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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6화 (6/225)
  • 6화. 인내심, 테스트.

    연회장의 분위기는 꽤나 시끌벅적했다.

    저마다 능력을 인정받은 입학생들은 총 스물세 명.

    삼십 명 남짓했던 인원 중 그래도 과반수 이상이 합격했다.

    세로로 늘어선 기다란 테이블들은 총 다섯 줄. 그 앞엔 커다란 단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카데미의 수장이 축하 연설을 하기 위한 그런 자리일 것이다.

    왼쪽부터 기초, 초급, 중급, 상급, 최상급으로 이루어진 테이블은 저마다의 분위기가 달랐다.

    루카스가 배정받은 반은 초급. 손에서 작은 불빛 하나를 일으켰을 뿐인데 초급반으로 편성이 되었다.

    하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주문이나 수식을 배운 적도 없는 루카스가 손끝에서 만들어 낸 작은 불빛은 심사위원들의 경악을 사기에 충분했다.

    저 안에 숨겨진 잠재력은 엄청날 것임을 직감한 교수들은 일찌감치 루카스를 제 수제자로 삼을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다들 자리에 앉아주세요.”

    이미 누구 하나 빠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들려오는 음성에 사람들은 저마다 하던 말을 멈추고 단상을 바라봤다.

    “제7기 아란트 마법 아카데미에 오신 신입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백발의 노인. 마법 아카데미의 수장이자 지체 높은 마탑의 주인.

    알베르토 님로드.

    대륙의 천재 마법사라 불리는 그의 명성은 어딜 가나 자자했다.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무려 5서클이라는 경이로운 경지에 올랐다고 했다.

    지금 그의 실력을 정확히 아는 자는 없으나 항간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7서클에서 8서클은 족히 될 거라고 했다.

    별생각 없이 단상을 바라보고 있자, 어느새 연설은 끝이 났는지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환영 연회답게 거하게 차려지는 연회 음식을 바라보는 루카스의 시선은 굉장히 건조했다.

    ‘인간들의 연회라… 오랜만이군.’

    언젠가의 일을 회상하는 듯 그의 입가에 작게 미소가 걸렸다.

    -텁!

    그때 갑자기 낯선 손이 제 작은 어깨를 붙잡자, 기분 좋은 회상에 미소 짓던 루카스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아이고! 무서워라!”

    과장된 몸짓을 보이는 사람은 마법사라고 하기엔 조금 거칠어 보이는 외모였다.

    마치 전장을 누비다 막 돌아온 듯한 용병처럼 보이는 사내는, 자신이 지어 보일 수 있는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려 노력이라도 하는지 과장되게 웃고 있었다.

    “죽고 싶은가?”

    진심이었다. 루카스는 지금 당장이라도 손에 마법을 불러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크하하! 무섭네. 네가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 중 가장 어리던데. 너 아주 대단한 꼬맹이구나?”

    하지만 사내는 그런 루카스의 행동을 그저 귀족 도련님이 보이는 평범한 것쯤으로 치부한 듯싶었다.

    “꺼져라.”

    이런 반응에도 입가가 파들파들 떨릴 만큼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는 사내의 모습에 루카스는 고개를 홱 돌려 앞을 바라봤다.

    ‘건방진 인간 놈…. 어디에 손을 올려?’

    만약 자신이 유희 중인 드래곤이었다면 호기심 어린 표정이라도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겠지만, 지금 자신의 모습은 힘없고 나약한 인간 그 자체였다. 그래서인지 인간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거슬렸다.

    “아, 내 행동이 거슬리셨나 봅니다? 귀족 나으리?”

    눈앞에 있는 꼬마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이 간다는 듯 사내의 입꼬리 한쪽이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하지만 어쩌죠? 이곳 아카데미는 신분이나 나이 그 어느 것도 상관이 없는 그런 자유로운 곳인지라… 제게 벌을 내리고 싶으셔도 그러지 못하실 텐데?”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는 그의 태도에 루카스가 ‘피식’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런가?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네놈을 죽여도 괜찮겠군.”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그를 진짜로 죽일 생각은 없었다. 제대로 살아보겠다 마음먹은 이상, 되도록 마찰은 피하는 것이 좋았다.

    “하! 이 당돌한 꼬마 자식!”

    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자, 루카스 역시 지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내의 골반에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몸이었지만 기세만큼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 같잖은 인간 자식 피똥을 싸게 해주지!’

    루카스가 손에 마나를 모으려는 찰나.

