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4화 (4/225)
  • 4화. 갈게요. 아카데미에.

    백작저에 들어선 남자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이곳저곳을 꼼꼼히 둘러보며 중정을 지나온 남자를 백작저의 주인 시비에 백작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시비에 로드리고입니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그를 맞은 시비에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해 보였다.

    “백작님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그 역시 가벼운 목례로 답한 뒤 시비에의 뒤를 따라 백작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명색이 저택인지라 로비를 가로질러 꽤나 걸어가니 손님을 맞는 응접실이 나타났다.

    “앉으시지요.”

    싱긋 웃어 보인 백작이 앞자리를 권하자, 그가 긴 로브자락을 살짝 갈무리한 뒤 자리에 앉았다.

    “이 척박한 땅 시타타까지 무슨 일로 오셨는지…….”

    인적도 드문 곳에 나타난 방문자가 다름 아닌 지체 높은 마법사라 그런지, 백작의 얼굴에 살짝 긴장한 기색이 엿보였다.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에스나 왕국의 왕실 마법사 아만 티노어 라고 합니다. 아란트 왕국의 마법 아카데미의 신임 교수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안 그래도 황궁에서 마법 아카데미에 힘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소문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시비에는 일전에 들었던 소문이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 가시는 길에 묵을 곳이 필요해 들르신 것이라면 부담 없이 쉬다 가셔도 좋습니다.”

    “하하, 말씀 감사합니다만… 저는 이곳에 쉬기 위해 들른 것이 아닙니다.”

    손에 든 찻잔을 살짝 내려둔 백작의 얼굴에 순간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그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 들른 것뿐이니 말입니다.”

    “어떤…….”

    “혹시 이곳에 마법사가 있습니까?”

    ***

    여느 때와 다름없이 중정에 앉아 풀떼기를 보는 척하며 마법 수련에 한창이던 루카스의 등에 일순 소름이 오스스 돋아났다.

    ‘…뭐야?’

    이제 5서클까지는 아주 손쉽게 그려냈지만, 아무리 해도 그다음 서클이 도통 그려지지 않았다.

    시작이 되는 기미라도 있어야 노력이라도 해 볼 텐데, 이건 뭐 점 하나도 제대로 찍히지 않으니 속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도련님~ 식사하셔야죠!”

    멀리서 저를 부르는 유모의 외침에 한번 싱긋 웃어 보인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루카스가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몸뚱이로 부지런히 발을 놀려 백작저에 들어선 루카스는 조금 전 돋아났던 소름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쟨 뭐야?’

    제 아비인 시비에와 함께 응접실을 빠져나오는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불쾌한 기분이 밀려와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 사내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제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도련님?”

    루카스는 싱긋 웃으며 인사를 하는 그의 얼굴에 왠지 모르게 침을 뱉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하, 제 아들 녀석이 숫기가 없어 그렇습니다. 너그러이 이해 부탁드립니다.”

    아만을 보고 급격하게 굳어진 루카스의 표정에 시비에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아닙니다. 아드님께서 인물이 아주 훤하신 것이 백작님을 닮아 그런가 봅니다.”

    능글맞게 건네는 칭찬에 너털웃음을 지어 보인 백작이 하인을 한 명 불러내어 그를 손님방으로 안내하게 했다.

    하인을 따라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째려보고 있으니 시비에 백작이 다가와 허리를 굽혀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루카스. 저분은 에스나 왕국에서 오신 마법사란다.”

    “…마법사요?”

    “그래, 언젠가 루카스도 들은 적 있지? 손에서 불을 불러내고 바람을 일으키는 그런 마법사 말이야.”

    그는 루카스의 머리칼을 다정히 어루만지며 설명했다.

    루카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백작이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런 훌륭한 마법사라고 하시는구나. 지나는 길에 우리 집에 들러 잠시 쉬었다 가시는 거란다.”

    “…….”

    “하하, 녀석. 그러니 손님을 마주치거든 친절하게 대해 주거라.”

