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그릇된 욕망. (2)
브랑디가 떠난 뒤 오두막에 홀로 남은 루카스는 속이 뒤틀렸다.
초인적인 힘으로 그의 목을 따는 것을 참아낸 루카스는, 자칫하면 터져버릴 것만 같은 마력을 잠재우느라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이런 같잖은 자식이……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사내는 루카스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의 손을 이끌고 오두막을 나섰다.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걸어가는 사내에게 손을 붙잡힌 루카스는 거의 뛰다시피 그를 뒤따랐다.
‘이런 배려심도 없는 인간 자식!’
짧은 제 다리를 원망하며 그를 뒤따르던 루카스의 숨이 차오를 때쯤 사내는 숲속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크큭… 꼬마야…. 이제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단다…….”
사내의 말에 눈을 부릅뜬 루카스는 마지막 남은 인내심을 쥐어짜 내 그 상황을 참아냈다.
‘그 좋은 곳에 당장이라도 보내주고 싶군.’
말을 마친 사내가 손을 들어 한 줄기 빛을 쏘아 올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두 사람 곁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 같은 검붉은색 로브를 걸친 자들이었다.
“질 좋은 제물이 왔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오늘이 몇 번째인지… 오늘은 꼭 성공했으면 싶네요.”
루카스를 본 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어렵게… 구한 겁니다…….”
‘제물’이라는 단어에 루카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감히 같잖은 인간 놈들이… 이 몸을 제물이라고 칭하다니!’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저 인간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투명화 마법을 쓰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아만에게 씹기 좋은 먹거리를 던져줄 수는 없으니.
사내가 손을 놓아주자 루카스의 곁으로 인영들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총 여덟이군.’
자신을 둘러싸는 인간들의 숫자를 속으로 세어보는 루카스.
여덟 명의 인간이라. 크게 놀라운 숫자도 아니었다.
인간을 제물로 바칠만한 일에 여덟이라니. 오히려 적은 숫자로 보였다.
‘다른 곳에 더 있을 가능성이 있겠어.’
계산을 마친 루카스가 다시 순수한 표정을 장착한 채 인간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력을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은 제게 없었으나 오천 년을 살아온 짬이 있지 않은가.
대충 둘러봐도 어느 인간이 서열이 가장 높은지는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없군. 이곳에 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없어.’
루카스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이곳에 이들에 수장으로 보이는 이는커녕 중간 간부급조차도 없었다.
이들은 그저 조직의 하위급 인물들인 듯했다.
“자, 그럼 시작할까요?”
“이번에 성공하면 저희도 이제 한 자리씩은 약속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좋겠군요…. 클클클…….”
말을 마친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루카스를 가운데에 두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루카스는 이들이 외우는 주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흑마법인가. 영혼을 바쳐 뭘 하나 했더니… 인간 놈들은 어째 변하질 않는군.’
그들이 외우는 주문은 영혼을 빼내어 가두는 흑마법이었다.
인간들이 영혼으로 무언가를 할 때면 저 빌어먹을 마법은 꼭 등장하고는 했다.
그들이 중간쯤 주문을 외워가자 루카스는 슬슬 불안하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가고 있었고 지금쯤 아만이 ‘짠’ 하고 나타나 이들을 소탕해야 맞는데 아만은커녕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마법을 외우는 입 모양만 봐도 알 텐데?’
그들이 외우는 마법이 무엇인지는 마법진이 그려지기도 전에 아만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아만은 모습을 나타내질 않고 있었다.
마법진이 70퍼센트 정도 완성이 되자 루카스의 불안은 점점 더해갔다.
‘이런 미친 도마뱀 자식은 왜 아직도 안 나타나?!’
주변에 느껴지는 기척을 더 알아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탐색 마법 한 번이면 찾아낼 수 있었을 테니, 제 발로 사람이 더 있는지 찾으러 갔을 리도 없었다.
80퍼센트.
루카스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이거 완성되면 나는 영혼만 빨리고 껍데기만 남을 텐데?!’
90퍼센트.
‘이런 씨X!!! 그럼 환생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 아냐!!!’
95퍼센트.
그의 한계는 여기까지였다. 그가 손을 높게 치켜들어 마나를 끌어모았다.
‘뒈지지만 마라!!’
루카스의 손끝에 모인 마나가 결국 폭발했다.
-콰쾅!!!
대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주문을 외우던 자들은 모두 멀리 날아가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짝, 짝, 짝
뒤에서 들리는 박수 소리에, 완성이 되다 만 마법진 위에 선 루카스의 눈에 분노가 가득 차올랐다.
“역시! 우리 총명하신 루카스님! 혼자서도 잘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이런 미친 새끼!!!”
-콰쾅!
결국 루카스는 여태껏 눌러온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말았다.
루카스의 손에서 빠르게 쏘아진 마법을 한 손을 들어 가볍게 흩어버린 아만의 입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피어났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이다.
“힘이 넘치시네요. 하마터면 저도 날아갈 뻔했어요.”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만의 몸짓에 루카스의 입에서는 거친 욕지거리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X부럴 새X. 너 이 X자식 내가 방금 영혼이 쏙 빨려 껍데기만 남을 뻔했는데 그딴 X소리가 잘도 씨부려지지? 응?”
작은 인간의 입에서 미친 듯이 쏟아지는 욕지거리를 듣는 아만은 놀랄 법도 하건만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어머나! 욕은 나쁜 거예요!”
게다가 손을 올려 입을 틀어막는 아만의 몸짓에 정말이지 치가 떨렸다.
아만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나 힘이 넘치셔서야… 불빛 하나 겨우겨우 불러내시던 우리 루카스님께 이런 능력이 있으실 줄이야!”
