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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8화 (18/225)

18화. 사라진 아이들(2)

“아만 교수님.”

“아, 루카스 군!”

아카데미의 후원을 심각한 표정으로 서성이던 아만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차리곤 환하게 웃었다.

“나를 먼저 찾아오다니! 놀라운걸?”

자신의 가슴팍에 양손을 가져다대며 퍽 감동받은 표정을 지어 보인 아만이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췄다.

‘저런 망나니 같은 도마뱀 자식.’

아만의 과장된 행동에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왔지만 지금 당장 도움을 청할 곳이라고는 여기뿐이었다.

“무슨 일이니?”

“애들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 그거? 나도 들었지. 그러니까 우리 루카스도 밖에 나가고 그러면 안 돼. 알겠지?”

아만은 알고 있었다. 루카스가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루카스 역시 알고 있었다. 지금 저 태도는 그냥 자신을 놀리기 위함임을.

“진심입니까?”

“그럼~ 교수님은 우리 루카스 군이 밖에 나가 혹시라도 나쁜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밤새 잠도 못 이뤘단다.”

싱긋 웃어 보인 아만이 루카스의 머리를 살짝 흩트렸다.

“침 뱉어도 됩니까?”

그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우리 루카스는 가끔 보면…… 굉장히…….”

루카스의 말을 들은 아만은 말을 끝마치지 않고 미간을 찡그린 채 허공을 잠시 응시하더니 이내 입을 뗐다.

“매력적이야. 매력적인 어린이.”

“미친…….”

루카스의 모욕적인 언사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저 태연함.

드래곤의 몸으로 자존심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저 행동.

자신의 정체를 대충 눈치챘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지금 저 태도를 보니 확신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 정신 빠진 도마뱀은 안 되겠어.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게…….’

그 행동을 본 루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몸을 돌리던 때였다.

“사라진 애들.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지 않나 봐?”

아만의 말에 고개를 홱 돌리자, 그는 자신의 은푸른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실실 웃고 있었다.

‘젠장 할 도마뱀 자식!!!’

***

“루카스!”

“……어머니?”

수업을 마친 루카스는 기숙사로 향하던 도중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제 어미인 블레인이었다.

“여긴 어떻게…….”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자신에게 달려온 그녀가 온 힘을 다해 그를 꼭 끌어안았다.

“아들…… 내 아들…….”

자신을 품에서 놓은 그녀가 그의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은 거니? 황성 주변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왔단다.”

아카데미에 온 이후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소식을 전해왔었다.

방학 때 집에 찾아가지 않았을 때도 그녀는 크나큰 아쉬움을 편지에 적어 보냈을 뿐, 단 한 번도 아카데미에 찾아온 적은 없었다.

“집에 가자꾸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 도저히 안 되겠구나. 아카데미는 다음에라도 또 오면 되지만……. 널 잃기라도 하는 날엔…… 절대 안 된다.”

마치 끔찍한 상상이라도 한 듯 그녀는 이를 꽉 문 채 고개를 저었다.

“가자. 엄마랑 집에 가자.”

자신의 손을 꼭 붙든 블레인의 눈빛은 단호했다.

“안 갑니다.”

“가야 해. 네가 가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끌고 갈 거야.”

“안 가요.”

블레인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지더니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제발…… 가자꾸나 아들…….”

블레인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황성 주변에 자신의 가문을 반기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적진의 한복판이나 다름없는 곳에 한달음에 달려온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어떻게 해서든 데리고 가려 할 것이다.

하지만 루카스의 입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생물로서의 삶을 제대로 한번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아만의 깝죽거림이 도를 넘을 때마다 당장이라도 콱 죽어버린 다음, 신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은 이유가 지금 제 눈앞에 와 있었다.

금전은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차츰 축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제 아비인 시비에가 가끔 자신을 무릎 위에 앉혀두고 했던 ‘가문의 명예’에 관한 이야기였다.

목숨을 구하려 쫓기듯 변방으로 나오게 된 가족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는 뭐라도 되어 봐야 했다.

“저는…….”

“루키!!!”

