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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62화 (162/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62화

162. 전쟁(7)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저 녀석 때문에 가문이 반파 당했다.

스승님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가…….

멸망 직전에 이르렀다.

“천지훈!!”

나도 놀랄 만큼 거대한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오, 천도윤. 오랜만이네? 조금 전 번개, 네가 만든 거야?”

천지훈은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일말의 죄책감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서 있는 녀석을 보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너…….”

“이 개새끼가!! 너 때문에 우리 아빠가!”

돌연 녀석을 향해 먼저 달려든 것은 천지현이었다. 그녀는 반쯤 눈이 돌아간 채로 도약해 녀석에게 주먹을 날렸다. 흑운의 힘이 맹렬하게 돌아가며 천지훈의 안면을 강타했다. 아니 강타하려던 시점이었다.

툭.

천지현의 공격은 작게 뻗은 천지훈의 손가락에 의해 너무나도 간단하게 막혔다. 일순 천지현의 눈에 당혹이 깃들었다.

“아~ 네가 천지현이구나?”

재밌다는 듯 바라본 천지훈은 똬리를 틀 듯 말려 올라간 뿔을 매만졌다.

“멋있지?”

황당한 전개에 천지현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뭐?”

콰앙-!

천지현이 달궈진 분노를 채 표출하기도 전에, 그녀는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그 모습을 관망하던 천지훈은 서서히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긴장하지 말라고, 너희들은 지금 안 죽여.”

울컥거리는 피를 토해 내는 천지현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우웅-!

목걸이와 품속에 숨겨 둔 도깨비 보따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재밌는 걸 들고 왔네?”

어느새 천지훈은 내 앞에 서 있었다.

“……!”

계속 응시하고 있었음에도 움직임을 놓쳤다. 나는 충격적인 사실에 작게 입을 벌렸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너 같은 버러지도 이렇게 강해졌는데. 나라고 성장 안 했겠어?”

천지훈의 음성에서 미약한 분노가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딴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니었다. 녀석과 나의 거리는 숨결이 느껴질 정도였다. 즉,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뜻.

온몸의 근육과 신경이 팽팽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안에 뭔가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생물 맞지? 아, 저 녀석들 말고 또 다른 소환수인가? 흠…… 종류가 많아 보이는데…….”

천지훈의 관심사는 온통 목걸이와 도깨비 보따리뿐이었다.

[주인 나를 내보내라, 저 녀석은…….]

‘조용히 하고 있어.’

혹한 군주의 목걸이 안에서 반 페르데이스가 재촉했다. 무언가 위기감을 느끼고 한 말이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저 녀석은 이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어떤 존재들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꺼내 볼래?”

“뭔 개소리야!”

나는 뻔뻔하게 요구하는 천지훈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이 안에 있는 존재들을 꺼내 보일 수는 없었다. 이미 악마들에 의해 세계선의 선이 많이 어그러지긴 했지만, 이 녀석들까지 나오는 순간, 완전히 붕괴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꺼내지 않을 수 있으면 끝까지 꺼내지 않는 것이 베스트다.’

품 안에서 아우성치듯 진동하는 도깨비 보따리의 입구를 꽉 쥔 나는 천지훈을 노려봤다.

“형한테 싸가지 없게 말하는 건 여전하네.”

“너도 망나니짓 하는 건 여전하네. 과거나 현재나.”

“크큭. 그런가? 기분이 어때? 천가…… 꽤 힘들어 보이던데.”

천지훈은 쌀쌀한 냉소를 내보이며 말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생각보다 피해가 적어서 뭐…….”

“그래? 조금 더 괴롭혀 줘야겠네. 야!”

뒤를 돈 천지훈이 마르바스와 발레포르를 바라봤다.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그들의 몰골을 보고 인상을 구긴 천지훈이 말했다.

“너희는 천가로 가서 기분 좀 풀어. 지금 많이 분할 거 아니야.”

“저희가 가면 이 알은…….”

“걱정하지 말고, 내가 지킬 테니까. 그리고 이미 준비도 끝났어.”

“네? 아! 크흐흐. 알겠습니다.”

마르바스는 곧장 묵례하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발레포르라는 악마는 고룡들에게 잘 들어 보지 못했지만, 질병의 왕 마르바스는 분명 마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대악마가 천지훈에게 존대를 하다니…….

녀석이 마계 안에서 끼치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도저히 가늠이 가질 않았다.

‘설마 이 녀석 마계를 통째로 장악한 거 아니야?’

터무니없는 상상이 머릿속을 잇고 있을 때였다.

천지훈의 명령을 받은 마르바스와 발레포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알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걸던 녀석들이 미련 없이 자리를 뜨는 것을 보니, 녀석들이 얼마나 천지훈을 믿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막아!!”

내 외침에 박한별과 암살이, 우마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어느새 도깨비감투까지 꺼내든 박한별은 도깨비 형상의 가면까지 쓰고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은빛 용들에게 배운 안개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동시에.

화륵-!

푸른 호롱불이 사방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력한 박한별의 기술에 마르바스와 발레포르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이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은 천지훈은 쯧, 혀를 찼다.

“천지훈. 너 대체 어디까지 망가진 거냐?”

나는 차오르는 분노를 그대로 표출하며 물었다.

고개를 돌린 천지훈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나를 인정해 주는 곳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

“뭐? 그게 지금…….”

“처음 악마와 손을 잡았을 때는 나름 죄책감도 들더군. 하지만 살면 살수록 확실해졌지. 마계는 천국이었다.”

“마계가 천국이라니, 네놈이 말하고도 미친놈이라는 생각, 안 들어?”

