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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2화 (22/225)
  • 22화. 사라진 아이들 (6)

    “아니에요!! 이거, 이거 숲속에서 주운 인형이에요!! 제가 주웠어요!!!”

    아이의 간절한 외침은 어느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경비 대원들은 쇠붙이를 뽑아 들어 당장 화풀이하기에 바빴으며, 여인들은 제 남편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으아아악!!! 살려주세요!!!”

    “이런 개 같은!! 이민족들 주제에 우리 제국민을!!”

    “무,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끄아악!!”

    비명은 끊이지 않았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토끼 인형을 안고 울부짖는 사내의 울음소리에 맞춰 피바람이 불었다.

    “살려주세요!! 우리 아빠 잡아가지 마세요!!”

    닥치는 대로 사내들을 잡아들인 경비대원들이 그들을 볼모로 협박을 시작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벌레만도 못한 종자들!! 어디 도망이라도 쳐봐라! 이 자들의 목숨은 없는 것이니!!!”

    그렇게 노약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붙잡혀 갔다.

    처음부터 이러기를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저들은 범인을 색출할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떠도는 소문을 사실로 만들어 줄 구실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아빠를 잃었고, 아내는 남편을 잃었다.

    남편을 지키려 앞에 나섰던 한 여인은 눈먼 칼에 맞아 큰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를 작은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울부짖는 아이.

    “엄마, 엄마… 다 나 때문이야. 내가 그 인형 주워 왔어… 흐어엉…! 아빠, 아빠는 어떡해… 엄마, 엄마 죽지 마아!!”

    “아냐…… 우리 딸…… 엄마가, 쿨럭! 엄마가 미안해…….”

    힘겹게 말을 잇는 여인의 입에서 검은 피가 솟구쳐 나왔다.

    “으아아앙!!! 엄마!!! 내가, 내가 미안해… 내가 인형 주워 와서 그래… 내가, 끄흑! 가서 잘못했다고 얘기할게. 응? 얘기할게….”

    그칠 줄 모르는 아이의 울음과, 멈출 줄 모르는 여인의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엄마가…… 인형 못 사줘서…… 미안해…….”

    딸의 작은 손을 꼭 쥔 여인의 눈빛이 점점 탁해졌다.

    “네, 넬라…… 도, 도망쳐…….”

    “엄마… 엄마아!!!”

    그렇게 숨이 끊어진 어미 곁에서 울부짖던 아이는, 돌연 무언가에 홀린 듯 피 칠갑을 한 제 손으로 얼굴을 쓰윽 닦아냈다.

    “응. 도망칠게.”

    그렇게 아이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

    “썩을 놈들!!! 어떻게, 어떻게 아이들에게!!”

    “내 아들! 아들 돌려내라…… 돌려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들에게 제 자식을 돌려내라며 울부짖었고, 아이들을 잃은 제국민들은 돌이며 썩은 야채들을 던져댔다.

    처형대 앞에 선 자들은 누구 하나 몸이 성한 사람이 없었다. 다들 제 억울함을 이야기하다가 고된 고문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항변은 지금 보이는 것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제 몸에 상처와 고통을 깊이 남겼을 뿐.

    “아빠!!! 아빠!!! 아저씨 우리 아빠 제발 살려주세요. 네? 흐어어엉…….”

    그 앞을 지키는 경비대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아이의 아비는 처형대 앞에 서서 구슬픈 눈물만을 흘렸다.

    “저리 썩 꺼지지 못해?! 똑똑히 봐둬라! 네 아비라는 자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아느냐?!”

    제 반만큼이나 오는 가냘픈 아이를 장홧발로 거칠게 차버린 사내가 혀를 찼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 애가…… 철이 없어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지아비를 잃게 생긴 여인은 혹여 자식이 험한 꼴을 당할까 얼른 자식을 감쌌다.

    더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전쟁과 가난이 끝없이 이어지던 고국을 버리고 떠난 지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눈물은 이미 메말라 없어질 만큼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지아비를 잃게 생긴 이 순간에도 여인은 울지 않았다.

    강해져야 했다. 아무리 억울하고 서러울지라도 제 품에 안긴 작은 생명을 지켜내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한번 국경을 넘는 한이 있더라도, 전쟁통으로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만은 지켜내야 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내의 얼굴이 눈물로 얼룩졌다.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벙긋거려 보았지만 나오는 소리는 없었다.

    혹시라도 처형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란에 대비하여 모든 죄수들에게 침묵 마법까지 걸어두는 철저함을 보였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죄인들을 처형한다!”

