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74화 (174/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74화

    174화 최후의 결전(8)

    최상위 격 72 악마 둘을 상대한 나는 서둘러 뒤를 돌아봤다. 서서히 전장의 판도가 모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돌연 나타난 도깨비들이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었고, 반 페르데이스, 암살이, 우마가 종횡무진 날뛰는 중이었다.

    전방은 곧 어렵지 않게 승세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이쪽이었다.

    용들의 왕이 있는 곳을 돌아본 나는 끔찍한 광경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실버…….”

    데몬에 의해 축 늘어진 은빛 용들의 왕이 눈에 들어왔다.

    심장을 빼앗긴 용은 완전히 눈빛이 꺼진 채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흩날리는 그의 육신을 바라본 나는 소리치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실버!!”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다급히 내 앞을 막은 천우진이 무거운 눈으로 말했다.

    “침착해!”

    “저 녀석이 지금 내 스승을…….”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눈물이 차올랐다. 그러나 천우진은 더욱 단호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지금 그럴 때 아닌 거 알잖아.”

    잔인할 정도로 냉정한 목소리. 맞는 말인 것을 알면서도 원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천우진…….”

    “인마! 정신 차려.”

    “알고 있어. 그렇지만…….”

    잠시 뜸을 들이던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너, 나처럼 죽으려고?”

    천우진의 말에 나는 멈칫했다. 과거 천우진의 모습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홀로 가문의 복수를 하겠답시고 중국으로 쳐들어갔던 녀석.

    천우진은 지금 그 무모한 도전을 했던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나를 겹쳐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너무 흥분했나 봐. 미안.”

    “알면 됐어. 그보다…….”

    천우진은 한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어느새 지상으로 내려온 왕의 측근들이 있었다. 푸른 용들의 왕 스테니언과 붉은 용들의 왕 테론 페르몬드는 각각 두 마리의 최상 격 악마들과 혈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불리한 상황. 빠르게 그들을 돕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

    이 모든 일의 원흉이자 가문의 원수.

    천지훈.

    그는 지금의 상황이 재밌다는 듯 관망하는 중이었다. 살기 어린 나의 시선을 느낀 천지훈은 나를 바라봤다.

    허공에서 번개가 튈 듯 시선이 맞부딪혔다.

    “안 가 봐도 되겠어?”

    조롱 섞인 비웃음이 날아들었다. 말아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녀석을 향해 달려들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일단 스승들부터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천우진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녀석은 내가 견제할 테니, 빨리 가서 저 녀석들을 구해.”

    차갑게 내리깔린 천우진의 목소리에서 적잖은 분노가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테론에게 달라붙은 악마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때마침 도착한 아버지도 스테니언에게 붙은 72 악마 중 하나를 떼어 내고 있었다.

    “크윽! 갑자기!!”

    당황한 72 악마 녀석의 위로 천지훈에게 훔친 기술 뇌룡을 내리꽂았다. 박윤식 영감의 동상으로 인해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었다.

    콰르르릉!

    번개를 막은 72 악마의 팔이 순식간에 소멸했다. 당황스러울 정도의 위력에 악마는 경악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나는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올렸다. 조금 전보다 더욱 거대한 뇌룡이 강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 잠깐!”

    “늦었어.”

    콰르르릉-!

    단 두 번의 공격으로 녀석은 명을 달리했다. 나는 새삼 강해진 나의 능력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이 정도의 무력이면…….’

    스승님의 원수 데몬과 천지훈까지도 능히 상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테론에게 붙은 악마까지 마무리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버지가 합류한 저쪽도 슬슬 마무리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이제 남은 것은 악마들의 왕 데몬과 천지훈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당하고 있음에도 재밌다는 듯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들의 태도에서 묘한 이질감이 새어 나왔다.

    “뭔가 이상해.”

    내 맘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나에게 다가온 천우진이 입을 열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왜…….

    저들은 이리도 태평한 것인가.

    대체 무엇을 믿길래 저리도 태평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나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인상을 찡그렸다.

    천우진의 검은 낙뢰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나 역시 뇌룡을 내리쳐 녀석의 공격을 상쇄시켰다.

    “졸렬한 건 여전하군.”

    “기다리다 보니 너무 지루해서 말이야.”

    “동료들이 모조리 당할 때까지 기다렸단 말인가?”

    “동료? 크큭. 누가 동료래?”

    비웃듯 웃은 천지훈은 쭉 손을 뻗쳤다. 그러자 목숨을 잃은 72 악마들의 육신이 붕 떠올랐다.

    ‘천가의 피’의 능력 염동력을 활용한 것이었다. 72 악마들의 시신을 모두 끌어당긴 천지훈은 가장 가까이 있는 녀석을 들어 올렸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강해졌는지 알아?”

    “…….”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천지훈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보기에도 역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기 시작했다.

    콰직.

    “미친놈……!”

    입을 쫙 벌려 동료들의 육신을 뜯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하나를 먹어치운 천지훈은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포식. 내 새로운 능력이야.”

    씨익 웃어 보이는 녀석의 얼굴이 보임과 동시에, 가공할 만한 힘이 터져 나왔다.

    악마들의 왕 데몬은 그런 천지훈을 재밌다는 듯 보고 있었다.

    “나와 능력이 똑같다니. 너도 강한 녀석이었구나?”

    은빛 용의 드래곤하트를 모조리 소화시킨 데몬 역시 힘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 * *

    절망적인 상황의 연속이었다.

    최상위 격 악마들을 대부분 처리한 터라 승세는 많이 기울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사실 저 녀석들에게 숫자는 무의미했다.

    그저 볼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였다.

    천지훈과 데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들이었다.

