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어미의 눈물
원래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카데미고 나발이고 그깟 인간들이 가서 같잖은 마법을 배우는 곳에 제가 갈 이유가 없었다.
‘인간들이 인간을 가르치는 그런 같잖은 학교 따위.’
아만이 아버지께 직접 말을 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절대 없을 것이다.
황궁 근처의 아카데미에 금쪽같은 자식을 보낸다? 지금까지 지켜본 백작은 절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적들이 뱀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달려들 것을 뻔히 아는 백작이, 귀하게 얻은 자식을 그런 적진 한복판으로 보낼 리가 없었다.
그러니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라’며 아만의 말을 깡그리 무시할 수 있었다.
‘저 퍼런 도마뱀 자식이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물로서의 마지막 유희가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에 얽매어 있긴 해도, 이제 슬슬 적응도 된 참이고 목표를 정하고 나니 이 또한 제가 즐겼던 일전의 유희들과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유희라고 하기엔 너무 적나라한 현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만을 무시하고 정원에 앉아 몸 안에 천천히 서클을 그려내고 있을 때였다.
‘절대 안 돼. 이건 가능성이 없어.’
마나라고는 한 톨도 없던 자신의 몸. 5서클이라는 경지에 오른 것도 인간의 몸으로는 대단한 성과였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이뤄낼 수 없는 그런 성과.
하지만 그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마법에 정점에 선 드래곤의 몸으로 살아온 오천 년의 세월은 쉽사리 잊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이뤄낸 5서클이라는 경이로운 성과가 성에 차지 않을 수밖에.
하지만 누구나 가진 그릇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이게 바로 제 그릇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디서 마법 약이나 팔다가 죽게 생겼구먼.’
작은 입으로 길게 한숨을 뽑아낸 루카스가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돌멩이를 차버렸다.
“윽!”
돌멩이인 줄 알고 차버린 그것이 돌부리였다.
땅에 단단히 박힌 돌부리에 힘껏 발을 찼으니 고통은 당연히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
밀려드는 고통에 짜증도 함께 밀려올 때쯤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하나.
“……인간.”
작은 돌부리에도 이토록 고통스러운 나약한 몸뚱이가, 자신이 인간임을 여실히 느끼게 하고 있었다.
‘인간의 몸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인간이겠지. 그렇다면…….’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루카스가 고통이 아직 가시지 않은 발을 이끌고 백작저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그, 그게 무슨 말이냐.”
“가겠다구요. 그 아카데미라는 곳이요.”
“루카스, 아직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지 않으냐. 그저 네게 재능이 있는지 알아보겠다 하는 것이다.”
시비에의 염려 어린 목소리에 루카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작은 손을 들어 올렸다.
-파앗!
“이, 이게 무슨!”
루카스의 손끝에서 빛나는 작은 불빛을 본 시비에가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가고 싶어요. 아카데미.”
***
루카스를 품에 안고 떨어질 줄 모르는 블레인,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출 줄을 몰랐다.
“루카스… 루카스…. 내 아가……”
“여보…. 괜찮을 겁니다.”
“혹시라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거든 이것을 꼭 기억하거라, 루카스.”
루카스의 손에 귀환 스크롤을 꼭 쥐여 주는 블레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아들에게 있는 재능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시비에는 루카스의 아카데미 행을 결사반대했었다.
하지만 아내 블레인의 말에 그는 결정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업을 자식에게 지게 할 수는 없다’라는 그 말을 들은 시비에는, 눈물을 머금고 루카스의 짐을 손수 챙겼다.
어릴 적 검술 아카데미에 다녔던 그가 손수 물품들을 구비해 챙기며 짜디짠 눈물을 몇 번이나 삼키고 나서야, 루카스의 작은 몸보다 더 큰 짐가방이 완성되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겠다는 그 말 이후로, 3일이라는 시간 동안 가족들과 작별의 시간을 보낸 루카스는 기분이 몹시 이상했다.
‘찰나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 인간들에게 자식의 존재란 무엇인가?’
처음 든 의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자식을 가진 부모는 세상에 수도 없이 많았다.
개중엔 부모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아까운 쓰레기 같은 인간들 또한 뒤섞여 있었다.
