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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8화 (8/225)
  • 8화. 도대체 정체가 뭐야?!

    ‘역시, 이럴 줄 알았어.’

    레어 앞에 도착한 다른 사내는 나무 뒤에 숨어 루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내는 다름 아닌 아만 티노어. 아카데미의 교수직을 맡은 그는 사실 유희 중인 블루드래곤 ‘아마록 테리디어’였다.

    그가 처음으로 떠났던 유희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미물이라고 느껴질 법한 인간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전혀 몰랐기에, 한 마을을 몽땅 불태우고 끝나버린 유희.

    그 유희를 끝으로 아버지인 하셀에게 10년 동안 외출 금지까지 당했었더랬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한 유희 초반부에 찾은 저 작은 인간의 존재 덕분에, 지금 아만은 즐거워 미칠 것만 같았다.

    ‘저 귀여운 것…!’

    루카스의 움직임을 매일같이 관찰하고 끈질기게 따라붙은 결과, 저 작은 인간 꼬마의 실체를 드디어 밝혀낼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그는 뛸 듯이 기뻤다.

    유희 중에 찾아낸 작고 어린 인간. 저 발칙한 꼬마의 머릿속을 드디어 낱낱이 파헤칠 수 있겠지!

    어찌나 기쁜지 숨까지 거칠어져 콧구멍이 볼썽사납게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까짓게 대수인가!

    ‘……로드의 레어?’

    하지만 아만은 루카스를 따라붙으며 투명화 마법까지 써서 온 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리자 혼란스러움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로드는 아만의 아버지인 하셀 테리디어였지만, 이곳은 틀림없이 십여 년 전에 죽은 전 로드, 라노스 알브란테의 레어가 분명했다.

    ‘……이게 지금 무슨!!’

    아만의 눈동자가 흥미로움에서 경악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전대 로드의 레어 앞을 서성이는 루카스를 본 아만의 머릿속엔 온갖 생각들로 가득했다.

    ‘저게 뭐야? 분명 인간이 맞는데?’

    그는 좀처럼 충격에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인간이 절벽 아래 서서 한참을 서성이는 것을 보며, 그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시타타에서 찾아낸 작은 원석. 인간인 줄로만 알았던 그가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신들도 종종 유희를 내려온다고 하던데… 신?’

    하지만 그 가정은 얼마 가지 않아 아니라고 결론이 나고 말았다. 로드리고 백작가에서 어렵게 얻은 아들임을 본인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양을 한 흔적도 물론 없었다. 시비에 백작과 블레인 백작부인을 반반씩 꼭 빼다 닮은 루카스의 얼굴 또한 그러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폴리모프 할 수 있었겠지만 느껴지는 기운 중에 인간이 아닌 그 어느 것도 없었다.

    그가 드래곤이었다면 더더욱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스치는 기운만으로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한참을 서성이던 루카스가 작은 돌부리 위에 손을 가져다 대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아만은 정체를 드러내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가 뭘 하든지 저와는 상관이 없었지만 이곳은 드래곤의 레어. 혹시라도 결계를 건드리는 순간 저 인간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가진 이 의문과 호기심은 영영 풀리지 않을 것이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나요? 우리 루카스 군.”

    아만이 목소리를 내자 루카스가 벌떡 몸을 일으켜 그를 돌아봤다.

    “……아만?”

    “이젠 뭐라고 불러드려야 맞습니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루카스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호기심에 두근거리는 아만의 심장은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진짜 너무 재밌는 걸 찾아버렸잖아?!’

    ***

    본인의 레어 앞에 인간의 모습으로 선 루카스는 왠지 모를 묘한 기분에 입구 앞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벽을 어루만지며 숨을 몇 번이나 들이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인간의 눈에는 그저 돌로 이루어진 벽에 불과했지만, 이 벽 너머엔 자신이 라노스 알브란테로 살던 때의 집. 드래곤 레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돌산 안에 숨겨둔 레어. 전생엔 당연히 제집이었기에 드나드는 것이 자유로웠지만, 용언으로 만들어진 결계는 한낱 인간이 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 수식을 안다 해도 용언이 더해지지 않으면 절대 깨어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루카스는 절벽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창고!’

