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72화
172화 최후의 결전(6)
당황한 박한별은 방망이를 축 늘어뜨렸다.
눈알을 까뒤집은 채 달려드는 일반 악마들과는 달리 72 악마 녀석들은 철저히 군대 뒤에 숨어 있었다.
“우리가 지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
저들의 전략을 단숨에 알아차린 박한별은 식은땀을 흘렸다. 완전히 속아버렸다.
“당했다…….”
72 악마들은 플레이어들이 하나, 둘 지쳐 가는 것을 알아채고 나서야,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예상외의 전략적인 움직임에 당황한 것은 박한별뿐만이 아니었다.
천설아는 식은땀을 흘린 채 완전히 사라져 버린 플레이어들의 흔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천설아님!”
박한별은 서둘러 달려가며 겉옷을 벗어 쭉 찢었다. 그러고는 천설아의 커다란 상처를 감쌌다.
반면 천설아는 자신이 다쳤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는지 완전히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이제 보니 적의 움직임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적의 무력에 놀라 패닉에 빠져 버린 것이었다.
“내가 만났던 악마들은 이렇게까지 강하진 않았는데…….”
완전히 영혼이 빠져 버린 천설아를 감싸 안은 박한별은 천설아를 뒤쪽으로 이동시켰다.
그와중에도 천설아의 중얼걸임은 계속됐다.
“분명 우리가 상대한 72 악마는…….”
박한별은 조용히 대답했다.
“아마, 저 녀석은 최상위 격에 있는 녀석일 겁니다.”
조금 정신을 차린 천설아가 놀란 눈으로 박한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박한별 씨는 이런 녀석들과 싸워 온…….”
“예.”
천설아가 무슨 질문을 할지 단숨에 알아차린 박한별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박한별이 상대했던 질병의 왕 마르바스는 이 정도의 무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분명 최상위 격 악마였다.
‘저 녀석은 유독 강해 보이긴 하지만…….’
끝말을 삼킨 박한별은 천설아를 살아남은 부대와 합류시킨 뒤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또 저런 공격이 들어온다면 플레이어들은 완전히 전의를 잃을 것이 뻔했다.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진영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 터.
그런 일 만큼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아야 했다.
‘지금도 위태위태하다. 빠르게 막아야 해.’
전장을 빠르게 읽은 박한별은 황급히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한 사람을 바라봤다.
“현우 오빠!!”
“알겠어!”
엄청난 공격에, 부상자들이 생긴 것을 보고 달려온 서현우는 박한별의 의도를 단숨에 알아차리고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현우가 다급히 손을 뻗자, 하얀빛이 박한별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성스러운 빛이 플레이어의 활력을 끌어올립니다.]
[성스러운 빛이 불결한 존재들을 지워 버리기를 희망합니다.]
생소한 알림음과 함께, 박한별은 온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동시에 총알처럼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시가 바쁜 상황.
빠르게 진영을 가다듬고 혹시 모를 후속타를 대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콰앙-!
순식간에 체력을 회복한 박한별. 벼락 같은 공격에 악마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크으윽!!”
박한별의 방망이는 쉬지 않았고, 악마들은 우후죽순 떨어져 나갔다. 종횡무진 활약하는 박한별. 그녀는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이 빌어먹을 년이!! 죽어!!”
급기야, 보다 못한 72 악마들은 순식간에 박한별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번개 같은 그들의 손톱과 이빨이 박한별의 몸 위를 스쳤다. 그러나.
화륵!
그들이 공격한 것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허깨비였다. 멀쩡히 서 있던, 아니 조금 전까지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던 박한별의 육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화륵.
어디선가 도깨비불이 나타났다.
빨간 뿔을 지닌 악마의 뒤로 연기처럼 나타난 박한별은 재빨리 방망이를 휘둘렀다. 아무리 72 악마라고 한들 치명상을 피하지 못할 만한 괴력이 담긴 공격이었다.
