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4화 (14/225)

14화. 지옥의 캠프(2)

“흥! 한번 보라지. 내가 제일 많이 찾아내 보이겠어.”

일행과 함께 숲에 온 스키르는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마나석 찾기에 열중했다.

마나를 운용할 줄 몰랐던 스키르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흐음…… 이건 아닌 것 같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돌들을 골라내던 스키르가 돌 하나를 뒤로 휙 던졌다.

“아얏!”

“응?”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란 그가 고개를 돌려 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픽시?”

책에서나 보던 픽시였다. 숲 깊은 곳에만 산다고 알려진 픽시가 여기에 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픽시가 맞았다.

게다가 손바닥만 할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조금 더 컸다. 스키르의 머리통만 한 크기의 픽시에게는 제 몸길이보다 더 커다란 날개가 달려 있었다.

조금 전 던진 돌 때문일까. 날개 한쪽이 찌그러져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있는 픽시는, 어린 여자아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초록빛 머리와 그보다 더 밝은 초록빛 눈동자. 눈물을 글썽거리며 제 날개를 이리저리 살피는 픽시의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혔다.

“끄흐윽…… 내 날개…… 날개…….”

제 날개를 붙잡은 픽시에게 조심스레 다가가는 스키르.

“아, 아니… 괜찮으…….”

스키르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눈엔 이게 괜찮은 걸로 보여?! 엉?! 이런 우라질!!!”

“윽! 미, 미안해요!”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예쁜 여자아이 같은 외모에 자그마한 픽시의 입은…….

“이런 쌍놈의 인간 자식! 무심코 던진 돌에 픽시 맞아 죽는다는 말도 몰라?!”

“그, 그건 개구…….”

“입 안 닥쳐?!”

뒷골목 불량배만큼이나 거칠었다.

“끄엥…… 내 날개!! 날개 어쩔 거야!!”

“저, 저기 제가…… 제가…… 어떻게…….”

불같이 화를 내는 픽시의 모습을 보자 당황했는지, 스키르가 손까지 덜덜 떨며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야, 됐고. 집에나 데려다줘. 이대로는 못 날아가니까. 집에 돌아가면 촌장 할아범이 어떻게든 고쳐 주겠지. 떼잉! 몰래 나온 건데…….”

“…… 집이 어디신데요?”

“아, 안 멀어 안 멀어. 걱정 마. 네가 부러트린 날개니까 책임은 져야 될 거 아냐!?”

얼결에 픽시를 손에 조심히 안아 든 스키르는, 처음 느껴보는 남다른 공포에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다.

“스읍! 안 잡아먹어! 쫄지 마, 쫄지 마. 자, 직진!”

***

스키르는 얼결에 픽시를 안아 들고 한참이나 숲을 걸어 들어왔다.

중간중간 직진, 좌회전, 우회전과 같은 신호들을 충실히 수행하며 따라오다 보니, 어느새 이곳은 에스카르 산맥 한복판이었다.

“으으…… 돌아가면 안 될까요?”

“이게 뭐라는 거야?! 그럼 나는! 나는 어쩌라고!”

픽시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 알겠어요… 얼마나 더 가면 돼요?”

“다 왔어,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벌써 저 말이 몇 번째인지.

“야, 너 몇 살이냐?”

“……열다섯이요.”

열다섯. 스키르의 나이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지만, 이렇게 혼자 떨어져 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현재 상황이 굉장히 낯설고 무서웠다.

“흐음…… 근데 왜 이렇게 쪼끄매? 못 먹었냐?”

“아, 아니거든요! 조금 느리긴 해도 엄청나게 클 거예요! 형님도 그렇고 아버지도 엄청 크시거든요!!”

“흥! 누가 뭐래? 겁나 땍땍거리네.”

“그리고 못 먹었다니! 우리 집 엄청 부자거든요?!”

“그래? 근데 넌 이 숲에서 뭐 하고 있었냐? 땅 쳐다보면서 돌멩이나 줍는 주제에 부자는 무슨!”

스키르의 말을 들은 픽시의 한쪽 입꼬리가 피식하고 말려 올라갔다.

“아카데미에서 캠프 온 거거든요!!! 돌이 아니고 마나석을 찾던 거예요!!”

“어? 마나석? 왜? 너 마법사야?”

“그, 그럼요! 저 마법사예요!”

“구라치네! 마법 써봐! 써봐!!!”

“……끄으으으.”

픽시의 도발에 한 손을 허공에 내밀고 앓는 소리를 내는 스키르를 바라보던 그녀가 박장대소를 했다.

“꺄하하하하하!! 야! 너 뭐하냐? 크크큭! 지랄도 참 가지가지 한다!”

“흑…… 흐흑…….”

그녀의 말에 결국 스키르는 참아왔던 눈물이 펑 터지고 말았다.

“어, 어…… 야, 왜 그래…… 우, 우냐?”