    그곳에 얼마나 서 있었을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짧은 생각에, 루카스는 발걸음을 옮겨 작은 돌부리 앞에 멈춰 섰다.

    레어 전체에 둘린 결계와 달리 전생에 그가 만들어 둔 작고 소중한 공간. 그 창고엔 용언을 사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돌부리 위에 조심스레 손을 올린 루카스가 천천히 의식을 집중했다.

    창고를 겹겹이 둘러싼 은신마법 덕분으로, 누구도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면 찾지 못하게끔 조치를 취해 뒀었다.

    자신이 소멸할 때 집은 통째로 넘겨줄지언정 창고까지는 주지 않았던 작은 욕심이 이렇게 빛을 발하나 싶었던 때였다.

    “여기서 뭐 하고 있나요? 우리 루카스 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란 그가 벌떡 일어나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아만?”

    “이젠 뭐라고 불러드려야 맞습니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갑작스러운 음성에 놀란 루카스의 심장은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루, 루카스 로드리고인데요!?”

    미쳤다. 하필 걸려도 저런 또라이 같은 도마뱀에게 걸릴 것은 또 뭐란 말인가?

    게다가 ‘루카스 로드리고인데요.’라니? 루카스는 지금 당장이라도 멍청한 자신의 입을 뭉개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저 미친 도마뱀 자식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지금 느끼는 감정은 당황스러움 그 이상이었다. 도저히 이 난관을 타파할 방법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재미있다는 듯 능글맞게 눈을 빛내며 웃고 있는 저 도마뱀의 면상을 한 대 콱 갈겨주고 싶었지만, 저 드래곤을 이길 힘은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다 해도 인간인 자신에겐 없을 것이 분명했다.

    “…….”

    “하하!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1서클 언저리밖에 되지 않는 우리 루카스 군의 마법이 언제 이렇게나 발전했지요? 3서클 이상은 되어야 쓸 수 있는 텔레포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쓸 만큼?”

    아카데미에서 제게 반말을 하며 다정하게 대하던 그 능글맞은 도마뱀은 다시 제게 깍듯이 존대를 하고 있었다.

    “스, 스크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수만 가지의 변명 중에 그나마 가장 그럴싸해 보였던 대답이 급한 마음에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하, 스크롤을 써서 왔다는 말인가요? 이 척박한 절벽 아래를요?”

    “예, 예! 맞습니다. 스크롤을 썼어요.”

    “흐음… 그렇다는 말이지요……?”

    오천 년의 용생 동안에도 이렇게 당황스러운 일은 겪어본 적이 없었다.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지금은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혹시라도 저 촐싹대는 도마뱀에게 제 정체를 들켰다가는 평온하게 이 생을 끝낼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것이 맞았다.

    제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던 드래곤들에게 이 이야기가 들어간다면 어떤 끔찍한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루카스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 주웠습니다!”

    “호오… 어디서요?”

    “그, 그게…….”

    루카스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아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마법 스크롤은 굉장히 귀한 것인데 그 귀한 것을 어디에서 주웠으며… 우리 루카스 군은 그 스크롤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쭉! 찢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거네요?”

    양손으로 스크롤을 찢는 시늉까지 해 보이는 아만이 루카스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아만은 바보가 아니었다. 물론 스크롤과 텔레포트의 성질은 완전히 같은 것이었기에 추적을 한다 해도 그것이 스크롤이었는지 텔레포트였는지 알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루카스의 뒤를 밟은 아만은 그것이 스크롤이 아닌 텔레포트였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걸 어쩌지? 그냥 뭐 대충 넘어가 줘?’

    아만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재밌었다. 유희 중에 이렇게나 즐거운 일은 처음이었다.

    전쟁에 나가 온갖 술수를 부려 인간들을 골탕 먹였을 때도, 제 아버지의 아티팩트를 훔쳐 시간을 비틀었을 때도 이보다 즐겁지는 않았었다.

    그는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작은 인간이 주는 즐거움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루카스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선 아만은 관자놀이 옆에 검지를 살포시 가져다 대며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흐음~”

    ‘저 핏덩어리 자식이!!!’

    그 모습을 본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마나를 손끝에 모아 그대로 쏘아버릴 뻔했다.

    “흐으음~”

    손을 바꿔가며 고민하는 시늉을 하던 아만이 드디어 손을 내리고 허리를 숙여 루카스와 눈높이를 같이 했다.