터엉.
박한별의 손으로 큰 진동이 느껴졌다. 동시에 박한별의 미간이 구겨졌다.
“당하고만 사는 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라.”
손쉽게 박한별의 공격을 막은 새로운 악마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깡마른 얼굴에 앙상한 날개를 지닌 모습. 박한별은 그녀가 누구인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본 드래곤?”
“크큭. 오~ 눈썰미 좋은데?”
재밌다는 듯 박수 친 드래곤은 자신이 구해 준 악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네, 위대하신…….”
“됐고, 여긴 내가 맡을 테니 넌 저 녀석들이나 쓸어버려.”
“……예, 알겠습니다.”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72 악마 둘은 빠르게 플레이어들에게 향했다.
눈앞에서 다 잡은 고기를 놓친 박한별은 본인의 입술을 짓씹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온몸이 저릿할 정도로 느껴지는 압박감. 본드래곤의 살기는 박한별의 몸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젠장!”
박한별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생각보다 조금 전의 실수는 치명적이었다.
떠나간 악마가 플레이어들을 도륙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좀만 더 빨리 나섰으면 저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박한별의 어깨를 짓눌렀다.
“잡생각 하지 마, 어차피 너도 똑같은 꼴로 죽어 나갈 테니까.”
심드렁한 본 드래곤의 모습에 박한별은 소리쳤다.
“웃기지 마! 우리는……!”
“크크큭. 꿈도 야무지네.”
놀리듯 되받아친 본드래곤은 엄지손가락을 펴 자신의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끄아아아악!!”
“사, 살려 줘!!”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독하게 표현되는 신음과 애절함이었다.
“이 개새끼들이……!”
박한별의 분노에도 본 드래곤은 장난기 넘치는 표정이었다.
합류한 72 악마들에 의해 전장은 순식간에 뒤집히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은 전의를 잃고 완전히 패닉상태에 빠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벌써 끝물이군. 싱겁게.”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악마이자 타락한 드래곤을 바라본 박한별은 참지 못할 분노를 느꼈다. 목숨을 건 전쟁을 한낱 게임으로 보는 녀석의 태도가 역겹게 느껴졌다.
꽉 쥔 방망이의 손잡이에서 피가 주륵 흘러나왔다. 동시에 박한별의 싸늘한 음성이 주변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런 소리 못 들어 봤어?”
화아아악-!
박한별의 도깨비방망이가 청색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악마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본드래곤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이건……!?”
“도깨비의 화를 돋우지 마라.”
처음으로 본드래곤의 눈이 흔들렸다.
“그게 무슨…… 너는 분명 인간일 텐데…….”
“인간이긴 하지 하지만 나는…….”
“…….”
“모든 도깨비의 왕, 이매망량이다. 이 도마뱀 새끼야!”
싸늘한 음성이 내리깔림과 동시에.
퍼버벙-!
그녀의 주위로 하얀 연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히시시시시.”
“얼쑤!”
걸걸한 야차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 *
팽팽한 대치 속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천진한 미소를 유지하던 악마들의 왕이었다.
“맛있겠다!!”
단숨에 작은 날개를 펄럭이던 악마들의 왕은 순식간에 지상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 눈으로 좇을 수 없는 형이상적 속도는 모두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
깜짝 놀란 드래곤들은 시선을 지상으로 돌렸다.
콰과과광-!
고막을 찢을듯한 굉음.
엄청난 위력의 낙뢰.
하늘로부터 고개를 돌리자 행해진 기습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할 만큼 우리 진영의 녀석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화륵!
단숨에 만들어진 붉은 방어막이 검은 낙뢰를 무력화시켰다. 붉은 용들의 왕 테론 페르몬드가 만들어 낸 방어막이었다. 낙뢰가 내려치는 그 짧은 순간에 환상적인 반응 속도로 수준 높은 방어마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겨우 이런 일에 일희일비할 드래곤은 없었다.
