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지옥의 캠프(3)
“후… 오크는 처리했고… 그다음은…….”
괜히 피를 볼 필요가 있겠나 싶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얼려 죽이기였다.
꽁꽁 얼어붙은 오크를 마법으로 저 멀리 던져버린 루카스의 눈이, 아직 깊은 잠에 빠져 널브러져 있는 폴라와 스키르에게 향했다.
“잘하네?”
“?!”
“하! 설마 인간의 슬립마법에 픽시가 픽! 쓰러져 잘 줄 알았나?”
“하긴. 그 말도 맞군. 내가 과소평가했어. 그럼 이제 죽여달라는 말인가?”
루카스의 눈이 매섭게 변하자, 알린이 재빠르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 아니! 나는 아무것도 모, 못 봤어!”
어찌나 빠르게 고개를 저었는지 살짝 어지러워진 알린이 루카스를 잠시 멍하게 쳐다봤다.
“눈치가 좋아 다행이군. 도토리만 한 주둥이를 잘못 놀렸다가는 그 주둥이에 도토리를 쑤셔 박아 머리통을…….”
“그, 그만! 알아들었으니 그만해! 이 잔인한 꼬맹이!!”
“그러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루카스가 픽시에게 까딱 손짓했다.
“이리 와봐.”
“……왜?”
무서워서 되물은 것인데 루카스의 눈빛을 보자 더 무서워진 알린이 냉큼 스키르의 손을 털어내고 쫄쫄쫄 걸어왔다.
“……이만큼?”
“더 가까이.”
두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재차 묻던 알린이 루카스의 발치까지 걸어가자, 그가 몸을 숙였다.
“으아아아!!!”
“닥쳐.”
지레 겁을 집어먹은 알린이 머리를 감싸 안고 바닥에 냉큼 주저앉았다.
“……응?”
날갯죽지에 느껴지던 통증이 사라졌다.
“치유마법도 할 줄 알아?”
“그게 무슨 소리지? 네 날개는 원래 멀쩡하지 않았나?”
“아! 그, 그렇지! 멀쩡했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픽시였다.
“그럼 이제 꺼져. 냉큼 네 마을로 돌아가.”
“으응!”
날개를 한번 쭉 펴 보인 알린이 천천히 날갯짓을 시작했다. 어느새 몸을 돌려 가는가 싶더니 다시 돌아온 그녀가 루카스에게 조심히 다가왔다.
“그… 쟤가 내 날개를 부러트리긴 했는데 말야… 날 지켜주겠다고 열심히 뛴 게 기특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래서?”
쭈뼛거리며 말을 잇는 픽시의 모습에 루카스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서, 선물을 조금 하고 싶은데…….”
“해.”
“혹시 네 주머니에 있는 마나석 소중한 거니?”
“지랄. 선물은 네가 가져다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 그렇긴 한데…… 지금 상황이 그렇지가 않잖아?”
루카스는 한숨을 한번 짧게 내신 뒤 멋쩍게 웃고 있는 알린에게 마나석을 하나 꺼내 건넸다.
마나석 위에 손을 얹고 무어라 중얼거리던 그녀가 이내 손을 떼자, 마나석에 희미한 빛이 반짝였다.
“휴! 다 됐다.”
“쓸데없는 호의를 베푸는군. 다른 픽시들과는 다르게 말이야.”
“사실 나는 인간을 좋아하거든. 어린 인간들은 특히.”
“네가 사는 마을 촌장에게도 그 소릴 한번 해보지 그래?”
“흠흠…… 여하튼! 잘 좀 전해줘.”
그녀의 당부에 짧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루카스가 스키르의 주머니를 뒤져 돌멩이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것을 등 뒤로 휙 던져버린 루카스는 손에 든 마나석을 조심히 그의 주머니에 다시 넣어주었다.
‘돌멩이도 구분 못 하는 멍청이 같으니라고.’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일어나!!!”
루카스의 외침에 폴라가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헉헉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얘나 깨워. 돌아가야 하니까.”
“그, 그 괴물은?”
“집에 갔어.”
***
“그러니까 너희가 오크를 만났고, 기절하고 일어나니 오크는 집에 갔다?”
“네! 맞아요!”
“하! 웃기고 있네!”
캠핑장에 돌아온 일행은 주변 학생들에게 추궁을 받고 있었다. 그 추궁이 시작되자 폴라는 신이 난 듯 조금 전 일을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었다.
“흥! 지금 쟤 말을 못 믿겠다는 건가?”
폴라의 말에 새먼트가 비아냥거리자, 스키르가 팔짱을 척 끼더니 앞으로 나섰다.
“흥! 그럼 지금 쟤 말을 믿으라는 건가?”
스키르의 표정과 폼을 똑같이 따라 한 새먼트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지, 지금 날 따라 하는 건가?!”
“그, 그럼 누굴 따라 하는 걸까?!”