명백한 고의였다. 루카스의 힘을 불러내기 위한 아만의 설계.
“……뒈지고 싶어? 이런 X자식이 X물에 튀겨 죽여도 시원찮을 X자식아.”
작은 입에서 나오는 거친 욕설에 아만은 다시 한번 과장되게 제 팔을 끌어안으며 몸을 흔들어 댔다.
“그게 무슨 험한 말씀이신가요!?”
루카스의 눈이 형형하게 빛나자 아만은 작은 인간에게 왠지 모를 위압감을 느꼈다.
살짝 움츠러든 아만의 모습에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루카스가 길게 한숨을 뽑아냈다.
“하…… 그만하지. 재미없으니까 말이야.”
아무리 작은 인간의 몸에 갇혔다 해도 여태껏 살아온 세월이 몇 년인가.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도 없었고 제 입에서 이미 뱉어진 욕지거리를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눈앞에 있는 저 같잖은 도마뱀의 장단에 맞출 필요가 있었다.
“그보다 이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어깨를 으쓱이는 아만에게 손을 휘휘 저어 보인 루카스가 몸을 돌렸다.
더 이상 저 미친 도마뱀을 상대해서 좋을 것은 없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죠.”
말을 마친 루카스가 주변에 널브러져 피를 토하고 있는 사람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알아서 수습하세요.”
***
‘미친 도마뱀 새끼. 다 알고 있었어.’
본인이 했던 의심은 틀리지 않았다. 능구렁이 같은 아만은 모두 알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까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였을지언정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즉에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 구실이 필요했던 차에 기회가 찾아온 거겠지.
그런데 그 기회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었다. 제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루카스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아만을 다시 찾아가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몸은 나약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시 태어나도 드래곤인 아만을 이길 방법은 그 무엇도 없었다.
그는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당장 제 목숨을 끊어내고 신이 될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 그 계획을 실행하려 했다.
하지만 손에 마나를 끌어모으던 그때, 집을 떠나오기 전에 들었던 어미인 블레인의 구슬픈 통곡이 제 귓가를 울렸다.
그녀가 마치 곁에 있는 것처럼.
그 생생한 기억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젠장!”
손에 모았던 마나를 거칠게 땅에 쏘아 보낸 그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래. 까짓거 제대로 보여주지.”
루카스가 작은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같잖은 인생 내가 한번 제대로 살아주지.’
***
현장에 남은 아만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루카스를 둘러싸고 있던 사내들은 멀찌감치 나가떨어져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끄윽… 끅…….”
갑작스러운 충격에 정신을 잃은 이도 몇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중 그나마 정신이 온전한 사내에게 다가갔다.
“자, 이제 말을 해보실까? 우리 아카데미 학생에게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그는 지금 기분이 상당히 좋지 못했다.
루카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평소라면 저런 밤톨만 한 인간 꼬마에게 욕지거리를 들을 일도 없거니와 들었다 해도 가만두지 않았을 터였다.
‘엄청난 욕이었다. 살면서 이런 치욕스러운 순간은 없었어.’
게다가 이 발칙한 꼬마가 턱짓을 척 해가며 본인을 수하 부리듯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가장 기분이 나쁜 것은 자신에게 그런 못된 태도를 보인 작은 꼬마에게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 꼬마가 시킨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작은 몸에서 풍기던 왠지 모를 위압감과 위화감은 드래곤인 아만에게도 느껴질 만큼이었다.
‘걔가 시켜서 하는 건 절대 아냐. 이건 내 유희에 필요한 거라서 하는 거야…….’
아무리 자신을 달래고 합리화를 시켜 보아도 이미 뭉개져 버린 자존심은 도통 회복이 되질 않았다.
그 모든 불똥이 지금 누워있는 인간들에게로 튀고 있었다.
“건방진 종자들이 감히 아카데미 학생에게 손을 대는 것도 모자라서… 내 것에 침을 발라?”
그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감히!”
-빡!!!
하늘에서 마법이라도 쏟아질 거라 예상해 눈을 질끈 감았던 사내의 눈앞에 별이 보였다.
“내가! 침 발라놓은!”
-빡!!! 빡!!!
“끄악! 끄악!”
“소중한! 내! 유희거리에!”
-빡!!! 빡!!! 빡!!!
“끄악! 깍! 꺽!”
한 대, 두 대, 세 대! 너무나도 단순하고 무식한 아만의 폭력에, 사내는 아픔보다는 서글픔이 몰려왔다.
‘차라리… 차라리 마법을 써!!!’
밀려드는 고통에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이 사내의 입안을 맴돌았다.
***
“그게 정말입니까?”
“네, 루카스 군을 해하려고 했던 자들은 제가 모두 잡아 지하 감옥에 가두라 했습니다.”
“이런… 정말 큰일이 날 뻔했군요.”
상황을 정리하고 학장실에 찾아간 아만이 상황을 보고하자, 알베르토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큰일을 해주어 고맙습니다. 아만 교수.”
“아닙니다. 학생을 지키는 것은 제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능청스럽게 웃어 보이는 아만을 바라보던 알베르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제가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아만이 그의 뒤를 따르자 알베르토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
“저 혼자 가볼 테니 교수께서는 다른 업무를 보러 가셔도 괜찮습니다.”
“아, 그렇다면야… 그럼.”
짧게 묵례를 한 아만이 물러서자 알베르토는 빠르게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알베르토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만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저들의 기억은 지워뒀으니 루카스가 마법을 썼던 것은 기억하지 못할 테고…….’
빠른 걸음으로 코너를 돌아 사라지는 알베르토.
“그런데 저 인간은… 왜 저렇게 똥 마려운 개처럼 종종거려?”
가슴 한편에서 피어나는 작은 의심을 애써 무시한 아만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