“조심해. 저 녀석…….”
은색 용들의 왕 실버는 하늘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경고했다.
“나도 알고 있다. 저 녀석 위험해.”
테론의 웅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히. 도마뱀 고기는 안 먹어 봤는데. 누가 맛있을까나……?”
손가락으로 드래곤들을 가리키며 입맛을 다시는 악마들의 왕 데몬은 끝끝내 한 마리의 용을 지목했다.
그가 지목한 존재는 찬란한 은빛 비늘을 자랑하는 실버였다.
지목당한 실버의 안면근육이 딱딱히 굳기 시작했다.
“감히……!”
분노를 채 표출하기도 전에…….
데몬이 달려들었다.
드래곤들은 빠르게 전투 태세에 돌입했다.
스스스스.
실버의 주위로 은색 안개가 빠르게 생겨났다. 은빛 용들의 특기인 환각 안개였다.
은빛 용들의 왕 실버는 안개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아무리 위대한 존재라 할지라도 안개 속에 제대로 모습을 숨긴 자신을 찾을 수는 없었다.
‘테론조차 내가 살기를 내비치기 전까진 찾지 못했다.’
안개 속이라면 자신 있었다. 살기를 내비치는 순간, 들킬 가능성이 존재했지만, 이는 문제 될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천천히 말려 죽인다.’
실버는 절대로 쉽게 공격을 가할 생각이 없었다. 은색 안개에 능력을 실어 계속해서 악몽을 선사해 줄 생각이었다. 환각에 환각을 더해 결국 현실과 환각을 구별하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악마들의 왕을 상대하는 동안 다른 용들이 안개 밖에서 최상위 격 악마들을 상대해 줄 터였다. 실버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간만 끌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실버는 짙어진 안개 속에 더욱 은밀히 모습을 감췄다.
스스슥.
“히히히히.”
그 순간 안개 속에 들어온 데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실버는 동요하지 않고 녀석에게 환상을 심어 주기 시작했다. 처음 녀석에게 선사해 줄 악몽은 다름 아닌 죽음이었다.
녀석은 매번 매시간 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경험할 터였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닌 녀석이라고 해도. 매 순간 극한의 공포를 느끼다 보면 결국 정신이 피폐해지기 마련이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적을 상대하는 것은 누워서 떡을 먹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었다.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이기나 한번 해 보자고.’
은빛 안개 속에서 실버는 생각했다.
자신이 당할 확률은 없다고. 유일한 변수라면 안개 밖 동료들이 모두 당하고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는 일뿐이었다.
숨을 깊게 고른 실버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동료를 믿기로 결심한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각종족을 대표하는 왕들이 아닌가. 게다가 유일하게 섞여 있는 인간 천지현은 각종족의 왕 중 가장 난폭하고 강력하다는 광룡에게서 유일하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였다.
적들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쉽게 상대하지는 못할 터.
실버는 오직 데몬에게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
안개 속에서도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듯 훤한 시야 속에 데몬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허우적대며 실버의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그의 눈에는 자신을 공격하는 수천의 드래곤이 보이고 있으리라…….
데몬에게 최면이 먹히는 것을 확인한 실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서서히 말라 죽거라…….”
“크큭. 설렜어?”
실버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동그랗게 뜬 실버는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말도 안 돼……!”
“히히. 이런 조잡한 수는 나한테 안 통해.”
실버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분명 100m는 떨어져 있던 녀석이 코앞에 와있었다.
“……!”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분명……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상황에도 천진한 악마들의 왕은 웃고 있었다. 그의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히히히. 재밌어 보여서 따라 했는데. 역시 통했네.”
“……!”
실버는 그제야 깨달았다. 저 녀석은 처음부터 환각에 걸린 적이 없었다고. 어리석게도 환각에 걸린 것은…….
“크, 커억!!”
“그럼, 잘 먹겠습니다아!”
실버의 귓가로 심장을 움켜쥐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