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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68화 (168/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68화

    168화 최후의 결전 (2)

    하늘을 뒤덮은 무거운 어둠. 내리깔린 침묵. 그리고 광활하게 열린 게이트.

    모여 있던 우리는 전쟁이 시작되리란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중이었다.

    쿠구구구.

    대기가 진동하고 불길한 기운이 안개처럼 내리깔렸다.

    “저, 저기!”

    “시발! 위잖아!!”

    예상과는 달리 차원의 틈이 열린 것은 지상이 아닌 하늘 위였다.

    “다들 전투준비!!”

    크라운 길드의 제임스가 벼락 같은 함성을 지르자 플레이어들은 일제히 무기를 들어 올렸다.

    착-!

    꿀꺽.

    우리 부대에 배정된 플레이어의 침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반면 하늘 위에는 검은 게이트만 열렸을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뭐야. 왜 아무것도…….”

    흑발의 검사가 의문을 표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누군가의 손을 따라간 플레이어들은 한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거대한 날개를 지닌 악마 하나가 서 있었다.

    날개와 뿔을 지녔음에도 모두가 알아보는 인물.

    “천지훈!!”

    외침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꽂혔다. 악마의 정체는 다름 아닌 천지훈이었다.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 보인 천지훈은 관망하듯 우리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캬아아악!!”

    “쿠워어억!!”

    하늘 위를 덮는 악마 군단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지축을 뒤흔드는 포효. 살기를 그대로 내비치는 눈빛. 마계의 악마들을 마주한 플레이어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오, 온다!!”

    “시발 진짜 온다고!!”

    하늘을 검은색으로 뒤덮은 악마의 기세는 살이 떨릴 정도였다. 나는 공포에 사로잡힌 플레이어들을 얼른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침착하게 대응하세요!”

    소리치기 무섭게.

    콰르르릉-!

    가장 전방에 모여 있던 하나의 부대가 명을 달리했다.

    “……!”

    “이런 미친!!”

    눈으로 좇기도 힘들 만큼 엄청난 속도의 공격. 칠흑 같은 검은 번개을 내리친 자는 다름 아닌 천지훈의 짓이었다.

    “큭! 너무 숫자가 많아서 말이야.”

    재밌다는 듯 키득거린 천지훈은 나를 바라봤다.

    “저 개자식이!!”

    욕을 지껄인 나는 서둘러 대응을 준비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당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콰르르릉.

    녀석의 손에 또다시 검은 번개가 일렁였다.

    ‘지금 녀석이 준비하는 저 공격까지 성공한다면 우리 진영의 사기는 완전히 꺾이고 만다.’

    나는 서둘러 품속에서 도깨비 보따리를 꺼내 열기 시작했다.

    좁은 입구로 거대한 존재가 나오려 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열려!”

    다급한 나는 마고의 도깨비 보따리를 찢듯이 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따리의 크기를 생각하면 납득할 수 없을 만큼의 크기로 입구가 벌어졌다.

    “오래도 가둬 놓는군.”

    “그러게, 말이야.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네.”

    넓혀진 입구 사이로 위대한 존재들의 엄살이 들려왔다.

    나는 입꼬리를 슬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알면 잘해.”

    벌어진 입구. 그 사이로 엄청난 크기의 존재들이 쏟아지듯 나오기 시작했다.

    쿠웅-!

    육중한 육신이 바닥에 닿자, 엄청난 진동을 만들어 냈다.

    무심한 말과 함께 제일 먼저 튀어나온 것은 은빛용 실버였다.

    찬란한 은색 깃털이 휘날리며 고룡들의 왕이 군림했다. 이어 은빛 고룡들과 레드 드래곤이자 반 페르데이스의 아빠인 카렐 페르데이스. 그리고 붉은 용들의 왕 테론 페르몬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마뱀? 이계의 존재들이 갑자기 왜?”

    천지훈은 놀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천지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너희만 준비한 줄 알았어?”

    “흥, 아무리 도마뱀 몇 마리 섞어 봤자…….”

    “과연 평범한 드래곤일까?”

    내 물음과 동시에.