    “거기! 이제 그만 하세요! 애를 상대로 도대체 뭐 하는 겁니까?!”

    멀리서 들려오는 외침에 사내의 입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씰룩였지만, 이내 말하기를 포기했는지 루카스를 한번 노려본 그가 몸을 홱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꼬마라고?! 넌 내가 문제만 풀어봐라. 모가지를 비틀어 네놈 다리 사이에 놓아주지!!’

    이가 부득부득 갈렸지만, 이왕지사 여기까지 왔는데 일을 모두 그르칠 수는 없었다.

    ***

    연회 내내 계속되는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에 지칠 대로 지친 루카스는 배정받은 숙소로 들어오자마자 몸에 힘이 탁 풀렸다.

    여태 인간으로 살아온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루카스는 백작저 밖으로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작저가 위치한 변두리 마을 시타타는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농사도 짓지 못하는 땅이었기에 영지민들 또한 많지 않았다.

    그나마 시타타에 있는 작은 광산으로 영지민들이 생계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었기에, 백작 저 밖으로 나간다 해도 구경할 것도, 갈 곳도 없었다.

    그렇게 온실 속 화초처럼 귀한 백작가의 도련님으로 자라다가 처음으로 이렇게 먼 곳까지 오게 되니 몸이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약한 인간 몸뚱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푹 퍼져버린 루카스 어린이. 작은 입에서 나오는 험악한 잠꼬대는 듣는 이가 없기에 망정이지 누군가 저 잠꼬대를 들었더라면 몰락한 로드리고 백작가에서 미친놈을 키웠다고 욕할 것이 분명했다.

    ***

    “아… 아카데미.”

    방에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잠들었던 그는, 눈앞에 보이는 낯선 풍경에 이곳이 아카데미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밤새 기분 나쁜 꿈에 시달렸는지 작은 손바닥엔 땀이 흥건했다.

    “인간 놈들이 나를 둘러싸고 비웃고 있었어. 기분이 아주 더럽군.”

    작은 몸으로 인간들의 경계심 어린 눈빛을 모두 받아냈던 어제를 떠올린 루카스는 악몽까지 꾸고 말았다. 그는 더러운 기분을 씻어내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찬물을 맞고 서 있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샤워를 마치고 욕실로 나가자 방 안에는 기분 나쁜 손님이 찾아와 있었다.

    “루카스! 입학식은 잘 치렀니?”

    기분 나쁜 꿈에 이어 기분 나쁜 인간. 아니, 도마뱀의 방문에 루카스는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게다가 반말이라니? 쌍욕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침을 삼켜 한번 참아낸 루카스가 젖은 머리를 털며 덤덤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슨 일이시죠?”

    “우리 루카스를 보고 싶다고 하시는 분이 계셔서 말이야. 어제 연회에서 축하 연설을 하셨던 분. 기억나니?”

    “…마탑주?”

    “맞아! 아주 잘 알고 있구나?”

    아만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언짢았지만 이미 마음먹은 일.

    “왜 찾으시는데요?”

    “그건 우리 루카스가 알베르토님을 만나서 직접 듣는 것이 어떨까?”

    몸을 숙여 제게 눈높이를 맞춘 아만이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참자, 참아야 해. 백 년! 백 년이면 된다!’

    ***

    “저 아이죠? 이번에 최연소로 입학했다는 그 마법 천재?”

    “에이 천재까지는… 그냥 뭐 손에서 불빛 하나 보였다던데.”

    “그게 천재 아니에요?”

    “그건 그렇고, 쟤 로드리고 백작가 도련님이라면서요?”

    아만을 따라 복도를 지나가 보니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 로드리고 백작가 말이에요. 거긴 마법사가 없지 않아요?”

    “있었으면 지금 저 모양 저 꼴이 났겠어?”

    수군거림에 비아냥까지. 인간들의 같잖은 질투 따위에 일일이 반응을 해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찌푸려지는 인상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여기서는 저런 말들 따위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아만 또한 귀가 있으니 저도 들었는지 표정이 좋지 않은 루카스를 다정히 달랬다.

    “흥. 신경 안 씁니다.”

    “하하하. 그래, 아주 씩씩하다!”

    호탕하게 웃으며 제 머리를 흩뜨리는 아만의 손길에 짜증이 확 치밀어 그를 째려봤다.

    아차 싶었는지 얼른 손을 들어 사죄의 표시를 해 보이는 아만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자, 들어가 보렴.”