    집행관이 그들의 생사를 결정지을 말들을 읊어냈다.

    “집행!!!”

    -덜컹!

    그들은 그렇게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에스나 왕국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이교도로 몰려 제국에서 쫓겨났다.

    그마저도 죄가 확실한 열다섯을 처형하고, 나머지는 추방하는 것에 그쳤다.

    진실을 모르는 제국민들은 이같이 자비로운 판결에 일부는 분개했으며, 일부는 자애로운 황제라며 칭송했다.

    “엄마…… 우린 이제 어디로 가요?”

    “우리 발붙일 땅이 없겠니? 걱정 말아라. 이 엄마가 어떻게 해서든…… 어떻게 해서든…….”

    여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꼭 살려내겠다 약속해 주어야 하는데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안녕?”

    이민족들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은푸른 머리의 사내의 모습에 다들 소스라치게 놀라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어어? 도망치면 안 되지.”

    말을 마친 사내가 주변에 결계 마법을 발동시켜 이주민들의 발걸음을 막았다.

    “서운하네? 내가 너희를 도우러 온 수호천사인데 말이야.”

    “자, 잘못했습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국을 당장 떠나려던 참이었습니다!”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백발의 노인이 얼른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내가 도우러 왔다니까 그러네?”

    “가, 가진 것이 없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이 늙은이의 목숨이라도 가져가십시오…… 제발 저희 주민만은…… 주민들만은!”

    노인은 고국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제 목숨이라도 내놓으려 하고 있었다.

    “아니! 도우러 왔다고!!!”

    은푸른 머리의 사내가 버럭 소리치자, 겁에 질려 있던 사람들마저도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제, 제발! 자비를!!!”

    “후, 이거 뭐 내가 굉장히 나쁜 놈이 된 것 같네.”

    짧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긴 사내가 그들의 앞에 주머니를 하나 툭 던졌다.

    “자, 이건 경비하라고 먼저 주는 거야. 그리고 내가 지금부터 너희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줄 거야.”

    “……예?”

    그것을 열어본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런 것을 어찌…….”

    “그냥. 도와주는 거지 뭐. 내 책임이 없지 않아 있기도 한 것 같고…… 뭐.”

    눈 한쪽을 찡긋해 보인 사내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 주머니를 본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머리를 땅에 박으며 연신 감사인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내가 내어준 주머니엔 금화가 가득 들어 있었다. 어디로 간다 한들 꽤 도움이 될만한 큰 액수였다.

    낯선 사내를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믿어야만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불신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에…….

    그를 의심하고 경계한다 한들 그들에게 남는 것은 그 무엇도 없었지만, 눈앞에 만져지는 금화는 달랐다.

    “자, 그럼. 어디로 옮겨 드릴까? 이제 사람들도 질릴 때가 되지 않았어? 한적한 숲으로 옮겨줘?”

    “옮겨 주신다는 게…… 무슨?”

    사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 보았던 것이 대충 마법인 것은 알지만, 이 많은 사람을 옮기는 마법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가자.”

    사내는 그들을 모두 데리고 텔레포트했다.

    이제 더 이상 그곳에 남은 이민족은 없었다.

    ***

    이민족들의 이주를 지켜보던 아만은 그들에게 마지막 호의를 베풀기로 했다.

    대부분이 가장을 잃은 사람들이었고, 그마저도 남은 남자라고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거나 아주 어린 아이들뿐이었다.

    아만은 그들을 찾아가 작게(?)나마 여비를 챙겨주고 그들이 살만한 새로운 터전을 찾아주었다.

    에스나 왕국 사람들의 소식을 들은 모라인 왕국 이민족들 역시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아만은 모라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호의를 베풀었다.

    에스나 왕국 사람들과 모라인 왕국 사람들은 고국에선 적국이었을지 몰라도, 타국에서는 모두 같은 이민족 처지였다.

    그로 인해 멀지 않은 곳에 터전을 잡고 교류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모여 작은 마을을 새로 이룰 것이다.

    끔찍한 장면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어린아이들의 기억 역시 지워주었다. 모든 부모와 어른들은 연달아 감사를 표현하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엉엉 울기까지 했다.

    “하, 나란 드래곤. 착한 드래곤.”

    일을 모두 마친 그는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아만 교수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했다.

    그들이 받은 도움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서 좋을 것은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칭찬하며 아카데미로 돌아온 그가 루카스를 찾아 나섰다.