“이이익!!! 네 이놈!!!!”
“이이익!!! 무서워라!!!”
루카스는 그들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왔다.
당연히 저자는 폴라와 스키르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새먼트는 오랫동안 용병 생활을 하다 의뢰받은 물건인 마나석 위에 손을 올려본 뒤 자신의 재능을 알아차렸고, 그 길로 용병 생활을 접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재능이라는 것이 굉장히 미미해서 벌써 세 학기째 기초반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가 필드에서 보아왔던 오크는 수십, 아니 수백 마리에 달할 것이 분명했다. 오크는 흔한 몬스터였고 출몰하는 곳 또한 많았으니 어딜 가나 오크는 즐비하게 마주쳤을 것이다.
그런 오크가 이런 맛있는 사냥감들을 앞에 두고, 그것도 기절까지 했는데 순순히 돌아 집에 갔다?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것이 오크가 아니었거나, 거짓말이거나.
“자, 자 그만들 하세요. 그럼 모두 모였으니 찾아온 것을 제게 가져오세요!”
타이밍 좋게 나타난 아만이 그들의 싸움을 일단락시켰다.
저마다 주머니에서 찾아온 돌들을 꺼내 아만에게 검사를 받고 있었다.
폴라의 손에 쥐어진 것은 마나석이었다. 폴라의 주머니에 있던 것 또한 사실 평범한 돌멩이였다. 하지만 루카스가 그들의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그가 주운 마나석으로 바꾸어 놓았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스키르의 차례가 오고, 그는 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 잘 찾았네! 마나석이구나 스키르.”
스키르의 표정이 환해졌다. 실실 웃으며 마나석을 한 번, 아만의 얼굴을 한 번 쳐다봤다.
웃음으로 화답한 아만의 눈초리가 루카스에게로 향했다.
마치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그의 눈빛을 본 루카스가 슬쩍 눈을 피해 허공을 바라봤다.
“자, 그럼 루카스? 마나석을 가지고 오겠니?”
“없어요. 못 찾았거든요.”
그의 말을 들은 아만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아쉽구나. 다음엔 꼭 찾을 수 있을 거야.”
씨익 웃어 보인 아만이 루카스의 일행을 주욱 훑었다.
***
각자의 텐트 앞에 모여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한 일행들은 캠프의 대미를 장식할 캠프파이어를 위해 모였다.
가운데에 마른 장작을 모아두고 마법을 이용해 가볍게 불을 일으킨 아만이 모두를 불러 모았다.
“자! 다들 와서 앉으세요.”
그의 말을 따라 한 자리씩 다들 잡고 앉자, 아만이 한 손을 높게 들었다.
“라이트.”
손끝에서 커다란 불빛을 일으킨 아만이 하늘 위에 글씨를 수놓기 시작했다.
“아… 란트… 마법… 아카데미… 기초반… 환영, 환영?”
천천히 하늘을 수놓는 글씨를 바라보던 루카스가 기가 찬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미친놈. 뭐 저런 해맑고 유희에 진심인 도마뱀이 다 있어?’
반만년의 용생 동안 본 적도 없었다. 저런 해맑고 또 해맑은 드래곤은.
“우리 기초반 학생들의 화합을 위해 만든 오늘의 캠프! 다들 잘 보냈나요?”
제 귓가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 아만이 돌아오는 대답을 기다리자, 여기저기서 못마땅한 듯한 대답이 들려왔다.
“네에…….”
“소리가 작군요! 우리 기초반 이만큼 밖에 안됩니까?!”
“네에!”
작은 대답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마치 행사 진행자처럼 한 번 더 대답을 유도한 그가 만족스러운 듯 활짝 웃어 보였다.
“자! 좋습니다. 그럼 오늘의 하이라이트!! 캠프파이어를 시작합니다!!”
그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캠프파이어의 불꽃이 크게 한번 일어났다.
“오오오!”
***
저마다 앉은 자리에서 삼삼오오 모여 주전부리들을 주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아만이 루카스 일행에게로 다가왔다.
“우리 어린 친구들은 술을 마시지 못하니… 자, 특별히 이걸 줄게.”
아만이 등 뒤에 숨겨놓았던 손을 ‘짠’ 하고 꺼내 보였다.
“흥! 이건 쿠키가 아닙니까? 누굴 어린애로 보는 것도 아니고…….”
“야, 귀족 나부랭이. 어른이 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야지. 쯧쯧…… 이렇게 싸가지가 없어서야.”
“뭐, 뭐?! 귀족 나부랭이?!”
“그래! 나부랭이!!!”
폴라와 스키르는 눈만 마주치면 서로에게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웠는지 아만은 ‘하하’ 하며 큰소리를 내어 웃었다.
“자자, 그만들 하고 얼른 쿠키 받으렴. 교수님 손 떨어지는 거 보고 싶나 봐?”
“미친…….”