    학장실 문 앞에 도착하자 문지기가 루카스와 아만의 방문을 알렸다.

    대륙 최고의 마법 아카데미답게 학장실은 문부터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문을 수놓은 금박과 은박, 정교하게 세공된 장식들까지.

    학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백발을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린 노인. 대륙의 천재 마법사라고 불리는 알베르토 님로드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본 알베르토가 자리에서 일어나 활짝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우리 아카데미에 와주어 고맙습니다. 루카스 로드리고군.”

    다른 인간들과는 다르게 어린 제게도 깍듯이 존대를 하는 알베르토를 마주하자,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 루카스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 살의 꼬마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정갈하고 예의 바른 그의 모습에 알베르토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루카스 군과 같은 인재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자, 자리에 앉으시지요.”

    그가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손짓했다.

    “자, 루카스 군은 어떤 마법사가 되고 싶은가요?”

    의자에 앉자마자 대뜸 던져진 질문에 루카스가 속으로 욕지거릴 내뱉었다.

    ‘미친 노인네가 뭐라는 거야?’

    루카스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똥 씹은 표정을 짓자, 그가 다시 한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질문이 조금 어려웠나 봅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법을 배우고 싶어 왔습니까?”

    “…….”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대답해 보세요.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걸 이루고 싶은지도 괜찮습니다. 엄청난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가슴속에 답답증이 치밀어 올랐다. 한낱 인간이 드래곤이었던 자신에게 어떤 마법사가 되고 싶냐는 둥, 어떤 마법이 배우고 싶냐는 둥 하는 질문에 도통 대답할 말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은 ‘아무것도 몰라요.’ 작전이 최고였다.

    “음… 모르겠어요. 그냥 마법 가르쳐 준다고 해서 온 건데요.”

    열 살 인간 꼬마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장점. 그는 지금 그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흠… 뭐, 괜찮아요. 루카스 군 말이 맞습니다. 이곳은 마법을 가르치는 아카데미니까요. 그렇다면 루카스 군. 입학 테스트 때 보여준 마법을 제게 다시 한번 보여줄 수 있나요?”

    알베르토의 말이 끝나자마자 루카스는 손을 들어 빛 한 송이를 불러냈다.

    “호오…….”

    그가 주문 한마디 외우지 않고 불러낸 작은 빛 한 송이가 알베르토의 감탄을 불러냈다.

    이내 빛은 사라지고 루카스의 얼굴엔 귀찮음이, 알베르토의 얼굴엔 희열을 동반한 호기심 어린 표정이 가득했다.

    “보여줘서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알베르토가 책상에 무어라 주문을 외우니 ‘달칵’ 하는 소리를 내며 책상 가장 아래 서랍이 열렸다.

    그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 알베르토가 그것을 루카스의 앞에 조심스레 내려두었다.

    마법석이었다.

    모양과 형태를 보아서는 저 평범해 보이는 돌멩이가 무엇인지 누구도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력 측정석’

    그것을 본 루카스는 잠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지금 저 마력석 위에 손을 올려둔다면 제 마력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대략적으로라도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 생은 힘을 완전히 갖추기도 전에 굉장히 피곤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걸 어째야 좋을까.’

    마력석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루카스를 본 알베르토가 허허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걱정하지 마세요. 위험하거나 루카스군이 다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이것은 그저 루카스군이 어떤 마법사가 될지 측정하는 그런 돌이랍니다.”

    ‘그건 나도 알아 이 노친네야.’ 이 말이 입 밖으로 곧 튀어나올 뻔했다.

    “그저 여기 위에 손을 잠시 올려두면 됩니다.”

    이 위에 손을 올리지 않을 방법이 뭐가 있나 생각하던 루카스가 길게 한숨을 뽑아낸 뒤 천천히 손을 가져갔다.

    마력석 위에 작은 손바닥이 올라가자 마력석이 작게 빛을 뿜어냈다.

    “흐음……”

    알베르토의 입에서 알 수 없는 기다란 탄식이 흘러나왔다.

    “자, 됐습니다. 손을 떼도 괜찮아요. 그리고 눈도 떠도 됩니다, 루카스 군.”

    마력석 위에 손을 얹으며 눈까지 감은 어린 루카스의 모습이 귀여운지 작게 웃어 보인 알베르토가 ‘이제 가도 괜찮다’며 문까지 손수 열어주었다.

    문밖을 빠져나온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만하면 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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