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지옥의 캠프(1)
새로운 학기는 시작되었고, 처음 걱정과는 달리 학기는 별 탈 없이 잘 지나가고 있었다.
“자, 여기에 만드라고라의 뿌리를 2 프리키의 눈물만큼 넣고… 그다음 고블린의 피를 3 프리키 눈물만큼 넣은 다음 오른쪽으로 세 번… 왼쪽으로 세 번… 천천히 저어줍니다.”
마법약 수업을 맡은 하딘 바라드는 보기 드문 블루 엘프였다.
여느 종족보다 자연에 가까운 엘프는 어지간해서는 자신이 사는 마을 밖을 벗어나는 것을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저 블루엘프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 이 큰 도시에 나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들이 다니는 마법 아카데미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지난 학기에도 마법약 수업을 들었지만, 저 엘프는 처음 보는 교수였다. 학교 내에서 다니다가 마주친 적도 없는 것을 보니 새로 부임한 교수인 듯했다.
‘이상한 일이군. 엘프가 여기까지 나오다니…….’
기초적인 마법약인 속도의 물약 제조법을 가르치는 하딘을 바라보는 루카스의 눈이 가늘게 변하는 때였다.
“으악! 교수님!!!”
“무슨 일인가요!!!”
다급한 학생의 외침에 한달음에 달려간 하딘은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넋을 놓고 말았다.
학생 앞에 놓인 작은 비커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초록빛 액체는 어느새 폭발하듯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초록색 액체가 책상 위를 온통 뒤덮자, 그것을 바라보던 학생은 혼비백산하여 저만큼 멀리 달아나 버렸다.
“아니! 프리키의 눈물만큼 넣으라고 하지 않았나요!? 고블린의 피를 도대체 얼마나 넣은 겁니까?! 3 드래곤 눈물만큼 넣었나요?!”
양팔을 넓게 벌려 근처에 있는 학생들을 보호하던 하딘이 버럭 소리치자, 사건의 주범인 에이라 토헤일은 교실 구석에 서서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법을 써 사태를 수습한 하딘은 책상이 깨끗해지고 난 뒤로도 한참이나 잔소리를 해댔다.
“이게 속도의 물약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혹시라도 저주가 깃든 물약이라든지…! 정말 끔찍합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그의 설교에 학생들은 모두 자신의 비커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휴! 정말이지… 다들 조심해 주세요. 마법약은 마나가 깃들기 전까지는 제 효능을 내지 못하지만, 재료가 가진 저마다의 독성이나 특성은 그대로 있으니 말입니다. 아주, 아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설교를 마친 하딘이 수업을 이어갔다.
“자, 이제 마나를 불어넣어 보세요. 초록빛에서 푸른빛으로 한번 바뀐 뒤, 다시 초록빛으로 되돌아온다면 잘한 겁니다.”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니 대부분 학생들이 잘 해낸 것 같았다.
“끄응…….”
제 비커에 가볍게 마나를 불어넣은 루카스의 옆자리에서는 난데없는 개 앓는 소리가 나고 있었지만 말이다.
“끄으응…….”
“뭐 하는 거지?”
비커를 바라보며 변비 걸린 개 소리를 내고 있는 이는 스키르 오닐. 입학식 날 자신을 도운 지체 높은 오닐 공작가의 차남이었다.
“흠, 흠… 신경 끄시게.”
“신경을 끄기엔 너무 낑낑거려서 말이지. 혹시 뭐가 마려운 거라면 밖으로 나가서 볼일을 보도록.”
루카스는 날카로워지는 신경을 꾹꾹 누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부드러운 어투를 구사했다.
“그,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럼 입을 조금 닥치겠어? 시끄러워 죽겠군.”
“그, 그게…….”
비커를 바라보는 스키르의 표정이 곧 울상이 되었다. 그의 비커를 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나를 못 불어넣는 건가?’
이리저리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스키르를 바라보던 루카스는 할 수 없다는 듯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됐지?”
“…….”
그의 비커에 가볍게 마나를 불어넣은 루카스가 몸을 돌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혹시….”
“걱정 마라. 자네가 마나를 불어 넣는 걸 내가 똑똑히 보았으니.”
루카스의 책상으로 다가온 스키르가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하자, 루카스가 눈치 좋게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수업에서 자신이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는 것이 누구에게 알려질까 걱정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루카스의 대답을 들은 스키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마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기초반. 그곳에 온 지체 높은 공작가의 차남의 자존심은 뭉개질 대로 뭉개져 있었다.
‘딱하구먼. 이걸로 신세는 조금 갚았나.’
***
“그러니까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몇 번을 말해야 하니? 이건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니까?”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 저는 참여하고 싶지 않다니까요?”
