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사라진 아이들(3)
황성으로 돌아간 아만은 조용히 실종된 한 아이의 집을 찾아갔다.
늦은 밤 대문 아래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아직도 아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아래 곱게 접은 쪽지 하나를 밀어 넣은 아만이 씁쓸하게 돌아섰다.
‘이것밖에 해줄 게 없다.’
쪽지엔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적혀 있었다.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
인간으로서의 유희는 언제나 즐거웠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인간들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가끔 일어났다.
한낱 짐승마저도 새끼는 건드리지 않는다. 아무리 배가 고픈 호랑이라도 혼자 있는 새끼 사슴을 잡아먹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있으면 가차 없이 누구든 희생했다.
그것이 힘없는 어린아이일지라도 말이다.
아이들이 변을 당한 그곳에서 추적마법을 써 보았다.
하지만 꽤 실력 있는 자가 그 흔적을 지워 그들을 완벽하게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흔적을 쫓아 봤지만, 그마저도 큰 소득을 얻어내지 못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
다른 때였다면 이런 상황이 무척 즐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적당히를 모르는 족속들 같으니라고. 그래, 도망치고 숨어봐. 그게 어디든 내가 찾아내 줄 테니.’
***
“으아아아악!!!”
여인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알론다!!! 알론다!!!”
제 자식의 차디찬 주검을 마주한 부모의 통곡은 마치 짐승의 것과 같았다.
“으아아아아아…… 으어어어어…… 아니야…… 아니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어미는 자식의 차가운 몸을 온몸으로 감싸 안고 구석구석을 비벼댔다.
“일어나 봐라…… 알론다!! 일어나 봐…… 엄마가 왔어…… 엄마야…….”
“제발…… 알론다…… 알론다!!! 눈을 떠봐라!! 눈을…… 흐어어어…….”
열여섯의 주검들 중 오직 한 아이의 부모만이 와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슬픔이 온 숲을 뒤덮었다.
***
“엄마! 나 그럼 다녀올게!”
“그래, 조심히 놀다가 일찍 들어와야 한다?”
“응! 퍼레이드만 보고 얼른 올 거야.”
“그래. 아까 준 용돈은 주머니에 잘 챙겼지?”
엄마의 물음에 아이는 제 주머니를 톡톡 치며 배시시 웃었다.
“오늘 누구랑 보러 가니?”
“음…… 오늘 시몬, 알폰소, 로나, 또…….”
작은 손가락을 꼼질꼼질 접어가며 숫자를 세는 아이의 모습에, 귀여워 죽겠다는 듯 웃어 보인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어. 잘 놀다 들어오렴.”
손을 들어 밝게 인사해 보인 아이가 문을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꿈에도 몰랐다. 그 모습이 아이의 마지막일 줄은.
***
-똑똑똑
“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저 알론다 엄마예요.”
곧이어 문이 열리고 그 앞엔 수심이 가득한 여인이 서 있었다.
“어머, 알론다 어머니. 여긴 어쩐 일로…….”
“늦은 시간 죄송해요. 혹시 알폰소 집에 들어왔나요?”
“아니요. 아직… 오늘 애들이랑 퍼레이드 본다고 나갔어요.”
“네… 아직 저희 알론다도 집에 오질 않아서… 걱정이 되어 와봤어요.”
“호호호.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같이 간 시몬은 벌써 열세 살이니 잘 챙겨서 곧 돌려보내겠지요.”
걱정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쳐 보인 여인의 모습에 조금은 안심이 된 그녀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렇겠지요? 제가 너무 딸 가진 부모 티를 내나요? 호호.”
“아닙니다. 저도 다 이해하는걸요. 저도 알론다 같은 딸이 있었으면 물론 그랬을 거예요. 아직 일곱 시밖에 되지 않았으니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드시는 게 어떠세요?”
“어머, 그럼 그럴까요? 광장에서는 이 집이 더 가까우니 여기 있다 보면 알론다가 지나가는 것도 알 수 있겠네요.”
부드러운 초대에 흔쾌히 응한 그녀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여덟 시가 되고, 아홉 시가 되어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부모들이 모두 한 집에 모일 때까지 그들은 나서지 않았다.
매일같이 동네를 활보하며 노니는 제 자식들이 오늘은 축제에 나가 즐거운 것이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한 탓이었다.
