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1화 (11/225)
  • 11화. 아만이 도와드릴게요!

    “루카스님!!!”

    도서관에 들어서자 어찌나 초조했는지 손톱까지 잘근잘근 씹던 브랑디가 저를 발견하고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예, 사서님.”

    “괜찮으십니까? 어디, 어디 좀 봅시다.”

    맨 처음 자신을 와락 끌어안은 것까지는 참아줄 만했었다. 그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던 노인의 감정 표현이었겠거니. 하지만 지금 저를 붙잡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옷까지 들춰보는 이 행태는 도저히 참아주기가 힘들었다.

    “그, 그만!”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루카스가 버럭 소리치자 많이 멋쩍었는지 노인의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졌다.

    “그보다 그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말 그자들의 말처럼 루카스님을 그냥 보내준 것이 맞습니까?”

    브랑디의 물음에 루카스는 잠시 고민했다. 이것을 사실대로 말을 해줘야 좋을지 그게 아니라면 브랑디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작은 거짓말을 해야 할지 말이다.

    “사서님. 잘 들으셔야 합니다.”

    “…….”

    루카스가 테이블에 가서 앉자 브랑디 역시 그 뒤를 따라 건너편에 조심스레 앉았다.

    “사서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제국에서는 한낱 미물의 영혼일지라도 그것을 사용해 마법을 행하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게 왜인 줄 아십니까?”

    루카스의 물음에 브랑디는 그저 눈앞에 쌓아둔 책의 모서리만 바라볼 뿐 입조차 달싹이지 않았다. 그 역시도 이유에 대해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제국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국가에서는 영혼을 사용해 행하는 마법은 불순한 것으로 여겨 엄중히 다스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서님도 알고 계시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고의였든, 고의가 아니었든지 말입니다.”

    늙은 사서의 고개가 푹 수그러졌다. 이 상황에서만큼은 루카스가 어린아이가 아닌 그가 열한 살 난 아이 같았다. 제 잘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노인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의 반의반도 안 되는 시간을 살아온 어린아이의 앞에서 누구보다 깊이 반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그렇다면 수습이 먼저겠지요.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수습이라 하면…….”

    “이놈들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찾아내어 뿌리를 뽑아야지요. 시작이 어찌 되었든 이놈들이 행하는 행위는… 끔찍합니다.”

    “크흑…….”

    그의 말이 끝나자 브랑디는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루카스를 그자들의 손에 넘겨주고 왔을 때부터 생각하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들의 말이 조금이라도 진실이었기를. 그렇다면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루카스의 말을 모두 듣고 나니 자신의 그릇된 욕망 때문에 한 아이를, 생명을 해칠뻔한 것이 사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제 손끝에서 불러일으킬 작은 불씨 하나를 볼 욕심에 이 작은 아이를, 꽃피우지 못한 영혼을 악마들에게 바치다시피 한 자신이 너무나도 밉고 싫었다.

    “제, 제가… 제가… 이 늙은이가 이제 죽을 때가 되었나 봅니다.”

    “그런 소리 마세요. 사서님이 아니었다면 또 다른 곳에서 다른 희생자가 분명 발생했을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루카스가 브랑디의 어깨를 살며시 두드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서님의 잘못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마친 그가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작은 보석 하나를 꺼내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마법석입니다. 사서님의 마법 수련에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이런 걸… 저에게… 크흑… 흑….”

    보석을 본 브랑디의 울음이 더욱더 커져 흐느낌이 통곡으로 바뀌고 있었다.

    사실 이 노인이 무슨 짓을 하든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작은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법 생물로 살아온 긴 시간 때문인지 이토록 마법을 사랑하고 열망하는 한 늙은 인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

    “언제나처럼 제가 매일 이곳에 오겠습니다. 브랑디님의 손에서 작은 불씨를 일으킬 그날까지 제가 옆에서 도울 테니…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의 작은 손이 노인의 어깨를 한 번 더 두드리자, 브랑디는 울음에 묻혀 알 수 없는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자세히 듣지 않아도 그의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한 마음을 사죄하는 것과 자신을 향한 무한한 감사였다.

    그런 그에게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 도서관을 빠져나온 루카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사실 저 마법석을 브랑디가 지니고 있다고 해도 별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은 쌀알만 한 마나를 키워낼 능력이 있었지만, 저 노인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괜히 브랑디에게 희망 고문만 하는 것이 아닌지 벌써부터 염려가 되었다.

    ‘마법이 뭐라고….’

    ***

    가파른 절벽 앞. 루카스는 다시 한번 전생에 제집이었던 레어 앞에 와있었다.

    이번엔 텔레포트를 할 때부터 주변에 추적마법을 사용해, 아만이 숨어서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도착해서 또 한 번 추적마법을 써보았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흠, 흠… 거기 있는 것을 다 안다!!! 모습을 보여라!!!”

    혹여라도 그가 기척을 두 번 세 번 숨겼을까 싶어 허공에 대고 고함까지 쳐보았지만, 들려오는 것은 그저 절벽을 맴도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드디어…….’

    작은 돌부리 위에 손을 가져간 그가 정신을 집중했다.

    손에서 작은 마나 줄기가 뻗어 나가고,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길을 찾던 그의 감긴 눈이 떠졌다.

    “……없어?”

    없었다. 그토록 꼭꼭 숨겨둔 자신의 비밀창고가.

    아무리 다시 찾고 또 찾아봐도 미로처럼 꼭꼭 숨겨둔 자신의 비밀창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그가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생각한 이 길이 맞는지.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 다시 한번 전생의 기억을 되짚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이 길이 맞았다. 혹시 몰라 다른 마나 줄기를 따라서 여러 번 돌아보았지만 없었다.

