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67화
167화 최후의 결전(1)
“대한민국의 중소형 길드에서 반품했던 물건인데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네요.”
동상은 이미 사라진 길드, ‘링크’의 의뢰품이었다. 안테나 모양의 막대기 두 개 사이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동상은 당시 ‘극상품’으로 뽑힌 동상이었다. 하지만 동상에 박힌 버프 능력이 영 쓸모가 없어서 반품받은 것이었다.
버프의 내용을 확인한 각 무리의 대표들은 입을 떡 벌린 채 서 있었다.
“이런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니…….”
“게다가 광역 버프까지 있지 않습니까?”
“와……!”
여기저기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버프의 능력은 각자 같은 무리 내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을 지정해 순간이동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추가로 민첩을 2씩 올려 주는 버프까지 포함했다.
그야말로 사기적인 광역 버프.
‘링크 녀석들도 그 당시엔 굉장히 아까워했지…….’
레이드를 위주로 하는 플레이어의 특성상 동상을 들고 다닐 수는 없었기에 아무리 좋은 능력임에도 실효성이 없던 물건. 아쉬움을 가득 담은 채 반품하던 녀석들의 리더가 떠올랐다.
“이것만 있으면 산개해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각 무리끼리 링크를 지정해 놓으면 되니까요.”
르페브가의 에릭이 말했다.
나는 단숨에 내 의도를 파악한 에릭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다시 보따리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몰렸다.
“설마…… 끝이 아니었습니까?”
“예.”
놀란 눈을 하는 플레이어를 둘러본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보따리에서 동상을 꺼내기 시작했다.
“미친!”
“설마!!”
“흠. 여기는 너무 좁군요.”
나는 염화의 불꽃을 이용해 순식간에 회의장의 텐트를 거두어 냈다.
순식간에 타 버린 텐트를 신경 쓰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힘을 올려 주는 쌍검 동상, 마력을 올려 주는 메이지 동상, 민첩을 올려 주는 도적 동상 등. 사기적인 광역 버프를 자랑하는 동상에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까. 나는 영감의 작업실에서 긁어모을 수 있는 동상은 모두 가져온 상태였다.
9가지의 동상을 꺼낸 뒤 손을 털어 보이자, 회의에 참석한 플레이어들은 입을 떡 벌린 채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이런 광범위 버프는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아이템을…….”
입을 떡 벌린 플레이어 사이로 이런 대화도 들려왔다.
“저게 혹시 천외천 천도윤의 능력입니까?”
“아니야.”
비밀을 나누듯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쪽은 바가렐라의 안토니오와 그의 새로운 팀원이었다.
나는 모른 척 그들을 무시하고는 플레이어들에게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꽤 도움이 될 겁니다.”
“확실히…… 그렇겠군요.”
“각자 최적의 단위로 부대를 편성하고 파트너 부대를 설정해 링크를 걸어 두기를 바랍니다. 언제든 지원할 수 있게요.”
내 요청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편하게 말하게, 지금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네니까.”
르페브가의 에릭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내 생각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시작했다.
“제가 생각하는 72 악마의 평균은 이 정도입니다.”
나는 온몸에 힘을 두른 뒤 방출하기 시작했다. 상위권 72 악마가 아닌 평균적인 힘과 동일한 양의 기운이었다.
공간이 터져 나갈 듯 팽창한 기운에 여러 명문가와 대형 길드의 관계자들은 인상을 찡그렸다.
“갑자기!”
“크윽!”
그리고 72 악마를 상대했던 녀석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확실히…… 대단하군.”
“내가 상대했던 녀석과 비슷한 수준이야.”
내가 느끼기에도 실력이 상당한 플레이어들은 그저 조금 놀란 눈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통계를 내본 결과 약 30마리 정도의 72 악마가 지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부분은 우리도 들었네. 남은 72 악마는 40마리 정도라는 건가?”
“예, 그중 일곱 마리는 이미 지구에 남아 있고요.”
“……멸망한 국가를 말하는 거군.”
“예.”
우리의 대화에 몇몇 플레이어들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멸망한 국가에서 온 플레이어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데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머리가 까진 플레이어 하나가 대답했다. 최대한 덤덤한 척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수심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남은 일곱 마리를 처리하기 위한 병력은 제 임의대로 보내놓은 상태입니다.”
“확실한 실력자인가? 이미 자리를 잡은 악마는 상대하기 쉽지 않을 텐데…… 특히 가나에 자리 잡은 녀석은…….”
“예, 믿을 수 있는 녀석들입니다. 아마 늦지 않게 녀석들을 처치할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각국의 대표들은 한층 마음이 놓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중에는 72 악마들에게 나라를 잃은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의심스러움과 희망을 섞은 복잡한 눈빛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꼭 되찾아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이릅니다. 지금 저희는 당장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판이니까요.”
“그게 무슨…….”
“상위권 72 악마들은 상상 이상의 무력을 지녔습니다.”
급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사람들의 안면근육이 굳어 갔다.
“그래, 상위권 악마들을 마주했다고 들었네. 어느 정도인가?”
“저희가 직접 본 악마는 이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화악-!
내 눈빛을 받은 천지현은 곧장 자신의 힘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질병의 왕 마르바스와 비슷한 수준의 힘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던 플레이어마저 경악한 눈빛을 지어 보였다.
