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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63화 (163/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63화

163. 전쟁(8)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지금 일을 벌이지 않은 것이 잘한 것인지 아닌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잘한 거야. 지금 우리는 녀석을 상대하지 못해.”

천지현은 분한 듯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녀의 입술에서 짙은 피가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복수를 원하면서도 그녀의 판단력은 놀라우리만치 냉정했다.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렇게 보지 마라. 죽여 버리기 전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동정의 시선을 원하지 않았다.

“그 녀석 움직임이 이상했어. 못 느꼈어?”

천지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순간순간 인지하기 힘들 만큼 녀석의 움직임은 빠를 때가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당시의 상황을 복기하듯 떠올렸다.

‘만약 녀석이 그 움직임을 나를 향해 사용했더라면…….’

순식간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등골이 오싹해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번 상황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녀석의 기형적인 움직임. 마치 녀석은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비밀을 파헤치지 못한다면 평생 녀석을 따라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천지훈을 상대해야…….’

“……할 거야.”

“…….”

짝!

“어떻게 할 거냐고!”

갑자기 찾아드는 등의 고통을 느끼며 정신을 차린 나는 천지현을 바라봤다. 등짝이 화끈거렸다. 천지현이 넋이 나가 있는 나를 가격한 것이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천지현을 노려봤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안개로 뒤덮인 지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고요한 안개 속에서, 서현우 박한별 그리고 암살이와 우마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도와야지. 빠르게 저 녀석들이라도 잡아야 적들의 전력이 줄어들 테니까.”

“가자.”

짧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안개 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너는 조심해야 할 거야.”

나는 나와 함께 안개 속으로 들어온 천지현을 향해 말했다.

독 종류를 사용하지 않는 발레포르는 몰라도 질병의 왕 마르바스는 확실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었다. 해저 도시에서 나와 같은 칭호를 받은 박한별과 특수한 능력을 지닌 서현우가 아니라면 쉽게 다가가기도 힘든 적이었다.

“너나 신경 써. 나도 그쪽에는 어느 정도 내성이 있으니까.”

천지현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의 근거 없는 자신감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확인하기 위해 능력을 발동시킬까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어차피 해 봤자 쓸데없는 일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녀석이 광룡의 제자로 들어간 뒤부터는 이상하게 조금도 그녀의 상태창을 훔쳐볼 수 없었다.

나는 이내 그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지금 걱정되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암살이야, 원래 해골이어서 문제가 없겠지만, 우마가 걱정이네.”

우마 역시 만독불침이라는 사기적인 특성이 있긴 했지만, 독으로 분류되지 않는 바이러스에는 취약할 것이 뻔했다. 나는 황급히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지형을 찾기 시작했다.

“여긴 또 왜 이리 넓어.”

짜증 섞인 천지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넓은 게 아니라 한곳을 돌고 있는 거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안개. 환각을 유발하는 거거든.”

은빛 용들의 안개는 기운마저 지우는 흑운과 비슷한 특성이 있었다. 거기에 환각 유발 속성까지 더해 있었다.

내 설명을 들은 천지현은 인상을 구겼다.

“뭐? 그럼 어떻게 찾으라고…….”

“걱정하지 마, 처음에는 농도가 너무 짙어서 나도 당황했는데 이젠 감 잡았으니까.”

나는 천지현의 등을 떠밀며 길을 안내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안. 몸을 밀착시키고 있는 것이 길을 잃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헤맨 뒤에야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다!!”

달려간 곳에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크아아악!!”

“사지를 찢어 주마!”

“네놈들이 감히!!”

질병의 왕 마르바스와 발레포르는 한곳을 향해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으고 있었다.

“……저게 다 뭡니까?”

나는 황당한 얼굴로 다가온 박한별에게 물었다.

“흐흐. 저는 이 안에선 절대 안 져요.”

박한별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나에게 대답했다.

“허…….”

다급히 달려온 나와 천지현과는 달리 안개 속에 들어온 일행들은 아주 천하태평이었다.

“우마마마!!”

심지어 암살이의 머리 위에 올라간 우마는 마르바스와 발레포르를 한껏 비웃고 있었다.

그리고 낄낄거리듯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암살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엄지의 뼈마디를 곧게 펴 악마들을 가리키면서도 남은 손으로는 배를 잡고 있었다. 상체까지 뒤로 한껏 젖힌 채 말이다.

“이것들이……! 싸우라니까 놀고 있었구만.”

녀석들에게 꿀밤을 한 번씩 먹인 나는 허탈한 감정으로 악마들을 바라보았다.

두 악마는 허공에 계속해서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은빛 용들의 안개와 허깨비가 합쳐 만든 환각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헛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강한 존재들을…….”

멍하니 은빛 안개를 바라봤다. 그러곤 흐뭇하게 웃고 있는 박한별을 돌아봤다.

아무리 봐도……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마계, 지구, 이계를 합쳐서 가장 환각에 뛰어난 두 종족의 기술을 동시에 익힌 그녀였다. 새삼 그녀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내뿜는 괴력만 하더라도 혀가 내둘릴 지경인데 환각과 도깨비불까지 이용해 싸운다면…….

과연 당해 낼 자가 있을까?

나는 멍하니 박한별을 바라봤다.

