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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71화 (171/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71화

    171화 최후의 결전(5)

    눈앞 악마의 눈이 붉어졌다. 충혈된 그의 눈은 마치 원수를 보는 듯 사납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악마를 향해 염화의 불꽃을 날렸다.

    “크윽!”

    “비겁한 새끼들.”

    나는 물러난 악마 너머를 바라봤다.

    나에게 달려든 두 마리의 악마를 제외하고 다른 악마 하나는 이미 전방의 동료들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지금도 버거울 텐데 저 녀석까지 보내면 위험해진다!’

    전방은 지금 떼거리로 몰려드는 악마들을 상대하기도 벅찬 상태였다. 게다가 저 녀석은 이미 테론에게 들은 적 있는 최상위 격 악마. 녀석이 전방으로 합류한다면 판도는 크게 뒤집힐 것이 뻔했다.

    다급해진 나는 달려드는 두 마리의 악마와 거리를 벌린 뒤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여의주를 문 용의 모습을 한 낙뢰가 녀석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콰르릉-!

    그러나 전방으로 향하던 악마는 단숨에 공격을 소실시키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젠장!”

    “여유를 부리다니, 간덩이가 부었구나!”

    다시 나를 향해 날아온 악마가 입을 쩍 벌렸다. 길게 늘어진 입을 통해 검은 탄환이 쏘아져 나왔다. 더욱 정확히 표현하자면 끔찍한 악취를 풍기는 검은 액체. 척 보기에도 맞으면 위험해 보이는 공격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피하려다 멈칫했다. 뒤로 느껴지는 기척. 바로 내 뒤에 있는 존재들 때문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악마들의 왕과 그의 측근들을 견제하고 있는 나의 동료들은 이쪽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었다. 만약 내가 녀석의 공격을 피한다면 그대로 동료들을 향하고 말 터. 절대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동료들에게 공격이 날아들지도 몰랐다.

    ‘하는 수 없군.’

    나는 지척까지 다가온 공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쩌저적-!

    혹한의 서리가 녀석의 공격을 깔끔하게 얼려 버렸다. 염화와 만년설. 상호 공존할 수 없는 특성을 써 대는 나를 본 악마의 눈이 흔들렸다.

    “이게 무슨…….”

    “이걸로 놀라면 곤란하지.”

    입꼬리를 비튼 나는 녀석을 향해 다시 손을 뻗어 보였다.

    손끝이 녀석을 향하기 무섭게 녀석의 몸이 거대한 돌로 휩싸였다.

    “내가 습득한 특성이 몇 갠데.”

    고밀도의 돌을 깨부수기 위해 힘을 주는 악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질병의 왕 마르바스보다 월등한 전투 능력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빠른 승부수가 중요했다. 무엇보다 녀석의 주위에는 하나의 악마가 더 존재했으니까.

    내가 적을 처리하는 속도가 늦어질수록 동료들에게는 위기였다.

    막 돌무더기에서 빠져나온 악마를 향해 공격을 가할 때였다.

    옆구리에 아릿한 고통이 전해졌다.

    갑작스러운 충격과 함께 날아간 나는 거대한 바위에 처박혔다.

    콰아앙-!

    “크윽!”

    흐릿해지는 시야를 바로잡은 나는 상처 부위를 바라봤다. 옆구리를 보니 상처가 깊게 나 있었다. 불꽃을 이용해 빠르게 상처 부위를 지진 나는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나는 상대할 수 있지만, 둘을 피해 없이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나는 손을 뻗어 뇌전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하늘 위로 솟구쳐 올라간 번개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 내가 원하는 문양을 만들어 냈다.

    하늘이 내린 가문 천가(天家).

    천가를 대표하는 문양이었다.

    “이젠 올 때도 됐잖아.”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악마들이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 짓을 하려는…….”

    “너희들은 우리를 너무 얕잡아 봤어.”

    “크크. 아주 발악하는구나.”