떨리는 목소리를 한 플레이어가 중얼거렸다.
“미친……!”
각 무리의 대표가 모인 회의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 선택. 그러나 딴지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지현이 내뿜는 흉흉한 기운은 각국을 대표하는 플레이어들마저 떨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저, 정말인가?”
“예.”
“허…… 저 여자의 무력도 믿기 힘들 정도인데…… 저런 녀석들이 떼를 지어 나타난다고?”
잠시 뜸을 들인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불행하게도 여러분들이 경험한 72 악마는 아마 하위나 중위권에 있던 악마들일 겁니다.”
단호한 대답에 플레이어들은 딱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눈치였다. 나는 그들에게 현실을 직시시켰다.
“저희는 전쟁하러 온 것입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전멸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 두십시오. 저희가 지키지 못하면…… 모두 죽습니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플레이어들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침묵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온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를 깬 것은 바가렐라의 안토니오였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뭐지?”
롱기누스 팀의 리더 안토니오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장한 그를 마주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심연보다 더 깊은 어둠. 죽음보다 더 불길한 기운이 가득한 그곳에는 오직 무언가를 씹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까득-!
으드득. 뼈가 부러지며 나는 소리와 생살이 씹히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왕이시여.”
“…….”
“부족하십니까?”
“쩌업. 쩝. 더 가져와.”
존경심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고개를 숙인 악마는 한곳을 향해 턱짓했다. 떨리는 몸짓으로 여러 마리의 악마가 그물을 끌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종을 가리지 않은 사체가 수북하게 모여 있었다.
“그럼, 즐거운 식사 하십시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악마는 왕이라 불린 자가 식사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야.”
왕이라 불린 자는 자리를 피하는 천지훈을 불러 세웠다. 천지훈은 웃는 얼굴로 뒤돌아 대답했다.
“부르셨습니까?”
“며칠 남았다고?”
“내일입니다.”
“어? 몇 시간 안 남았네? 나도 갈래.”
어린아이같이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안 돼?”
왕의 물음에 천지훈은 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왕이시여. 인간계는 더럽고 냄새나는 곳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위험합니다. 전쟁이 모두 끝나면 정리 후에 모시겠습니다.”
천지훈은 순식간에 목을 틀어쥔 악마를 바라보았다. 크기만 봐서는 자신의 반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체형이었지만, 그가 풍기는 기운만큼은 여느 72 악마보다 거대했다.
“뒤질래?”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그를 보필하던 천지훈은 식은땀을 흘렸다.
“…….”
“내가 약해?”
싸늘한 시선을 마주한 천지훈은 재빨리 손을 저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위대한 존재의 눈이 더럽혀지는 것이 걱정되어…….”
왕이라 불린 악마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 천지훈이 부른 한 단어가 거슬렸던 탓이었다.
“위대한 존재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수식어에 어울리는 존재는 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데…….”
“맞습니다.”
“그런데 아니잖아.”
“네?”
“분명 이계에 그렇게 불리는 도마뱀 새끼들이 있다고 들었다.”
“아, 네 맞습니다. 드래곤이라 불리는 자들이지요.”
계속해서 인상을 구기던 왕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동시에 천지훈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맛있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음이 날아들었다. 천지훈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천하의 진미라고 들었습니다.”
왕의 표정이 천진하게 바뀌었다.
“그래?”
“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인간계 바로 다음 목표가 그들이 사는 곳입니다. 최상품의 것들로 대령하겠습니다.”
“흠. 좀 더 빨리 먹고 싶은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싫어.”
단호한 대답에 천지훈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왕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제 이것들 질렸거든.”
왕은 주위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가리켰다. 지구에서 흔히 말하는 몬스터들의 사체였다.
왕은 그대로 일어나 피가 묻은 입을 거칠게 닦아냈다.
“지금 쳐들어가자!”
“안 됩니다!!”
“네 의견 물은 적 없어. 지구부터 부숴 놔야 그 도마뱀 새끼들 사는 곳에 쳐들어가기 쉽다고 했지?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출발한다!”
“왕이시여!!”
화악!
일순! 천지훈은 숨이 턱 막혀 오는 것을 느꼈다.
끄드득.
지독한 살기가 그의 몸을 터트릴 듯 짓누르고 있었다. 뼈가 어그러지고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 끔찍한 통증 속에서도 천지훈은 작은 신음하나 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자신들의 왕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차피 내일 가기로 했다며. 지금 가는 것과 뭐가 다르지?”
“그건…….”
천지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전투준비는 며칠 전 이미 끝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시간을 두고 날짜를 잡은 이유는 그저 새롭게 태어난 마계의 왕 ‘데몬’이 성장할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다.
갓 태어난 마계의 왕은 성장할 시간이 필요했다. 고영양의 양분을 섭취하고 빠르게 힘을 키워야 했다. 그래야 혼란한 마계에 중심을 잡고 고고히 군림할 수 있었다.
데몬은 그런 상황을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천지훈을 바라봤다. 그 깊고 날카로운 눈망울이 말하고 있었다. 필요 없다고. 지금으로 충분하다고.
그 눈빛의 의미를 읽은 천지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겠습니다.”
천지훈은 천천히 하늘을 향해 백광의 번개를 쏘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광!
고막을 찢을 듯한 번개가 마계 전역에 미친 듯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쿠구구구.
물경 십만에 달하는 악마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