    “루카스 군. 다음부터는 그런 스크롤은 제게 가져오도록 하세요. 이렇게 위험한 곳에 혼자 오면 안 됩니다. 알겠죠?”

    루카스는 침을 꼴깍 삼켰다.

    ‘…넘어가 주는건가?’

    그 모습을 본 아만은 눈을 접어가며 활짝 웃었다.

    “자, 그럼 우리 돌아갈까요?”

    아만이 내민 손을 살짝 붙잡자 장면이 바뀌었다. 다시 아카데미였다.

    ***

    아카데미에 도착한 뒤 아만은 루카스를 향해 손까지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며 능청을 떨었다.

    그가 떤 것은 능청이었지만 그 때문에 루카스는 치가 떨렸다.

    언젠가, 언젠가는 저 드래곤의 모가지를 ‘똑’ 하고 따버리는 상상을 천 번쯤 하고 난 뒤에야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졌다.

    ‘저 능구렁이 같은 도마뱀 자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 당분간은 조심하는 게 좋겠어.’

    바보가 아닌 이상 루카스가 하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리는 만무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어떻게…….’

    한참을 복도를 걸으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머리 한편이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10여 년을 지켜본 결과, 본인이 태어난 로드리고 백작가는 점차 가난해지고 있었다.

    맨 처음 시타타로 쫓겨났을 때만 해도 손에 쥔 것이 그렇게 없지는 않았으나, 사용인들과의 의리를 지키겠답시고 그들을 계속 고용해 쓰고 있는 것부터가 문제가 되었다.

    그들의 월급에 낡은 저택을 관리하는 비용들까지.

    먹고 입는 것. 그 모든 것이 돈, 돈, 돈이었다.

    그러다 보니 백작가의 재정은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본인까지 아카데미에 입학을 했으니 조금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그 때문에 루카스는 조금이나마 백작가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방학에도 집에 가지 않으려 했다.

    ‘궁상맞은 집구석…….’

    기숙사에 들어서자 방문 앞에 놓인 편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 번은 백작가에서 편지가 왔다. 내용은 언제나 비슷했지만 그 안에 담긴 백작부부의 마음은 항상 여실히 전해졌다.

    편지를 열어보니 이번에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이제 날씨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니 시타타에도 눈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

    길이 미끄럽지 않을 날이 머지않았구나. 그곳은 어떻니? 우리 아들의 마음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니?

    보고 싶다. 엄마가.-

    편지를 덮은 루카스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졌다.

    “흥… 봄은 무슨…….”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다소 차가웠지만 편지를 읽고 나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은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래. 저 같잖은 해츨링 자식이 뭐라고 하든 나는 이번 생을 잘 끝내봐야겠다.’

    책상 위에 편지를 놓아둔 루카스가 방문을 나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장소가 구해지기 전까지 놀고만 있느니 무엇이라도 해보려는 마음이었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브랑디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저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 루카스 군!”

    왠지 모르게 더욱 들떠 보이는 그의 표정에 루카스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허허, 아닙니다. 이 늙은이에게 기분 좋은 일이 무에 있겠습니까?”

    “그렇습니까.”

    브랑디는 일전에 루카스가 부탁해 놓은 책을 찾아뒀다며 루카스를 안내했다.

    평소와 같이 브랑디와 마주 앉아 책을 보던 루카스의 눈에 주문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들어왔다.

    ‘저건……?’

    루카스의 눈빛이 일순 매섭게 변하자, 그것을 본 브랑디가 얼른 종이를 들어 책 사이에 집어넣었다.

    “별거 아닙니다.”

    어색하게 웃는 그의 얼굴과는 달리 루카스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분명 저주와 관련된 주문이 분명했다. 평생을 마법 연구에 매진했다 한들 브랑디의 나이는 고작 칠십에 불과했다.

    오천 년을 살아냈던 자신과는 달리 브랑디는 저 주문이 무엇인지 모를 가능성이 다분했다.

    꽤 실력 있는 마법사가 적은 듯한 주문 수식에는 한 인간을 파멸로 이끌기엔 충분한 힘이 담겨 있었다.

    ‘저건 또 무슨 짜증 나는 종이 쪼가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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