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0화 (20/225)
  • 20화. 사라진 아이들(4)

    루카스의 폭주에 아만 역시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물론 인간의 몸인 루카스를 잠재우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지만, 그를 말리기엔 그의 분노가 너무나도 컸다.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보고 싶기도 했고.’

    눈앞에 있는 남자는 말 그대로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 그가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루카스는 잔인했다.

    처음 날려버린 팔에서 솟아 나오는 피 때문에 남자가 일찍 죽을까, 그는 그 팔에 치유마법을 걸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남자는 마지막까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을 받다가 죽었다.

    “혀를 자르니 더는 재미가 없군. 마치 내가 힘없는 동물을 괴롭히는 느낌이야.”

    그 말을 끝으로 루카스는 남자의 숨통을 끊었다.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절대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또한 그가 보여준 행동들은 몇 번이고 행해온 일을 자연스레 되풀이하는 느낌이었다.

    처음 사람을 죽여보는 아이의 행동이 절대 아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날벌레 따위의 다리나 날개를 뜯어 놓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자신의 화를 주체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도 먼저 슬립마법을 펼쳐 아이들을 잠재웠다. 앞으로 펼쳐질 잔혹한 장면을 보지 못하게 말이다.

    그의 잔잔한 배려에 헛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사람을 다져놓다니…… 형벌의 신의 유희인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람을 자근자근 다져 놓는 것을 본 아만의 머릿속엔 형벌의 신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더러운 새끼.”

    어느새 남자의 시체에 불까지 붙여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은 루카스가 자신을 돌아보자, 아만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다, 다했나요?”

    “…….”

    아만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흔들리는 동공하며 달싹이는 입술의 꼬락서니를 보니 확실했다.

    “나 있는 거 까먹었나요…….”

    “아, 아닙니다.”

    서둘러 말을 마친 루카스의 눈은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정처 없이 흔들렸다.

    “걱정 마세요. 주변에 기척이 있는지는 계속 확인했으니. 이곳엔 이자 하나뿐인 것 같더군요.”

    어느새 재로 변해가는 남자를 턱 끝으로 살짝 가리킨 아만이 비죽 웃어 보였다.

    “그렇습니까. 안 좋은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죄송합니다.”

    머리를 한번 쓱 쓸어올린 루카스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루카스가 지금과 같이 아만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제발 깝죽거리면서 협박만 하지 마라.’

    아직 화가 모두 가라앉지도 않았고 괜히 일을 전부 마무리 짓기 전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덕분에 인간을 어떻게 하면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지 배웠습니다.”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 아만이 넉살 좋게 웃었다.

    “하…… 이 많은 아이들은…….”

    “뭐, 우선 집 찾아줘야죠. 길 잃은 아이들 아닙니까.”

    아만의 의중을 알아차린 루카스가 고개를 한번 끄덕인 뒤 몸을 돌려 지하 감옥을 빠져나왔다.

    “그냥 텔레포트 해서 가세요. 뭘 새삼스럽게.”

    “…….”

    “여긴 제가 알아서 정리하겠습니다.”

    아카데미 밖에서는 깝죽거리더라도 꼭 존대하는 아만이었다. 제 정체를 대충 눈치챈 것은 서로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오늘 이렇게 사람을 다져놓는 것까지 보였으니 더 이상 정체를 꼭꼭 숨기는 것 또한 우스운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뒤를 잘 부탁합니다.”

    루카스가 텔레포트해 사라진 자리를 잠시 지켜보던 아만이 크게 기지개를 한번 켰다.

    “어휴! 피곤한 용생! 저 애들 집을 언제 다 찾아주냐…….”

    문양의 정체를 홀로 조사하다 보니 어쩌다 운 좋게 아지트 하나가 딱 걸려주었다. 이곳을 찾아낸 아만이 먼저 와 보았을 때 지하감옥의 존재 역시도 알고 있었다.

    루카스가 아니었더라도 아만이 이곳은 알아서 정리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글러 먹었다. 같이 와 잠시 보고 난 뒤에 그들을 쫓아 실질적인 인원들을 찾아 나설 생각이었다.

    그런데 루카스가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렇게 난리를 쳐놨으니…….

    “아니 왜! 사고는 쟤가 치고 수습은 내가 하냐고!”

    생각을 하다 보니 짜증이 치밀었는지 발을 쾅쾅 구른 그가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

    아카데미에 돌아온 루카스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들!”

    ‘안 되는데. 지금 피 냄새가…….’

    방으로 바로 텔레포트 할 것을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어, 어머니. 지금 잠시… 제가 우선 방에 가서…….”

    복도 벽에 바짝 붙어 얼른 방으로 향하려던 루카스의 계획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안아주지도 않고 갈 거니? 잠깐이면 되는데…….”

    블레인의 시무룩한 표정 앞에도 루카스는 얼른 도망치려 했다.