온 숲을 뛰어다니며 제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소리라고는 부엉이나 날벌레 소리뿐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모든 부모들은 제 탓을 했다. 자신의 모자람을 탓하고도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구구절절 읊어가며 실신할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그러다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고 그저 목구멍에서 꺽꺽거리는 소리만 나올 때가 되어서야 그들은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황성으로 뛰어갔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경비대원들에게 아무리 하소연을 하여도 수색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저 밖에 놀러 나간 아이들이 합심해 가출한 것이라 치부해 버렸다.
자식을 잃어버린 아버지 하나가 경비대원이었지만, 그 역시도 말단 대원인지라 힘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백 년과도 같은 하루가 또 흘렀다.
삼 일째가 되어서야 경비대원들이 수색에 나섰다.
그 역시도 수확은 없었다. 그렇게 부모들은 자식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도 잃어 갔다.
***
“이민족이 말입니까?”
“예, 그렇다니까요.”
“아니, 도대체 이민족들이 뭐하러 그런 짓을 한답니까?”
“먹고살기 힘들어지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하여튼…… 그런 난민들은 받아주는 게 아니었는데! 쯧!”
사라져 버린 열여섯 아이들의 소식은 이미 도시에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누가 퍼트렸는지는 모르지만, 그 화살이 이민족들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주변국인 에스나 왕국과 모라 인왕국의 오랜 내전으로 인해 궁핍해진 왕국민이, 아란트 왕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지도 어언 오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있었다.
처음엔 황성 주변을 비롯한 제국민의 반발이 거셌다.
출신도 모르는 타국 사람들을 제 나라에 들여 일자리를 주는 것도 불만이었으며, 그들을 거두어 식량과 정착금을 주는 것 또한 불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기 위해 도망쳐 온 난민들이었다.
숲에 숨어 나무껍질을 삶아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텼고, 일거리가 있다면 그 어떤 험한 일이라도 마다치 않고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제국민들 역시 이민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 문제들은 언제나 있었다. 이주해 온 이민족 중에서도 사고를 치는 사람은 분명히 있었고, 이민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같은 실수를 해도 용서받기는 어려웠다.
그런 작은 불만들이 모여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민족들이 축제에 한두 해 오는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 그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싸게 사서 잘 쓰고 있지 않습니까.”
“떼잉! 싼 것이 비지떡이더이다! 아니 글쎄 저번 축제에서 산 찻주전자 손잡이가 벌써 똑! 하고 떨어졌다니까요?”
“맞아요! 나도 저번에 모라이 왕국 국민이 가져온 빗을 샀는데 벌써 이가 몇 개 빠졌어요!”
“지금 그런 것이 문제입니까? 제국민이 파는 물건은 뭐 비싸고 품질이 그렇게나 좋습디까?! 그게 아니라 이주민들이 뭣 하러 그런 짓을 하냐는 말이오!”
이주민들에게 화살을 돌리자, 한낱 찻주전자와 머리빗마저도 트집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형씨! 형씨는 뭐 어디 사람이오? 누가 보면 에스나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알겠소!”
“뭐요?! 형씨?! 이것 보쇼! 내가 어디 사람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지 않느냐 그 말이오! 도적 떼도 아니고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애들을 데려다 죽이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말이오!”
제국민들의 분노는 바람을 타고 번져나가는 가을 녘 불씨처럼 타올랐다.
작은 불씨 하나가 온 숲을 태웠으며, 황성의 대처는 그곳에 바람까지 일으켰다.
“안 그래도 황제 폐하께서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사를 한다고 합디다! 높으신 분들 말씀이니 일리가 있는 것 아니겠소?”
“아니! 높으신 분들이라고 뭐 다 안답니까? 이것 참! 애먼 사람 잡게 생겼구먼그래!”
“형씨! 그 말 내 똑똑히 기억하리다. 애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는데 애먼 사람이 문제요?! 범인을 얼른 잡아내야 할 것 아니오!”
흐려진 논점은 소란을 불러왔으며, 그 소란은 전염되어 온 제국 내로 퍼져 나갔다.
‘하, 이주민들이라. 쇼를 하고 앉아 있군. 그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만이 혀를 찼다.
지난날 아이들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펼친 추적마법으로는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목 언저리에 모두 같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아만은 그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사했다.
