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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73화 (173/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73화

173화 최후의 결전(7)

“실버!!”

등 뒤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나는 뒤를 돌아보려다 멈칫했다.

“……!”

예민해진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당하고 말 것이라고.

눈앞 악마는 분명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분위기였다. 나는 그대로 시선을 고정한 채 눈앞의 적을 바라봤다.

내가 조금 전 날린 염화의 불꽃을 거둬낸 녀석이 말했다.

“크큭. 드디어 전장이 기울기 시작하는구나.”

불길한 말을 내뱉는 녀석의 태도에 나는 천천히 기감을 넓혔다.

비릿한 미소를 짓는 악마의 표정과 등 뒤로 느껴지는 기운의 변화가 여실히 느껴졌다. 나는 얼추 안개 속에서 벌어진 일을 유추할 수 있었다.

“…….”

안색이 나도 모르게 딱딱히 굳어졌다.

“흐흐흐. 겨우 도마뱀 새끼 한 마리가 우리들의 왕을 이길 것 같았더냐?”

“그 입 다물어라.”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는 것 같았다. 적들의 왕을 홀로 상대하려 했던 실버가 당한 것이다.

다급해진 나는 험악하게 소리치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태였다. 천우진이 합류하자마자 다른 한 마리가 나에게 붙었다. 결국 상황은 달라지지 않은 상태. 두 마리의 악마를 상대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도 부담이었다.

‘빨리 합류해야 하는데…….’

나는 조급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천천히 심호흡했다. 둘을 천천히 상대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었지만, 빨리 녀석들을 해치우고는 합류할 수는 없었다. 이유인즉슨 한 마리를 몰아붙이기 시작하면 절묘한 타이밍에 다른 악마의 공격이 날아들었기 때문.

‘이래서는 안 된다!’

조급한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나는 자연스레 멀리서 느껴지는 소환수들을 떠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반 페르데이스와 암살이, 우마를 모두 불러 단숨에 전장을 뒤집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느껴지는 이 감각이 말해 주고 있었다. 그들 역시 엄청난 혈투를 벌이는 중이라고. 내가 만약 소환수를 모두 불러들인다면 최전방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 터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

가만히 녀석을 바라보자 눈앞의 악마는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려 보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옆으로 붙은 동료 악마를 바라보고는 말을 이어 갔다.

“뭐, 대답하지 않아도 돼. 크큭 데몬님의 다음 먹이는 저 녀석인가?”

녀석들은 흥미롭다는 듯 킬킬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저 녀석도 죽겠군.”

“그러게 말이야. 눈엣가시 같은 녀석이었는데. 빌어먹을 붉은 도마뱀 새끼! 저 녀석과 광룡만 아니었다면 진즉 그 세계도 우리 것이 됐을 텐데…….”

분하듯 내뱉는 악마들의 대화에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더 이상 시간을 끌릴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최대한 미루고 있었던 건데…….”

나는 품 안에 다시 넣어 놨던 도깨비 보따리를 꺼내 들었다. 최후방에 위치한 동상들을 모두 꺼내 놓을 때 유일하게 꺼내지 않았던 단 하나의 동상이었다.

박윤식 영감이 만들어 준 마지막 그의 마스터 피스.

오직 나만을 위해 만들었던 그 동상을 천천히 꺼내 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동상에, 나를 상대하던 두 마리의 악마들은 미간을 찡그렸다.

“뭐 하자는 거지?”

“전시회라도 할 생각인가?”

그들의 말을 모두 무시한 나는 전장에 떡하니 자리한 동상을 바라봤다. 처음 이 동상을 받았을 때와 똑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영감은 어쩌자고 이런 동상을 만들었는지…….”

절로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걱정 반, 기대 반의 느낌이었다.

‘영감의 생각이 맞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영감에게 부탁한 것은 소환수로 만들 멋진 녀석이었다. 그런데 영감이 만든 것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영감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나와 소환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동상이었다.

반 페르데이스의 거대한 등에 올라타 관망하듯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그 아래서 흑운을 흩뿌리며 거대한 낫을 휘두르고 있는 암살이. 그리고 암살이의 머리 위에서 어울리지 않게 무시무시한 낙뢰를 흩뿌리는 우마까지.

사진이라도 찍어 놓은 듯 정확한 비율의 동상이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동상에서는 어이없게도 은은한 빛이 발하고 있었다.

이는 내 고유스킬 활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스킬 ‘활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작은 알림창이 눈앞에서 점멸하고 있었다.

‘박윤식 영감의 수많은 동상조차도 가능한 녀석이 거의 없었는데…….’

나와 소환수들의 초상화라 할 수 있는 동상이 빛나고 있었다.

‘만약 활력을 사용하면 내가 두 명이 되는 건가?’

잠시 생각하던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더는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곧 흥미를 잃어버린 악마들의 공격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사용한다.”

외침과 동시에 동상에서 하얀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밝은 빛에 악마들은 눈을 가린 채 주춤했다.

[‘활력’을 사용하셨습니다.]

…….

삐익-!

불길한 경고음에 나는 알림창을 주시했다.

[실존하는 인물입니다. 구현할 수 없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절망적인 문구였다.

“미친…….”

박윤식 영감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걸작. 그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난 믿을 수 없었다.

잠시 공항에 바진 듯 넋을 놓고 있을 때였다.

[장인 박윤식의 영혼을 담은 걸작입니다. 추가 능력치가 구현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문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존재하는 인물은 구현할 수 없습니다.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활력’을 구현합니다.]

[이름을 정할 수 없습니다.]

[능력을 재분배합니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빼곡히 눈앞에 이어졌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나는 일단 기다려 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악마들의 공격을 막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턱.

그들의 날카로운 이빨과 창을 막은 나는 손을 바라보았다.