루카스는 이 일을 두고 아만과 몇 분째 실랑이 중이었다.
캠프라니. 그래. 까짓거 하루밖에 되지 않으니 충분히 가줄 수 있었다.
하지만 캠프의 목적이 터무니가 없었다.
화합과 친목의 장이라니! 그런 자리에 가서 인간들과 하루를 지내 조를 짜고 캠프파이어 따위를 하며 감성팔이를 하기엔 루카스의 인생이 녹록지가 않았다.
아직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게다가 초급반에 있을 때는 인간들이 나름대로 저들의 인생을 살기에 바빴는데, 어째 이놈의 기초반 인간들은 이렇게나 나태하고 여유가 넘치는지!
쉬는 시간마다 삼삼오오 그룹을 이루어 조잘조잘 수다를 떨어대질 않나, 찾아와 관심을 보이질 않나. 루카스는 지금 폭발 직전이었다.
“그래? 그럼 간단한 방법이 있긴 한데…….”
“…….”
아만이 눈을 반짝이며 활짝 웃어 보였다.
불안했다. 아만이 저런 웃음을 지을 때면 분명 무언가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다.
“상급반으로 가든지. 뭐 최상급반도 괜찮고.”
“……젠장.”
“어머나, 그런 말버릇은 나빠요!”
과장되게 화들짝 놀라 보이는 아만의 반응에 루카스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제 약점을 콕 집어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저 퍼런 도마뱀의 대갈통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젠장 할 도마뱀 자식!’
***
결국 캠프에 오고 말았다.
“자, 다들 이쪽으로 모이세요!”
광장에 모인 학생들을 불러 모은 아만이 학생들의 숫자를 눈으로 헤아리기 시작했다.
“스물일곱, 스물여덟! 네, 다들 시간 맞춰 잘 와주셨군요!”
기초반에 있는 스물여덟 명의 학생들은 저마다 손이며 등에 짐가방을 하나씩 챙겨 들고 있었다.
“자, 이번 캠프는 우리 기초반의 화합을 위한 캠프입니다! 물론 이 아만이 재미있는 이벤트들도 많이 준비했으니 다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아만이 눈을 접으며 활짝 웃었다.
‘퍽이나 재밌나 보군, 미친 도마뱀 자식.’
저 블루 드래곤은 루카스가 전생에서도 종종 마주친 적 있는 드래곤이었다.
그때 보았던 모습 역시 똘끼가 충만했지만, 유희 중엔 그 똘끼가 더욱 충만한가 보다.
물론 드래곤 로드였던 제 앞에서 그 똘끼를 열심히 눌렀던 거겠지만.
‘하셀 놈은 도대체 저 자식을 어떻게 키운 거야?’
큰 이변이 없었다면 루카스가 죽고 나서 하셀 테리디어가 로드 자리를 맡아 하고 있을 텐데, 인간의 몸에 얽매인 지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미래가 없군…… 우리 종족에 미래가 없어…….’
루카스는 눈을 빛내며 자신이 계획한 이벤트를 설명하는 아만을 보고 있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자, 그럼! 출발!!!”
어디서 가져왔는지 호루라기까지 삑삑 불어대며 앞장서는 아만의 궁둥짝을 발로 차 저 멀리 날려버리고 싶었다.
“하…….”
“어찌 그리 한숨을 푹푹 내쉬는가?”
“그렇게 해서 땅이 꺼지겠어?”
루카스가 깊은 한숨을 발끝에서부터 끌어모아 내쉬자, 그 모습을 본 폴라와 스키르가 다가왔다.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연회에서 만났던 스키르와 폴라는, 비슷한 또래라는 이유로 같은 조가 되어 이번 캠핑을 마쳐야 했다.
“…….”
“귀족 나으리들과 함께하는 캠핑이라니! 하찮은 제가 같이 가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요!”
“흥! 네가 하찮은 것은 아나 보구나!”
폴라와 스키르는 출발부터 티격태격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폴라가 한 수 위였다.
자신이 놀림당한단 사실도 모르는 모자란 스키르는, 폴라에게 그저 즐거움을 주는 한낱 노리갯감에 불과했다.
‘벌써 피곤하군.’
***
아란트 제국을 가로지르는 에스카르 산맥.
아카데미의 뒤편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산맥과 이어지는 작은 숲은, 아카데미 학생들이 종종 이용하는 곳이었다.
“자! 이 팻말을 중심으로 다들 자리를 잡으세요!”
팻말을 가리킨 아만이 말을 마치자, 학생들은 조별로 텐트를 칠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여기가 좋겠군!”
스키르가 팻말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을 의기양양하게 가리켰다.
“흥! 멍청하긴. 여긴 그늘도 없는 곳인데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푹 익기 좋겠네!”
