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7화 (7/225)

7화. 오랜만이야.

“이상해…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야…….”

루카스가 떠난 뒤 학장실에 혼자 남은 알베르토는 풀리지 않는 의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알베르토의 허락에 문이 열리고 이어 아만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오, 그래 아만 티노어! 마침 잘 왔네.”

“하하, 이렇게나 반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있지, 문제가 있고말고…….”

“어떤…….”

아만이 자리에 앉자 알베르토는 조금 전 루카스에게 보였던 마법석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1서클 정도 되더군.”

“그게 무슨……?”

“루카스에게 이 마력 측정석을 써보았네. 주문도 외우지 않고 라이트 마법을 보였어. 아니, 보였다기엔 미미한 불빛이긴 했지만 말일세.”

“흠…….”

“나는 적어도 그 아이가 2서클, 아니 3서클 정도의 마력은 지니고 있을 거라 생각했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더군.”

말을 마친 알베르토가 마력석 위에 제 손을 가져갔다.

순간 환하게 빛나는 마력석의 불빛은 방 안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빛을 일으켰다.

“혹시나 마력석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몇 번이나 측정해 보았네만… 보다시피 마력석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

알베르토의 말을 들은 아만의 머릿속엔 온갖 생각들이 몰려왔다.

자신이 느낀 루카스의 마력은 분명 5서클 이상이었다. 장차 대륙의 대마법사를 바라보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풍부한 마력. 그런 원석을 캐내어 왔건만 1서클이라니?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아직은 믿고 싶지 않네. 그러니 자네가 옆에서 지켜봐 줄 수 있겠는가?”

조심스레 묻는 알베르토의 말에 아만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짧게 묵례를 한 뒤 방을 나서는 아만의 가슴속엔 왠지 모를 희열이 가득 차올랐다.

‘아주, 아주 재미있는 유희가 되겠어.’

발칙하게 제 실력을 숨긴 인간 꼬맹이라니! 백작저에서 자신이 느낀 것이 틀린 게 아니었다.

혹시나 싶어 알베르토에게 넌지시 마력을 측정해 보자 한 것인데, 저 인간 꼬맹이는 백작저에서와 같이 제힘을 감쪽같이 숨겨냈다.

‘재밌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아!’

아만은 즐거워 죽겠다는 듯 몸을 떨며 발을 동동 굴렀다.

찰나와도 같은 인간의 짧은 생명. 하지만 이런 재미있는 생명은 곁에서 지켜볼 맛이 날 것이다.

“하하하!!”

어찌나 신이 났는지 체면도 잊은 채 복도 한가운데서 크게 웃음을 터트린 아만의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가벼웠다.

‘귀여운 꼬맹이. 곁에 두고 쪽쪽 핥아 먹어주마.’

***

방으로 돌아온 루카스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혹시 방이 추운 건가 싶어 커튼을 꼼꼼히 닫은 그가 책상 앞에 앉아 책자 하나를 손에 들었다.

‘아란트 마법 아카데미 안내서’라고 적힌 책자는 말 그대로 신입생을 위한 아카데미 안내서였다.

그 책자엔, 7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름의 역사를 비롯해 전반적인 학교 안내와 지도, 교수진을 포함해 학교에서 근무하는 인물들의 초상화와 직책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꽤 자세하군.”

책자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루카스의 눈이 한곳에 멈추어 섰다.

-도서관-

‘도서관이라…… 인간들의 책을 읽은 지 얼마나 되었지?’

드래곤에게 인간들의 책이란 무척이나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인간들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를 비롯한 그들의 이야기는, 몇천 년을 살아내는 드래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유희를 나왔을 때 가끔 드래곤에 관한 이야깃거리를 호기심에 몇 권 읽어 본 적은 있었다.

‘드래곤의 신부’, ‘드래곤뼈의 효능’과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제 종족들의 이야기를 진실인 양 써놓은 것이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여 몇 권 읽어본 것이 전부였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래된 책 냄새가 훅 끼쳐왔다.