    “으앗!”

    하지만 작은 발로 냉큼 내달리려던 루카스를 와락 안아 든 블레인이 그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응? 이게 무슨 냄새니?”

    “이, 이게… 그… 그… 마법 약! 실험실에서 뭐가 터져서…….”

    “아, 그래서 얼른 옷을 갈아입으려 했나 보구나! 괜찮단다. 엄마는 그저 너에게 인사하려 들른 것이니까.”

    “인사요…….”

    “응. 돌아가려고.”

    품에 안은 루카스를 살짝 놓아준 블레인이 부드럽게 웃었다.

    “잘 지내는 것 같아 안심이야. 좋은 교수님들도 계시고…… 더 이상 걱정하지 않기로 했어. 그래도 이번 방학 때는 꼭 집에 오는 거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집에 꼭 갈게요.”

    “밖에서 늦게까지 다니지 말고, 또…….”

    “걱정 마세요. 걱정하실 일 없게 할게요.”

    블레인의 손을 꼭 붙잡은 루카스가 활짝 웃어 보이자, 그제야 그녀 역시도 걱정을 살짝 내려두었다.

    “루카스!”

    “루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루카스가 환하게 웃었다.

    “어머니. 제 친구들이에요. 이쪽은 폴라 펠레브. 이쪽은 스키르 오닐이에요.”

    이번엔 자신이 먼저 소개했다. 마음을 고쳐먹은 이후로 이 작은 아이들을 제 친구로 한번 삼아보기로 했다.

    “오닐…….”

    스키르의 성을 한번 곱씹은 블레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오닐 공작가의 차남. 스키르 오닐 이라고 합니다.”

    귀족의 예법에 맞게 무릎을 살짝 굽혀 인사해 보인 스키르가 환하게 웃었다.

    “우리 루카스의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폴라양, 스키르 군.”

    하지만 스키르의 밝은 인사에 블레인은 이내 표정을 풀고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럼 이번 방학 때 보자꾸나. 우리 아들!”

    인사를 끝으로 용돈을 담은 작은 꾸러미를 건네준 블레인이 떠났다.

    “윽, 너 이게 무슨 냄새야?!”

    “아주 역한 냄새가 나는군. 좀 씻지 그래?”

    “그러려던 참이다. 기분 나쁜 걸 뒤집어써서 말이야.”

    제 어미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그에게서 이제 제법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라진 아이들.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아이들이 누구인지와 같은 남의 집 이야기.

    “그거 보셨어요?”

    “뭐요?”

    “그 황성 앞 게시판에 붙은 거 말이오.”

    “뭐가 붙었어요?”

    아이들의 시신을 모두 부모에게 인도한 황궁 측이 본인들의 입장을 발표하는 성명문을 냈다.

    내용인즉 이번 사태에 대한 황제의 비통함과,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범인을 꼭 색출해 내겠다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쯧, 이미 애들 다 죽고 나서 그런 걸 해 무엇한답니까?”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범인이라도 잡아야 부모들도 화풀이하던 돌을 던지던 할 것 아닙니까?”

    “빨리 잡았으면 좋겠구먼요.”

    아이들이 모두 죽었다. 죽은 아이의 부모들은 절망에 빠져 허덕였으며, 지금 당장 누구에게든 이 원망을 돌리고 싶어 했다.

    그들의 집에서는 언제나 고성이 오갔으며, 불행의 불씨 너무나도 빨리 번져나갔다.

    제국민들은 안타까움에 탄식을 뱉어냈으며, 어서 빨리 범인이 잡히길 염원했다.

    “오, 경비대가 가는구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한곳을 바라봤다.

    수색대로 차출된 경비대원들의 숫자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황제가 직접 지시한 일인지라 표정 역시도 꽤 긴장한 기색이 보였다.

    그들 중 이번에 실종된 아이의 부모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아빠가…… 꼭 잡을게. 우리 딸 그렇게 만든 놈들…!’

    허리춤에 찬 검집을 한번 꽉 쥐어 보인 사내의 눈가가 떨려왔다.

    ***

    “아이고! 우리 딸. 누굴 닮아 이렇게 예뻐?”

    아이를 무릎에 안아 든 사내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음… 엄마!”

    “엥? 아빠는 안 닮고?”

    “응! 아빠는 수염도 많고 머리도 짧잖아! 나는 머리도 길고 수염도 없는걸?”

    기발한 딸의 대답에 잠시 멈칫했던 사내가 이내 크게 웃었다.

    “하하하! 맞네! 그럼 우리 딸내미는 누굴 닮아 이렇게 똑똑해?”

    “음… 엄마.”

    “엥? 이것도 아빠는 안 닮았어?”

    “응! 엄마가 그랬어. 아빠는 머릿속에도 근육이 가득 찼대. 멍청이랬어!”

