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그릇된 욕망. (1)
루카스는 짜증이 일었다.
하지만 그가 저 주문을 행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기에 루카스는 일단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다시 눈을 돌려 책장을 넘기던 때에 브랑디가 입을 뗐다.
“제가… 드디어 마법을 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흠흠, 이 늙은이가 조바심이 나 이렇게 입을 여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괜찮으니 말씀해 보세요. 저 또한 어디에 가서 말할 곳은 없으니.”
“…그게.”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그의 입을 바라보던 루카스는 저 늙은이의 입을 콱 틀어막고 싶었다.
오늘 아침 누군가 브랑디를 찾아왔고 그에게 마법사가 되게 해주겠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조금 전 루카스가 보았던 그 주문이 완성되기만 한다면 누구나 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말에, 그는 덥석 그 주문을 받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모자라 주문을 완성할 수 없다는 그들의 말에, 브랑디는 ‘그것이 무엇이냐’ 물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다름 아닌 영혼의 계약.
브랑디가 당장 제 늙은 영혼을 가져가라 했지만, 그들은 어리고 순수한 영혼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리고 순수한 영혼이요?”
“네. 어리고 순수한 영혼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그것을 어디에서 구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들의 말로는 영혼과의 계약일 뿐 육체나 정신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저 영혼에 깃든 힘을 조금 빌려 쓰는 것이니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라고…….”
“그게 무슨!!!”
절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영혼에 깃든 힘을 빌려 쓴다니? 무슨 땅을 빌려 소작을 하는 농사꾼도 아니고 영혼의 일부를 빌린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린 브랑디는, 황성 주변에 있는 보육원에라도 가 그 영혼들을 구할 심산이었다.
“루카스 군은 아직 어려 잘 모르겠지만 세상엔 위대한 마법사들이 많습니다. 그저 영혼만 조금 빌려다 주면… 이 늙은이의 꿈이 이루어질 겁니다.”
위험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왔던 마법이라는 목표가, 청년의 꿈이, 노쇠한 몸에 갇혀 빛을 발하지 못하게 생기자, 눈앞에 있는 늙은 인간은 판단력이 흐려져 그릇된 일을 하려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됩니다. 영혼을 잠시 빌려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서님. 이 문제는 다른 인간…… 아니, 어른들과 상의하셔야 맞을 것 같군요.”
말을 끝마친 루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때였다.
“당신은 모릅니다!!!”
“?!”
갑작스러운 브랑디의 외침에 루카스는 일으키려던 몸을 잠시 멈췄다.
“아무렇지도 않게 손에서 빛을 불러낼 수 있는 너는 모른다!!! 나는… 나는!!!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만들어 내기 위해 한평생을 노력했어!!!”
늙은 사서의 갈라진 목소리가 도서관을 울렸다.
-쾅!
노인의 광기 어린 모습에 결국 루카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 작은 불씨를 위해 네 놈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가!!!”
어린 루카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위압감.
그 위압감에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떤 브랑디가 이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 크하하하하!!”
“드디어 미쳤군. 단단히 미쳤어! 정신 차리게!!”
루카스의 입에서 울려 퍼진 간절한 외침.
그 간절함이 무색하게 브랑디의 웃음소리는 더욱더 커져만 갔다.
“크흑… 크흐흑… 흐흑…….”
웃음소리가 이내 잦아들고 숨이 넘어갈 듯 울려 퍼지던 웃음은 이내 울음으로 바뀌어 도서관을 덮었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알아요…….”
칠십이 넘은 노인. 그 깊은 주름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옷깃을 적시고 있었다.
그 역시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어린 영혼은 결코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 사실을 숨기고 싶어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어린 루카스에게 말함으로써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던 것이었다.
“사서 브랑디. 내가 도와주겠네.”
노인에게 다가선 작은 인간이 노인의 손을 붙잡았다.
작은 손이 제게 닿자 노인의 울음은 어느새 통곡으로 바뀌었다. 한 많은 세월을 쏟아내듯이.
‘이딴 개소리를 지껄인 게 어떤 인간인지 꼭 찾아내 족쳐주지.’
***
방으로 돌아온 루카스는 브랑디에게서 받아 온 주문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처음엔 그저 사이비 종교 집단처럼 영혼을 모아 바치려는 광신도들이거나 혹은 흑마법을 동경하는 자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도서관 사서인 브랑디에게 관심을 가지는 자는 누구도 없었다.
그가 어릴 때 마법을 동경했다는 것은 몇몇이 알고 있었지만 크게 관심을 둘만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그저 마법을 좋아하는 사서 정도로 모두가 그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자. 그의 과거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가 가진 가장 큰 열망을 끄집어내어 판단을 흐리게 하고 그릇된 일을 하게 만들뻔했다.
만약 그가 그 일을 정말로 실행에 옮겼더라면 아주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벌레만도 못한 자식들!!”
손에 있는 주문서를 통해 그들을 추적해 보려 했지만 흔적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어리고… 순수한 영혼이라…….’
브랑디의 말을 곱씹던 그가 무언가 생각난 듯 책상을 ‘탁’ 내리쳤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나갈 듯 몸을 들썩였던 루카스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내가 어리긴 어린데… 순수… 한가?”
***
‘방법이 없으니…….’
도서관에 들어선 루카스가 초췌한 표정의 브랑디를 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서님. 이 자들이 언제 온다는 말은 없었습니까?”