    “젠장…….”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품었던 커다란 희망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만 같은 생각에, 입에서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마치 일등에 당첨된 복권을 잃어버린 기분. 그 기분이 딱 이럴 것이다.

    -바스락

    작은 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앉아 얼마나 있었을까.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루카스가 추적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조금 전 그 소리는 들짐승의 것이었는지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짜증 나는군.”

    치미는 짜증에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긴 루카스는 텔레포트했다.

    ***

    이제 아만은 루카스를 따라붙는 것엔 선수가 되었다.

    두 번 세 번 자신의 존재를 지워 투명화 마법을 시전한 그가 루카스를 따라 텔레포트했다.

    다시 그 절벽이었다. 전대 로드의 레어.

    작은 인간 꼬마를 향한 호기심이 다시 한번 극대화되었다.

    루카스는 혹시나 따라붙는 자가 있을까 수시로 추적마법을 펼쳤지만, 한낱 인간이 드래곤의 마법을 간파하기는 어려웠다.

    “흠, 흠…… 거기 있는 것을 다 안다!!! 모습을 보여라!!!”

    그러더니 허공에 대고 마치 다 안다는 듯 소리까지 쳐 보였다. 혹시나 해 모습을 드러내려던 아만이 잠자코 있자, 그는 무언가를 확신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만의 머릿속엔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신이나 드래곤은 아닌 것 같은데….’

    그를 따라붙기 전에 세운 가설 중 하나가 ‘신의 유희’ 였다.

    신들도 종종 중간계나 다른 이계로 유희를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루한 영생 동안 주어진 그들만의 휴가. 아만은 루카스의 존재가 철두철미한 신의 잘 짜인 유희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연극의 대본을 짜듯 처음부터 아주 철저하게 잘 짜인 그런 유희.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보이는 허술한 모습까지 계산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농락이 아닐까 싶었다.

    짓궂기로 소문난 신들의 이름을 머릿속으로 곰곰이 되뇌던 아만은 다음에 보이는 그의 행동에 다시 한번 의문을 품었다.

    ‘도대체 저 돌부리에 뭐가 있는 거야?’

    작은 소년은 돌부리 위에 손을 올리고 한참을 눈을 감고 있더니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기를 몇 번. 마지막엔 좌절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저것도 다 연기면…… 진짜 소름 돋는 신이다.’

    오스스 돋아난 소름에 제 팔을 감싸 안은 아만이 숨죽여 그를 지켜봤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루카스가 무릎 사이에 고개를 처박더니 머리를 감싸 안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주문인가 싶어 귀를 쫑긋 세웠지만, 절반이 넘는 말이 모두 욕설이었다.

    입에 담기도 힘든 험한 말을 생생한 라이브로 듣고 있자니 다시 한번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역시… 신은 아니야… 신이 저렇게 욕을… 아냐 아닐 거야.’

    지난번 로브를 쓴 사내들을 상대했을 때가 떠오르자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설령 저자가 진짜 유희를 나온 신이라도 된다면 그것 또한 문제였다.

    ‘저렇게 욕을 하는 신이라면 분명 욕의 신이라는 이름이어야만 해.’

    -바스락!

    얼마나 지났을까. 다리가 저리던 아만이 살짝 자세를 바꾸려 몸을 틀다가 그만 나뭇가지에 발이 걸리고 말았다.

    그 소리를 들은 루카스가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한번 추적마법을 펼쳤다.

    저 반응까지 보고 나니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신은 아니다. 드래곤은 더더욱 아니야. 그렇다면…….’

    루카스가 떠나고, 한참을 숨죽이고 있던 그가 돌부리 곁으로 다가섰다.

    돌부리 위에 마나를 흘려보내 봤지만, 이것은 평범한 돌부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의문만 쌓여가던 그때, 아만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신이 퇴출당한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자 모든 수레바퀴가 맞물려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신의 뜻을 거스른 신들 중 몇몇은 중간계로 퇴출당해 몇백 년씩 삶을 윤회하는 벌을 받는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확인된 바는 없었지만, 가설 중 하나라면 이것이 가장 가능성이 짙었다.

    ‘하지만… 신이 퇴출당한 거라면 전대 로드의 레어에는 왜…?’

    다시 한번 떠오르는 의문에 아만의 미간이 좁아졌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천사?’

    전대 로드가 죽고 나서 천계에 올라가 천사에게 부탁을 했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생각 역시 금세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굳이 천사가 힘도 쓰지 못하는 저런 모습일 이유는 없지.’

    세차게 고개를 흔든 아만이 다시 생각에 잠겨 들기 시작했다.

    -짝!

    생각을 마친 아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한번 쳤다.

    “아니… 맞아….”

    제 자리를 맴돌며 혼잣말을 하는 아만의 머릿속에는 드디어 이 문제가 풀어졌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올랐다.

    ‘신의 윤회가 확실하다. 전대 로드와 친분이 있는 그런 신의 윤회!’

    아만의 결론은 처음과 같은 ‘신의 윤회’였다.

    그것이 아니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거니와 전대 로드는 반만년을 살아낸 엄청난 고룡이었으니 신과 친분이 있다는 것쯤은 있을법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역시…… 그런 거였어!! ”

    가능성을 확신에 가깝게 두고 나자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속이 다 시원했다.

    ‘저 꼬마가 정말 윤회로 인간의 생을 사는 중인 신이라면….’

    아만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이 아만이 도와드려야지! 그럼!”

    당찬 목소리로 외쳐 보인 그가 루카스를 따라 텔레포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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