총 2층으로 이루어진 도서관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통 책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온 세상에 있는 책이란 책은 다 가져다 놨나 보군.’

수많은 책더미 사이에서 본인이 원하는 책을 어떻게 찾아낼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가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이 도서관의 사서인지 기다란 로브를 발목께까지 늘어뜨린 백발의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아, 신입생입니다. 책을 좀 읽고 싶은데요.”

“허허……. 입학식은 바로 어제가 아니었습니까? 참으로 배움에 열정이 남다른 신입생이시군요.”

사람 좋게 웃어 보인 노인은 어린 루카스에게도 깍듯이 존대했다.

루카스는 그런 노인이 참 마음에 들었다.

“저는 브랑디 트렌다이언이라고 합니다. 이곳 도서관의 사서이지요.”

“……?”

브랑디 트렌다이언. 그 이름을 들은 루카스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 놀라십니까? 제 이름에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저는 라노… 아니, 루카스 로드리고입니다.”

하마터면 전생에 자신이 가진 이름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브랑디… 벌써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렀나…….’

지금 도서관의 사서가 되어 눈앞에 서 있는 백발의 노인은 루카스가 전생에 만난 적 있는 인물이었다.

“이걸 읽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잠시 과거의 기억에 빠진 듯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루카스의 앞에 그가 책 한 권을 건넸다.

-마법이란 무엇인가?-

책 제목을 본 루카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다른 것을 찾고 있습니다.”

“어떤 책을 찾고 계시는지요?”

“음……. 마나에 관한 책을 찾고 싶습니다.”

“호오…….”

루카스의 대답에 브랑디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마나의 원초적인 힘을 연구하고 싶군요.”

“껄껄껄!”

열 살 작은 꼬마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브랑디는 큰 도서관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루카스는 알고 있었다. 저 웃음이 가진 의미가 어떤 것인지.

지금은 하얗게 센 백발의 곱슬머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리고 있는 저 노인의 젊은 시절을 알기에.

***

첫날의 걱정과는 달리 아카데미 생활은 꽤 순조로웠다.

제게 호기심을 보이던 학생들도, 인간이 언제나 그렇듯이 이내 그 호기심을 거두고 저마다의 일상을 살아가느라 바빴다.

모든 관심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루카스였기에, 더 이상 호기심을 가지고 제게 다가오는 인간도 없었다.

한 주에 네 번이나 있는 테스트를 치러내기 위해선 그 누구도 한가롭게 남의 일상에 관심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그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않기 위해 테스트에서도 모두 중위권 성적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대륙에 둘도 없는 천재라 믿어 의심치 않던 교수들 또한 지지부진한 그의 성적을 보고는 슬슬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되고 있군.’

모든 수업을 마치고 혼자 조용히 도서관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경쾌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새 이 아카데미에 온 지도 3개월이 흘러 있었다.

그동안 그는 매일같이 도서관에 드나들며 마나에 관한 서적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로 그칠 줄 알았던 도서관 사서 브랑디도 그가 한 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도서관에 들르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그의 연구에 조금씩 도움을 주고 있었다.

브랑디는 일전에 마지막으로 즐겼던 짧은 유희에서 만난 인간이었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징집되어 전장으로 나가게 된 소년. 죽음이 도사리는 전쟁터에서 그 소년은 제 인생을 바꿀 그것을 마주했다.

마법. 전쟁터의 한 가운데서 칼이 아닌 주문으로 싸우는 마법사를.

그들이 외우는 주문은 불꽃이 되어 전장을 불바다로 만들었으며, 얼음 창이 되어 적들의 가슴에 꽂혔다.

비를 내려 땅을 젖게 만들었으며, 젖은 땅은 적들의 발목을 묶었다.

그가 처음 본 마법은 적들을 섬멸했지만 전생에 만난 브랑디는 그것을 동경했다.