딸을 팔아 술을 마시는 아비, 아들을 노예로 넘기고 도박을 하는 어미, 자식을 낳자마자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핏덩이를 뒷골목에 버리고 도망치는 여인…….
그 수많은 인간의 민낯을 긴 세월 동안 지켜본 그의 머릿속엔 복잡함이 가득했다.
처음엔 그저 귀하게 얻은 몰락한 귀족 집안의 마지막 희망의 씨앗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저 힘든 삶에 한 줄기 빛처럼 내려온 자식이 귀한 거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생각은 점차 빗나가기 시작했다.
힘든 삶에 빛처럼 내려온 자식이 집안을 일으킬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는 그 말에도, 제 아비인 시비에는 절대 안 된다며 결사반대를 외쳤었다.
하지만 어미인 블레인의 말 한마디에 시비에의 결심은 꺾이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루카스의 마음속에는 ‘역시나.’ 하는 작은 의심의 불씨가 생겨났었다.
몰락한 귀족가에 생겨난 작은 희망. 자식을 위험이 도사리는 곳에 보내자는 그 결심이 자신이 알고 있는 인간의 민낯임을 확인이라도 시켜 준 듯 조금 안도감까지 들었더랬다.
하지만 그 불씨는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차게 꺼지고 말았다.
복도를 지날 때 들은 제 어미의 곡소리. 한낱 인간 여인이 내는 그 구슬픈 목소리가 제 가슴을 후벼팠다.
혹여 누가 들을까 사용인들조차 잘 가지 않는 후원 구석에서 숨죽여 끅끅대는 그 목소리.
중간중간 들려오는 자신을 책망하는 한 맺힌 목소리는 자신이 품었던 그 작은 의심이 부끄럽기까지 했었다.
제 손에 쥐어진 귀한 스크롤 한 장. 어미의 손에 끼워져 있던 마지막 남은 패물인 집안의 가보였던 반지. 그것의 부재가 나타내는 가슴 아픈 현장에 루카스의 가슴에 뭉클한 무언가가 피어났다.
오랫동안 반지가 있던 그 자리는 손의 다른 부분보다 하얗게 변해, 그 자리에 반지가 있었음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걱정 마라. 인간 엄마. 내가 그깟 반지 천 개는 더 가져다줄 테니.’
작은 손으로 제 어미의 등을 한번 쓸어준 루카스가 어미의 볼에 작게 키스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흐흑… 루카스!”
***
구불구불한 시골길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어느새 마차는 수도와의 중간지점인 한 마을에 당도했다.
제 옆에 탄 푸른 도마뱀이 뭐라고 떠들어 대든지 가끔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화의 흐름을 끊어내려 무던히도 애썼으나, 이 도마뱀은 뭐가 그리도 신이 나는지 주둥이를 쉴 새 없이 놀려댔다.
‘좀 닥쳤으면 좋겠네.’
마차의 속도가 점차 줄어들자 루카스는 창밖을 바라봤다.
‘오리하 마을.’
마을 이름이 적힌 작은 팻말 아래 쓰여 있는 인구수가 나타내는 마을의 규모는 상당했다.
마차 밖으로 보이는 마을 풍경 또한 이 마을이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활발한 상인들과 그 속을 지나는 사람들. 광장을 주변으로 모여 있는 여관들의 호객행위까지.
마차 문이 열리고, 혼자 마차에서 내리기엔 아직은 작은 그를 돕는 마부의 손을 붙잡았다.
-편안한 여관-
단순하고 직관적인 여관의 이름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작명 센스하고는’
유희를 하던 시절에도 여관은 수도 없이 드나들었지만, 이번만큼은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인간의 몸으로 처음 와보는 곳이어서 그런지, 그도 아니면 집을 떠나와서 그런지…….
이 작은 몸을 원망하는 것은 이미 그만둔 지 오래지만, 오늘만큼은 빌어먹게 작은 이 몸뚱이가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마차도 혼자 타고 내리지 못해 인간의 손을 빌려야 된다니.
작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지만 이 또한 폼이 나질 않았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넉살 좋게 반기는 종업원에게 퍼런 도마뱀이 몇 마디 하니, 자신이 묵을 방이 재빠르게 준비되었다.