“흐어엉!!! 끄어어엉!!!”

우는 도중에도 그녀를 손에 꼭 붙든 채 놓지 않는 스키르는, 어느새 어깨를 들썩이며 엉엉 울고 있었다.

“야…… 미, 미안. 아니 그러니까 왜 마법을 쓰랬더니 똥 싸는 소리를 내고 있어……. 야,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만 울어. 엉?”

‘똥싸는 소리’ 대목에서 더욱더 크게 울어 젖히는 스키르를 본 그녀는, 작은 손을 허둥대며 그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야, 야. 저기 앉아봐. 내가 미안하니까……. 좀 앉자.”

간신히 그를 작은 바위 위에 앉힌 픽시가 좋은 말(?)로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야. 이제 좀 닥쳐봐. 응? 여기서 울어 젖히면 근처에 있는 마물들이나 부르기 딱 좋아. 그러니까 당장 콱 뒈지고 싶지 않으면 닥치는 게 좋아. 응?”

‘마물’이라는 소리에 입을 합 다문 스키르가 작게 끅끅거리는 소릴 냈다.

“그래, 그래. 아유 착하지. 뒈지고 싶진 않은가 보네. 그래 너 이름이 뭐냐?”

“끄윽, 끅……. 스, 끅! 키르 오닐…….”

“스키르? 그래, 그래. 나는 알린이야. 알린 살레르모.”

“알, 알린……끅!”

“그만 울어. 우리 이제 서로 이름도 알잖아. 응?”

“네…… 흐끅!”

알린이라는 픽시는 제 이야기를 하며 스키르를 달래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떻게 커다란 꽃에서 꿀을 따는지. 어떤 꽃에 있는 꿀이 가장 맛있는지와 같은 이야기였다. 제 몸보다 더 커다란 벌을 어떻게 이겼는지와 같은 무용담도 간간이 곁들여 가며 말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스키르의 표정이 이내 점차 환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가지고! 그 자식이 내 꿀통을 말도 없이 훔쳐 간 거야! 이 쌍놈의 자식! 어?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겠어? 당장 그 자식을 쫓아갔지! 가서 내가 뭐라고 했겠어!”

“뭐라고요?”

“야! 이 쌍놈의 자식아! 날개를 콱 분질러 꿀에 푹 절여 차로 끓여 마셔도 시원찮은 이 자식! 내 꿀통을 당장 내놔라! 했지.”

“헤헤…… 그랬더니요?”

“그랬더니! 어? 근데 다 울었냐?”

알린의 말이 재밌었는지 베시시 웃어 보인 스키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휴! 다 울었다니 됐다. 내 나이 칠십에 벌써 육아를 하고 말이야…… 나중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어!”

“……칠십?”

“그래! 내가 올해 딱 칠십이야! 아주 청춘이라 그거야!”

“칠십 살이…….”

“야! 우리 픽시들은 오백 년도 거뜬히 살아! 칠십이면 청춘이 아니라 아직 애라고, 애!”

“아…… 그렇구나.”

“야, 너는 아카데미씩이나 다닌다면서 어째 그런 것도 모르냐?”

“픽시에 대해선 사람들이 아는 게 별로 없어요…….”

그도 그럴 것이 픽시라는 종족은 귀하기도 귀하지만, 날렵하고 재빠른 날갯짓 덕분에 인간들의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빨랐다.

일전엔 귀족들 사이에서 픽시를 가둬놓고 애완용으로 기르는 것이 한때 유행했으나, 픽시를 잡은 인간들 모두 끔찍하고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된 뒤로는 그 누구도 픽시를 잡지 않았다.

픽시를 잡으면 불행이 따른다는 소문은 이미 굳어져, ‘길 가다 픽시나 마주쳐라!’라는 속담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하긴 너희 인간들이 우릴 무서워하잖니? 그러게 왜 꿀이나 채집하는 우릴 건드려서는…… 쯧!”

“그런데…… 그게 정말이에요? 픽시를 마주치면 불행해져요…….”

“야! 우리가 무슨 불행을 몰고 다니는 종족인 줄 알아!? 물론! 우릴 잡거나 해하면 저주를 내리는 건 사실이야. 우린 숲을 지키는 주술사니까.”

“주술사요?”

“그래. 그게 아니라면 우리처럼 아무것도 못 하는 작은 생명이 어떻게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겠어?”

“아…….”

스키르는 알린의 말이 납득이 되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걱정 마. 너에게 나쁜 일이 생길 일은 없으니까. 스키야!”

“...스키르예요.”

“어쨌건! 야, 해지겠다. 빨리빨리 움직여. 나 집에 가야 해.”

“……알겠어요.”

***

‘이 자식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스키르의 흔적을 쫓던 루카스는 이제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 아만에게 이 일을 떠넘길까 했지만 이미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오고 말았다.

혼자라면 그냥 텔레포트해서 되돌아갔겠지만, 옆에 따라붙은 저게 문제였다.

