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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65화 (165/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65화

165화 전쟁(10)

나는 천외천의 일원들을 모두 데리고 미국으로 향했다. 비행기 아래로 본 여느 나라들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기저기 연기가 차오르고 있었고, 폐허가 되었으며,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시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참담한 광경에 박한별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눈가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우리가 정말 이길 수 있을까요?”

천지훈의 실력에 대해 들은 박한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속에 걸리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천지훈의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 더해 ‘왕’이라고 부르던 알의 정체. 더해 제대로 한 판 붙어 보자는 녀석의 의미심장한 말까지.

악마 하나를 온전히 혼자 상대할 수 있는 플레이어조차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길 수 있다 확언하는 것은 오만이자 기만이었다.

“그래도 결국 해야 하는 거죠?”

“예, 저희가 아니 플레이어들이 하지 않으면 모두 죽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계 녀석들이 지구를 모두 차지하면 인간을 살려 둘 리 없지 않은가. 만약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비참한 인생을 살 것이 뻔했다.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 박한별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나에게 말했다.

“혹시나, 무력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저한테 맡기세요.”

“든든하네요. 이제 준비하시죠.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으니.”

“알겠어요.”

우리는 착륙하고 있는 비행기의 창문을 통해 저 멀리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봤다.

* * *

미국에서조차 운송 수단은 귀했기에, 미국으로 모였던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여, 우리가 착륙하는 것을 확인한 플레이어들은 어느새 선착장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를 바라본 플레이어들은 조금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천외천(天外天).

바가렐라 안토니오에 의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나의 팀이었다. 물론 세계 플레이어의 대부분은 나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천도윤?”

“그럼 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천외천……!!”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그중 가장 앞에 있던 근육질의 남성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천외천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싸늘하기 그지없는 반응이었다. 적대적인 말투에 깃든 약간의 살기까지. 결코 우리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

“제가 못 올 곳이라도 왔나요?”

내 물음에 근육질의 사내가 주먹을 말아 쥐며 말했다.

“예, 당연히 오면 안 되죠. 대체 무슨 낯짝으로 오신 겁니까? 지금 천지훈이 일으킨 사단을 좀 보십시오.”

이가 부서질 정도로 까득 이를 간 사내는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기세였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시 길드의 스팅 맞으시죠?”

“그렇습니다만…….”

“그 길드에서도 악마와 계약자가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요.”

내 한마디에 스팅은 입을 뻐끔거렸다.

“그건…….”

“악마와의 계약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저희 가문의 잘못으로만 돌리지 마십시오.”

단호하게 대답한 나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플레이어의 사이사이로 외워 두었던 얼굴을 지목했다.

“킹 길드의 로건, 캐리 길드의 지토, 메킷 길드의 왓슨…… 더 이야기할까요?”

모두 악마에게 넘어간 플레이어의 이름이었다. 지목당한 이들은 그 길드에 속한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지목당한 이들은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 발끈하다가도 입을 다물었다.

쿠구구구.

내 주위로 걸어온 천지현과 박한별이 기운을 내뿜어 반발의 불씨를 잠재운 탓이었다.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플레이어들을 지나쳐, 빽빽하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예언가 레닌을 주축으로 유럽 플레이어 연합을 끌어모은 길드 크라운의 대표 제임스.

진정한 극검의 경지에 올랐다고 찬양받는 세계랭킹 1위 길드의 수장이었다.

나는 수많은 인파를 뚫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한 무리를 눈에 담았다.

누가 봐도 한 무리를 이끄는 압도적인 기세와 시선을 받는 녀석들.

우리는 거침없이 그곳으로 걸어갔다.

점점 다가갈수록 시선을 받게 된 우리는 끝끝내 크라운 길드가 모여 있는 곳으로 다다를 수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천도윤 씨.”

그들에게 다가가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은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여성이었다. 그녀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우리를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위대한 예언가 레닌 님.”

“위대하긴요. 지구를 위해 힘써 주는 것은 여러분들인데요.”

레닌은 인자한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혹시 저희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

잠시 뜸을 들인 그녀가 대답했다.

“네,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도 그리고 여기 있는 제임스도.”

레닌의 손을 따라가자, 한국, 아니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최상위급 플레이어 제임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제임스에게 악수를 청했다.

“천가의 천도윤입니다.”

“제임스다.”

거대한 검을 등에 멘 그는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을 내밀었다.

“좋은 손이군.”

“아닙니다. 이렇게 손을 맞잡아 보니 저는 제임스의 노력에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나친 겸손은 독이다.”

뻣뻣하게 말한 제임스는 여전히 무표정인 채로 나와 동료들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굵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지?”

“예, 레닌께 들어서 알겠지만, 상황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여기 있는 플레이어를 모두 데리고 중국으로 넘어갔으면 합니다.”

