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3화 (3/225)
  • 3화. 콱 죽어주마. 아니, 죽여주마!

    “어머, 우리 도련님 좀 보세요! 요즘 어찌나 밥도 잘 드시고 말씀도 곧잘 하시는지!”

    유모가 주는 밥을 맛있게 잘 받아먹는 모습을 보자 또다시 감격에 차올랐는지, 그들의 입이 쉴 새 없이 루카스를 칭찬했다.

    “기억나세요? 이런 루카스 도련님께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백작님께서 굉장히 염려하셨잖아요.”

    “그러게나 말이다. 신전에 가서 사제님까지 모셔 오려 했으니…….”

    그때를 회상하는지 말을 마치는 유모의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지랄들을 하고 앉아 있네.’

    하지만 그는 얌전히 앉아 밥을 받아먹고 있자니 또다시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괜히 그때 이 집 인간들의 돈을 아껴주겠다고 입을 열었나 싶을 정도로, 인간들은 제게 와 다시 한번 말을 해 보라며 계속해 채근했다.

    그것이 우연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거기에 대고 말 몇 마디를 툭 던져주자 뛸 듯이 기뻐하는 인간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뭔가 따뜻한 것이 일었다.

    인간이란 본디 참으로 간사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작은 생명을 보고 웃음 짓고 눈물짓고 그저 손짓 한 번에 기뻐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그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며 봤던 인간들의 모습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슬슬 익숙해지기도 했고 저 반응들을 보는 것도 퍽 재미있던 참이었다.

    “짠~ 다 먹었네요!”

    빈 그릇을 들어 보이며 해맑게 웃는 유모의 눈가에 작게 주름이 졌다.

    ‘그래, 나도 안다. 다 처먹은 거!’

    언제나처럼 튀어나오려던 말을 애써 삼킨 루카스였다.

    ***

    이제 제법 발을 놀리는 폼이 자연스러워졌다.

    사실 치아는 아랫니를 포함해 총 열 개나 자라났다.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마다 혀를 콱 깨물어 죽고자 했으나, 아직 이 통통한 혀를 한 번에 콱 깨물어 죽을 만큼의 힘이 자라나지 않았다.

    유모의 손을 잡고 정원을 걷고 있자니 백작저에 있는 사용인들의 표정이 가관도 아니었다.

    그저 한 걸음 뗐을 뿐인데 ‘와아~’ 하는 탄성을 내뱉을 뿐 아니라, 손뼉까지 짝짝 치며 저들마다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우리 도련님 좀 보세요! 정말 인물이 훤하지 않은가요?”

    “그러게요! 저 칠흑 같은 머리칼 좀 보라지요. 마치 잘 짜인 검은 비단 같아요.”

    “호호, 그러게나 말이에요. 눈동자는 또 어떻고요! 흑단같이 검은 눈동자는 신비롭기까지 해요!”

    온갖 미사여구를 다 갖다 붙이며 머리칼이나 눈동자 색 따위를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옘병할 인간들. 내가 턱에 힘만 다 자라나 봐라. 콱 죽어주마.’

    그의 머릿속에는 온갖 욕설이 난무했으나, 자신도 모르게 피어나는 미소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손짓 한 번에도 자지러질 듯 웃으며 자신을 칭송하는 말들을 듣고 있으니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실상은 유모 손을 꼭 붙잡은 채 정원을 아장아장 걷는 아기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는 루카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옆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인간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백작님…! 어쩌면 좋답니까! 도련님의 열이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아요.”

    “의원을 부르러 간 사람은 어찌 되었는가? 아직인가?”

    “한 시간 전에 출발했으니 지금쯤 말을 달려오고 있을 겁니다.”

    초조한 듯 이리저리 방 안을 배회하는 시비에 백작이 연신 창밖을 내다봤다.

    “흑…. 여보, 이건 다 제 탓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런 당치도 않는 소리 하지 마시오!”

    그 옆에 서서 눈물짓는 블레인의 말에 언성을 높인 시비에가 그녀의 어깨를 꼭 감싸 안았다.

    “제가, 제가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어요…….”

    “당신은 잘못이 없으니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곧 의원이 올 테니…. 우리 루카스는 괜찮을게요.”

    그녀의 어깨를 붙잡은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숨을 거칠게 내쉬는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한 방울 맺혔다.

    ‘옘병, 이건 또 뭐길래 이렇게 가슴이 답답해? 이렇게 뒈지나…….’

