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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6화 (16/225)

16화. 혼돈의 축제.

“으아아… 머리야…….”

아침이 밝고, 텐트 밖으로 나온 스키르와 폴라는 저마다 작은 머리통을 붙잡고 두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쿨로스의 잎을 생으로 우려낸 차를 말통으로 들이붓다시피 했으니!

홍차를 그만큼 마셨어도 두통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속이 조금 안 좋은 것 같은데…….”

스키르는 제 배를 문지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배가 아프겠지… 멍청한 것들 같으니라고…!’

루카스는 그런 그들을 보자 덩달아 속이 불편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라쿨로스의 잎은 어디서 났지?”

“그때… 그 새먼트라는 사람이 와서 주고 갔어.”

“그래… 잘 지내보자며 나중에 어른이 되거든 더 잘 대접해 주겠다고 하더군.”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었으면 얼마만큼 넣으라고 말도 해주고 갔어야지!

어젯밤 일을 생각하자 루카스는 짜증이 치밀었다.

라쿨로스의 잎을 거나하게 마신 둘은 새벽 내내 눈물 없이 듣기 힘든 인생사를 털어놓았고, 그 덕에 루카스 역시 옆에 붙잡혀 그들의 이야기를 억지로 들어 줘야 했다.

“미친… 그렇다고 루클로스의 잎을 다 때려 넣고 무식하게 차를 우려 마셨어?”

“헤헤… 그러게…….”

멋쩍은지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폴라. 루카스는 그들의 앞에 수통 하나씩을 던져주었다.

“물이라도 마셔라.”

“고, 고맙군.”

갈증이 났는지 수통을 열어 허겁지겁 물을 마시는 스키르.

“크으… 살겠다!”

스키르와 폴라는 손에 수통을 들고 헤헤거렸다.

“참나…….”

그 모습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싫지는 않았는지 루카스의 입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

화합과 친목을 위한 기초반의 캠프가 끝난 지도 어언 몇 주가 지나있었다.

그 캠프가 마냥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기초반의 분위기는 초반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학생들끼리 수업 준비물을 서로 챙기기도 하고, 투닥거리는 것은 여전하지만, 폴라와 스키르 역시 꽤 친해져 있었다.

둘의 친목이 불편한 것은 루카스 혼자였다.

“루키! 밥 먹으러 가자!”

“폴라. 쟤 그렇게 부르는 거 싫어해.”

어느새 루카스에게 루키라는 별명까지 지어준 폴라는, 아무리 밀어내도 끈질기게 루카스에게 따라붙었다.

동생이니 자신이 이해하고 챙겨야 한다나 뭐라나. 어이가 없어서 방귀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지가 싫으면 어쩔 거야! 내가 누난데!”

“후…….”

“또 한숨 쉰다! 그거 안 좋은 버릇이라고 했잖아!”

콩만 한 게 누나 노릇을 한답시고 루카스에게 잔소리까지 해대고 있었다.

그 잔소리는 퍽 자연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폴라는 어미가 낳자마자 보육원 앞에 버리고 갔단다. 그 때문에 그곳에서 자란 그녀는 어릴 때부터 저보다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에 루카스 역시도 그녀가 친근하게 구는 것을 꽤 참아주고 있었다.

“그래. 가자. 밥 먹어야지 루, 루키?”

그런데 더 짜증 나는 것은 그녀를 따라 스키르 역시 그에게 퍽 친근하게 군다는 것이었다.

‘옘병할 꼬마들. 그때 오크 밥으로 던져주고 올 걸 잘못했군.’

캠프 이후 아카데미 사람들은 강정 삼총사라고 그들에게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어린 나이에 아카데미에 들어온 천재들!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기초반에 머무르는 속 빈 강정 같다는 뜻에서 붙은 별명이었다.

‘아니. 이것은 내가 다섯 살 때 혀를 깨물지 않은 잘못임이 분명하다.’

***

“아 제발 가자아~ 같이 가자~”

“안 간다고 했다.”

“루키 그러지 말고 가자아~”

“안 가!!!”

끈질기게 제 팔을 붙잡고 늘어지는 폴라를 떼어내던 루카스는 인상을 팍 찌푸려 보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오랜만에 브랑디와 체스를 두던 루카스는 이 여유로움이 한방에 깨어지자 짜증이 끓어올랐다.

“그러지 말고 함께 다녀오세요.”

“안 갑니다.”

체스 말을 한 칸 앞으로 옮긴 루카스의 단호한 대답에 브랑디가 ‘허허’ 하고 작게 웃어 보였다.

