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66화
166화 전쟁(11)
“미련한 짓…….”
“너무 서운해하지 말게. 어떤 마음인지는 알겠으나, 믿을 근거가 없지 않은가.”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쉽게 설득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리도 단호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적들은 분명 중국으로 쳐들어온다고요.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천지훈이 당신의 친형인 것은 알고 있네. 하지만 그는 이제 악마야! 악마가 지껄이는 말…… 당신은 믿을 수 있을지 모르네만 나는 믿을 수 없네.”
제임스는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그의 세상을 관통하듯 부릅뜬 눈은 내게 묻고 있었다. 정말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냐고.
“혹시 다른 곳으로 악마들이 출현할 것을 두려워하는 겁니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네. 악마들쯤이야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네. 다만 내가 걱정되는 것은…….”
나는 어이가 없어 제임스의 말을 끊어 냈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군요.”
일순 제임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그는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겨 대기 시작했다.
“뭐가 말이지?”
“악마들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나 역시 작게 기운을 끌어냈다.
“낮잡아 본 적 없네. 그대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악마들은 내 적수가 되지 못하네.”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던 제임스는 그의 의지에 따라 찌르르 울리는 그의 검을 들어 올렸다. 제임스를 전 세계적 인물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그의 에고 소드 ‘그람’이 찬란한 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성검 그람…….”
“그래, 내 검은 악마들을 베어 내기에 최적화된 검일세. 그 어떤 적이 와도 해치울 수 있다, 이 말이네.”
제임스는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성검 그람이 좋은 무기라고는 하나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자, 자네! 뭐, 뭐 하는 짓인가!!”
흔들리는 제임스의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손에 묵직한 감촉이 더해졌다.
“제 공격 하나 못 막지 않습니까. 아무리 훌륭한 무기라도 들고 있는 자가 강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법입니다.”
나는 조용히 틀어쥔 제임스의 목을 내려놨다. 동시에 주위가 싸늘해졌다. 아니, 싸늘하다 못해 살기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뭐 하는 짓이지?”
어느새 크라운 길드는 우리를 포위하고 있었다.
나는 반응하려는 박한별과 천지현을 말렸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건드렸는걸요.”
애써 박한별을 진정시킨 나는 천천히 제임스를 바라봤다. 제임스는 기습을 허용 당한 것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이 정도 공격에도 반응하지 못한다면 악마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만약 당신이 72 악마. 그중에서 상위권에 속한 악마들은 마주했다면 100퍼센트 확률로 죽었을 겁니다.”
제임스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의 눈빛을 똑바로 마주했다. 잠시 내 얼굴을 응시하던 제임스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정말인가?”
“예. 조금 전의 움직임보다 몇 배는 빠른 녀석도 있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천지훈의 움직임이 스쳐 지나갔다.
마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악마를 버리듯이 두고 떠나간 녀석을 보면 녀석이 얼마나 강해진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나는 빳빳이 굳어가는 안면 근육을 애써 핀 채 제임스에게 말했다.
제임스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넋이 나가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의식을 깨우듯 어깨를 두드렸다. 흐릿하던 제임스의 동공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게 무슨…….”
“믿어 주십시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예, 저희의 선택지는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당신밖에 없으니까요.”
나는 주변을 둘러싼 플레이어들을 가리켰다. 은색 안개 밖으로 보이는 플레이어들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짓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천진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후…….”
깊은 한숨이 절로 흘러나올 때였다.
“이런 짓 할 거면 말 좀 하고 하세요.”
박한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센스 좋네요.”
나는 곧장 사과한 뒤, 주변에 깔린 안개를 가리켰다.
내가 움직임과 동시에 박한별은 주변에 안개를 깔았다. 플레이어들에게 제임스가 당하는 수모를 보여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조금 전 사태를 목격한 것은 우리 주변에 있던 크라운 길드뿐이었다.
제임스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다시 한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마 천도윤 당신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안개를 깔았다는 말입니까?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와 박한별 씨는 단 한 명의 악마에게 당했었습니다.”
“……허.”
“이제야, 상황의 심각성이 실감 나십니까? 겨우 하급 72 악마를 죽인 것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상위종이니까요.”
“…….”
제임스는 오만방자했던 자신을 자책이라도 하듯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을 모아 중국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제임스가 다시 입을 연 것은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알겠습니다.”
제임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성공했구나.”
“네, 별일 없었습니까? 아버지는…….”
“쉽진 않았다.”
아버지는 짧게 대답한 후 한곳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을 가리켰다.
“모두 전력을 다해 도와줄 거다. 각자 악마들에게 불만이 한가득 쌓였더구나.”
“그럴 만도 하죠. 악마들이 멸망시킨 나라가 몇인데…….”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돌연 나타난 악마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지구에 큰 피해를 입힌 상태였다. 처음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을 때보다 더…… 우리는 모두 악마를 증오하고 있었다. 삶의 터전을 빼앗고 소중한 사람들을 죽인 원수였으니까.