    조소가 날아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거대한 원을 그려 보였다. 이계에서 고룡들과 매일같이 뒹굴며 배운 몇 안 되는 마법 중 하나였다.

    하늘에 아로새겨진 마법진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악마들의 시선이 마법진을 향했다.

    이어 공간이 찢어지고, 무엇인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빨리도 부른다. 기다리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말이에요. 몸 풀다 지쳤다. 인마.”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인물은 천가의 차기 가주 천진오였다. 그의 뒤로 철설아, 천요한 등 천지의 일원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자신감 넘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다 잡았어?”

    “그럼.”

    천진오는 거대한 자루를 나를 향해 던져 보였다. 허술하게 묶여 있었는지, 자루는 바닥에 떨어지며 윗부분이 자연스레 풀어졌다.

    “……!”

    자루 밖으로 튀어나온 물체를 확인한 악마들의 눈이 커졌다. 물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72 악마의 목.

    그것도 한, 둘이 아니라 무려 8개나 되는 악마의 목이었다.

    “이 개 같은 새끼들이!!”

    분노한 악마는 천진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말의 형태로 모습을 바꾼 녀석은 거대한 뿔로 천진오의 명치를 들이박았다.

    턱.

    “……!”

    “이 녀석은 제가 맡을게요. 차기 가주와 천지는 전방을 맡아 주세요.”

    최상위 격의 72악마. 그 엄청난 공격을 너무나도 손쉽게 막은 인물은 난데없이 끼어든 천우진이었다.

    “네놈은……!?”

    “왜? 회심의 공격이 너무나도 쉽게 막히니 기가 막혀?”

    내가 만든 워프 게이트의 제일 마지막을 장식한 천우진은 비웃듯 대답하며 녀석의 뿔을 부러뜨렸다.

    “끄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알겠다. 우리는 전방을 맡지. 다치지 마라.”

    “예, 형님도 조심하십시오.”

    “그래.”

    어느새 친한 사이가 되었는지, 천진오와 천우진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같은 임무를 내려 충돌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원만하게 지낸 모양이었다. 나는 반가운 인사를 뒤로하고 천진오를 향해 소리쳤다.

    “적이 많습니다. 화끈하게 쓸어버리십시오.”

    “다인전은 내 전문이야.”

    자신 있게 대답한 천진오와 그의 팀 천지(天地)는 서둘러 전방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던 나는 다시 전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증원에 당황해하던 악마는 다시금 나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찢어 죽여 주마!”

    온몸의 털이 쭈뼛 설 정도로 살기 넘치는 기운이었다. 이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생각인지 녀석의 몸이 비대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천도윤. 내가 이 녀석 맡으면 되지?”

    “그래. 부탁한다.”

    “빨리 처리하고 도와주지.”

    “힘들면 말해. 내가 도와줄 테니까.”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은 우리는 각자 앞에 있는 악마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최전방에서는 드래곤과 천도윤의 소환수, 그리고 천지현이 고군분투하며 싸우는 중이었다. 그들은 일당백 아니 일당천의 무력을 과시하며 날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러나 물밀듯 밀려오는 악마들을 모두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박한별은 그들이 놓친 악마들과 대치하고 있는 플레이어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서현우 씨, 여기 위급 환자요.”

    “허억. 헉. 네, 갑니다!”

    그중 당연히 돋보이는 것은 서현우와 성검을 든 크라운 길드의 제임스였지만, 그들은 너무 많은 신성력을 사용하고 있는 탓에 당장이라도 탈진할 듯한 모습이었다.

    “크아아악!!”

    “도, 도와줘! 여기 악마들이 너무 많아!”

    “젠장, 빌어먹을 새끼들이!!”

    여기저기 비명이 난무하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박한별은 대열이 가장 무너진 곳으로 달려가 거침없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퍽.

    단숨에 세 마리의 악마가 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박한별은 웃을 수 없었다.

    “젠장!”