“뭐, 뭐야?! 멍청?!”
“그래! 멍청!”
오는 길 내내 투닥거리는 두 사람이 맞붙기 직전이었다.
“그만하지?”
그들이 아무리 쫑알거려도 한마디도 나서지 않던 루카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입 놀릴 시간에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잡아. 벌써 좋은 자리는 다들 채가고 없으니.”
루카스의 말이 사실이었다.
다들 어디서 뭘 하다 온 지 모르겠지만, 야영하기 좋은 자리는 이미 누군가 차지하고 들어앉아 텐트까지 열심히 올리고 있었다.
“저기로 하지.”
답답하던 루카스가 큰 나무 그늘 아래를 가리켰다.
지금은 해가 들지만, 아침이 되면 저 자리는 그늘이 될 것이었다. 어차피 낮엔 미친 도마뱀이 학생들을 데리고 이것저것 시킬 테니, 텐트에 들어가 푹푹 쪄질 일 또한 없을 것이다.
풀이나 돌부리도 없으니 꽤 괜찮은 자리였다.
나이로 보면 가장 어린 루카스였지만 폴라와 스키르는 그의 말을 순순히 잘 따라 주었다.
“그러지.”
“텐트는 칠 줄 알아?”
“…….”
“그럴 줄 알았어. 멍청이.”
“이, 이게!!!”
루카스의 입에서는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저들의 주둥이는 쉴 줄 몰랐다. 그는 통성명도 서로 하지 않은 채 그저 투닥거리기만 하는 인간 꼬마들이 진절머리가 나게 싫었다.
그들을 무시하는 건 누워서 차가운 빵을 뜯어 먹는 것만큼이나 쉬웠으나, 차고 딱딱한 빵을 우적우적 씹어 먹는 것만큼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텐트가 완성되었다. 그동안 ‘멍청이’라는 말을 수십 번을 들은 스키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자! 다들 모이세요!”
대충 주변이 정리되고 나자, 아만이 다시 한번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자, 이제 즐거운 보물찾기 시간입니다!”
아만의 입에서 ‘보물찾기’라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릴 때나 하던 보물찾기에 향수를 느끼고 기대감을 느끼는 이도 있는가 하는 반면, 시시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는 사람도 있었다.
“자, 이 보물찾기는 그냥 보물찾기가 아닙니다! 무려 마나석 찾기!!!”
말을 마치고 신난다는 듯 혼자 박수를 짝짝 쳐 보인 아만이 말을 이어갔다.
“물론 값비싼 마나석은 아닙니다. 얼핏 보면 그냥 돌과 다름없지만, 그래도 마나석은 마나석 이니까요! 지니고 있으면 마나 향상에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헛소리였다. 그렇다면 온 제국에 대마법사가 넘쳐나게?
하지만 약장수 같은 그의 말에 순진한 학생들은 꼴딱 넘어가고 말았다.
“오오…… 마나가 향상된다니!”
“몇 개나 있습니까?!”
드디어 기대하던 반응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자, 아만이 들뜬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 총 열 개!!! 아주 푸짐합니다!”
그는 가슴을 활짝 펴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행사를 계획했는지 자랑해 보였다.
“다들 마나의 기운을 느껴보세요. 자신의 몸에 있는 마나를 활짝 펼쳐 찾아내다 보면, 어디에선가 다른 마나의 기운이 느껴질 겁니다! 마나석을 찾는다면 제게 가져오세요. 그게 마나석인지 그냥 돌멩이인지는 제가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마나석이라…….”
아만의 말을 들은 스키르가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한 조로 이루어 마나석을 찾던 아만과 일행들은 최대한 멀리 떨어지지 않고 마나석을 찾고 있었다.
‘지루하군.’
이미 주머니에 두 개의 마나석을 챙겨둔 루카스가 주변을 둘러봤다.
‘같잖은 최하급 마나석을 열 개로 쪼개 나눠놓다니. 마나석만큼이나 같잖은 도마뱀 같으니라고!’
폴라는 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온갖 돌을 다 들춰보고 있었다.
“흐음…… 흐으음…….”
돌멩이 하나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보던 폴라는 고개를 작게 끄덕인 뒤, 주머니에 아무 기능도 없는 짱돌을 잘 챙겨 넣었다.
‘다른 꼬마 하나는 어디에 있는 거야?’
스키르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주변에서 그가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잘 들렸었는데 어느샌가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스키르는 어디 있지?”
“흥! 몰라. 그 건방진 자식 어디에 있건 무슨 상관이야?”
불길했다.
루카스가 마나를 넓게 펼쳐 스키르의 흔적을 쫓았다.
‘없어. 사라졌어.’
스키르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