“크큭. 전혀. 적어도 마계는 힘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아주 단순하고도 합리적인 곳이거든.”

나는 천지훈의 말에서 짙어지는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 녀석이 무엇에 분노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녀석이 가문을 떠나고 배신한 이유. 그것은 형에 비해 월등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열등감이군…….”

“뭐?”

처음으로 천지훈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런 추잡한 이유가 녀석의 행동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었다.

“겨우 그런 이유로 가문을 배신하고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가문에서조차 버려졌던 자식이 뭘 안다고…….”

천지훈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녀석을 공격했다. 지금 느껴지는 이 기운. 내가 전력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아니, 높은 확률로 질 것이었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녀석이 방심한 지금, 이 순간뿐이었다.

콰앙-!

지축을 흔드는 거대한 굉음이 일었다.

손에 확실한 감촉이 일었다.

“크큭. 역시 더러운 핏줄이라 그런지 하는 짓도 비겁하구나.”

그러나 녀석의 피해는 미미해 보였다. 고개를 돌린 천지훈은 입안에 흐르는 피를 뱉어 내며 말했다.

“네 몸에는 뭐 다른 피가 흐르는 줄 알아?”

천지훈은 말없이 땅에 뱉어 낸 피를 가리켰다. 나는 녀석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 나서야 녀석이 말하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친형이자 천가의 뇌룡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녀석의 피는…….

검은색이었다.

“나약하고 미약한 인간의 피는 벗어던진 지 오래다.”

“……이렇게까지 해서 네가 얻는 것이 뭐지?”

“뭐긴, 힘이지.”

“…….”

당연한 것을 외 묻느냐는 태도에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순 없었다. 조금 전 일격. 전력은 아니었지만 분명 시간 안에 내지를 수 있는 최고의 일격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 마치 내 힘을 가늠해 보기라도 하는 듯이…….

‘결국…… 꺼내야 하나?’

나는 품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고룡들과 그들의 왕을 생각했다. 모두 힘을 합치면 저 녀석을 상대하는 것도 결코 불가능은 아니었다.

“크큭. 괜히 머리 굴리지 마. 내가 말했잖아. 지금 너희들은 안 죽인다고.”

싸늘한 천지훈의 말에 나는 몸이 굳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자존심이 한없이 구겨졌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고룡들과의 대련을 통해 성장한 나는 그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지금…… 한없이 무너지는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녀석의 기운은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한다는 붉은 용들의 왕 테론 페르몬드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아니 그를 뛰어넘을 만큼의 기운이었다.

“대체 어떻게…….”

혼잣말을 내뱉듯 지껄인 말에 천지훈은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궁금해? 그럼 그 품 안에 숨긴 녀석들 좀 꺼내 봐. 그럼 알려 줄게.”

이쯤 되면 저 녀석이 이 안에 든 존재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꺼져.”

“크큭.”

천지현은 내가 긴장한 모습이 재밌는지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품속의 도깨비 보따리는 여전히 아우성이었다. 지금 당장 저 녀석을 죽여야 한다며 생각을 피력하는 듯했다. 그러나 난 그럴 수 없었다.

왠지 지금 움직이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감’이었다.

한참을 키득거리던 천지훈은 이내 웃음을 뚝 그치더니 입술을 열었다.

“알겠다. 어차피 내 목적은 네놈들이 아니었으니까.”

그의 시선이 알을 향했다.

“저게 대체 뭐지?”

천지훈의 시선이 다시금 나를 향했다.

축 가라앉은 시선에 자부심과 욕망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왕.”

짧게 대답한 천지훈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에 맞춰 알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천지훈은 남은 손을 이용해 무엇인가를 불러일으켰다.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작은 구슬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힘은 결코 찬란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저, 저건…….”

처음으로…….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사시나무 떨리듯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온몸이 요동쳤다.

공포였다.

“죽이지? 아름답지 않아?”

나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어떻게 저걸 보고서 아름답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작은 구슬에서 풍겨 나오는 흉흉한 기운을 마주했다. 마치 수천, 아니 수만 명의 인파가 구슬 벽에 달라붙어 살려 달라 절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크큭. 역시 여기로 하길 잘했어.”

천지훈은 내심 기대하던 표정을 바라본 것처럼 즐거워하고 있었다.

부웅 떠오른 구슬이 알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내 알의 표피에 들러붙더니 흡수되기 시작했다.

“됐다!”

해맑게 웃는 천지훈의 위로…….

쿠웅-!

커진 알의 태동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알을 바라보고는 정신을 되찾았다.

‘저건 위험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 모든 힘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강한 힘이 나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무섭게 일그러진 천지훈이 그곳에 서 있었다.

“괜한 짓 하지 마. 죽여 버리기 전에.”

그의 살기는 진짜였다.

나는 그럼에도 움직여야 했다.

반 페르데이스와 도깨비 보따리 안에 있는 녀석들을 모두 풀어 천지훈 녀석을 상대하게 한 뒤 알을 처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툭.

누군가 내 팔목을 잡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자를 바라봤다.

어느새 일어난 천지현이 고개를 젓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동료가 감은 좋네.”

천지훈의 손에는 어느새 마기를 가득 품은 검이 들려 있었다. 아마 내가 움직였다면 망설임 없이 나를 공격했을 거라는 뜻이었다.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애써 외면한 채 녀석을 노려봤다. 천지훈은 김이 샜다는 표정으로 검을 집어넣은 채 날개를 활짝 폈다.

그러고는 낮은 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한 달 뒤, 중국으로 와라. 마음껏 상대해 줄 테니까.”

마지막 말을 남긴 천지훈은 날아올랐다. 그의 손짓에 따라 알이 그의 주변으로 이동했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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