아만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루카스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거친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 하하… 나한테 한 얘기는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혼자 뭘 좀 생각하다가…….”
루카스도 아만도 당황했는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 그럼 재밌는 시간 보내렴!”
아만이 황급히 자리를 뜨자,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던 폴라와 스키르가 루카스에게 다가왔다.
“야. 아까 너도 똑똑히 봤잖아? 오크 말이야.”
“그래! 너도 봤지 않나?! 그런데 왜 저 치들이 우릴 우롱하는데 너는 돕지 않았느냐!”
“그래! 우리만 바보 됐잖아!”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두 사람이, 이젠 저를 잡아먹으려 들자 발끝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올라왔다.
“하…… 너흰 바보인가? 오크가 그냥 돌아갔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뭐?”
“바보?”
득달같이 달려드는 말에 루카스는 길게 한숨을 한번 뽑아낸 뒤 입을 열었다.
“그래. 바보냐 물었다. 너희는 오크가 도대체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지? 그냥 뭐 지나가는 토끼나 다람쥐쯤 되는 걸로 생각하나 보지? 그것은 몬스터다. 우린 그 오크에게 아주 작은 사냥감에 불과했어. 그것도 먹기 좋은 사냥감.”
‘사냥감’이라는 말에 흠칫 놀란 폴라가 몸을 살짝 떨었다.
“봤으면 알겠지? 그 오크가 얼마나 컸는지. 우리 셋을 세로로 세운다 해도 그 오크의 가슴께까지 밖에 오지 않을 거다. 내 말 이해했나?”
“쳇…… 잘났다. 그래.”
루카스의 논리정연한 일침에 입술을 삐죽인 폴라가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야. 너도 귀족이잖아. 그치? 근데 왜 쟤랑 안 친하게 지내?”
“흥, 귀족이라고 다 같은 귀족인 줄 아느냐? 이 몸은 바로…….”
“예, 예 그러시겠죠. 굉장히 대단한 오닐 공작가의 영식 아니십니까!”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스키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가로챈 폴라가 혀를 쭉 내밀어 그를 약 올렸다.
“이, 이게! 그러는 너는! 너 같은 하찮은 평민이 어쩌다가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거냐!”
“걸어왔다! 왜!”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었다. 루카스는 머리가 아파왔다.
“그만. 다들 입 닫고 쿠키나 까서 먹어라.”
“야, 그리고 우리가 너보다 나이 두 살, 네 살 많거든?”
“그래서?”
“그래서라니?! 누나랑 형이라고 불러!”
폴라의 말에 ‘피식’ 하고 웃어 보인 루카스가 몸을 일으켜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흐음…… 아까 넘어질 때 머릴 부딪혔나…….”
폴라를 요리조리 살펴보는 시늉을 하며 놀리는 그의 모습이 통쾌했는지, 스키르가 큰 소리로 웃어 보였다.
“하하하! 꼴 좋다!”
다시 시작된 그들의 싸움에 루카스는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돌아온 루카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어디서 난 것인지 그들 옆에 놓인 커다란 잔 안에는, 거의 다 마셔버린 ‘라쿨르스의 잎’이 바닥에 수북이 깔려 있었다.
라쿨르스의 잎. 우울증 환자 치료에도 쓰이지만, 축제나 행사에서 조금 더 즐거운 기분을 내기 위해 음식이나 다양한 사탕 등에도 쓸 만큼 대중적인 잎이었다.
하지만 저들은 가공된 라쿨르스의 잎만 접해봤을 뿐, 저렇게 생잎을 마셔본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야~ 건방진 꼬마~”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입에 웃음을 한껏 머금은 스키르가 루카스를 향해 손짓했다.
“꺄하하! 너 꼬마 놀리지 마라구~”
두 꼬마가 앉아 얼마나 차를 홀짝인 건지…! 잠시 자릴 비운 자신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라쿨르스의 잎은 소량을 사용했을 땐 진실을 털어놓기에도 제격일 만큼 심신을 편안하게 해 주었지만….
저 꼬마들의 입에서는 이미 나와야 할 진실이 모두 나온 듯 보였다.
“도대체 아만은 어디에서 뭘 하는 거야?!”
루카스가 짜증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산책이라고 해봤자 고작 한 시간쯤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 형을 꼭 이길 것이다. 꼭 이기고 말 거야.”
“야, 너 할 수 있어. 진짜야. 나 믿어 믿어. 나는 있잖아? 나 살던 데에 돈을 진~짜 많이 가져다주고 싶어~”
헤실거리며 말을 주고받는 꼬마들을 바라보는 루카스의 눈에, 어딘지 모르게 애잔함이 깃들었다.
“네가 살던 곳~? 그 돈… 내가 줄까?”
“푸흣… 됐거든? 내가 벌 수 있거든? 내가 마법사만 되면~ 어~?”
대환장 파티. 이곳은 지옥의 캠프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