    당장이라도 이빨이 돋아나면 콱 죽어버릴 거라던 그의 마음속에 한줄기 아쉬움이 피어났다.

    ‘이렇게… 이렇게 죽는 건 조금 억울한데…….’

    하지만 그는 높은 열로 인해 생각을 채 마치기 전에 기절하듯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

    다음 날 아침 루카스가 눈을 떴을 땐 무거웠던 몸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니 제 어미와 아비라는 사람이 눈가가 벌게진 채 요람 근처 의자에 몸을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유모와 하녀 한 명이 번갈아 가며 제 몸을 닦는 모습 또한 보였다.

    의원은 진즉에 다녀갔는지 주변엔 약사발로 보이는 것과 젖은 수건들이 놓여 있었다.

    “도련님?”

    유모의 목소리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새우잠을 자던 부모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루카스? 루카스!”

    “우리 아가… 우리 아가…….”

    루카스도 연신 제 볼과 이마를 짚어대는 그들의 손길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어제보다 한결 나아진 루카스의 상태에 그들이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흑… 정말 다행이에요.”

    아직 덜 울었는지 엄마인 블레인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우리 루카스는 강한 아이예요, 블레인.”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는 시비에의 눈가 역시 붉어졌다.

    ‘…드디어 죽나 했더니만.’

    생각은 이렇게 했지만, 가슴 한편에 피어나는 따뜻한 감정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루카스였다.

    ***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 말을 못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런 나이다.

    이빨도 이제 거의 다 자라났고 혀를 깨물기에 부족함 없는 치악력을 길러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순순히 이 집에 남아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백 년이라는 시간은 아주 찰나와도 같지. 어차피 이번 생이 끝나고 나면 지긋지긋한 천계에서 끝내지도 못하는 지루한 영생을 살아야 하니…….’

    처음엔 아직 힘이 모자라 죽지 않는 것이라며 합리화를 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칼을 쥐기에도 모자람이 없었기에 그런 핑계들은 저 자신에게도 먹히질 않았다.

    그러니 이제 이 찰나와도 같은 시간을 한번 살아보겠다 마음먹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 도련님은 어쩜 이렇게 점잖으실까!”

    “…….”

    말수도 별로 없고, 또래 남자아이들이 하는 저지레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니, 주변 사람들이 온화한 성품이라며 입을 모아 칭찬했다.

    실상은 입을 열기 시작하면 온갖 욕설이 튀어나올까 말을 아끼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짜증 나는 인간들 같으니…. 내가 다 크기만 하면……!’

    인간의 성장은 어찌도 이렇게 느린지 다섯 살이 된 지금도 걸음이 완전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연습하겠다고 매일같이 산책을 나섰다.

    ‘저게 뭐야?’

    유모가 나무 아래 앉아 잠시 간식거리를 준비하는 사이, 루카스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것을 향해 조심스레 걸어간 루카스가 몸을 숙여 그것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봤다.

    ‘마나석? 아티팩트?’

    눈앞에 놓인 붉은빛 보석은 잘 세공되진 않았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평범한 돌멩이의 것이 아니었다.

    조심스레 손을 뻗던 그가 잠시 손을 멈칫했다.

    ‘저주라도 걸려 있으면 어쩌지?’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본래 드래곤이었던 그의 보석을 향한 열망을 멈추지는 못했다.

    ‘……!’

    보석을 작은 손에 쥔 그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나… 마나가 생겨났다……!’

    ***

    보석을 조심스레 주머니에 넣어 방으로 가지고 돌아온 루카스는 그때부터 마나를 운용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아주 작은 쌀알만 한 마나라도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본디 가진 본인의 그릇보다는 커지지 못하는 것이 맞지만 제 몸에 이미 생겨난 마나가 아닌가!

    오천 년의 용생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수개월 만에 3서클의 마나를 몸에 그려낸 그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실상은 다섯 살짜리 애가 짓는 썩소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이 정도면 작은 불 정도는 일으킬 수 있겠네.’

    3서클이라고 하지만 일반적인 인간이 단시간에 이뤄내기엔 힘든 업적이었다.

    본인이 알고 있는 온갖 지식들을 다 끄집어내 훈련한 엄청난 성과였다.

    ‘흐음……. 요즘 인간들은 마법을 얼마나 쓰나…….’

    마법 생물인 드래곤이 가져본 적 없는 의문.