나는 모든 미래를 꿰뚫어 본다는 레닌이 있어 이야기가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제임스의 입에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레닌은 내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예? 조금 전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제임스가 말했다.

“천외천의 멤버들이 온다고만 말했을 뿐이다.”

무덤덤한 그의 태도에 나는 고개를 돌려 레닌을 바라봤다.

그녀는 복잡한 얼굴로 내게 입을 열었다.

“어느 순간부터 당신과 관련된 인물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요.”

“그럼 저희가 온다는 것은 어떻게…….”

“당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당신의 이동 경로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당당하게 말하는 레닌의 모습에 나는 헛숨을 삼켰다. 동시에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내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레닌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능력은 아시다시피 미래를 보는 눈이에요. 사람들의 미래를 엿볼 수 있죠.”

“예, 알고 있습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세상에 레닌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저는 당장 눈앞 사람들의 운명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원래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미래도 전부 낱낱이 볼 수 있었죠. 그런데 당신은 어느 순간부터 볼 수 없었어요.”

“주기적으로 저를 관찰했단 말입니까?”

“당연하죠. 각 나라를 대표하는 길드나 가문의 미래를 점치는 게 저의 일이니까요.”

그녀의 직설적인 말에 나는 일순 닭살이 올라왔다.

“괜히 세계 1위 길드가 아니군요.”

“칭찬으로 들을게요. 어쨌든, 당신과 당신 주위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요.”

“불안하셨겠군요.”

“예, 처음에는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네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지금 저는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플레이어의 미래가 보이지 않거든요.”

“네?”

나는 심장이 철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여기 모인 수많은 플레이어를 중국으로 끌고 가기 위함도 있었지만, 레닌을 만나기 위함도 있었다. 그녀의 예언은 소문처럼 언제나 맞아떨어졌으니까…… 그녀의 예언을 토대로 전략을 짤 생각이었다. 그런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니…… 당황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레닌은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신 때문이에요.”

“네?”

“당신과 연관된 인물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까요. 제가 당신이 올 거라고 제임스에게 말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어요. 이곳 사람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이 이곳으로 온다는 뜻일 테니까요.”

황당한 추리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당당했다.

“천도윤 씨. 대체 무엇을 하러 온 거죠? 저희는 대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진심으로 묻는 겁니까?”

“예.”

“허…….”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미래를 모두 알고 있다는 예언가가 나에게 미래를 묻고 있었다. 남들이 보았다면 웃지도 않을 만큼 썰렁한 농담이었지만, 나는 도무지 그녀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희는 당신들을 중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중국이라뇨?”

“지금 세상은 멸망 직전에 놓여 있습니다.”

“그게 무슨…….”

레닌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금은 악마와 몬스터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평화가 찾아온 게 아니었나요?”

의문을 표하는 레닌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지금은 태풍이 몰려오기 전의 상태와 같은 겁니다.”

일순 레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덜컥 겁이 났는지,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지금 어떤 분들은 드디어 평화의 시대가 왔다며 울부짖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모두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대화 중 미안하군. 그런데 우리가 왜 이동해야 하지? 우리의 조국은 이곳이다.”

중간에 끼어든 것은 제임스였다.

나는 제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전쟁의 시작은 중국이 될 겁니다. 당연히 그곳이 뚫리게 되면 인류는 멸망할 거고요.”

“모든 플레이어가 모여서 악마들이 출현하는 순간을 노리자 그 말인가?”

“예, 바로 그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것밖에 답이 없습니다.”

“적의 숫자는?”

“모릅니다.”

“…….”

즉각적인 대답에 제임스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적의 숫자도 모르는데 여기 모인 플레이어들을 모두 설득해서 가겠다는 말인가? 정말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는가?”

“그래서 레닌과 제임스를 찾아온 겁니다. 저들을 설득해 주십시오.”

“황당하군. 아무리 우리라도 단지 추측만을 가지고 저들을 설득할 순 없어.”

“해야 합니다. 아니면 다 죽습니다.”

“솔직히 난 믿기 힘들군. 유럽 쪽은 우리가, 아시아 쪽은 중국이 도맡아 지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나?”

“저들은 중국으로 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몰려 있다가는 중국을 집어삼키고 온 악마들에게 당할 뿐입니다.”

내 대답에 제임스는 미간을 찡그렸다.

“어떻게 알지?”

“뭐를 말입니까?”

“저들이 중국으로만 온다고 어떻게 그리 확신을 하느냔 말이야!”

제임스의 검이 찌르르 울기 시작했다. 대답 여하에 따라 나를 적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알, 천지훈, 그리고 72 악마.

“…….”

이야기를 모두 들은 제임스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악마의 말을 믿고 중국으로 전 병력을 배치하는 것은 미련한 짓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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