“야. 너 무슨 사냥개야? 냄새로 찾아?”

“……”.

“역시~ 지체 높은 귀~족이라 그런지 말 한마디 안 섞어주시네.”

“계속 시끄럽게 굴 거면 돌아가라.”

“난 길도 몰라. 네가 끌고 온 거잖아?”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 내가 언제 널 끌고 왔어?”

“아 몰라, 끌고 왔어.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미쳤군.”

“너 몇 살이냐?”

“흥, 그건 알아서 뭐하게?”

속에서 천불이 났다. 5012 살이다!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이건 뭐 얼토당토않은 소리밖에 되지 않을 테니 덩달아 유치해지고 말았다.

“야! 나 열세 살이거든? 내가 더 누나야! 듣기로는 너 열한 살이라고 하던데!”

루카스는 지금 여기서 저 작은 인간을 죽여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야, 너 눈을 왜 그렇게 떠? 네가 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 여긴 아카데미야! 우린 똑같은 학생인데 내가 당연히 누나지!”

“하! 그러는 너는? 너는 왜 스키르에게 그렇게 막 대하는 거지? 걔도 열다섯 살 아닌가!? 스키르가 오빠인데?!”

“그, 그건! 걔가 오빠 대접을 받을만한…….”

“나도 마찬가지다! 네깟 걸 왜 내가 누, 누나 대접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반만년의 시간 동안 익힌 말싸움의 기술은 처참했다. 11년의 세월은 인간의 몸에 완벽히 적응이라도 해 버렸는지, 말싸움 기술마저 딱 열한 살짜리 수준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야, 됐어! 누나 소리 나도 듣고 싶은 거 아니거든!? 계속 그렇게 사냥개처럼 찾아봐라 어디!”

“흥! 누가 할 소릴!”

몸을 홱 돌려 자릴 벗어날 것처럼 굴던 폴라는 몇 발짝 가지 않고 다시 되돌아왔다.

“좋아서 따라가는 거 아냐!! 길을 몰라서 그래!!”

애는 애였다. 끝까지 자존심을 챙기는 폴라의 모습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 루카스가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

“아직도 멀었어요?”

“아니! 다 왔대도!!”

“어…… 여긴 아까 지나왔던 곳인 것 같은데…….”

“아, 아냐!”

“……솔직히 말해줘요. 길 잃어버렸죠?”

“…….”

대답이 없는 알린을 보자, 스키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야, 야! 울지마, 울지마. 아, 참 이게 이상하네. 날아서 다닐 땐 길이 잘 보였는데…….”

-우직! 우지직!

“이, 이게 뭔 소리여……?”

뒤에서 들려오는 나무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에 알린이 고개를 돌렸다.

“으아…… 으아아!!!!”

“아니 씨X 여기서 왜 오크가 튀어나와!?”

놀라 뒷걸음질을 치는 스키르와 오크를 보자마자 쌍욕을 내뱉는 알린.

“으아아아악!!!!”

“뛰, 뛰어!!!”

***

“어?! 저거 스키르 아냐?!”

“맞는 것 같군.”

흔적을 쫓아 숲을 가로지르던 루카스 일행은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쥐콩만 한 인간 때문에 이게 무슨 개고생이야?’

숲을 가로질러 뛰던 루카스는 차오르는 숨에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

“루, 루카스!!!”

멀리서 뛰어오는 인영은 분명 스키르였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것은…….

“오크?”

“도, 도망쳐!!!”

오크의 정체를 알아차린 폴라가 혼비백산하여 몸을 돌려 뛰어갔다.

“도망치라고!!!”

어느새 루카스의 코앞까지 뛰어온 스키르가 소리쳤다.

‘이거 어째? 도망쳐?’

지금 상황에서는 도망치는 것이 가장 현명했다. 마법을 써 오크 따위를 잡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면 저들이 자신의 실력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뛰어온 것만으로도 기분이 몹시 좋지 않던 루카스는 지금 현명함 따위를 찾을 때가 아니었다.

“슬립.”

루카스의 말이 떨어지자 소리치던 스키르와 폴라, 그 뒤를 쫓던 오크도 모두 풀썩 쓰러져 잠에 빠져들었다.

루카스가 선택한 가장 현명한 방법. 우선 다 재운 뒤 다시 생각한다.

“오크는 또 어디에서 끌고 온 거야? 응? 이건 또 뭐…… 픽시?”

잠드는 순간까지도 손에서 놓지 않으려 스키르가 꼭 안고 있는 그것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이건 뭐 탁아소도 아니고…… 별걸 다 주워오는군.”

그는 고개를 한번 절레절레 저어 보인 뒤 오크에게 다가갔다.

세상 모르게 잠에 빠져든 오크의 모습을 보자 측은함이 밀려왔다.

‘죽는 줄도 모르고 죽겠군…… 그럼 정리를 시작해 볼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