“다 모이니 장관이 따로 없네요.”
“그러게 말이다. 후…… 자신 있느냐?”
“솔직히 말하면 불안합니다. 저기는 압도적인 전력이 있으니까요.”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냐?”
아버지는 나와 천외천의 멤버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자긍심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그래도 부족합니다. 잠깐 마주쳤을 뿐이지만, 천지훈의 무력은 상상 이상이었어요. 게다가…….”
“알 말이냐?”
“네,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걱정 말거라. 다 잘 될 테니.”
심심한 응원과 함께 어깨에 묵직한 손이 얹어졌다.
나는 주름진 아버지의 손을 감싸 쥐었다.
“감동적이군요.”
“놀리지 마십시오.”
나는 고개를 돌려 철용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그림자처럼 항상 따라붙던 천가의 수호신은 최근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버지 곁에 있는 일이 적었다.
“놀리는 거 아닙니다. 보기 좋아서 그런 겁니다.”
철용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번에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너무 예민해 아저씨까지 의심했어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철용은 손사래를 치며, 숙인 내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렸다.
“그래도…….”
“미안하시면 죽지 마십시오. 그게 속죄하는 길입니다.”
“안 죽을 겁니다.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 최대한 죽지 않게 할 겁니다.”
“아주 좋습니다. 저도 노력하죠.”
철용은 거대한 덩치로 가슴을 쭉 내민 채 말했다. 나는 그 든든한 모습을 보고는 조금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철용은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를 지킬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도윤 씨! 빨리 오세요. 곧 회의 시작합니다.”
“네, 가요.”
멀리서 박한별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곧장 대답한 뒤, 아버지와 함께 회의장으로 이동했다.
* * *
바가렐라, 천가, 르페브가, 리우가, 장가 등 각국을 대표하는 가문들과 크라운, 대시, 킹, 캐리 등 세계적인 길드의 대표와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각각 진지한 얼굴로 회의에 임하고 있었다.
“물자, 무기, 식량 모두 확보해 둔 상태고 남은 기간은 약 5일입니다.”
대표를 맡기로 한 제임스가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그러자 바가렐라의 가주 로시 바가렐라가 입을 열었다.
“적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쳐들어올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대비를 해야 좋겠습니까?”
이에 르페브가의 에릭이 대답했다.
“제 생각이긴 합니다만, 게이트처럼 미지의 공간이 열린 뒤 그곳으로 쏟아져나오지 않겠습니까? 마계의 입구가 열리는 순간에 그곳으로 화력을 집중하면 충분히 틀어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건 단순한 가정에 불과합니다. 만약 한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악마들이 튀어나올 경우 플레이어들이 혼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까?”
“제 생각은…….”
의견의 공방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누군가는 한곳에 모여 화력을 집중하자는 주의였고 누군가는 부대단위로 뭉쳐 산개해 있는 것이 대응하기 편하다는 쪽이었다.
양쪽 다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주장이었다.
그러던 중.
“천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던 우리에게 질문이 날아왔다. 고개를 돌리자,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산개해 있어야 합니다. 적들의 공격이 한 번이라도 들어오면 피해만 커질 뿐입니다.”
“뭉쳐서 적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으면 되는 것 아니오.”
르페브가의 에릭이 반박했다.
“이건 레이드가 아니라 전쟁입니다. 아무리 실력 좋은 플레이어들이 많다고 한들, 적의 공격을 완벽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적이 한곳으로 나올 때 화력을 집중하는 것은 좋지만 여러 군데에서 게이트가 열릴 것도 대비해야 합니다.”
내 말에 절반이 조금 넘는 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각개격파 당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이번에는 중국의 장웨이가 반발했다. 그녀는 은밀한 유혹자라는 별명답게 관중을 매료시키는 목소리를 발산하고 있었다.
몇몇 대표자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일은 없게 할 겁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장웨이는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경험이 부족하다 느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쉰 채 대답했다.
“이렇게요.”
나는 품속에서 작은 보따리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그 안에 손을 집어넣어 한가지 물건을 찾아냈다.
“혹시 몰라, 가져오길 잘했군요.”
나는 작은 보따리 안에 두 손을 모두 집어넣고는 조심스레 물건을 들어 올렸다.
입구가 점차 벌어지며 거대한 물건이 나오기 시작했다.
잘 정돈되고 완벽하게 깎인 동상이었다.
“안테나? 그게 무슨 아이템입니까?”
두 개의 안테나 사이로 전류가 흐르는 모양의 동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게 대체 뭡니까?”
“잠깐, 상태창 좀 확인해 봐!”
“갑자기 뭔 소리…… 헉!”
누군가의 외침으로 인해 상태창을 확인한 플레이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