    테론 페르몬드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엄청난 소리와 함께 천지훈의 표정이 새파랗게 굳어 갔다.

    “서, 설마!”

    “그래. 그 설마다.”

    나는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고룡들과 그 고룡들의 정점에 선 왕들을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확실히. 더없이 든든한 존재들이었다.

    난데없는 드래곤의 등장에 놀란 것은 악마뿐만이 아니었다.

    “저, 저게 뭐야!!”

    “기습인가?”

    전투를 준비하던 플레이어들 역시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나는 황급히 소리쳤다.

    “아군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거대한 외침에도 사람들은 좀처럼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당연한 반응이야. 신경 쓰지 말고 집중해.”

    어느새 나에게 다가온 천지현이 말했다. 그녀는 용들을 무서워하는 것은 본능이라며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을 권했다.

    “알겠어. 스승님들.”

    나의 부름에 가장 늦게 도깨비 보따리에서 빠져나온 푸른 용 스테니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떼거리들이라 조준할 필요도 없겠네.”

    거친 말과 함께 입을 벌린 스테니언은 그대로 하늘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동시에.

    콰과과과과-!

    모든 것을 얼려 버릴 듯한 혹한의 빙결이 하늘을 향해 쏟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파멸할듯한 위력이 천지를 뒤덮었다.

    쿠구구구.

    불꽃마저 얼려 버리는 냉혹한 바람이 멀리 있던 악마들의 날갯짓마저 더디게 만들었다. 동시에 하늘을 뒤덮은 악마들이 우후죽순 얼어붙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천지훈이 박살 냈던 부대 이상의 피해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천지훈이 깊게 인상을 찡그렸다.

    “도마뱀 새끼가!”

    분노한 천지훈의 외침에, 끝나지 않은 브레스의 정중앙으로 검은 번개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단숨에 양단하듯 얼음 브레스를 갈라 버린 천지훈은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 쓸어버려.”

    “캬아아악!!”

    동시에 개미처럼 우글거리던 악마들이 하강하기 시작했다.

    짐승의 눈을 가진 악마들은 붉은 눈을 부라리며 플레이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앙-!

    순식간에 수많은 플레이어 가 목숨을 잃었다. 기본적으로 웬만한 플레이어 이상의 무력을 가진 악마들은 조금이라도 대열 밖으로 나온 플레이어들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크아아악!”

    “내 팔!!”

    고통스러워하는 플레이어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전장은 점점 아비규환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도윤아.”

    “예, 알고 있습니다.”

    전장이 핏빛으로 물드는 동안에도 나와 천외천 그리고 드래곤은 모두 한곳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직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은 천지훈과…… 약 30기 정도의 72 악마들이었다.

    “저 중에 하위급은 없다. 조심해야 할 거야.”

    “예, 스승님들도 몸조심하십시오.”

    “우리 대장은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해. 인마.”

    “그건…….”

    “저기 온다!”

    은빛 고룡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하강하는 72 악마들을 목격했다. 30마리 중 약 20마리쯤 되어 보이는 숫자였다.

    하나같이 호전적으로 보이는 얼굴. 기괴한 미소를 띤 악마들은 만찬이라도 보는 듯한 얼굴로 빠르게 내려왔다.

    “그럼 우리는 저 녀석들을 상대하러 가보지. 우리보다 숫자가 많으니 힘 분배 잘하도록.”

    “우리 대장님 다치지 않게 잘 보좌하고.”

    끝까지 나를 향해 잔소리를 남긴 은빛 고룡 두 마리는 하강하는 72 악마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은빛 용들의 왕 실버가 한마디 거들었다.

    “들었지? 나 잘 보필해라.”

    “농담입니까?”

    “아니, 진담이야. 저 녀석들…… 강해 보인다.”

    실버는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고 고고히 서 있는 녀석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 역시 그들을 보고 있던지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녀석들은 강해 보였다. 그 어느 악마들 보다도…… 게다가 저 녀석은…….

    정 중앙에 서 있는 작은 키의 악마.

    해맑은 미소를 보이는 저 악마는 그중에서도 특히 위험해 보였다.