    “뭐야?! 리사 엄마! 애한테 무슨 그런 소릴 했어!?”

    제 아내를 불러 타박하는 사내의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말단 경비대원으로 살아도, 직장에서 아무리 까이더라도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힘.

    토끼 같은 아내와 제 딸. 가족이라는 이름은 아무리 힘든 하루일지라도 두 주먹 꽉 쥐고 견뎌내는 힘이 되었다.

    경비대원 우로드는 그들이 있기에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헤쳐나갈 힘이 있었다.

    “우와, 리사. 이게 뭐야?”

    딸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토끼인형. 모양은 꽤 엉성했지만, 그것이 토끼라고 알아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엄마가 만들어 줬어! 아빠 여기 봐, 여기 내 이름이래. 그래서 누가 가져가도 우리 토토는 찾을 수 있을 거야. 내 이름 보고 찾아줄 거래!”

    “이야~ 우리 리사는 좋겠네! 이거 아빠 주라!”

    “싫어어!”

    제 토끼인형을 빼앗길까 냉큼 달아나는 아이의 뒤를 엉성한 괴물 흉내를 내며 쫓는 사내.

    그들의 집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제 딸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애가 사라졌는데 당신은 뭘 했냐고!”

    “흑…… 축제에 간다고 해서…….”

    “아니! 아홉 살짜리 애를 혼자 축제에 보내는 정신 나간 여자가 어디 있어!!!”

    미치겠다는 듯 제 머리를 헝클어트린 남자의 입에선 고성이 터져 나왔다.

    “동네 애들이랑 같이 간다고 해서 그랬어요… 일찍 오겠다고 해서… 그리고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흐윽… 내가, 내가 미쳤었나 봐요…….”

    “으아아아!!!”

    “그러는 당신은요! 경비대원이면서 애는 왜 못 찾아요!!”

    남자가 내지르는 고성에 그녀 역시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답답한 마음에 터져 나온 소리가 다시 화근이 되어 큰 싸움으로 번져갔다.

    불행의 그림자가 그들의 집에 드리웠다.

    ***

    황성에서 제법 떨어진 에스카르 산맥 근처의 한 마을.

    이름조차 없는 이 마을은 에스나 왕국의 난민들이 이주해 살기 시작한 마을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에스나 화전민촌이나, 에스나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이름을 붙여 불렀을 뿐 누구도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었다.

    “샅샅이 뒤져라!!!”

    “아니,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지금 그곳에 경비대원들이 쳐들어와 자신들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황제의 명령으로 먼저 이주민들이 사는 곳을 수색하게 된 경비대원들은 온 집을 샅샅이 뒤져 아이들을 해친 흔적이 있는지를 찾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겁에 질렸으며 곳곳에는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와 그를 달래는 어미가 보였다.

    노인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떨고 있었으며, 그나마 남자들이 나와 경비원들 앞에 나섰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자비한 폭력뿐이었다.

    “으아악!”

    경비대원의 검집에 두들겨 맞은 남자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뒹굴고 있었다.

    ‘…내 딸을 그렇게 만든 게 누구인지 찾아내기만 하면!!’

    딸을 잃은 경비대원 우로드 역시 이 현장에 와있었다.

    혹시라도 슬픔에 잠겨 그릇된 판단을 할까 봐 만류하는 이들도 역시 있었지만, 그는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었다. 제 딸을 그렇게 만든 자가 누구인지.

    “엄마… 무서워… 저 아저씨들은 누구야?”

    “괜찮아, 괜찮을 거야. 걱정 마.”

    사내의 눈이 한곳에 멈춰 섰다. 어미의 품에 안겨 눈물짓는 아이. 아이의 품에 들려 있는 눈에 익은 인형 하나.

    “……토토?”

    제 딸이 품에 꼭 안고 다니던, 자신의 아내가 만들어준 토끼인형이 분명했다.

    -파앗!

    “으앗! 주세요! 주세요!”

    한달음에 달려가 인형을 빼앗아 든 사내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혹시나 하는 싶은 마음에 뒤집어본 토끼인형의 뒤편에 적힌 이니셜.

    “리사…! 으아아악! 리사!!!”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남자는 울부짖었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경비대원들이 그를 다그쳤다.

    “왜, 왜 그러는가? 우로드! 정신 좀 차려 보게!!”

    토끼인형을 품에 안고 울부짖는 사내.

    “제… 제 딸의 인형입니다… 으어어어…….”

    “?!”

    “찾았다!! 이자들이다!! 사라진 아이의 인형이 발견됐다!!!”

    그들은 그렇게 비난과 원망의 화살을 돌릴 곳을 찾아냈다.

    그의 외침을 시발점으로 곳곳에서는 쇠붙이를 뽑아내는 소리가 들렸으며,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분노는 죄 없는 자들의 목숨과 되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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