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69화 (169/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69화

169화 최후의 결전(3)

서현우는 불길한 감각에 뒤를 돌아봤다.

쐐애애액-!

짙은 살기와 함께 흉악스러운 공격이 날아왔다. 공격은 정확히 왼쪽 눈을 향하고 있었다.

“……!”

서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적의 날카로운 공격이 뺨을 스쳤다. 아릿한 느낌이 들며 피가 튀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

“죽어!!”

귀 부근까지 입이 찢어져 있는 악마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신성력을 전방의 적을 막는 데 사용하고 있고 이리저리 다니며 아군들을 치료하느라 서현우의 몸에 남아 있는 신성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즉, 일신의 무력만으로 저 괴물 같은 녀석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

서현우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날 도와줄 만큼 여유 있는 녀석들은 없다. 그렇다면…… 크윽!’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 손을 송곳 모양으로 바꾼 악마는 계속해서 매서운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서현우는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녀석의 공격은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완전히 공격을 허용할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서현우는 하는 수 없이 결단해야만 했다. 전방을 결계처럼 막고 있는 신성력을 일부 회수한 뒤 싸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신성력을 일부 회수하고…….’

스으으으.

가장 방어가 원활한 부대 근처의 신성력을 회수하려고 할 때였다.

주위가 은색 안개로 뒤덮였다. 이어…….

쇄애애액.

공기를 가르는 독살스러운 공격이 날아왔다. 온몸이 털이 쭈뼛 설 정도로 날카로운 살기였다. 그러나 72 악마가 행한 공격은 전혀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

은빛 안개.

풀어진 악마의 동공.

서현우는 지금 상황이 누구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별아!”

“쉿! 너무 크게 소리 지르지 말아요. 깰 수도 있으니까.”

팔을 송곳 모양으로 바꾼 72 악마는 계속해서 허공에 매서운 공격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박한별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빨리 부상자들 데리고 자리를 피하세요. 제가 상대할 테니까.”

“혼자서 괜찮겠어? 저 녀석은…….”

“괜찮아요.”

싱긋 웃어 보인 박한별은 서둘러 서현우를 재촉했다. 작은 미소에 담긴 자신감을 읽은 서현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치료하던 플레이어를 둘러업었다. 그러고는 주위의 플레이어들에게 소리쳤다.

“가능한 이곳에서 떨어져요! 어서!”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플레이어들은 주변의 부상자들을 부축하며 하나, 둘 자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주변이 깨끗이 비워진 것을 확인한 박한별은 정면을 응시했다.

점점 느려지는 녀석의 반응으로 보아, 곧 환각에서 풀려날 듯싶었다. 박한별은 서둘러 방망이를 들어 올렸다.

지이잉.

원뿔 모양의 돌기가 덕지덕지 붙은 거대한 방망이는 오늘따라 유독 날뛰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싱긋 미소 지은 박한별은 방망이를 부웅 휘둘렀다.

화륵-!

청색의 불꽃이 수십 개의 호롱불로 나누어졌다.

동시에.

콰앙-!

육중한 몽둥이가 72 악마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크아아악!”

엄청난 충격으로 환술에서 깨어난 72 악마는 곧 상황을 파악한 뒤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개 같은 년이! 조잡한 수를……!”

“입이 걸걸하네. 악마 새끼가.”

싸늘하게 식은 눈빛을 지어 보인 박한별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흥. 내가 이딴 조잡한 수에 다시 걸려 들 것 같더냐?”

악마는 그대로 뒤를 돌아보며 송곳을 찔렀다. 악마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박한별이 다시 연기처럼 사라졌다.

“응. 통할 것 같아.”

짧은 음성에 악마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한낱 인간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기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빌어먹을 년이! 죽어!!”

거친 외침과 동시에 악마의 몸 전체가 가시로 바뀌어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박한별조차 예상하지 못한 기습.

푸욱-!

72 악마는 왼쪽 가시에 느껴지는 묵직한 감촉에 진한 미소를 띠었다.

고개를 돌린 72 악마의 시야 속으로 수십 개의 가시에 온몸이 관통당한 인간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의 진한 피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덤비던 멍청한 년의 최후였다.

“크흐. 병신 같은 년이. 내가 널 산채로 씹어먹어 주마.”

입매를 비틀어 올린 악마는 점점 가시의 길이를 줄이기 시작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여자의 육신이 다가왔다.

72 악마는 천천히 손을 뻗어 자신에게 까불던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은 채 뒤로 젖혔다.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본 채 천천히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웃어?”

온몸이 꿰뚫린 여자는 웃고 있었다.

“병신. 또 속냐?”

퍼엉-!

손에 잡았던 머리카락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당황한 악마는 주위를 둘러봤다.

등 뒤에서 여자가 나타나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재빨리 공격을 막은 악마는 송곳을 내질렀다.

퍼엉-!

이번에도 여자의 육신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게 무슨……!”

악마는 뭔가에 홀려도 단단히 홀린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곧이어 다시 여자가 나타났다.

단순하고도 위력적인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악마는 계속해서 막고 찌르기만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악마는 그제야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여자가 나타났다.

악마는 여자의 공격을 막지 않은 채 기감을 넓히기 시작했다.

‘어차피 저것은 헛것이다.’

먼저 이 현실처럼 생생한 환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악마의 계획은 철저히 실패하고 말았다.

콰앙-!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고통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눈을 돌려 여자를 바라본 악마는 경악했다. 헛것이라고 여겼던 여자의 공격은 실체가 있었다.

분노한 악마는 다시 송곳을 내질렀다.

