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70화
170화 최후의 결전(4)
콰과과과.
파멸적인 힘이 지상을 향해 쏟아졌다.
위대한 존재라고 불리는 자들의 자랑하는 가장 거대한 힘, 브레스였다.
초열의 용암과 모든 것을 얼려 버릴 듯한 만년설의 정수가 지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브레스?”
“시, 시발! 도마뱀 새끼들이!!”
“당장 막아!!”
다급한 비명이 들려왔지만 이미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한 붉은 힘과 푸른 파멸의 힘은 지상을 강타한 후였다.
쩌저적.
쉬이이익-!
단 한 번의 공격.
이 엄청난 위력의 공격으로 악마 수천이 순식간에 명을 달리했다.
보고도 믿기지 않을 광경.
“미친!”
입을 쩍 벌린 악마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지상을 무심하게 관망하던 카렐 페르데이스가 조용히 읊조렸다.
“생각보다 피해를 주진 못했군.”
누가 들었으면 깜짝 놀랄 말을 카렐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중이었다. 그런 카렐의 말에 옆에서 천천히 날갯짓하고 있던 반이 대답했다.
“그래도 원하는 바는 이루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초연할 정도로 심심한 대화를 나눈 부자 드래곤, 카렐 페르데이스와 반 페르데이스는 동시에 은빛 고룡이 울부짖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애초에 그들이 원했던 결과는 많은 악마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던 것은 바로 은빛 고룡 주변의 악마들을 정리하는 일.
목표를 이룬 두 마리의 드래곤은 급속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콰과과과!!
화염과 얼음을 주변에 흩뿌리며 도착한 그들은 은빛 고룡에게 달라붙은 72 악마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고열의 불을 뿜어 대고, 얼음 광선을 쏘아 댔다.
“크윽, 도마뱀 새끼들이!!”
재빨리 몸을 피한 악마가 욕을 내뱉었다.
“보티스. 오랜만이구나!”
“카렐? 크흐흐. 잘 만났구나! 이번에야말로 사지를 찢어 주마!”
거대한 뱀 모양에 커다란 이빨을 가진 악마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거라.”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짧게 대답한 카렐은 악마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으로 잔혹할 정도로 흉악한 기운이 흩날렸다. 카렐 페르데이스는 단숨에 보티스라 불린 악마의 목덜미를 물었다. 그러고는 악마를 데리고 적진 한가운데로 날아갔다.
“이곳이 제격이겠군.”
“아주 무덤을 파는구나!”
뒷덜미를 문 카렐을 가까스로 떨쳐 낸 악마는 분노 섞인 눈으로 카렐 페르몬드를 바라봤다. 그러나 카렐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향해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카렐의 한 번의 발길질에 수십의 악마가, 한 번의 날갯짓에 수백의 악마가 나가떨어졌다.
힘을 전혀 조절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지라, 카렐은 용암의 마구잡이로 내뿜고 있었다. 위대한 지젠의 수호자 카렐. 그의 힘을 그대로 마주한 악마들은 섣불리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멍청한 것들아! 달려들어! 이 야비한 새끼의 날개를 물어뜯으란 말이다!”
주춤거리는 악마들을 본 보티스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비? 규율을 일방적으로 깬 너희들이 할 말은 아니구나.”
카렐 페르데이스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크흐. 흐흐흐. 어쩌라는 말이냐!! 우리는 악마다!”
“하긴…… 더러운 술수를 쓰는 것은 너희들의 특기지.”
악마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 화난 보티스는 소리쳤다.
“어차피 인간들이나 너희 도마뱀 새끼들이나 모두 우리의 노예가 될 것이다!! 그냥 순순히 항복하거라!”
“그건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지.”
무심히 대답한 카렐은 보티스를 공격하는 척 주변에 화염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비명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아 뜨거!!”
“사, 살려 줘!!”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카렐에게 보티스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칼처럼 날카롭게 갈린 이빨이 카렐의 몸을 두 동강 낼 것처럼 쇄도했다.