    “저 녀석이 왕인가?”

    테론의 웅혼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겁니다.”

    압도적인 힘.

    겁이 덜컥 날만큼의 어마어마한 기운이었다.

    나는 저 녀석이 최대한 늦게 전장에 투입하기를 바랐다. 모든 힘을 합쳐 상대해야지만 녀석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도 시선을 못 떼겠군.”

    어울리지 않게, 테론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실버의 가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맞아요. 한눈팔면 바로 목이 날아갈 것 같아요.”

    각 종족의 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나약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말에 불만을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살이 아릴 정도로 느껴지는 녀석의 순수한 살기는 온몸이 떨리다 못해 굳을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웬만하면 저길 도와주고 싶은데.”

    테론이 지상으로 몰아닥친 악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온 세상을 덮을 듯한 악마들과 처절히 싸우고 있는 인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피가 튀고 목이 날아다니는 잔악한 전장이었다.

    게다가 상황 또한 좋지 못했다.

    적은 약 십만에 달하는 대군인 데 비해 인간, 즉 싸울 수 있는 플레이어들은 고작 5만에 불과했다. 게다가 기본적인 무력 차이도 났으니 사실상 패색이 짙은 싸움이었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달려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간다면…….”

    “저들을 상대할 수 없겠지.”

    우리를 한낱 유흥거리로 바라보며 바라보고 있는 저 악마들을 보자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나는 그저 저들을 견제하며 우리 팀이 이기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네놈의 동료가 잘해 주고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라.”

    나는 조금 의아한 눈으로 테론 페르몬드를 바라봤다. 나와 박한별 천지현은 모두 이곳에 모여 있었다. 남은 동료라고는…….

    “아, 서현우 말입니까? 혹시 보따리 안에서 보고 있었습니까?”

    보따리에 숨어 있던 테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서현우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래, 지금 녀석 때문에 악마들이 꽤 고전하고 있다.”

    테론의 말에 나는 곁눈질을 통해 서현우를 바라봤다.

    서현우는 가장 전방에서 성검을 들고 싸우는 제임스와 함께 가장 많은 악마를 베고 있었다.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부상을 치료해 주고 자신이 가진 신성력으로 적의 목을 베는 서현우의 모습은 가히 일당백의 무력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저 녀석은 동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강해지거든요. 아 물론, 뭐 빠지게 뛰어다녀야 하지만.”

    서현우는 ‘계약’을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플레이어였다. 얼핏 보면 불공정한 계약으로 볼 수 있었지만, 제약이 많이 따르는 만큼 파워업은 확실한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믿어야지 어떻게 하겠나.”

    “그래야죠. 그래도 저 녀석이 있어서 쉽게 밀리지는 않을 겁니다.”

    동상의 버프 효과와 서현우의 ‘계약’의 효과. 이 둘의 시너지는 평범한 플레이어조차 발군의 힘을 발휘하게 해 주고 있었다.

    나는 전방의 일은 믿을 수 있는 동료에게 맡겨 둔 채 하늘 위를 주시했다.

    72 악마들 역시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는 순간 곧장 공격이 이어질 것만 같은 기세였다.

    그때…….

    10마리의 악마중 하나가 입을 벙끗거렸다. 먼 거리와 전장의 함성으로 인해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리 말하고 있었다.

    “거슬리는군.”

    난 녀석의 눈이 따라간 곳을 향해 기감을 넓혔다. 그러고는 미간을 잔뜩 찡그릴 수밖에 없었따.

    녀석이 바라보고 있는 존재는 분명…….

    서현우였다.

    “한별 씨!!”

    “네.”

    눈치 빠른 박한별은 내 부름과 동시에 땅을 박차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72 악마 역시 지상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송곳 모양의 팔을 뻗어 종횡무진 활약하는 서현우를 단숨에 꿰뚫을 심상이었다.

    박한별은 부상자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서현우를 지키기 위해 파랗게 타올랐다.

    화륵-!

    도깨비불이 점멸하며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악마의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점점 가속하던 악마는 박한별보다 빠르게 서현우에게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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