는지 스키르가 입을 열었다.

    “음…… 나는 학교에서 있으면 되는데 뭐!”

    “그렇다면 내가 종종 찾아오도록 하지.”

    “야, 됐거든? 나 혼자서도 잘 놀거든?”

    “……그런가.”

    루카스가 여태까지 지켜본바, 스키르는 분명 폴라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저런 답답한 놈.’

    스키르 어린이의 답답한 행동에 치가 떨렸다.

    “그러지 말고 방학 때 우리 영지에 놀러 와라.”

    답답함에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을 후회하는 데엔 1초도 걸리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뱉어진 말인 것을.

    “엥? 그래도 돼?”

    “흠…… 너는 알지 모르지만…….”

    의아해하는 폴라와 이럴 때만 늙은이 같은 스키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한숨이 올라왔다.

    “나도 다 안다. 너희 가문과 우리 가문이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하지만 내 부모님은 어른들의 일을 아이들에게까지 나무랄 분들이 아니시다.”

    “그런가…….”

    루카스의 말을 들은 스키르가 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맞아. 루키네 엄마 엄청나게 예쁘시잖아. 그런데 나는…….”

    루카스는 폴라의 걱정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먼저 고개를 내저었다.

    “우린 친구 아닌가?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여기 잘난 귀족 나으리 마차나 얻어 타고 놀러 와.”

    그가 턱짓으로 멀뚱히 서 있는 스키르를 가리켰다.

    “하! 그래. 네 말이 맞지. 나는 잘난 귀족 나으리니 내 마차쯤은 누구든 태울 수 있다.”

    “그래. 잘난 귀족 나으리! 그럼 우리 루키네 집 놀러 가자!”

    으스대는 스키르와 그것을 비아냥대는 밝은 폴라의 모습을 보니 입가에 웃음이 스며들었다.

    “그래. 그리고 다음 학기엔 기초반을 벗어나야 되지 않겠어?”

    “!!!”

    놀란 토끼 눈이 된 그들을 뒤로한 루카스가 마차에 올라탔다.

    “편지해. 너희가 오는 때를 맞춰 준비할 테니.”

    “응! 꼭 갈게!”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가겠다!!”

    서서히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루카스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귀여운 것들.’

    ***

    루카스는 중간 마을에서 쉬지 않고 오기 위해 일부러 마부를 하나 더 고용했다.

    그는 이날을 위해 용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모으기까지 했다. 게다가 마부를 하나 더 고용함으로써 중간 마을에 들러 숙박비를 비롯한 다른 기타 여비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점 또한 장점이었다.

    ‘흥. 없는 살림 아껴주려 내 별짓을 다 하는군.’

    속으로 끊임없이 투덜대는 그였지만 사실 그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하루 일찍 도착한 걸 보면 또 한바탕 난리를 치겠군.’

    그들의 얼굴을 떠올린 루카스의 마음에 작은 기대가 피어올랐다.

    “아들!!!”

    “아이고 내 새끼!!!”

    루카스가 일정보다 하루나 일찍 도착하자, 예상했던 대로 백작 부부의 기쁨은 배가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

    “마부를 하나 더 고용했습니다.”

    “아유…… 내 새끼……,”

    제 뺨에 볼을 비비는 어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린 루카스가 활짝 웃었다.

    “다녀왔습니다.”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온 제집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집에 돌아온 루카스는 제법 많이 변해 있었다.

    키도 또래에 비해 꽤 컸으며, 얼굴 또한 선이 조금씩 짙어지고 있었다.

    “우리 아들. 훌쩍 컸구나.”

    제 손으로 짐을 싸서 보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 루카스는 훌쩍 커 있었다.

    “자, 들어가자. 배는 안 고프니?”

    “괜찮아요. 오는 길에 빵도 먹고…….”

    “그런 걸 먹어서 어쩌니! 얼른 들어가자.”

    자신의 손을 잡아 이끄는 블레인의 발걸음이 다급했다.

    “도련님!”

    저택에 들어서자 유모인 아일린과 하녀 라일라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어머나, 우리 도련님. 어쩜 이렇게… 흑…!”

    “유모. 울지 마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자신의 곁을 지키던 유모는 루카스를 보자마자 눈물을 보였다.

    그녀의 손을 한번 꼭 잡아준 루카스가 활짝 웃었다.

    ‘그래. 집에 왔다.’

    변한 것 없는 저택에 변해버린 한 사람. 루카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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