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1화 (21/225)
  • 21화. 사라진 아이들 (5)

    “내가 말했잖소! 그 이민족 자식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어휴, 세상에나. 누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러게나 말이오. 아니, 우리 제국민이 얼마나 잘 대해줬는데…….”

    아이들이 죽고 난 뒤 제국민의 대문 앞엔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 아이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모두 한마음으로 집집마다 등불을 켜두었다.

    그런 단합력이 이민족들을 향한 거센 분노로 바뀌었다.

    제국민의 눈과 귀는 이미 닫혔으며 그들이 하는 어떠한 변명도 듣고 싶지 않아 했다.

    분노와 원망의 활시위를 팽팽히 당겨 과녁을 찾던 모든 제국민과 아이들의 부모는, 이민족을 향해 당겨뒀던 활시위를 가차 없이 놓아버렸다.

    “리사 알죠? 그 경비대원 딸내미 있잖아요.”

    “아아! 그 알죠. 빵집 사거리에서 쭉 내려가면 있는 그 집 말이죠?”

    “네, 그 집이요. 그 딸애 인형이 발견됐대요.”

    “어머나, 어디서요?”

    “에스나 사람들 사는 거기 있잖아요. 거기 애가 그 인형을 들고 있었다나 봐요.”

    “어머나… 끔찍해라…! 그럼 리사를 죽이고 그 인형을 제 자식에게 줬다는 거예요?”

    그 인형 하나만으로 정황상의 증거는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그들은 그저 비난의 화살을 돌릴 곳을 찾았을 뿐, 진실은 어떻게 되어도 좋았다.

    “그 집 아빠가 그걸 보고 딱! 알았대요. 리사네 엄마가 직접 만든 인형이라 뒤에 애 이름까지 쓰여 있었나 봐요.”

    “어휴… 그럼 확실하네요.”

    “쯧쯔… 애들이랑 그 부모들만 불쌍하죠…….”

    사람들은 다른 이의 불행을 가십거리 삼아 저마다의 동정심과 정의심을 내보이기 바빴다.

    어떤 이는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헤아리기라도 한다는 듯 그들을 찾아가 위로를 건넸으며, 어떤 이는 아이들을 해친 자들을 벌해야 한다며 직접 무기를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이번에 황제 폐하께서 직접 죄인들을 심문하신다던데…….”

    “예, 정말 대단하시지 않아요? 그리고 뭐 아이들 부모에게 보상도 해준다는 것 같던데요?”

    “맞아요. 금액이 꽤 된다고 하던데…….”

    “어휴, 돈이 문제겠어요? 천만금을 줘도 자식이랑은 못 바꾸죠…….”

    “흐흠. 그런데 어떤 부모는 그 돈이 적다며 항의까지 했대요…….”

    어떤 이는 자식의 죽음을 앞세워 제 욕심을 채우기도 했다.

    죄 없는 아이들의 죽음이 일으킨 파장은 불행하고 또 불행했다.

    ***

    황성의 지하감옥. 그곳에서는 날 선 비명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끄어어어억!!!”

    고문관이 뜨겁게 달군 쇠붙이를 남자의 가슴에 가차 없이 비벼대자, 생살이 타는 기분 나쁜 냄새가 풍겨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내는 제 알 바가 아닌 듯 고문관의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자, 말해봐라. 아이들을 왜 죽였느냐?”

    정신이 반쯤 나간 사내 앞에 앉은 남자가 건조하게 물어왔다.

    “폐, 폐하…… 저는…… 저는…… 아이들을…… 끄어어어억!!!”

    그가 대답을 채 마치기도 전에 다시 한번 뜨겁게 달군 쇠가 사내의 어깻죽지에 비벼졌다.

    “쯧쯧…… 누가 에스나 인간 아니랄까 봐. 말귀를 더럽게 못 알아먹는군. 나는 네가 하지 않은 것이 궁금한 게 아니다. 무엇을 했는지가 궁금하지.”

    황제라는 남자가 제 손톱 끝을 정돈하며 그를 힐끗 바라봤다.

    “자, 이제 다시 대답해 보아라. 너 하나면 되지 않겠느냐? 굳이 네 가족들에게까지…… 해를 입히고 싶진 않구나.”

    “제, 제 가족들은 아무런,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남자의 입에서 쇠를 긁는 듯한 거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 그래. 나도 잘 알고 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어진 황제가 아니냐? 그러니 제국에 찾아온 너희를 내치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죄인만 벌하고 싶구나.”