“어?”

너무나도 쉽게 막아버린 탓이었다. 그들은 엄격히 최상위 격에 다다른 악마. 질병의 왕 마르바스보다 훨씬 강력한 무력을 지닌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느껴지는 이 감각은 내가 하위 격 악마들을 상대할 때의 기분이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변화에 나는 고개를 홱 돌려 동상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동상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동상의 힘이 실존하는 주인들에게 스며듭니다.]

[동화율, 일치율이 100퍼센트에 근접합니다.]

[능력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믿기 힘든 알림창을 바라본 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 * *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갑자기 난입한 수십의 도깨비들이 전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하하하핫!! 악마들아! 오랜만이구나!”

“감히 우리 대장을 건드려?”

콰앙!!

화르륵!!

엄청난 괴력과 불장난 그리고 허깨비로 적들을 홀리기 시작한 도깨비들은 순식간에 악마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끄아악!!”

“이 미친 새끼들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갑자기 난입한 수십의 거인들에게 쓸려 버리기 시작한 악마들은 놀란 얼굴로 기함을 토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튀어나왔단 말인가.

갑작스러운 전개에 놀란 것은 악마뿐만이 아니었다. 패색이 짙어져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드래곤들에게도……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플레이어들에게도 도깨비의 존재는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저 녀석들이……!”

한쪽 날개가 찢긴 고룡 후로보스가 놀란 눈으로 도깨비들을 바라봤다.

“어쨌든 잘 됐군.”

72 악마의 팔을 질겅질겅 씹어먹던 카렐 페르데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타락한 드래곤과 대치하고 있던 박한별을 향하고 있었다.

“도와줄까? 대장?”

박한별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고대 도깨비 가비였다. 외눈박이 도깨비인 그는 거대한 육신으로 수십의 악마들을 한 번에 짓밟으며 박한별의 앞에 섰다.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친근하게 묻는 가비의 물음에 박한별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가비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크흐흐. 감히 우리 대장을 건들다니 제대로 복수를 해 줘야겠군.”

이에 박한별은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이르기라도 하듯한곳을 가리켰다.

플레이어 수백을 죽이고 자신과 대치하고 있던 본 드래곤이었다. 고개를 돌린 가비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도마뱀 새끼가!”

흉신악살, 야차, 악마. 그 어떤 말로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을 험악한 얼굴이었다.

“우리들의 무서움을 잊었구나.”

소리친 그가 온몸을 태우며 사라졌다.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불꽃이었다. 푸른 불꽃이 사라지고, 본 드래곤의 등 뒤에 방망이가 나타났다.

콰아앙-!

귀를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충돌음이 일었다.

“너희들이 드래곤의 상대가 되었던 적이 있던가?”

비릿한 웃음과 함께 가비의 방망이를 막은 본드래곤은 돌연 인상을 구겼다.

가비의 방망이를 막은 그의 날개뼈에 금이 가기 시작한 탓이었다. 상상 이상의 괴력에 본드래곤은 당황했다.

“크…… 크윽! 어,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까지 화난 적은 없었거든.”

험악한 가비의 표정을 바라본 박한별은 주위를 둘러봤다. 도깨비들의 왕 마고로부터 이매망량의 칭호를 받은 그녀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도깨비들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돌연 자신 때문만이 아니라고 생각한 박한별은 가비를 바라봤다.

가비는 분노에 찬 모습으로 사정없이 방망이를 휘두르는 중이었다.

“우리가 바보였지.”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이냐!!”

“염비를 오니로 만들고…….”

콰앙!!

“백의의 일족과 후예를 끌어들이고.”

콰아앙!!

“우리들의 왕을 죽게 한 사건의 뒤에는 너희들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으니 말이다!”

충격적인 가비의 발언에 박한별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녀 역시 도깨비방망이를 꽉 쥔 채, 본 드래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밤새술을 들이켜며 치렀던 전대 이매망량의 장례식이 생각난 탓이었다.

고귀한 희생과 비극을 초래한 배후가 누군지 알았으니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놈들이었어…… 네놈들이!”

도깨비불로 순식간에 본 드래곤의 앞에 도달한 박한별 역시 도깨비방망이를 휘둘렀다. 크기에 맞게 줄어들었던 기존의 도깨비방망이보다 훨씬 거대한 형태였다.

콰아앙!!

엄청난 괴력으로 퍼붓는 공격에 본 드래곤의 뼈는 산산조각 부서지기 시작했다.

* * *

상황이 변한 것은 최전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카렐 페르데이스가 72 악마 둘을 상대한 것 때문도 있지만 가장 큰 활약을 펼친 것은 역시 천도윤의 소환수들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말도 안 되게 강해진 상태였다.

“너희들……!”

도움을 받은 은빛 고룡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녀석들을 바라봤다.

이 모든 것이 하얀빛이 날아오더니 생긴 변화였다. 번개처럼 날아온 빛은 순식간에 녀석들에게 스며들었다. 처음에는 악마들의 공격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착각이었다.

72 악마 하나조차 버겁게 상대하던 그들이 어렵지 않게 72 악마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아니 압도했다고 하는 표현이 옳았다. 단숨에 72 악마를 제압한 녀석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우마!!”

수만의 악마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미친 듯이 전격을 내리치는가 하면, 그들이 있는 곳으로 얼음 기둥을 막무가내로 내리꽂았다. 그뿐이면 다행이었다. 안광을 검게 빛낸 암살이는 흑마를 타고 돌진하며 무쌍을 찍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수십의 악마들을 한 번의 낫질에 베어 내며 돌진하기 시작한 암살이는 지치지 않는 장점을 이용해 끊임없이 낫을 휘둘렀다.

악마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명을 달리했다.

서걱.

누가 악마인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섬뜩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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