“그래도 축제는 꽤 재미있을 겁니다.”

“맞아. 진짜 재밌을 거야. 나랑 키르만 가려니까 허전해서 그래. 응? 너도 같이 가자아~”

이 꼬마는 애칭을 붙이는 것이 취미인지 스키르의 이름까지도 ‘키르’라고 바꿔 부르고 있었다.

“그래. 같이 가지? 물론 우리 가문에서 마차도 보내줄 거고 말이야.”

어깨를 한번 으쓱인 스키르를 한번 째려본 폴라가 버럭 소리쳤다.

“마차 없어도 된댔잖아! 바로 코 앞인데 무슨 마차씩이나 타?!”

“아, 알았어. 그래도 보내준다고 하시니까… 나는 그리고 호위 없이는 못 나가는 거 알잖아…….”

이 관계에서 갑을은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한 스키르는 어느 순간부터 폴라의 말에 꼼짝을 못 하고 있었다.

“제가 진 것 같군요. 그러지 말고 다녀오세요. 저는 오늘 할 일이 많아서 이만…….”

“뭐, 뭐가 졌습니까! 한 수 물러 드릴 테니 얼른 다시 와 앉으세요!!!”

브랑디까지 가고 나면 방패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루카스의 다급한 외침에도 브랑디는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일찌감치 벗어나고 있었다.

“젠장…….”

“자, 가는 거다? 얼른 로브 입어.”

옆자리에 놓아둔 루카스의 로브까지 손수 챙겨 어깨 위에 얹어준 폴라가 루카스를 재촉했다.

‘옘병할 꼬맹이들. 내가 얼른 뒈지든지 해야지!!’

후회는 언제 해도 늦었다.

***

축제는 축제였다.

변두리 마을의 작은 축제도 들뜬 분위기가 마을 밖까지 금세 퍼지는데, 제국의 큰 축제인 추수감사절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 해 동안 공들여 키운 작물들의 수확을 축하하는 축제. 일 년 내내 흘린 제국 민의 피와 땀이 이 축제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환호성과 들뜬 축제 분위기는 강정 삼총사에게도 여실히 전해지고 있었다.

“저기 좀 봐! 마도구 상점인가 봐!”

“흥! 저런 길가에 있는 마도구 상점이라고 해봤자…….”

“가보자!”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폴라의 손에 끌려간 스키르는 입술을 비죽였다.

“우와! 이것 좀 봐!”

“아유~ 우리 꼬마 아가씨께서 안목이 있으시네! 이건 수면에 아주 좋은 램프에요. 자 여기를 누르면…… 짠! 온 방 안에 별빛이 반짝인답니다.”

작은 구체로 된 램프를 양손으로 살짝 감싸 보인 상점 주인이, 제 손바닥에 생겨난 작은 불빛들을 요리조리 돌려 폴라에게 보이자 폴라의 눈이 반짝였다.

“우와…… 이건 얼마예요?”

“3실링입니다! 우리 꼬마 아가씨가 예뻐서 싸게 주는 거예요.”

“……아, 괜찮아요! 야, 우리 다른데도 가보자!”

가격을 들은 폴라가 얼른 스키르와 루카스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저것이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었나? 혹시…….”

“야! 아니거든? 마음에 안 들거든? 필요 없거든 저런 거?!”

폴라의 과장된 반응에 한 손을 들어 항복의 표시를 해 보인 스키르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란 참으로 복잡했다. 친구라고 하는 이가 가진 것이 저보다 많으면 저깟 거 하나쯤은 냉큼 사달라 해서 받으면 좋을 텐데…… 자존심이 뭔지 익숙한 듯 제 감정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는 어린아이의 서툰 표현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신경 쓰지 말자.’

폴라의 손에 여기저기 이끌려 다니며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주워 먹고 축제를 구경하는 그들의 눈에 생기가 가득했다.

루카스 역시도 이런 것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는지 그들의 뒤를 군말 없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으아! 너무 힘들다 그치?”

광장 옆에 있는 카페 테라스에 자리 잡은 그들이 음료를 하나씩 시켜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어? 강정 삼총사!”

기초반의 학생인 새먼트와 에이라였다. 저 둘은 저번 마법약 수업 이후로 조금씩 붙어 다니는가 싶더니 이젠 아주 대놓고 ‘우리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우라를 퐁퐁 뿜어내고 있었다.

전장을 누비던 거친 용병이었던 새먼트와는 달리 에이라는 굉장히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안 어울리는 둘이 한 쌍의 커플이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부르지 말랬잖아요!”

“하하하, 귀여워서 그랬어. 귀여워서.”