그런 제 어미를 달래려 입을 열던 루카스의 등 뒤로 폴라의 외침이 들려왔다.

“루키! 너 점심도 안 먹고, 저녁도 안 먹었잖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폴라의 손에는 샌드위치를 담은 봉투가 들려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그래요. 우리 루카스의 친구인가요?”

블레인을 발견한 폴라가 밝게 인사하자, 그녀가 부드럽게 화답했다.

“헤헤. 네 맞아요. 루카스랑 친해요!”

“…….”

친하다니. 여태껏 무시로 일관했을 뿐인데, 이 해맑은 인간은 자신을 친한 친구라 칭하고 있었다.

“그래요? 루카스의 친구라니…… 정말 반가워요.”

포근하게 웃어 보인 블레인이 잡고 있던 루카스의 손을 살짝 놓더니 그의 등을 다정히 쓸었다.

“아주머니는 루카스네 엄마예요?”

“호호. 맞아요. 루카스, 친구 소개 안 해줄 거니?”

“……폴라 펠레브. 열세 살. 같은 기초반.”

갑작스러운 ‘소개’라는 단어에, 그녀에 대한 정보만 우선 툭 뱉어낸 그가 눈을 도르륵 굴렸다.

‘어색해 죽겠군.’

부모에게 친구를 소개한다니. 어색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 그래. 소개해 줘서 고마워 루키!”

“미안해요. 우리 루카스가 숫기가 없어서 그래요. 하지만 좋은 친구가 되어줄 거예요. 그치, 루카스?”

그녀의 물음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루카스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왜 오신 거예요? 루키 보고 싶어서?”

“음……. 맞아요.”

“루키는 좋겠다!”

폴라의 물음에 밝게 웃어 보인 블레인이, 루카스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넘겼다.

“그럼… 엄마는 이만 가볼게. 당분간은 황성 근처에서 머무를 테니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엄마에게 와 주겠니?”

“그럴게요.”

무릎을 굽혀 그와 눈을 맞춘 블레인이 씁쓸하게 웃었다.

“좋은 친구가 생겨 다행이구나.”

***

“스읍-하! 밤공기가 참 좋군요.”

“지금 밤공기나 마실 때가 아닐 텐데요.”

“어머나.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봐…….”

“그만하고 가죠.”

선택지가 없었다. 하나뿐인 아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적진 한복판으로 들어온 어미도 문제였지만, 이 사태를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혼자 움직이자니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았다.

이미 쏘아 올려진 마법의 궤도를 바꿀만한 사람이 아만이 아니라면 그 배후에 누가 있을지 몰랐다.

아만의 동행으로 다른 위험 요소는 대부분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루카스의 정신건강에는 몹시 해로웠다.

“그런데 왜 존댓말 했다가 반말했다가 그러는 겁니까?”

“아카데미 안에서는 루카스 군이 제 학생이니 그러는 거고…….”

“그럼 밖에서는요?”

“누구인지 모르겠으니까 그러는 거고.”

아만의 눈이 활처럼 휘었다. 너무나도 즐겁다는 듯.

“내가 누구인지 궁금합니까?”

“너무 궁금하지요. 하지만!”

“하지만?”

“제가 알아낼 겁니다. 루카스 군.”

루카스는 순간 그의 호기심을 한 방에 깨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자신의 정체를 여기서 밝힌다면 즐거움을 빼앗긴 아만의 상심한 표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 정체를 밝히면…… 피곤해지겠지. 많이.’

깊은 한숨을 내쉰 루카스가 아만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아시다시피 저는 루카스 로드리고. 로드리고 백작가의 장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렇겠지요.”

루카스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듯한 말투였다.

“쉿.”

갑자기 걸음을 멈춘 아만이 제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불어오는 바람에는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한발 늦었네요.”

조심스레 다가간 그곳은 처참했다. 아니, 처참하다는 말로는 모자랐다.

“이게…… 무슨…….”

너무나도 오랜만에 마주친 끔찍한 도륙의 현장에 루카스는 헛구역질이 나왔다.

사라진 아이들이었다.

