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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64화 (164/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64화

164. 전쟁(9)

72 악마 두 마리를 처치하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대책 회의에 돌입했다.

천지훈이 말한 한 달 뒤, 그날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 분명했다.

“거짓말처럼 악마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추가로 몬스터들과 게이트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회의 중 누군가의 연락을 받은 직원이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그렇다는구나.”

천가의 가주이자 아버지가 나와 첫째 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모든 플레이어를 모아야 합니다.”

“평화가 찾아왔다며 환희에 차 있는 그들이다. 우리의 말을 쉽게 믿겠느냐?”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중국에 연락하여 플레이어들을 흩어지게 하지 말고 그대로 모아두라고 해야 합니다. 또 미국에 모인 플레이어들도 모두 중국으로 불러들여야 하고요.”

“정말이냐? 정말 지훈이가…….”

“네, 사실입니다.”

단호한 대답에, 아버지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아무리 내친 자식이라고는 하나, 자식은 자식인 모양이었다. 한참 말이 없어진 아버지는 끝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내 직접 전화하마. 아니, 직접 가는 게 더 낫겠구나.”

“괜찮으시겠습니까?”

“업보다.”

짧은 단어 속에 담긴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결심한 듯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천지훈은 아니었지만, 그 녀석의 역할이 없었다고는 결코 볼 수 없었다.

가문 내에서도 천지훈을 원망하는 힐난이 분분한데 사정을 아는 플레이어들의 비난은 오죽할까.

아버지는 그 모든 짊을 혼자 감내할 생각이었다.

한숨을 길게 내 쉰 나는 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은 아버지를 따라가. 나는 미국으로 건너가 사람들을 설득할게.”

“혼자 괜찮겠냐?”

“혼자는 무슨…….”

나는 내 옆으로 앉은 동료들을 바라봤다.

“큭. 하긴, 죄다 괴물들이라 그쪽에서도 함부로 하진 못하겠네.”

피식 웃은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보름 내로 데려 갈게요.”

“몸조심하거라.”

“예.”

그 길로 나는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회의장 밖은 여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악마가 사라진 지 3일이 지났지만, 차마 폐허가 된 고향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천가는 그런 사람들을 기꺼이 품었다.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잘 곳을 제공했다. 모두 수용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 대부분 임시천막에 작은 간이침대가 전부였지만, 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모여 있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그 참담한 풍경에 나는 또 한 번 눈을 감았다.

“개새끼.”

역시나, 맑아진 하늘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뭘 그렇게 궁상이야.”

어느새 다가온 천지현이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천지현을 빤히 바라봤다.

“이제 괜찮냐?”

“안 괜찮으면 어쩌게. 그 녀석에게 한 방 먹여 줄 생각만 하는 중이다.”

“크큭. 그래. 제대로 한 방 먹여라.”

“한 방만이게?”

천지현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장소를 알려 줬다.

다행히 헌터 전용 무전기는 복구가 된 상태였고 몇몇 운송 수단도 회복이 된 상태였다. 나는 가문이 가진 수송기 중 유일하게 가동이 가능한 전용기의 위치를 알려 줬다.

“여기로 가 있어. 난 들릴 데가 있어서 조금 뒤에 바로 출발할게. 챙길 거 있으면 미리 챙기고. 한별 씨랑 현우형도 잘 데리고 와. 알겠지?”

“우리가 애냐? 알겠으니까, 빨리 다녀와. 거기지?”

“그래. 다행히 형이 잘 지켜 낸 것 같다.”

“다행이네. 빨리 인사하고 와.”

천지현은 손을 휘휘 저었다. 쿨한 척 보내 주고는 있었지만, 그녀는 어느새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아마 아빠 생각이 났으리라…… 나는 모른 척 뒤돌아 천가를 빠져나왔다.

이젠 내 마음의 고향 윤식 조형으로 갈 차례였다.

* * *

“늦었구나.”

그리웠던 박윤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컥하며 눈가가 촉촉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모습을 본 박윤식은 킬킬대며 다가왔다.

“야, 우냐?”

“울긴 누가 울어!”

“아니면 말지 왜 신경질이야. 오자마자 재수 없게.”

“아씨, 영감은 좀…….”

나는 얼른 눈가를 훔치며 인상을 구겼다. 이 영감은 안 보면 보고 싶은데 보고 있으면 화딱지만 난다.

박윤식은 들고 있던 빗자루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레자식들! 싸우려면 멀리 가서 좀 싸우지.”

여기저기 먼지가 흩날리고 있었다. 엉망이 된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껏 만들었던 박윤식 영감의 동상이 대부분 망가져 있었다. 그래도 파편은 모두 치우고 간 모양인지, 바닥에 떨어진 위험한 조각은 없었다.

“영감, 속 좀 쓰렸겠네.”

한평생 자기 자식이라며 정성스럽게 닦던 모습이 떠올랐다.

“속만 쓰리다 뿐이냐? 아주 찢어지는 줄 알았다!”

영감은 버럭 소리치며 말했다.

그 기력이 예전만 못했다. 나는 무거워진 마음으로 운을 떼야 했다.

“영감, 미안한데 나 금방 가봐야 해.”

“…….”

마당을 쓸던 박윤식 영감의 손이 멈췄다. 뒤를 돌더니 빗자루를 내팽개쳤다.

“나쁜 놈. 은혜도 모르는 놈!!”

부리부리한 눈매가 더욱 매섭게 좁혀졌다.

“영감…….”