카렐은 도마뱀처럼 생긴 손으로 원을 그렸다. 그러자.
쩌엉-!
거대한 방어막이 그의 주위로 생겨났다. 붉은 방어막은 너무나도 손쉽게 보티스의 이빨을 막아 냈다. 하나, 보티스 역시 72 악마 중 상위 격에 속하는 악마였다. 그의 공격은 단숨에 카렐의 방어막에 금을 내기 시작했다.
“크흐흐. 병신 같은 놈. 적 진영 한가운데로 스스로 이동하다니.”
비웃음을 담은 미소를 날린 보티스가 카렐의 뒤편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중하위 격 72 악마 둘이 달려들고 있었다.
“나조차 버거워하는 녀석이 우릴 막을 수 있을 것 같더냐!! 이 많은 병력은 지젠의 지배자 테론 페르몬드가 와도 감당할 수 없는 병력이다!!”
소리친 보티스는 독 안에 든 쥐를 모는 고양이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 웅혼한 카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착각하나 보군.”
보티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크큭. 천하의 카렐 페르데이스가 허세라도 부릴 생각이냐!!”
“첫째, 나는 너를 버거워한 적이 없다.”
카렐 페르데이스의 몸이 불타기 시작했다.
엄청난 열기에 보티스는 잠시 몸을 뒤로했다.
“둘째, 테론이 왔으면 넌 이미 죽었다.”
일순, 주변의 공기가 빠르게 소실되어 갔다. 엄청난 열기가 악마들의 숨을 턱 막히게 했다.
“크헉. 그게 무슨……!”
“난 테론보다 약하지 않아.”
카렐의 기운에 의해 지형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지축이 뒤흔들리고 포연처럼 연기가 주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은빛 안개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안개였다. 닿기만 해도 피부가 녹아 버릴 것 같은 증기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왕의 자리는 그냥 친구니까 내가 내준 거야. 그리고…….”
흔들리고 갈라진 바닥 아래서 용암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콰과과과!!
기둥처럼 솟아오른 수십 개의 용암은 주변의 악마를 모두 녹이고 있었다. 용암에 닿은 악마들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채 사라졌다.
“아들 앞에서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
카렐은 저 멀리 악마들과 싸우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푸른빛의 비늘이 유달리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다시 만난 아들인데…….”
눈빛을 가라앉힌 카렐이 다시 한번 목을 꿀렁이기 시작했다.
* * *
“맛있겠다.”
해맑은 미소를 마주한 나는 오싹한 감정을 느꼈다. 가장 작은 몸집에 초라한 뿔을 지닌 악마는 최상위 격 악마들이 모여 있는 저곳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왕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붉은 용들의 왕 테론 페르몬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에서, 불안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다른 최상위 격 악마들은 어찌해 볼 수 있겠는데 저 녀석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옆에서 하늘을 바라보던 푸른 용들의 왕 스테니언이 조용히 속삭였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풍기는 에너지는 불길하고, 원색적이고, 흉악스럽기 그지없는 기운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죽음의 기운을 몰고 오는 녀석의 기운. 그것은 확실히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분명 느껴지는 힘 자체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데…….”
“느낌이 너무 불길해요.”
실버가 거들었다.
나는 스승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여기가 마계의 손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두 알고 계시잖아요.”
분위기를 환기하려 한 말에 세 마리의 용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상공에 있는 녀석들은 열. 우리는 다섯. 우리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적을 해치워야 합니다. 저들이 전장에 합류하기 시작하면 피해만 커질 뿐이에요.”
“인당 두 명씩 맡아야 하는데 할 수 있겠느냐?”
“안 돼도 해 봐야죠. 스승님은 괜찮으십니까?”
“……솔직히 말하면, 한 마리도 버겁다.”
테론의 솔직한 대답에 스승들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래도 해야 하는 거 아시죠?”
가장 먼저 눈을 뜬 실버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해야지. 두 행성의 미래가 걸린 일인데.”