    적의 숫자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전장 전반부를 모두 담당하던 서현우의 신성력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신성력이 사라진 곳으로 악마들이 미친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내 팔!!”

    그리고 그런 곳은 순식간에 밀려나기에 십상이었다. 전장을 바라보던 박한별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이렇게 뚫리면 전열이 무너진다!’

    대열이 망가지는 것은 곧 패배였다. 그리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 자칫하면 순식간에 전세가 뒤집힐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박한별은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방망이 한 번에 한 마리. 많으면 세 마리까지도 지워 버리는 그녀의 방망이질은 쉬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휘둘러봐도 적들의 기세는 누그러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아, 하.”

    그때였다.

    “잠시 물러나 있으세요.”

    누군가 박한별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하지만 잘 기억이 안 나는 여자.

    그러나 옆에서 들려오는 말을 들은 박한별은 단숨에 누군지 기억해 냈다.

    “천설아다!!”

    “천설아? 그럼 천지가 온 거야?”

    “든든한 아군이 합류했군.”

    천설아.

    천진오가 이끄는 천지의 2인자.

    막 그 사실을 떠올린 박한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천지의 천설아?”

    “맞아요. 조금 쉬다가 다시 합류해 주세요. 그동안은 저희가 맡고 있을 테니.”

    싱긋 웃은 천설아의 모습이 왠지 든든하게 느껴졌다. 천설아는 등에 멘 백팩을 하늘 위로 집어던졌다.

    촤라라라락-!

    백팩이 활짝 열리며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아공간 마법이 걸려 있는 물건이었는지 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양이었다.

    공중에 흩뿌려진 것은…….

    수천 개의 날붙이었다.

    칼, 창, 화살, 도검 등 어느 것 하나 비싸 보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귀하디귀한 보물들이 하늘 위에서 우뚝 멈춰 섰다.

    하늘을 뒤덮을 듯 일렬로 세워진 수십 가지의 종류와 수천의 무기는 악마들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끄악!!”

    “쿠워어억!!”

    단숨에 수백의 악마들이 목숨을 잃었다.

    “허.”

    “이게 무슨…….”

    그 모습을 보던 플레이어들은 입을 떡 벌렸다. 동시에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수천에 가까운 악마들을 쓸어버린 브레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단숨에 일대를 녹여 버린 화염이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지글지글 타오르는 바닥.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그 공격의 주인이 누군지 눈치챘다.

    “천진오!!”

    단숨에 눈에 띄게 줄어든 악마들을 본 플레이어들은 환호했다.

    “됐어!! 이길 수 있어!!”

    “좀만 버티라고!!”

    희망을 품은 플레이어들은 이를 꽉 깨문 채 악마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박한별은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숨을 골랐다. 마음 같아서는 분위기를 더욱더 고조시키며 나아가고 싶었지만,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저 녀석들의 전력은 결코 저것이 끝이 아니라고.

    지금은 차라리 숨을 고르며 다가올 변수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했다.

    ‘최전방에서 드래곤들을 상대하는 72 악마들은 일부다. 그렇다면 지금 대부분은…….’

    그때였다.

    콰과과과과.

    갑작스런 살기에 박한별은 도깨비방망이를 치켜들었다. 엄청난 살기를 담은 공격은 같은 팀이었던 악마들마저 녹이며 날아 들어오고 있었다.

    인간, 아니 웬만한 존재들은 절대로 감당하지 못할 광포한 기운이었다.

    이건 마치…….

    콰과과과과-!

    모든 것을 파멸할 듯한 공격. 브레스였다.

    “이게 무슨…….”

    재빨리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한 박한별은 전방을 주시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박한별이 아는 이상 드래곤은 모두 인간들의 편이었다.

    박한별은 미간을 찡그리며 공격의 발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공격의 주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

    그곳에는 날지 못하는 드래곤이자, 온몸이 앙상한 뼈로 되어 있는 흉악한 존재.

    본드래곤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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