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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75화 (완결) (175/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75화

    175화 평화(완)

    “어떻게 됐느냐?”

    “죽였습니다.”

    데몬을 상대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합류한 나는 아버지의 물음에 대답했다.

    천지훈의 죽음. 즉,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천태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시신은?”

    “태웠습니다.”

    덤덤한 내 대답에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

    작은 한숨.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읽은 나는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덤덤하게 말하긴 했지만 나라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개망나니였다지만 혈육이었다.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고개 숙이지 마라. 네 잘못이 아니니.”

    짧게 말한 아버지는 전방에 보이는 데몬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 역시 마지막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악마들의 왕을 향해 달려갔다. 잡념을 떨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아버지의 공격으로 노출된 녀석의 약점을 집요하게 노리기 시작했다.

    테론, 스테니언, 아버지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여유 넘치던 데몬은 나와 천우진이 합류하기 시작하자 점차 인상을 구기기 시작했다.

    “크윽. 이 버러지들이!”

    화를 내는 데몬에게 들끓는 용암이 날아들었다. 데몬은 손을 들어 테론의 공격을 막아 냈다.

    테론의 용암에 밀려난 데몬이 뒤를 힐끔거렸다.

    “내가 이미 태웠어.”

    녀석의 속셈이 어떤 것인지 단숨에 파악한 나는 대답했다. 녀석은 분명 천지훈의 시신을 찾고 있었다. 녀석의 시신을 흡수해 더욱 강해질 생각이었겠지. 아쉽지만 우리는 녀석의 계획에 따라 줄 생각이 없었다.

    나는 당황한 데몬이 보인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날렸다.

    콰앙-!

    “커억-!”

    데몬의 고개가 크게 돌아갔다.

    더해 검은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치이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바닥을 본 나는 조금 거리를 벌리고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조금 시간을 벌어 주세요.”

    날개가 찢어진 스테니언, 옆구리가 뭉텅이로 날아가 버린 테론 페르몬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온갖 마법을 활용하여 데몬의 발을 묶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얼음 기둥을 쌓아 녀석의 경로를 차단하는가 하면, 초열의 용암이 녀석의 날개를 일부 태워 버리기도 했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아!!”

    눈이 완전히 돌아간 데몬이 소리치며 날기 시작했다. 기존보다 몇 배는 빠른 움직임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상해 있던 날개가 말썽을 부리는 탓인지 얼마 가지 못해 바닥에 처박히는 모습이었다.

    붉게 충혈된 눈을 내비친 녀석이 천천히 일어났다.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정제되지 않은 살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오싹한 기분이 듦과 동시에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쩌저저적.

    찌지직-!

    녀석은 상한 날개가 거추장스러운지 제 손으로 뜯어내고 있었다.

    검은 피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 역한 장면에 인상을 찡그릴 새도 없이.

    으득.

    테론 페르몬드의 날개가 꺾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붉은 드래곤들의 왕의 뒤를 잡은 것이다.

    “크워어어어!!”

    고통스러워하는 테론에게 싸늘한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나만 당할 순 없잖아?”

    데몬은 기괴할 정도로 오싹한 미소를 지으며 남은 한쪽의 날개마저 꺾어 버렸다.

    테론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테론!!”

    [오지 말고 준비해!]

    테론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언령 마법을 통해 나에게 소리쳤다. 나는 옮기려던 발을 멈칫한 뒤,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동료가 녀석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크아아!”

    “죽어!!”

    테론뿐만이 아니라 스테니언, 아버지, 천우진 역시 녀석을 상대하기는 버거운지 잔 상처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힘을 모으고 또 모을 뿐이었다.

    “흐읍!”

    천지훈을 상대한 그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언가…… 무언가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기술이 필요했다.

    “……!”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천우진의 말이 번뜩였다.

    [최후의 수단으로는 이걸 사용해.]

    나는 모든 기술을 합치기로 했다.

    상성이 상충 되는 것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기술을 한곳에 때려 넣기 시작했다.

    만년설, 뇌, 흑운, 염화, 청화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와 뺏었던 기술들 은빛용 실버에게 전수받은 기술. 그리고 동료들에게 하나씩 받았던 비장의 기술들까지.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전쟁 직전, 천우진에게 받았던 스킬 때문이었다.

    융합.

    스킬과 특성 심지어 칭호까지도 합칠 수 있는 놀라운 능력. 그러나 한번 융합을 진행했을 경우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는 스킬이었다.

    그러나 나는 망설임 없이 스킬을 진행 시켰다.

    내가 그동안 얻은 모든 스킬과 특성 칭호를 모두 갈아 넣었다.

    [유니크 등급 칭호 ‘위대한 모험가’를 융합하시겠습니까?]

    [전설 등급 특성 ‘천가의 피’를 융합하시겠습니까?]

    [전설 등급 특성 ‘야차’를 융합하시겠습니까?]

    [전설 등급 스킬 ‘왕의 권위’를 융합하시겠습니까?]

    [신화 등급 스킬 ‘활력’을 융합하시겠습니까?]

    …….

    확인을 묻는 알림창이 미친 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떠오르는 족족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내가 모아 온 50가지의 스킬 특성 칭호가 모두 융합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온몸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코피가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몸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아무리 강해졌던 나라도 결코 감당하기 힘들 만한 고통이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정신을 붙잡았다.

    입술이 터지고, 결국 이빨을 아득 갈기 시작한 나는 어금니가 부서지는 경험까지 해야만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알림창이 울리기 시작했다.