    인간계로 유희를 떠났을 때도 드래곤보다 훌륭한 마법사는 당연히 만나본 적 없을뿐더러 대륙, 아니 전 세계에서 제일가는 마법사마저도 7서클, 8서클에 그쳤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했던 유희가……. 그래, 오백 년 전이로구먼.’

    마나를 모았다 퍼트리기를 반복하던 그가 오백 년 전의 유희를 떠올렸다.

    그 유희를 마지막으로 그는 가끔 인간계에 나가 짧은 유희만을 즐겼을 뿐, 제대로 된 유희를 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한참을 앉아 있던 그의 미간에 작게 주름이 잡혔다.

    “어머, 도련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셔요~? 귀여우셔라.”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때에 유모가 들어와 그의 볼을 어루만졌다.

    “아니야. 아무 생각 안 해쪄.”

    배시시 웃으며 대답하는 루카스의 이마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춘 유모의 입에 미소가 번졌다.

    ‘옘병,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아직 완전하지 못한 발음으로 대답을 할 때마다 루카스는 아직도 작게나마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수치심에 저도 모르게 붉어진 루카스의 볼을 바라보던 유모가 다시 한번 이마에 입을 맞추고 방을 빠져나갔다.

    ***

    열 살이 되었다.

    이 지긋지긋한 인생을 끝내지 않기로 다짐한 루카스에게 새로운 계획이 생겼다.

    저를 너무나도 아끼는 제 부모의 인생에 도움을 조금 줘 보기로.

    제 부모들이 하는 말을 주워듣다 보니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쩌다 이 지경에 처하게 되었는지를 대충이나마 파악하게 되었다.

    선황이 병으로 죽고 나자 적통이었던 첫째 황자를 죽이고 황제가 된 서자.

    어느 나라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본인들의 신념을 지키던 제 부모는 적통인 첫째 황자를 지키려 둘째 황자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직접 가담은 하지 않았으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변두리까지 쫓겨나게 된 것이었다.

    루카스는 온갖 명분을 갖다 붙여 죄 없는 제 부모들을 쫓아낸 황제를 언젠가 혼내줄 생각이었다.

    5서클. 마나를 얻은 그 시점부터 열심히 수련해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어딜 가나 마법사는 귀했고 듣기로는 4서클부터는 극진히 대접까지 한다고 하니…….

    지금 힘을 드러내면 도리어 역효과가 날 수 있었다.

    열 살의 어린 인간이 도달한 5서클은 누구도 납득하기 힘들 테니 말이다.

    ‘인간의 몸은 언제쯤 다 크지? 열일곱? 열여덟?’

    한참을 생각하던 루카스가 정원으로 향했다.

    이젠 제법 크니 유모가 어딜 가나 따라붙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백작저에서 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면 득달같이 누군가 쫓아왔다.

    그러다 보니 적당히 자유로운 몸이 되기 위해서는 정원이 가장 알맞았다.

    “우리 도련님께서는 사색에 잠겨 계시는 일이 참 많아요.”

    “맞아요, 저 작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그리도 골똘히 하시는지! 너무 귀여우셔요!”

    한낱 인간들이 저 작은 인간의 속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어딜 가나 따라붙는 저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의 눈빛을 피할 길은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제대로 한번 살아주지……!’

    ***

    그 시각 백작저를 지나는 한 인영의 눈이 번뜩였다.

    ‘마법사가 있나 본데?’

    이 시골 깡촌에 있는 허름한 백작저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예사롭지 않았다.

    ‘흠……. 4서클? 아니, 5서클은 족히 되겠어.’

    그는 말머리를 세워 백작저의 입구에 내려섰다.

    “누구십니까?”

    아무리 허름한 백작저라도 필요한 구색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저택 앞 경비 두 명은 실상 누가 쳐들어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만큼 노쇠했지만, 검집을 잡은 손은 제법 단단했다.

    “아, 지나가던 행인입니다만…….”

    그가 말을 마치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동그란 패의 반짝이는 문장은 그가 왕실 마법사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무, 무슨 일로…….”

    마법사는 대륙 어딜 가나 귀하고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들의 신분이 무엇이었든 여느 귀족보다 귀한 사람이었다.

    그 문장을 본 경비들의 표정이 한껏 누그러지자,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곳의 주인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경비 한 명이 사람을 불러 말을 전하자, 이내 굳게 닫혀 있던 백작저의 문이 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