흑마법을 추종하는 자들. 그중에서도 가장 더럽고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 집단.
라크메르. 그들의 문장이었다.
***
“그러니까 그 문장들이 라크메르의 문장이라 그겁니까?”
“그렇죠.”
“그들이 어디 있는 줄 아십니까?”
“그렇죠.”
태연한 아만의 대답에 루카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또 인상 쓰시네. 자, 가시죠.”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인 아만이 한 손을 살짝 내밀었다.
“아! 그리고…… 가서 날뛰면 안 됩니다. 우린 몰래 가서 엿보기만 하고 올 거거든요.”
“…….”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인 루카스가 그의 손을 붙잡자 순식간에 시공간이 뒤틀렸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어느 평범한 가정집 앞이었다.
뒤편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고, 대문 앞에는 누구의 집인지 알려주는 이름이 적힌 팻말이 퍽 귀엽게 걸려 있었다.
아만이 시전한 투명화 마법 덕분에 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루카스는 굉장히 당황하고 있었다.
“좌표 잘 찍은 거 맞습니까?”
“여기가 맞습니다.”
아만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자 집 옆에 딸린 작은 창고가 보였다.
-달칵.
창고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으나 아만은 주변을 한번 살피고는 손쉽게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진한 피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하지만 항상 맡아오던 피 냄새와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달랐다.
“욱…….”
그 냄새를 맡은 루카스가 작게 헛구역질을 하자, 아만은 품속에서 약병을 하나 꺼내 건넸다.
“마셔요. 도움이 될 테니.”
약병 뚜껑을 열고 냄새를 살짝 맡자 은은한 허브향이 풍겼다. 속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는 약인 듯했다.
약을 단숨에 들이켜자 거짓말처럼 속이 편안해졌다. 더불어 정신까지 살짝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자, 들어가죠.”
문을 닫고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계단을 따라 얼마나 내려갔을까. 피비린내는 더욱 짙어져 이제 코가 익숙해질 지경이었다.
-덜컹…… 차르륵…… 차르륵…….
쇠문이 흔들리는 소리와 바닥에 끌리는 차가운 사슬 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씨X.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숨을 죽인 채 안으로 향하는 루카스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지하 감옥이었다. 마치 개장에 갇힌 개들처럼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그것도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굶주렸는지 아이들의 눈엔 초점이 없었고, 저 얇은 팔과 다리로 혹여 도망이라도 칠세라 그들의 다리엔 하나같이 쇠사슬이 묶여 있었다.
-차르륵…… 차르륵…….
아이들은 오랫동안 좁은 공간에 갇혀 있던 동물처럼 한 곳을 빙빙 돌거나 쇠창살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다.
‘하나, 둘, 셋…… 어!?’
속으로 차분히 아이들의 숫자를 세던 아만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개자식들……”.
갑작스럽게 허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감옥에 있던 간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누,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소리치는 간수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하나둘 허공을 쳐다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도, 도와주세요…… 제발…… 밥 좀 주세요…….”
“물…… 물…….”
“으어어…… 집에…… 집에…… 보내줘…… 보내줘…….”
얼마나 오랜 시간 소리를 쳤는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는 아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런 씨X 자식아.”
목소리의 출처를 찾던 간수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하! 이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뭐냐? 친구 구하러 왔냐? 이런 X만한 자식아!”
갑자기 나타난 아이의 인영에 간수는 코웃음을 쳤다.
“대가리에 피? 그래. 내가 오늘 네 피를 모조리 말려주마. 이런 어린 노무 자식아!!!”
반만년을 살아온 그에겐 눈앞의 간수가 그러했다. 새싹만큼도 안되는 어린놈.
“슬립.”
루카스의 주문과 동시에 감옥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풀썩 쓰러졌다.
“하! 이 자식이 어디서 이런 같잖은 재주를…… 으아아아악!!!”
갑작스러운 고통에 말을 끝마치지 못한 간수가 제 팔을 내려다봤다.
아니, 팔이 있었던 자리를 내려다봤다.
“너무 많이 날렸군. 손톱부터 하나하나 뽑아줬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경솔했어.”
어린아이가 내는 섬뜩한 목소리에 간수는 피가 뿜어져 나오는 제 팔을 잡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자, 이번엔 어디를 날려줄까. 응?”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루카스가 폭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