    [융합이 완료되었습니다.]

    [스킬 ‘??’이 생성되었습니다.]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는 스킬을 확인한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모든 것을 갈아 넣은 이 스킬이 쓸모없는 것일 경우 가망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순간.

    결과가 좋지 않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상황 또한 좋지 못했다.

    이미 눈앞에는 빛을 잃어가는 테론 페르몬드가 있었다. 나머지 동료들 또한 크게 지쳐 전투를 계속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반면 데몬 녀석은 비교적 멀쩡한 상태.

    만약 이 스킬이 통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절망적으로 바뀔 것이 뻔했다.

    우리는 지쳐 가는 반면 저 녀석은 포식을 이용해 더욱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몸이 진정되기도 전에 스킬을 시전 했다.

    그러자 온몸의 기력이 쭉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부웅!

    손바닥 위로, 무언가가 붕 떠올랐다.

    작고, 초라하고, 아름다운 구슬이었다.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는 조그마한 구슬.

    작은 구슬을 바라본 나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동료들은 싸늘한 주검이 된 테론을 집어삼키려는 악마를 공격하고 있었다.

    나는 그중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천우진에게 소리쳤다.

    “천우진!!”

    고개를 홱 돌아본 천우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아버지와 테론의 죽음으로 눈이 완전히 돌아간 스테니언을 끌고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놔라!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냐!! 어서 테론을!!”

    갑작스러운 끌어들임에 화난 스테니언이 소리쳤다. 그러나 지금은 설명할 시간조차 없었다. 나는 천천히 데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녀석은 실버 때와 마찬가지로 붉게 타오르는 붉은 용의 심장을 꺼내고 있었다.

    나는 차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누른 채 녀석에게 말했다.

    “야.”

    데몬의 고개가 돌아갔다. 정면을 바라본 상태에서 목만 돌아가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연출됐다. 녀석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고개를 기울였다.

    “왜에? 이거 먹으면 못 이길 것 같아서 그래? 크큭.”

    녀석은 실실 웃으며 테론 페르몬드의 심장을 흔들어댔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빠르게 녀석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거 먹지 말고 이거나 먹어.”

    나는 손바닥 위로 떠오른 작은 구슬을 녀석의 입을 향해 처넣었다.

    녀석은 입을 향하는 작은 구슬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꼬리를 이용해 구슬을 쳐 냈다. 아니 쳐 내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믿을 수 없을 만한 굉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작고 초라한 구슬.

    그러나 위력마저 작은 것은 아니었다.

    내 손에 들려 있던 오색찬란한 구슬은 데몬의 꼬리에 닿는 순간 폭발했다. 그러고는 악마들의 왕, 데몬의 존재 자체를 지워 버렸다.

    “허, 이게……!”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뒤로 존재하던 모든 것들을 사라지게 했다. 나무, 흙, 바위, 새, 곤충, 지형.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거기에는 패색이 짙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데몬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던 악마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름 모를 구슬의 위력을 확인한 동료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감탄 따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아직 무수히 남아 있는 잔당들……

    그들의 처리가 우선이었다.

    “다들, 전투준비!!”

    * * *

    전쟁이 끝났다.

    수만의 플레이어가 죽었고 악마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으며, 많은 용과 도깨비들이 죽었다.

    처절했던 사투에 비해 남는 것은 없어 보이는 전쟁이었다.

    우리는 얼마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잃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떻게, 또 어떤 식으로 상황을 헤쳐 내가 가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결국 살아가기 시작했다.

    멸망했던 나라를 다시 세우고, 구호 물품을 전해 주고, 갖가지 건물들을 지었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회복했다.

    벌컥 문이 열리며 천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주! 또 그 생각해?”

    “천지현!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공과 사를 구별 못 해!”

    조용한 휴식 시간을 보내던 내방에 불쑥 찾아온 불청객 천지현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녀의 모습을 본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휴, 저런 게 가문의 이인자라고.”

    “뭐래, 능력도 없는 게.”

    천지현은 놀리듯 입술을 내밀었다. 이를 못마땅한 모습으로 바라본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왔어?”

    잠시 뜸을 들인 천지현은 작게 미소 짓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이계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드디어 마계의 잔당들이랑 추종자들을 모두 잡아낸 것 같대.”

    천지현의 말을 들은 나는 벌떡 일어났다.

    “진짜?”

    “그래, 진짜.”

    천지현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드디어…….”

    “그래, 드디어. 이젠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다고 전해 주러 왔어.”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어휴 드디어 지긋지긋한 잔당처리도 끝났네. 아 맞다! 조만간 카렐이 이계로 넘어오래. 세계선끼리의 ‘규율’을 다시 정하자고.”

    천지현의 말에 나는 드디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규율을 다시 정하자는 것은 말 그대로 세계의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다고 해. 조만간 찾아간다고.”

    “……그래. 난 할 말 끝났으니 간다.”

    할 말을 마친 천지현은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나는 그런 그녀의 뒤통수를 조용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잠깐!”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천지현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뭐 할 말 있어?”

    천지현의 얼굴을 잠시 바라본 나는 조용히 탁상 위에 올려져 있던 고급 위스키를 잔에 따랐다. 천지현은 여전히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뭐…….”

    10년 동안 이어진 지긋지긋한 일을 회상한 나는 쓴 미소를 삼키며 술 한 잔을 들이켰다.

    “……고생했다고.”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완결)

    ^공^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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