그녀는 민망한 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저도 유지하는 게 고작이에요. 아마 한 번이라도 공격받으면 곧장 깨어날 거예요.”

겸손일까? 사실일까? 그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던 나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리 고민해 봐야 내가 그녀가 아닌 이상 알아낼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념을 떨쳐 낸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예, 한 방에 끝내야 해요. 원래는 공격력이 강한 암살이에게 맡길 생각이었는데, 역시 도윤 씨가 하는 게 좋겠네요.”

“제가 타이밍을 잘 맞췄군요.”

“예, 바깥의 일은…… 아니다. 이 일이 끝나고 물어볼게요. 어서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나는 천천히 두 악마를 향해 걸어갔다. 내 옆에는 어깨를 돌리며 나란히 걷고 있는 천지현이 있었다.

“저 녀석은 내가 맡을게. 갚아 줘야 할 게 있거든.”

그녀는 천천히 검은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의지를 다지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나는 오른손에 흑운의 기운을 왼손에는 뇌전을 일으키며 말했다.

“뭔데?”

“그 힘, 이름이 뭐냐?”

천지현이 내뿜고 있는 검은 힘을 말하는 것이었다. 광룡의 가르침을 받고부터, 천지현이 사용하던 흑운의 힘은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 되고 말았다. 은밀하고 날카롭게 회전하는 흑운의 힘이 아니었다. 단지 광포하고 흉흉한 기운.

자신의 힘을 숨기기는커녕 표출하고자 애쓰는 기운이었다.

“쪽팔리게…….”

그런데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게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천지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어들어 갈 듯 작은 목소리였다.

“광운(狂雲)…….”

“응? 광운? 미칠 광?”

천지현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멋진 이름이네.”

“내가 지은 거 아니야.”

“알겠어.”

“진짜, 이건 스승님이…….”

“알겠다고. 집중이나 해.”

나는 벌게진 그녀를 놀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말했다.

천지현은 분한 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나는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은 채 말했다.

“알지? 한 방에 끝내야 하는 거.”

“나도 알아.”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천지현은 폭발적으로 힘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천지현의 특성, 광기의 도살자가 발현된 것이었다. 피비린내를 풍기는 원색적인 힘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힘은 그녀가 내뿜는 광운의 힘에 융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찌릿.

온몸이 저릿해질 정도의 살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페브니르의 망치질을 이용해 힘을 더욱 증폭시켰다.

소름 돋는 힘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녀가 광룡에게 보내진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안타깝게도 흑운의 힘은 그녀의 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힘이었다. 힘을 폭발시켜 적을 주눅 들게 만들고 끝없는 공격을 해야 하는 광기의 도살자와 은밀함을 강조하는 흑운은 그야말로 상극이었으니까. 반면 그녀가 새롭게 얻은 ‘광운’은 ‘광기의 도살자’의 능력을 극도로 높여 주는 능력이었다. 게다가…….

“내가 시간만 있었으면 너를 말리진 않았을 거야.”

천지현의 무거운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의 말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 지금 느껴지는 이 힘, 확실히 천지훈을 저지할 수 있을 만한 힘이었다. 단점이라면 힘을 끌어올릴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

찰나의 시간이라도 실력자들의 싸움에선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었기에 천지현은 냉정하게 판단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냉철한 판단력에 새삼 혀를 내둘렀다.

“뭐 해, 준비하지 않고.”

“기다려. 네가 필살기를 보여 줬는데 나도 하나 보여 줘야지.”

온몸에 흉흉하다 못해 광포하고 파멸적인 힘을 내뿜는 천지현이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에게 한번 웃어 보인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어 오른쪽에 자리 잡은 또 하나의 심장 드래곤 하트를 이용해 브레스를 준비했다. 단순한 브레스가 아닌…….

포옹.

입을 통해 이글거리는 붉은 화염이 떠올랐다. 동그란 모양의 화염을 오른손에 불러일으킨 흑운으로 감쌌다. 거기에 흑운이 빠르게 염화의 브레스를 응축시킨 염옥(炎玉)의 주위를 감쌌다.

천지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건……!”

이 기술의 존재를 이미 아는 모양이었다. 고룡들의 왕에게 빼앗느라 꽤 고생한 기술이었다.

“뭔지 알아?”

“이런 사기캐…….”

“지는…….”

그녀를 무시한 나는 왼손에 들려 있던 마지막 힘을 합쳤다.

검게 감싼 흑운의 힘 위로 전격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허…….”

허탈한 표정을 짓는 천지현에게 같은 말을 돌려줬다.

“나도 시간만 있었으면 녀석을 상대할 수 있었을 거야.”

물론 이길 수 있다는 장담은 전혀 없지만…….

뒷말을 조용히 삼킨 나는 마르바스를 향해 걸어갔다. 천지현 역시 발레포르를 향해 한 발 더 다가섰다.

우리는 마주 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의 필살기를 망설임 없이 적들을 향해 날렸다.

퍼엉-!

콰과과과과!!

엄청난 굉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동시에…… 눈앞의 존재가 사라졌다. 먼지처럼.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듣기 좋은 알림음이 울리고 있었다.

띠링. 띠링.

[‘혼돈의 허깨비’를 훔치겠습니까?]

[‘광룡의 도살자’를 훔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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