    황제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크흑…… 흑…… 예…… 맞습니다…… 제가…… 제가…….”

    그 모습을 본 사내는 알아차렸다. 자신이 죄인이 되지 않으면 제 가족까지 모두 화를 면치 못한다는 것을. 황제는 진범이 필요한 것이 아닌 그저 진범이 되어 줄 만한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 그래. 처음부터 이렇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그나마 멀쩡한 육신을 가지고 죽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황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자도 내일 아침 참수해라. 광장에서 공개처형 할 것이다.”

    “크흐윽…… 으어어어…….”

    사내의 입에서 한이 서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 그리고 이자의 가족들도 모두 데려와라. 제 아비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똑똑히 보여줘야지.”

    “으어어! 안 됩니다!! 제발…… 제발!!!”

    사내가 울부짖었다. 자신이 어떤 죄인이 되어도 좋으니 제발 가족들만은 부르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러니 죄를 짓지 말았어야지.”

    차갑게 돌아선 황제가 감옥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범인이 총 열다섯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제국민의 분노를 잠재우는 것은 진범을 찾는 것이 아닌, 당장 화를 삭여줄 수 있는 무언가라는 것을.

    ***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을요?”

    “그 정도는 해야 뭐 제국민들이 화를 좀 가라앉히지 않겠어?”

    아만과 루카스는 아카데미 후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카데미 안에서도 바깥 사정은 들을 수 있었으나, 학생들이 전하는 정보보다는 이쪽이 훨씬 나았다.

    진실을 아는 자는 정해져 있었다. 그 진실을 원치 않는 자 역시도.

    이제 점점 윤곽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적이 누구인지 아군은 또 누구인지.

    하지만 아직 정확히 아는 바가 없었다.

    어느 나라에나 이런 경우는 존재했다. 거짓된 정보를 만들어내 누명을 씌우거나, 그 누명이 들통 나기도 전에 처형하는 것은 흔하디흔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차원이 달랐다.

    아무리 제국민의 화가 하늘까지 솟았다 한들 아이들의 죽음이, 그것도 열여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혀내지도 않은 채 누군가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것은 어딘가 뒤가 구렸다.

    “치가 떨리는군요.”

    “그러게. 나도 저들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치가 떨린다는 루카스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아만의 표정은 그저 태연하기만 했다.

    “진짜 치가 떨리는 거 맞습니까?”

    “으응! 치가 떨려. 어휴, 무서워라.”

    “……됐습니다.”

    저 해맑고 또 해맑은 도마뱀을 도저히 상대할 기분이 나질 않았다.

    아이들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은 꼴을 보고도, 아이들이 피죽 한 그릇 못 얻어먹은 채 쇠창살 안에 갇혀있는 것을 보고도! 저 도마뱀은 태연하고 해맑았다.

    “굉장히 진심이네? 인간들 일인데 말이야.”

    “……그게 무슨.”

    “아냐, 그보다 어떻게 하고 싶어?”

    “찾아야죠. 찾아서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겁니다.”

    루카스가 주먹을 꽉 쥐고 이를 부득 갈았다.

    “그래! 그러자!”

    “후… 그보다 거기에 있던 아이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어머, 이제 물어보네?”

    “…….”

    “내가 다 잡아먹었어. 배도 고프기도 했고~ 뭐, 애들 부모 찾아주기도 귀찮아서!”

    “그게 무슨 개소립니까?”

    개소리가 맞았다. 인간을 잡아먹는 드래곤은 아주 가끔, 가끔 있었다.

    그것도 다른 인간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정말 옛날에 행했던 그런 괴기한 행위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괴상한 취미를 가진 드래곤은 여태 단 한 번도 없었다.

    “맞아. 개소리야. 그러니까 그런 무서운 눈 하지 말아 주겠니?”

    해맑은 도마뱀의 장난에 지칠 대로 지친 루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어디에 있다는 겁니까?”

    “우선 내가 부모 찾기 전에 좀 알아볼 게 있어서…… 다른 데에 잘 넣어놨어. 걱정 마.”

    루카스는 순간 ‘그게 어디냐’고 물을 뻔한 것을 겨우 참아냈다.

    어디에 있든지 잘 있다고 하니 그 말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믿지 않는다 한들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처형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까?”

    “응. 없지.”

    “…….”

    “없어. 안타깝지만 저 인간들은 그냥 잘 가라고 해야 해. 우린 그동안 다른 인간들이나 잘 지켜야지, 뭐.”