“……영혼을 빌려줄 아이가 구해지면 자신들을 찾아오라 했었습니다.”
“거기가 어딥니까?”
“그건 왜…….”
“도와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있잖습니까. 어리고 순… 수한 영혼.”
“아닙니다. 이 늙은이의 욕심에 루카스님을 끌어들여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습니다.”
이제 정신이 온전히 돌아왔는지 인자한 미소를 짓는 브랑디의 모습에 루카스는 짜증이 치밀었다.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제 마음을 아니 모르니 하더니 이젠 도와준대도 싫다고 하니.
이 늙은이를 도우려 어떤 일까지 했는데!
“사서님?”
“아, 아니! 아만 교수님께서 여긴 어떻게…….”
그때였다. 투명화 마법을 쓰고 루카스를 따라온 아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교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 사건이 무엇인지 낱낱이 파헤치려면 어른… 의 도움이 필요하니까요.”
“하하하. 우리 루카스 군은 정말 총명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는 아만의 얼굴에 그대로 침이라도 뱉고 싶었지만, 지금 그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것이다.
“허허……. 하지만 그러지 않으셔도 정말 괜찮습니다. 이 늙은이가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응? 아닙니다. 저는 브랑디님을 돕는다기보다는 대의를 위해 하는 일입니다.”
‘대의’라는 말에 커다란 강조를 덧붙인 아만이 말을 이어갔다.
“한낱 쥐새끼의 영혼을 가져다 바친다고 하더라도 조사가 필요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이용해 행하는 주술은 아란트에서는 금지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제국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저지를 뻔한 것을 저도 잘 아는지, 노인의 고개가 푹 숙어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일로 사서님께 책임을 묻는 일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활짝 웃어 보이는 아만의 표정에도 사서의 낯빛은 점차 어두워지기만 할 뿐 더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럼 가실까요?”
말을 마친 아만이 다시 투명화 마법을 시전했다.
***
황궁에서 멀지 않은 숲속에 있는 작은 오두막.
그곳에 도착한 루카스와 브랑디는 걸어오는 내내 투명화 마법으로 따라오는 아만의 속삭임에 정신이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저 미친 자식!!’
오두막에 가는 내내 아만의 입은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게 멈추지 않으면 모두 다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외쳤지요.”
자신이 겪은 무용담을 늘어놓는 아만의 주둥아리에 당장 돌이라도 쑤셔 넣고 싶었다.
게다가 더욱 짜증 나는 것은 루카스와 브랑디의 사이에 서서 속삭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만이 속삭일 때 가끔씩 불어오는 그의 입김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불쾌했다.
‘개 같은 퍼런 도마뱀 자식.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턱을 돌려 빼버리고 싶군.’
닥치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투명화 마법을 시전한 아만의 속삭임에 누군가 볼까 싶어 대꾸조차 할 수 없던지라, 둘은 그저 묵묵히 앞만 보고 걸을 뿐이었다.
-똑똑똑
브랑디가 오두막의 문을 두드리자 문이 스르륵 열렸다.
문을 열고 따라 들어서니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피 냄새……?’
분명 피 냄새였다. 오두막에서 풍겨오는 역겨운 피 냄새에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코를 틀어막았다.
“와주셨군요. 브랑디님.”
사내는 로브를 푹 눌러쓴 채 그들을 맞았다.
문을 닫기 전 사방을 살핀 사내가 문을 닫자, 피 냄새는 더욱더 진하게 풍겨오기 시작했다.
“네. 말씀하신 어린… 친구입니다.”
“크큭… 네, 잘하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사내의 눈길에, 루카스는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감히 어딜 훑어봐? 더러운 새X. 눈알을 확 뽑아버릴라.’
당장이라도 모가지를 비틀어 따버리고 싶은 충동이 북받쳤으나, 꾹 참아낸 루카스가 최대한 순수한 영혼인 척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내를 바라봤다.
‘이, 이 정도면 순수해 보이나?’
저들이 순수한 영혼을 어떻게 판가름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최대한 순수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인 루카스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냥 혀를 깨물고 죽었어야 했어.’
-탁!
“윽!”
그때였다. 루카스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사내가 갑자기 손을 뻗어 루카스의 턱을 거칠게 잡아 들어 올렸다.
“아주… 아주 좋군요.”
갑작스러운 사내의 행동에 루카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루카스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감상을 뱉어냈다.
“크큭… 감사합니다. 조만간 우리 브랑디님도 염원을 이루실 겁니다.”
루카스의 어깨를 감싸 제 쪽으로 당긴 사내의 기분 나쁜 웃음이 귓가를 울렸다.
“그럼 이제 저는 뭘 하면 됩니까?”
“돌아가 계시면 제가 연락을 드리지요…….”
루카스의 손을 잡아끄는 사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럼 아이는 제가 데려가도 됩니까?”
“돌아가 계시면 연락을 드린다고 했을 텐데요?”
브랑디가 재차 물어오자, 사내의 목소리에서는 더 이상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차게 식은 그의 음성을 들은 브랑디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예…. 걱정하지 마시고 돌아가 계시지요…. 이 아이는 무사할 테니…….”
사내의 대답에 브랑디는 루카스를 한번 흘끗 돌아본 뒤 오두막을 나섰다.
‘이제 내 역할은 끝났다…….’
브랑디에게는 사내를 상대할 힘이 없었다. 루카스는 안전할 것이다. 아만 교수가 루카스를 지켜줄 것이니까.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