캠프 이후 새먼트는 꽤 부드러워졌다.

라쿨로스의 잎을 전해주며 했던 말이 장난 반, 진심 반이었는지 더 이상 그들에게 못된 말을 하지도 시비를 걸지도 않았다.

“너희도 축제 구경 나왔나 보구나?”

“그래. 축제 구경 나왔다. 자네는 연애하러 나왔나 보구먼?”

“크큭. 하여튼 이 꼬맹이 말투는 아직도 적응이 안 돼. 너 무슨 말투가 팔십 먹은 노인네 말투야.”

“노, 노인이라니! 나는 지체 높은 공작가의 영식으로서 갖춰야 할…….”

“예, 예~ 그러시겠죠. 그럼 잘들 놀다가 들어가라!”

이런 취급이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는지 스키르는 작은 한숨만 내쉴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그를 순순히 보내주었다.

스키르의 주변을 지키던 호위들 역시 아카데미 내에서의 룰이 어떤지 잘 알기에 그의 말을 가로막지도 그의 행동을 추궁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지체 높은 공작가라도 절대 건드릴 수 없는 불문율. 아카데미 내에서의 룰이었다.

“이제 곧 있으면 퍼레이드야. 얼른 보러 가자!”

다시 시작된 축제 구경에 스키르와 루카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축제의 하이라이트.

퍼레이드가 곧 시작되려는지 곳곳에서 인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축제를 통솔하는 인원들이 투입되고 곧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거리엔 행사의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요원들이 길게 주욱 늘어섰다.

“자자! 뒤로 두 걸음씩 물러나 주세요!”

확성 마법을 썼는지 거리에 쩌렁쩌렁 울리는 한 관계자의 목소리에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두 걸음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퍼레이드에 앞서 안내 말씀드립니다! 마법 공포증이 있으신 분들은 행사 관람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드립니다! 화염 마법이나 전격 마법에 공포증이 있으신 분들은 관람에 주의 부탁드립니다!”

아란트가 마법 강대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세워진 마법 아카데미. 그 아카데미가 세워진 이후에 모든 축제에서 아카데미 학생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선두를 장식하는 것은 항상 지난 학기 최상급자 코스를 수석으로 수료한 학생이 맡았다.

수석으로서의 자리를 만인에게 알리는 퍼레이드에 언제나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이번 퍼레이드는 얼마나 멋질까요?”

“저도 엄청 기대 중이에요. 재작년 퍼레이드 기억나세요?”

“아유, 그럼요!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니까요!”

“맞아요, 그때 그 수석은 또 어찌나 미소년이던지…….”

“맞아요. 은푸른 머리에… 푸른 눈동자까지! 정말 꿈에라도 한 번 나와줬으면…….”

퍼레이드 관람을 위해 앞줄에 자리 잡은 루카스는 들리는 이야기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흔치 않은 은푸른 머리에 푸른 눈동자 조합. 그것을 생각하자 기분 나쁜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혹시 아만 교수도 아카데미 졸업자인가?”

그런 그를 본 폴라가 물어오자 루카스는 궁금했던 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아, 아만 교수님? 그렇다고 들었다.”

루카스의 물음에 대신 대답한 스키르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제작년 수석 졸업생이라고 알고 있다. 입학한 지 일 년 만에 최상급자 코스를 수료했다고 알고 있어.”

“오~ 그런건 어디서 다 주워들었어?”

“흥, 우리 가문에서 나를 가르칠 교수 하나 알아보지 않았을까 봐?”

“그래그래. 참 대단하셔!”

사실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 퍼런 도마뱀이 아카데미를 다녔던, 아카데미 할아버지를 다녔던 자신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든지 말든지.’

시큰둥하게 앞을 보고 있자 어느새 퍼레이드를 알리는 큰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다.

곧이어 이어지는 마차의 행렬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말 아홉 마리가 끄는 거대한 마차 위, 선두를 지키고 서 있는 여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의 뒤엔 다른 네 명의 마법사들이 손을 높게 치켜들자, 그들의 손에서 색색의 불빛이 쏘아 올려졌다.

선두에 선 그녀가 손을 높게 치켜들고 무어라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눈에 기대가 가득 차올랐다.

손에서 한 줄기 빛이 쏘아져 나가는가 싶더니.

-콰콰쾅!!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으아아악!!”

“꺄아악!! 사람! 사람이 깔렸어요!!!”

그녀가 주문을 끝마치자 축제는 순식간에 혼돈으로 바뀌었다.

‘젠장! 어쩐지 오기 싫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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