    루카스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그런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마법을 써 그들을 빼내 오기는 쉬웠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그 인간들을 다 빼내 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고, 아만에게 도움을 청하자니 그것 또한 여의치가 않았다.

    드래곤은 자존심이 센 마법 생물이다. 자신의 유희에 이렇게나 진심인 도마뱀이 유희의 흐름을 방해하는 행동을 해줄 거라는 보장 또한 없었다.

    지금 이들을 구해오면 앞으로의 모든 일을 그르치게 된다.

    진범을 잡는 것도, 이들의 우두머리를 찾는 일도.

    ‘어쩔 수 없군. 후, 신이 되면 환생 길이나 잘 열어 줘야 하나…….’

    드래곤이었던 그에겐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것도 인간들의 일이라면 더더욱.

    ***

    실종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던 블레인은 결국 제 아들인 루카스를 데리고 돌아가지 못했다.

    시타타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하녀 라일라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도련님께서는 괜찮으실 거예요.”

    “그래, 우리 루카스는 총명한 아이니까…….”

    물론 지금도 걱정은 되었다. 아직 열한 살밖에 나지 않은 루카스가 홀로 수도에 있는 아카데미에 있는 것부터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매주 주고받는 편지에서 루카스의 변화가 조금씩 느껴졌다.

    처음엔 그저 잘 있다는 형식적인 내용의 편지였지만 날이 갈수록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같은 사소한 일상 이야기가 한 줄씩 추가되었다.

    ‘답답했겠지…… 시타타는 너무나도 척박한 땅이니…… 내가 너무 안일했어.’

    직접 가서 본 루카스는 생각보다 더욱 나아지고 있었다.

    건조했던 표정에 생기가 돌았으며, 친구라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스키르 오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제 집안을 몰락시킨 장본인이나 다름없는 오닐 공작가의 아들과 친구가 되었다는 것.

    1황자를 몰아내고 서자였던 그래드 루클라이어를 황제로 즉위시킨 일등 공신이 오닐 공작가였다.

    ‘부모의 업을 아이들에게 지게 할 수는 없다.’

    당장에라도 제 아들을 스키르라는 친구 곁에서 떼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블레인은 현명한 여인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 그들의 순수한 우정을 어른들의 관계를 앞세워 망칠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바라보던 블레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차를 세워라.”

    “예? 갑자기요?”

    “세워라!”

    블레인의 외침에 달리던 말들의 발이 느려졌다. 마차가 멈춰 서고, 마차에서 내린 블레인이 왔던 길을 되돌아봤다.

    아이가 있었다.

    반쯤 넋이 나간 듯한 작은 아이가 추적추적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어머나! 마님, 아이가 있어요!”

    “혹시 모릅니다. 아이를 미끼로 도적질을 하는 도적 떼일 수도 있습니다!”

    마부의 외침에 라일라가 얼른 제 주인 앞을 막아섰다.

    “아니, 괜찮다.”

    라일라의 어깨를 살짝 두드린 블레인이 아이를 향해 걸어갔다.

    마차가 멈춰 선 것도, 블레인이 걸어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넋을 놓고 있던 아이의 코앞에 그녀가 멈춰 섰다.

    “얘야.”

    “으아아악!! 아아악!! 살려주세요!!!”

    그저 부드럽게 불렀을 뿐인데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괜찮다. 괜찮아.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아이에게 천천히 다가간 블레인이 작게 속삭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그 인형은 진짜 주운 거예요…… 주운 거예요…….”

    어느새 풀썩 주저앉은 아이의 반복되는 외침에 블레인의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이 작은 아이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숲길을 혼자 걸어왔을 것이다.

    신발도 신지 않은 발엔 생채기가 가득했고, 얼굴이며 머리엔 피딱지가 져 있었다.

    필시 험한 일을 당한 것이리라.

    “괜찮다… 괜찮아……”

    아이에게 천천히 다가간 블레인이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주운 거예요… 믿어주세요… 아빠 잡아가지 마세요… 우리 아빠예요…….”

    아이의 중얼거림이 점차 잦아들었다.

    “라일라. 아이와 함께 갈 수 있게 해주겠어?”

    라일라를 향해 부드럽게 말하는 블레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얘야, 아줌마랑 가자. 아줌마랑 가자…….”

    “살려주세요…….”

    “해치지 않을게. 아줌마가 약속할게.”

    블레인의 품에 안긴 아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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