“오랜만에 찾아와서는 밥 먹고 갈 시간도 없더냐!!”

“정말 급해서 그래. 여기 있어도 대충 상황은 들었을 거 아니야.”

“지랄. 난 그딴 거 모른다! 세상이 망하든 어쩌든 내 알 바 아니란 말이다! 밥 먹고 가거라. 안 먹으면 내 동상 절대 못 내준다!”

목청이 쉬도록 소리치는 영감의 고집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기다리고 있을 동료들이 생각났다. 천지훈이 예고한 그 날까지 남은 시간도 별로 없었다. 어쩌면 세상의 존망이 달린 최후의 결투일지도 몰랐다. 밤을 꼴딱 새워서 준비해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분명 그럴진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식탁 위에는 두 번은 끓인 것 같은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김치만이 올라가 있었다. 조촐한 식단이었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맛있게 밥을 들이켜고 있었다.

작은 방 안에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영감…….”

“왜, 더 주랴?”

“아니…… 있잖아…….”

“밥 먹는데 떠들지 말거라.”

“…….”

나는 말없이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밥그릇 위로 수북하게 쌓인 밥이 정말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

나는 아쉬움에 바닥을 박박 긁어댔다.

배가 차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영감과의 이별이 다가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다 먹었으면 일어나거라. 내가 치울 테니.”

“아냐, 내가 치울게. 영감.”

“……말 좀 들어.”

벌떡 일어난 영감은 상을 들고는 주방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등이 많이 굽어 있었다. 어째서인지, 쩌렁쩌렁하던 목소리조차 힘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설거지를 마친 영감이 말했다.

“나오거라.”

나는 천천히 일어나 영감의 뒤를 따랐다. 마당 정 가운데 거대한 천이 존재했다. 일전에 내가 부탁했던 동상일 터였다.

무엇을 만들어 달라 부탁한 적은 없었다. 그냥…… 영감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이제야 그 의뢰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난감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힘들었겠네.”

“자꾸 다 죽어 가는 소리 할 테냐?”

“아니, 난…… 후 알겠어.”

애써 기운을 끌어올린 나는 동상을 가리켰다.

“저거 뭔데?”

영감은 천천히 동상 앞으로 걸어가 천을 꽉 그러쥐었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세상에 다신 없을 내 역작.”

영감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생기가 도는 순간이었다.

* * *

박윤식은 최근 손 떨림이 심해져 고생 중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세상이 멸망한 듯 혼란스러워졌고, 제자 놈의 형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도윤이가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영감님을 꼭 지키라고요.

천진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박윤식 영감은 급격하게 찾아오는 우울감에 빗자루를 들었다. 바들거리는 손을 보고 있자, 이젠 장인으로 사는 삶도, 인간으로 사는 삶도 모두 끝나 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박윤식 영감은 움직이던 빗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뒤를 돌지 않아도,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으니까.

박윤식 영감은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애써 추스른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늦었구나.”

대답은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박윤식 영감은 뒤를 돌았다.

제자 놈이 서 있었다.

눈물을 글썽인 채로.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었다.

천진오에게 들어 이미 상황은 알고 있었다.

세상의 멸망을 저 녀석이 반쯤 틀어막고 있다고.

녀석은 마치 세상을 지키기 위해 쉬지 않고 전력 질주를 하는 경주마 같다고 하는 말도 들었다.

안쓰러운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등을 두드려 주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야, 우냐?”

박윤식 영감은 자신이 내뱉고도 참, 못났다고 생각했다. 냉큼 사과할까 싶기도 했지만, 망할 놈의 입은 계속해서 생각과는 반대되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아니면 말지 왜 신경질이야. 오자마자 재수 없게.”

못난 놈. 영감은 계속해서 자신을 자책했다.

그러자 제자 놈은 괘씸하게도 금방 가 봐야 한다고 했다. 그 순간 천도윤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온통 상처뿐이었다. 찢어지고, 뜯기고 굳은살이 베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제자 녀석을 이대로 보낼 순 없었다.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지랄. 난 그딴 거 모른다! 세상이 망하든 어쩌든 내 알 바 아니란 말이다! 밥 먹고 가거라. 안 먹으면 내 동상, 절대 못 내준다!”

하여,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렸다.

“…….”

제자는 마지못해 수락했다.

빌어먹게도, 냉장고 안에는 마땅한 재료가 없었다.

고기반찬이라도 해서 먹이고 싶었지만,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영감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제 먹다 남은 김치찌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제자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역시나, 밥을 먹는 동안 대화는 없었다.

“내가 치울게, 영감.”

“말 좀 들어.”

저도 모르게 진심이 튀어나왔다.

한참 말이 없던 제자 놈은 나직하게 읊조렸다.

“고마워. 덕분에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빈말뿐이라는 걸 알지만, 내심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더 지체할 수 없었다.

박윤식 영감은 재빨리 설거지한 뒤, 천도윤을 불렀다. 천도윤에게 몇 달간 고생해서 만든 자신의 최고 역작을 내보였다.

처음엔 당황한 듯하던 제자 놈은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제자 놈은 동상을 가지고 떠나 버렸다.

윤식 조형의 입구를 거슬러 가는 제자 놈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자신의 동상을 지닌 채 애써 당당히 걷는 어린것의 뒷모습이 무거워 보였다. 저 작은 어깨에 얼마나 많은 목숨이 매달려 있는지 감조차 가질 않았다.

메마른 손을 움켜쥔 영감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죽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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