“도련님, 정말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열 살짜리 어린아이가 혼자 방을 쓴다니 걱정이 앞서는지 아만이 다시 한번 물었지만, 루카스는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참으로 씩씩한 도련님이시군요. 그럼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제 방으로 찾아오세요.”
아만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자 저도 모르게 발길질할 뻔한 것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낸 루카스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방으로 들어서자 드디어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깊은 한숨을 내쉰 루카스가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싸가지 없는 시퍼런 도마뱀 자식! 백 년만 기다려라, 네 대갈통을 날려줄 테니.’
조금 전 그의 행동에 어찌나 분했는지 지금은 신이 되는 그날이 기다려질 지경이었다.
***
오리하 마을이 딱 중간지점이었는지 마을까지 왔던 시간만큼을 달리니 마차는 어느새 수도에 들어서고 있었다.
검문소를 통과한 뒤 조금 더 지나자 멀리 황성이 보였다.
그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커다란 건물. 저 건물이 마법 아카데미라고 했다.
아란트 마법 아카데미.
들리는 소문엔 황제가 예언가의 예언을 전해 들은 뒤 아카데미를 세우고 전 세계에서 마법사와 인재들을 끌어모아 마법 강대국을 건설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자격은 아주 간단했다.
나이도 국적도 신분도 상관없었으며 그들만의 단단한 체계를 만들어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실력으로만 평가받는 그런 아카데미.
그 때문인지 전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재능이 있는 인간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어 황제의 뜻에 뒷받침하고 있다고 했다.
실력으로 평가받는 곳이기에 수업 또한 나이와 국적, 신분에 상관없이 기초반부터 최상급자반 까지 나뉘어 있다고 했다.
아란트 마법 아카데미의 최상급자 코스 수료증만 있으면 어느 나라를 가든 프리패스였다.
막대한 부는 물론이고 어딜 가나 융숭한 대접은 덤이었다.
마법사는 어느 국가나 중요한 전력이니 실력 있는 마법사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몸값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부를 축적하려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지금 상태로도 가능했다.
몸은 작았지만 살아온 세월만큼의 지혜가 있으니 그 지혜를 조금만 활용해도 금전은 넘칠 터였다.
목적은 단 하나. 지금 가진 제 그릇을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늘릴 방법을 찾는 것.
“신입생은 이쪽으로 모이세요!”
그때 확성 마법을 썼는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때렸다.
그 목소리를 따라가니 아카데미의 중앙 광장이 나타났다.
아만이 직접 안내하겠다 했지만 가볍게 고개를 저어 거절한 뒤 짐가방만을 부탁하고 혼자 광장에 온 루카스가 주변을 둘러봤다.
제 또래로 보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제일 어린 인간인가 보군.’
눈에 띄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되니 그 바람은 이미 저 멀리 물 건너가고 말았다.
주변의 시선이 이미 저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곤하겠어.’
신입생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략 세어봤을 때 삼십 명 언저리쯤 되는 숫자인 것 같았다.
마법사라는 게 워낙 귀하다 보니 조금의 재능만 있어도 받아주는 마법 아카데미였기에 이마저도 가능했을 것이다.
한 명씩 이름이 호명되고 사람들이 방에 들어가 테스트를 치르고 나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제 차례였다.
“루카스 로드리고!”
“네.”
대답과 함께 손을 들어 보인 루카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그 전부터 어린 루카스에게 시선은 여기저기서 따라붙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아마도 ‘로드리고’라는 성 때문이었겠지.
벌써부터 몰려오는 피로감에 루카스의 작은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싹 다 엎어버리고 싶군.’
테스트는 간단했다. 할 줄 아는 것이 있다면 보이면 되었고,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면 제 몸에 마나가 있는지를 측정하는 마나석 위에 손을 가져다 대면 끝이었다.
제 차례에 방으로 들어선 루카스는 고민했다.
무언가를 보일지 아니면 그냥 마나석에 손을 대는 것으로 끝을 낼지.
고민을 끝낸 루카스가 작은 손을 들어 올렸다.
-파앗!
“……?”
작은 손에서 피어난 불빛을 바라본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