‘아름다웠다’라고 했다. 그 장면을 떠올리던 브랑디의 눈은 밝게 빛났으나 안타깝게도 그에게 마법사로서의 자질은 없었다.

대륙을 누비며 마법사가 될 방법을 찾던, 청년이 되어버린 소년. 마법 생물인 드래곤을 눈앞에 두고도 몰랐던, 마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얘기하며 눈을 빛내던 그 청년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랬던 그 청년은 아직도 그 꿈을 좇고 있었다. 언젠가 제 손으로 불러일으킬 불꽃을. 그것을 포기하지 못한 채 칠십이 넘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도 이곳 아카데미 도서관에 남아 있었다.

몸은 노쇠했을지 모르나 그가 가진 열망은 아직도 이십 대에 저를 만났던 그 청년 그대로였다.

옛날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걷다 보니 어느새 도서관 앞에 도착한 루카스는 문을 열었다.

“오셨군요.”

저를 반기는 백발의 노인의 얼굴에 젊은 날의 그 청년이 겹쳐 보였다.

“네.”

노인을 바라보는 소년이 싱긋 웃었다.

***

한 학기가 지났다.

9월에 시작한 새 학기는 어느새 절반을 달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고, 추웠던 겨울도 거의 다 지나 봄을 알리는 새순들이 여기저기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2월.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카데미의 방학은 학생들마다 보내는 방식이 달랐다.

학교에 남는 학생은 몇 되지 않았지만 루카스는 학교에 남기로 마음먹었다.

제집인 시타타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딱히 할 것도 없거니와 이곳에 남아 조금이라도 빨리 자신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다.

‘거의 다 됐어.’

매일같이 도서관을 드나들며 인간들이 여태 연구한 마나는 꽤 대단했다.

마법에 대한 인간들의 열망이 만들어 낸 결과는 루카스의 몸에 꽤 큰 변화를 가져다줬다.

아무리 열심히 수련해도 늘어나지 않던 마나가 아주 미미하게나마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6서클. 거기까지 이룬다면 이 방법이 효과가 있는 거겠지.’

알아낸 모든 방법을 동원해본 결과, 한 가지 방법이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마법을 꾸준히 쓸 것. 단순한 방법이었지만 그 방법을 본 루카스는 기회가 닿는 대로 마법을 써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엔 드래곤이었고 현생엔 온실 속 화초처럼 보호받는 도련님이었으니 마법을 꾸준히 써볼 필요가 없었다.

전생엔 마법을 마음껏 써서 제 능력을 상승시킬 필요가 없었고, 현생엔 마법을 써보고 싶어도 쓸 기회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아카데미에 와서 이 방법을 실행해 본 결과 꽤 효과를 보고 있었다.

무엇이든 해볼수록 실력은 늘기 마련이다. 단순한 이치였다.

하지만 한 가지 제약이 있었다. 어디서든 마법을 쓰는 것은 좋았지만 그 마법이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커튼을 쳐놓고 라이트 마법을 펼친다든지 하는,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마법들을 수련하는 방법밖에 없었으니 마나가 늘어나는 양이 아주 미미했다.

‘공간을 찾는 것이 급선무야.’

그동안 꾸준히 적당한 공간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본인이 있는 아카데미는 보는 시선은 물론이거니와 곳곳에 놓인 마력석 때문에 마음껏 마법을 펼칠 수가 없었다.

아카데미를 빠져나와 한적한 골목에 들어선 루카스가 조용히 주문을 펼쳤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곳. 가장 익숙한 좌표를 떠올린 그가 텔레포트했다.

“하아…….”

깊은 숲속 깎아지른 절벽 아래 선 루카스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오랜만이네…….”

절벽을 어루만지는 루카스의 눈빛이 아련했다. 마치 이 안에 오랜 연인이 잠들어 있기라도 한 듯 말이다.

그런 루카스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는 이의 눈이 흥미로움에 번뜩이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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