    루카스의 머리를 살짝 흩뜨린 백작이 자리를 벗어나자, 루카스의 조그만 미간에 사정없이 주름이 잡혔다.

    ‘저거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그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을 때 그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함께 느껴지는 불쾌한 기분. 그게 루카스를 굉장히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

    하인의 안내를 받아 손님방에 들어선 아만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한 원석!

    이번 유희를 더욱더 즐겁게 만들어 줄 그런 인간을 찾아낸 그런 희열과 기쁨!

    그저 본인이 느낀 기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만 찾아내면 당장 돌아가려던 그의 마음이 바뀐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저 작은 인간이 주인공이었다니! 하하하!”

    인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저런 인간은 제가 살아온 천여 년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저 작은 인간은 벌써 자신이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눈망울을 빛내고 있으니 더욱 흥미로웠다.

    “아주 재밌는 걸 찾아냈어.”

    그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절대 루카스를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마나와 같은 것들은 그 생물이 가진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가능한 것이기에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 한들 그가 지니고 있는 마나까지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마법사끼리 서클을 가늠하는 방법은 그가 쓸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마법을 얼마나 광범위하게 펼칠 수 있는지, 그 마법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지에 따라 그 마법사의 실력을 가늠했다.

    하지만 마법사가 저마다 가진 개개인의 고유 특성이나 실력은 드러나 있는 것보다 숨겨진 것이 훨씬 많았기에, 저들끼리도 서로의 실력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함께 전장에 나가 싸우거나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아주 재미있는 유희가 되겠네.”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쓰듯 루카스라는 말을 데려다 두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지 고민하는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피어올랐다.

    ***

    “도련님, 왜 그러세요?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어요?”

    식사 내내 표정이 좋지 않던 루카스를 살피던 유모가 그의 볼을 어루만지며 물어왔다.

    “아니, 괜찮았어.”

    “그런데 어찌 이리 표정이 좋지 않으실까?”

    어린아이인 루카스를 달래듯 말하는 그녀의 말투에는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유모, 그 남자는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거래?”

    “그 남자요? 아, 이번에 손님으로 오신 마법사님 말씀이시죠?”

    “응.”

    “호호호, 왜요? 그 손님이 우리 도련님 마음에 별로 들지 않으셔요?”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런 루카스가 귀엽다는 듯 흐트러진 그의 머리를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정리해 주는 유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손님께서 얼마나 머무르실지는 저도 잘 모른답니다. 하지만 듣기로는 아주 멋진 왕궁 마법사라고 하시던데요?”

    유모의 말을 들은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하!’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낼 뻔한 것을 겨우 참아냈다.

    ‘멋진 왕궁 마법사는 개뿔. 생긴 것도 기분 나쁘게 생겨 가지고 말이야. 머리며 눈이며 푸르딩딩한 것이…. 응!? 푸르딩딩!?’

    그 마법사를 생각하던 루카스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무리 인간의 모습으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지만 이런 간단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될 줄이야.

    ‘은푸른 머리에… 푸른 눈동자.’

    얼핏 지나가는 과거의 기억에 루카스의 입꼬리가 옅은 분노로 씰룩거렸다.

    ***

    아만이 백작저에 온 지 벌써 이틀째.

    멀리서 저를 지켜보는 시선이 분명히 느껴졌지만, 루카스는 ‘아무것도 몰라요’를 시전 중이었다.

    ‘얌전히 있다가 제발 꺼져라. 같잖은 시퍼런 도마뱀 자식아.’

    그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속으로 갖은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만의 시선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따라붙었다.

    맨 처음엔 그의 환심이라도 사려는 듯, 혼자 있는 제게 다가와 마법으로 눈송이나 작은 불씨들을 만들어 내어 제 눈을 현혹하려 하는 꼴이 같잖기 그지없었다.