자신에게 공격을 가했던 여자의 육신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대체 어떻게……?”

알 수 없는 현상에 악마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환술과 허깨비는 잘 구별해야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

“이해 못 하겠지? 설명할 시간도 아까우니 그냥 죽어.”

수십 명으로 늘어난 인간의 공격이 맹렬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쾅!!

악마는 침착하게 대응하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여자의 육신은 모두 실체가 없었으나, 실존하는 것이었다. 이 이율배반적인 존재를 직접 목격한 악마는 혼란스러웠다.

무언가에 씌어도 단단히 씐 듯한 느낌이었다.

“자, 잠깐……!”

일순, 악마의 머릿속에 한가지 존재가 떠올랐다. 너무 오래된 전설이라 잊고 있었다. 마계의 악마들이 때론 드래곤보다 까다롭게 생각한다는 존재. 엄청난 괴력과 청화의 불꽃으로 혼을 쏙 빼 논다는 난장의 귀재!

“너, 설마?”

“지금 깨달아도 이미 늦었어.”

콰앙-!

원뿔 모양의 돌기에 그대로 정수리를 가격당한 악마는 곧장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잠시 정신을 잃은 악마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린 박한별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 * *

“하아. 하.”

그녀의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박한별은 은빛 용들에게 배운 안개와 도깨비들의 허깨비를 동시에 사용하느라 급격하게 체력이 빠진 상태였다. 방금 쓰러진 악마의 앞에서는 계속해서 강한 척하긴 했지만, 실상은 전혀 여의찮은 상태였다.

수십 개의 몸체를 사라지고 나타나게 하는 것 자체가 몸에 거대한 무리를 주는 행위였다.

“허억. 헉. 저런 괴물 같은 녀석들이 대체 몇 명이나 있는 거야!”

녀석이 조금만 더 버텼다면 제풀에 쓰러진 것은 자신이 됐으리라 생각한 박한별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제 시작이야. 벌써 지치면 안 돼!”

의지를 다잡은 박한별은 정면을 바라봤다. 새까맣게 몰려드는 악마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샐 수도 없는 악마들이 눈에 불을 켠 채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거…… 위험한데…….”

서현우를 포함한 [쉴더]들에 의해 모두 한꺼번에 달려드는 것은 가까스로 막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곧 뚫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박한별은 식은땀을 흘리며 악마 진영에 들어가 날뛰고 있는 두 마리의 은빛 고룡을 바라봤다. 그들의 날갯짓과 포효에 악마들이 우후죽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미리 지상으로 내려왔던 72 악마들이 붙기 시작하자 곧 위력이 반감되었다.

박한별은 곧 얽히고설키기 시작한 드래곤과 악마들을 바라보며 걱정의 눈길을 보냈다. 아무리 위대한 존재이기는 하나 물량 앞에서는 힘에 부치는 게 당연했다.

브레스를 사용하기 위해 준비라도 하려고 하면 72 악마들이 기가 막히게 달려들어 방해를 해 왔다. 결국 가장 강력한 공격수단을 막아 놓은 채 일신의 무력만으로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태.

하지만 72 악마라는 강력한 적이 섞여 있는 상태에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였다.

박한별은 불안한 감정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저대로 놔두다가는 곧 당할 것이 뻔해 보였다.

그렇다고 저들을 돕기 위해 전장 한복판에 몸을 내던지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적진에 홀로 들어가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두 마리의 고룡은 3년간 자신을 가르쳐 준 스승이었다. 스승이 눈앞에서 죽어 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게다가 스승님들은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도와주러 온 존재였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어.”

결심한 박한별이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쿠워어어어어!!

멀리서 고통에 가득 찬 포효가 들려왔다.

상황을 파악한 박한별은 소리쳤다.

“스승님!!”

은빛용 후로보스의 한쪽 날개가 거대한 악마에 의해 찢겨 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후로보스의 주위로 악마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박한별은 곧장 땅을 박차기 시작했다. 신성력으로 가로막힌 벽을 뚫고 나가 스승님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만!!”

“…….”

“너는 이곳을 지켜라. 인간.”

그러나 박한별은 강력한 언령에 의해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굳어 버린 몸의 경직을 재빨리 풀어낸 박한별은 하늘 위를 바라봤다. 붉은 고룡이 하늘 위를 빠르게 지나가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령의 주인공이자 천도윤의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의 아버지 카렐 페르데이스였다.

박한별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고룡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자신보다는 하늘을 나는 레드 드래곤이 현 상황에 더 유리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한별은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적의 군대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과연 고룡이 한 마리 끼어든다고 저들을 구할 수 있을까?

불길한 가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였다.

머리 위로 또 다른 그림자가 졌다.

이번에는 온몸을 푸른 얼음으로 둘러싼 드래곤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검은 말을 탄 죽음의 군주와 작은 얼룩소였다.

“우마!!”

아래를 내려 보는 우마의 얼굴이 보였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박한별은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 되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두 마리의 용과 두 마리의 소환수가 상황을 바꾸어 주기를…….

박한별은 상공위에 떠 있는 두 마리의 드래곤을 바라봤다.

상황을 파악한 악마들이 빠르게 날개를 펼쳐 드래곤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날갯짓은 계속될 수 없었다. 갑자기 내려친 번개와 흑운의 힘이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파지지직!

콰앙!!

“우마!!”

구오오오오.

반 페르데이스의 위에 올라탄 죽음의 군주와 얼룩소는 두 마리의 드래곤을 완벽히 호위하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두 부자는 아가리를 쫙 찢은 채, 일제히 목을 꿀렁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