총 열여섯. 사라졌다는 아이들 모두가 깊은 숲속 차디찬 바닥에 눈도 채 감지 못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그들을 살펴보던 아만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모두 다 열다섯 살도 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생전에 받은 고통을 보여주듯, 아이들의 손에는 모두 깊이 팬 손톱자국과 함께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얼마나 울부짖었는지 입가는 부르터 있었고, 눈물을 어찌나 닦아 냈는지 눈가엔 작은 생채기가 가득했다.

“빌어먹을 인간 놈들!!”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이 정신없이 쏟아져 나왔다.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 보니 주변 땅이 자신을 중심으로 움푹 패 있었다.

주체할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라, 저도 모르는 사이 마나가 폭주한 듯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아만이 방어마법을 써 자신과 주변을 보호한 듯했다.

“정신이 좀 드나요? 화는 다 냈고?”

루카스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자, 방어마법을 해제한 아만이 다가왔다.

“……다 잡아 족쳐야 돼.”

“예예, 잡아 족치는 건 그렇다 치고……. 욕을 어찌나 잘하던지…….”

양손으로 제 볼을 감싸 쥔 아만이 능청을 떨어 보였다.

아마도 제 화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 하는 것이겠지.

“후…….”

깊은 한숨을 내쉰 루카스가 찬 바닥에 누워있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마주한 현실은 너무나도 역겨웠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동족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는 유일한 종족. 인간.

지금 이 순간엔 그런 인간의 몸에 갇혀버린 자신마저 싫었다.

“누가 한 짓인지 압니까?”

루카스의 물음에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인 아만의 얼굴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

“루키네 엄마 진짜 예쁘시더라!”

“우리 어머니도 엄청 예쁘셔.”

“지금 내가 너네 어머니 예쁘시냐고 물은 게 아니잖아! 그냥 가만히 좀 있으면 어디 덧나?!”

“……알겠어.”

마법약 수업에 가기 위해 복도를 걷던 세 사람은 여느 때와 같았다.

활발한 폴라와 괜히 한마디 했다가 탈탈 털리는 스키르, 침묵으로 일관하는 루카스.

“그런데 부인께서는 무슨 이유로 오신 거지?”

“……그냥.”

“그냥이라고 하기엔…… 아야!”

무어라 말을 하려던 스키르는, 폴라의 옆구리 꼬집기 공격에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제 옆구리만 손으로 연신 비벼댔다.

“가만히 좀 있으라고! 어휴, 너랑 루키랑 딱 반반만 섞어놨으면 좋겠어!”

“아프잖아!”

“아프지? 네가 하는 말이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항상 그 입! 입을 좀 조심하라구!”

폴라의 일침에 스키르는 입술만 삐죽일 뿐,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괜찮아. 사실 어머니께선 내가 걱정되어 오신 거야. 황성 주변에서 일어난 실종사건 때문에.”

“…….”

“……나 지금 몸에 소름 돋았어.”

루카스의 말을 들은 폴라는 제 팔을 스키르에게 내밀며 확인시켰다.

“나도 그렇다. 저렇게 말을 길게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군.”

그들의 말을 들은 루카스가 부드럽게 웃었다.

“으아악! 웃었어!”

“왜, 왜 그러는가? 혹시 어제 폴라가 준 샌드위치가 상했다든가…….”

루카스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정신을 못 차리는 그들의 반응이 꽤 귀여웠다.

사실 이런 변화는 루카스 역시 익숙하진 않았다. 하지만 어젯밤 폴라의 말 한마디가 그를 바꿔놓았다.

친구. 그 낯설고 익숙한 단어가 루카스의 마음을 녹여냈다.

사실 인간으로 살게 되면서 겪게 된 나약함이 그를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었다.

긴 시간 드래곤으로 살 때는 느껴본 적 없었던 그 나약함이 그를 자꾸 모나게 했다.

하지만 어제부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제대로 한번 살아보겠다 했던 그 다짐에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다.

살아 내는 것이 아닌 살아보는 것.

언제든 던져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짧은 인생이 아닌 모든 인간들이 그러하듯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보는 것.

라노스 알브란테의 환생.

루카스 로드리고. 그가 드디어 진짜 인간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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