    남들의 능력을 가져올 수 있는 내 능력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저들은 자신들이 포식한 생명체의 힘 자체를 흡수하고 있었다.

    “테론!!”

    “알고 있다!”

    내 부름과 동시에 테론의 브레스가 터져 나왔다. 들끓는 용암이 화산처럼 쏟아져 나왔다.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한 기세로 나아간 공격이 노린 건 데몬이나 천지훈이 아니었다. 천지훈의 앞에 수북하게 쌓인 72 악마들의 시체들이었다.

    천지훈과 데몬의 파워업을 막기 위한 공격.

    콰과과과과!

    엄청난 브레스가 땅을 녹이며 악마들의 시체가 있던 자리를 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재빨리 반응한 천지훈의 능력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워, 워 아직 많이 남았는데 뺏길 수는 없…….”

    염동력을 이용해 72 악마들의 시체를 허공으로 이동시킨 천지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염화(炎火)의 불꽃은 테론만 쓸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나는 공중에 떠오른 시신들을 모두 태워 버렸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시신을 본 천지현의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아주 죽여 달라고 발악을 하는구나.”

    “해 보던가.”

    안면을 와락 구긴 천지훈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녀석에게 달려나가며 소리쳤다.

    “이 녀석은 내가 맡겠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말게.”

    붉은 용들의 왕 테론 페르몬드, 푸른 용들의 왕 스테니언, 천가의 주인 천태산 그리고 나에게 새 삶을 선물한 천우진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모두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쿠와아악!!

    바닥이 미친 듯이 떨리고 대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몸이 터져 나가고도 남을 정도의 압도적인 살기가 천근처럼 내리꽂혔다.

    그럼에도…… 인상을 찡그리는 녀석들은 없었다. 그저 모든 전력을 다해 적을 향해 돌진할 뿐이었다.

    브레스가 난무하고, 얼음이 솟구치고, 화염이 대기를 녹였다.

    “끄아아악!!”

    “크헉!”

    비명이 난무했다.

    그럼에도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저들을 믿기로 했다.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저들의 안위가 아니라 천지훈이었으니까.

    “너는 너무 멀리 갔어.”

    “날 이렇게 만든 건 모두 그 빌어먹을 가문 천가다.”

    “미친놈. 과거에도 그딴 말이나 지껄이더니.”

    “뭔 개소리야. 이 건방진 새끼야!!”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치는 천지훈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주먹 위로 맹렬하게 회전하는 검은 기운이 깃들었다. 녀석의 계획에 의해 죽은 나의 스승, 천태백의 힘이었다.

    조소를 흘린 천지훈 역시 주먹을 내질렀다. 검은 전기가 그의 주먹 주위에서 널뛰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충격파가 거대한 바람을 일으켰다.

    “크윽!”

    가장 먼저 신음을 흘린 것은 천지훈이었다.

    녀석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흑운의 원래 힘은 적의 힘을 차단하는 거야. 이 빙신아.”

    나는 기괴하게 꺾여 버린 녀석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폐기물이었던, 버러지 새끼가!!”

    분노한 천지훈이 다시 달려들었다. 그의 손은 악마의 힘 때문인지 순식간에 회복되어 있었다.

    나는 긴 숨을 내뱉었다.

    내 호흡에 맞춰 은빛 안개가 주위를 메우기 시작했다.

    “흥, 그런 조잡한 수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

    이미 마르바스와 조금 전 실버의 기술을 봤던 천지훈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웃어 보였다.

    “내 스승의 기술은 그렇게 약하지 않아.”

    안개 속으로 몸을 감춘 나는 청화의 불꽃을 피워 내기 시작했다.

    은빛 안개와 허깨비.

    이 둘의 조합은 환술에 있어서 최강의 궁합을 자랑했다.

    휘이익!

    바람 가르는 소리와.

    콰르릉.

    번개가 내리치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하지만 그 기술은 전혀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천지훈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크큭. 통할 줄 알았냐, 이 쓰레기야!”

    자신이 환각을 완전히 파훼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약하지 않다니까.”

    작게 읊조린 나는 허공에 공격을 날리는 녀석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온몸에 흑운의 기운을 둘렀다. 외부와의 기운을 모조리 차단한 나는 손을 들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쪽 손에는 염화의 불꽃과 청화의 불꽃을 합쳐 가장 거대한 불꽃을 만들어 냈고, 다른 한쪽 손에는 만년설과 뇌전을 섞어 전력이 널뛰는 얼음덩어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온 힘을 갈아 넣어 만든 두 개의 구체의 밖에 흑운의 기운을 덧댔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녀석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대단한 환각이라 한들 녀석이 살기를 느끼는 순간 깨어날 확률이 높았다. 녀석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짙게 깔아놨던 흑운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동시에 이 많은 힘을 사용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만큼 손에 느껴지는 기운은 상상 이상이었다.

    깊게 심호흡한 나는 녀석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했다.

    “……!”

    그때, 녀석의 눈이 돌아왔다. 미약한 살기를 느낀 것이다.

    나를 발견한 녀석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젖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나는 있는 힘껏 발돋움하며 녀석을 향해 양손을 내밀었다.

    콰과과과과!!

    쩌저적!

    쉬이이이익!

    동시에 들어간 공격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난잡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동시에.

    “끄아아아아악!!”

    엄청난 비명이 들려왔다.

    녀석은 완전히 몸을 비틀며 몸부림쳤다.

    “끄아아악!!”

    끄윽.

    컥!

    녀석의 몸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아무리 재생력이 뛰어난 악마라고 한들 회복할 수 있을 만한 상처가 아니었다.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최악의 악마이자 형에게 다가가…….

    “잘 가라.”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