테론이 대답했다.
그때, 그들을 바라보던 천지현이 말했다.
“뭐야, 도마뱀 아저씨들 왜 이렇게 쫄아 있어! 우리 스승은 저딴 녀석들 열 명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저씨들은 그것밖에 안 돼?”
난데없는 천지현의 도발에 드래곤들의 안면이 굳어졌다.
“천지현 씨.”
“왜요! 실버.”
“……저는 아저씨가 아닙니다만…….”
실버가 발끈해 소리쳤다.
“아, 미안. 그럼…… 아줌마?”
“뭐, 지금 뭐라고!!”
“하, 진짜! 지금 그게 중요해요? 서로 평생 대치만 하고 있을 거예요? 그렇게 노려보기만 하면 뭐가 바뀌냐고요! 대책을 세워야지 대책을!!”
천지현이 버럭 소리쳤다. 위대한 존재, 그것도 각종족의 왕을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에게 큰소리칠 수 있는 것도 천지현이나 되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천지현의 잔소리를 듣던 테론이 돌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한심한 꼴을 보였군. 미안하다. 인간이여.”
“알면 잘하시고. 이제 슬슬 전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기도 슬슬 움직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천지현의 말에 따라 일제히 하늘 위에 떠 있는 악마들을 바라봤다. 확실히 그들 중 몇몇이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아닌 최전방에서 날뛰고 있는 나의 동료들과 드래곤들을 향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숫자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나 봐요.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나?”
천지현이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카렐은 그런 천지현의 말은 무시한 채 나에게 물었다.
“어쩔 셈이냐?”
“마음 같아서는 돕고 싶습니다. 최상위 격 악마가 개입하면 전장은 크게 바뀌기 시작할 테니까요.”
“그럼, 돕거라.”
“네? 그러면 저들은…….”
“어차피 두 마리씩 맡기로 하지 않았느냐, 저들이 움직이면 너도 같이 움직이려무나. 여기는 우리가 맡겠다.”
덤덤한 테론 페르몬드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전방으로 눈을 돌린 악마는 셋. 어차피 한 명당 두 마리의 악마를 상대해야 한다면 내가 저곳을 맡는 것이 옳았다. 혼자 두 마리의 악마를 상대하고, 남은 한 마리는 동료들과 함께 처치. 그것이 지금 막 수립한 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계획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저 공중에 우뚝 선 채, 최전방의 인간들과 ‘실드’를 향해 공격을 날릴 뿐이었다.
“저 새끼들이!!”
나는 서둘러 손을 뻗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힘이 손을 통해 뻗어 나갔다. 복잡한 술식과 엄청난 마나가 드는 기술이었지만 성공한다면 그 이상의 효과를 뽑아낼 수 있는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일명 ‘워프’.
회의실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을 하나하나 살핀 뒤 훔쳐 낸 새로운 기술이었다.
스킬은 내 의지에 따라 공중에서 입을 쩍 벌렸다. 타원형의 거대한 문이 생겨났다.
악마의 광선포를 그대로 흡수한 게이트는 내가 지정한 장소로 다시 공격을 토해 냈다.
콰아아아앙-!
내가 설정한 지역은 당연히 악마들이 우글거리는 머리 위. 브레스 못지않은 위력을 자랑하는 악마의 공격은 같은 편의 인원을 눈에 띄게 줄여놨다.
“끄아아아악!!”
악마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어찌 된 영문인지를 확인한 악마들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구겨졌다.
“저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인간 새끼가!!”
잔뜩 흥분한 악마 하나가 나를 욕하며 자신들의 왕을 바라봤다. 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동료들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단숨에 파악했다.
콰앙-!
순식간에 다가온 악마의 공격이 정확히 내 심장을 노렸다. 그러나 나는 쉽게 당해 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재빨리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한 뒤, 악마를 튕겨 냈다.
“조잡한 수 쓰지 말고 제대로 붙어 보자.”
피 묻은 입술을 닦은 악마가 귀신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