    루카스가 아는 그가 맞다면 지금 온 저 도마뱀은 분명 루카스의 정체를 똑똑히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음에도, 어쭙잖은 마법을 내보이며 제 앞에서 살랑거리는 꼴이 더욱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도련님, 마법은 아주 멋지지 않나요? 저와 함께 아카데미에 가신다면 이 멋진 마법을 모두 배워볼 수 있답니다!”

    눈꼬리를 활처럼 휘며 사람 좋게 짓는 웃음이 어찌나 교활해 보이던지!

    루카스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옛말은 아주 틀린 것이 분명함을 직접 확인했다.

    첫날엔 기웃거리는 것에 그치더니 이젠 아주 노골적으로 저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해 대니,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에도 점점 한계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멀리서 지켜보던 아만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자마자, 루카스 역시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발을 빠르게 놀려 백작저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제 다리 길이는 그의 반만큼밖에 되질 않으니 아무리 애써 발을 놀려도 그에게 금세 따라잡히고 말았다.

    ‘옛날 같았으면 저깟 도마뱀쯤은 바로 불구덩이에 처박는 건데!!’

    이가 갈리는 기분을 뒤로하고 복도를 지나고 있으니, 뒤에서 그의 나긋한 음성이 들려왔다.

    “루카스 도련님~?”

    “…….”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그가 뒷짐을 진 채 저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제가 드린 말씀은 곰곰이 생각해 보셨나요?”

    “…….”

    “흐음…. 그렇다면 제가 백작님께 직접 말씀드려야 하겠군요.”

    아만이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능글맞게 웃는 꼴을 보고 있자니 루카스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세요.”

    몸을 홱 돌려 방으로 들어온 루카스가 작은 발을 ‘쾅’ 굴렀다.

    ‘건방지고 같잖은 꼬마 도마뱀 자식이!’

    ***

    “……저희 루카스를 아카데미에 말입니까?”

    아만의 말을 들은 시비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귀한 자식을,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라도 알아보기 위해 적들이 가득한 수도로 보내자니?

    그 말을 듣자 백작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안 됩니다.”

    “…걱정하시는 게 무엇인지는 잘 압니다.”

    “저 아이가 혹시, 혹시라도 잘못되면…….”

    상상만으로 버겁다는 듯 말을 끝마치지 못한 시비에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백작님. 도련님에게 있는 가능성을 보셔야 합니다.”

    “아니, 아닙니다. 우리는 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저 아이가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다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황궁은……! 안 됩니다.”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린 듯 괴로운 표정의 시비에가 단호하게 말을 마쳤다.

    “마법사는 귀한 인재입니다. 3서클, 아니 그저 불빛만이라도 하나 불러낼 수 있다면 어딜 가나 융숭한 대접을 받습니다. 또한 마법사는 국적, 신분을 불문하고 독자적인 사회망을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습니다. 혹여라도 도련님께서 마법사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 누구도 도련님을 비롯한 이 백작가 사람들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쾅!

    그의 말을 들은 시비에가 테이블을 거칠게 내려쳤다.

    온화한 성품의 시비에가 이토록 거친 반응을 보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안 됩니다! 더 이상 말을 나눌 필요도 없겠군요.”

    “…….”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지 한참을 숨을 고른 그가 이제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긴 한숨을 뽑아낸 뒤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하지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부부에게 굉장히 귀한 아이입니다. 저희가 가진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호한 시비에의 눈을 바라본 아만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백작님의 뜻이 그러하시니 저 또한 더 이상 말씀드리는 것이 실례겠군요. 저 또한 실례했습니다.”

    아쉽다는 듯 쓰게 웃는 아만을 바라보던 시비에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계시는 동안 모쪼록 편히 지내다 가시길 바랍니다.”

    -똑똑똑

    노크 소리에 시비에가 문을 열자, 그곳엔 루카스가 서 있었다.

    “루카스?”

    의외의 방문에 놀란 시비에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칠흑 같은 검은 눈동자가 그를 마주했다.

    “저 가고 싶어요. 그 아카데미라는 곳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