    왠지 모르게 자신이 한 착한 일을 얼른 뽐내고 싶었다.

    “으흥흥~ 루카스~ 여기에 있네~”

    콧노래까지 부르며 루카스의 기척을 찾던 그가 도서관으로 들어섰다.

    ***

    오랜만에 도서관을 찾은 루카스는 책장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필요한 책은 대부분 찾아 읽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할 때 책을 뒤적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탓이었다.

    그것을 잘 아는 사서 역시도 이때만큼은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루카스! 루카스으!”

    하지만 그 편안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망할 도마뱀이 저를 찾아왔다. 그냥 찾아온 것이 아니라 굉장히 신이 나서 찾아왔다.

    “뭐가 그렇게 좋습니까?”

    “그냥~ 뭐, 자랑할 것도 좀 있긴 한데~ 기분이 좀 좋고 그래서~”

    말끝마다 운율을 넣어가며 리듬을 타는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짜증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어머, 또 인상 쓰네! 흥미로운 어린이 같으니라고.”

    “…….”

    “내가 오늘 뭘 했게요?”

    “그게 뭐든지 간에 목소리 좀 낮추시죠. 이곳은 도서관입니다.”

    “엥?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

    손뼉을 짝 쳐 보인 아만이 얼른 차단마법을 썼다.

    “이제 주변에서 우리 소리 안 들려.”

    “하…….”

    해맑은 아만의 모습에 깊은 한숨이 올라왔다.

    “내가 오늘 뭐 했게?”

    “……뭐요?”

    분명 아만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루카스는 울며 겨자 먹기로 되물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아만의 주둥이는 여느 때보다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민족들을 어떻게 했는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등등을 침까지 튀겨가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루카스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저런 아만의 모습이 퍽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어린아이의 모습일지라도 제 앞에 와서 자신이 한 공로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만의 모습을 보자, 드래곤이었던 때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자신이 로드 자리에 있던 이천 년간의 세월 동안에도 그러했다. 어린 해츨링들이 처음으로 수집한 보석을 들고 와 제게 자랑했으며, 자신이 처음으로 나간 유희에서 있었던 일들을 구구절절 장황하게 늘어놓곤 했었다.

    아만 역시도 그들 중 하나였다.

    제일 처음 나갔던 유희가 어떠했는지 설명하던 아만의 빛나는 눈동자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다른 드래곤들에 비해 훨씬 밝고 쾌활한 성격을 자랑했다.

    그 때문에 종종 다른 드래곤들에게 눈총을 받기도 했었지만, 그는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해츨링 시절에 제 아비의 아티팩트를 훔쳐다가 시간을 뒤트는 바람에 천계까지 난리가 났던 일도 있었다.

    “푸흡.”

    “어? 웃어?”

    옛날 일을 생각하다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웃음에 아만은 말을 멈추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웃어!? 내가 엄청나게 잘했는데!?”

    “아니요. 잘하셨습니다. 그저 다른 생각을 하다가…….”

    “다른 생각!? 내가 엄청 잘한 거 얘기하는데 다른 생각을 했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아만이 발까지 동동 굴렀다.

    “미, 아니 죄송합니다. 다 듣고 있었습니다.”

    마치 어린 해츨링에게 상처를 준 것처럼 미안한 기분이 든 루카스가 얼른 한 손을 들어 사과를 해 보였다.

    “흥, 알겠어. 그래서 나 잘했다고?”

    “예. 엄청 잘하셨네요. 대견하십니다.”

    루카스의 칭찬에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 아만이 가슴을 활짝 폈다.

    “그렇지? 헴! 나 엄청 대단하지?”

    그 모습이 마치 재주를 부리고 주인의 칭찬을 바라는 커다란 강아지 같았다.

    “예. 대단하십니다.”

    루카스가 부드럽게 웃자, 아만 역시도 활짝 웃어 보였다.

    “...어?”

    아만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의문스러운 그의 행동에 루카스 역시 미간을 좁혔다.

    루카스가 자신을 칭찬할 때의 말투, 기특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머리를 쓸어 넘기는 행동.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순간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찾았다.”

    “…….”

    “당신 누구인지 알겠어. 찾았어. 내가.”

    아만의 눈이 활처럼 휘었다. 이가 보이도록 활짝 웃어 보인 아만이, 루카스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삶이 돌고 돌아 여기서 뵙습니다.”

    순간 루카스의 눈이 커질 대로 커지더니 이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래. 돌고 돌아 여기서 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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