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60화 (160/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60화

160. 전쟁(5)

중년의 남성은 임시 보호소 구석에서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안토니오 바가렐라…….”

이탈리아 최대 명문으로, 어느 날 한국의 천가를 찬양해 이목을 끌더니, 엄청난 실력상승으로 기어코 바가렐라가의 차기 가주 자리를 따낸 무서운 실력자.

그 전설적인 존재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대체 당신이 왜 여기에…….”

말했다시피 바가렐라가는 이탈리아의 명문가다. 안토니오 바가렐라는 이탈리아에 있어야 정상이었다. 다 무너져 가는 이 미국의 변두리가 아니라…….

“흠.”

중년의 남성은 조금 전 상황을 애써 떠올렸다. 다시 생각하기만 해도 실금할 것처럼 끔찍한 상황이었지만, 남성은 끝끝내 기억해 내고야 말았다.

자신을 바라보며 싱긋 웃던 바가렐라의 젊은 차기 가주.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감추지 못한 슬픈 얼굴을…….

쓰린 마음을 감싸 안은 중년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정이 스쳤다.

“서, 설마!”

한 나라의 대표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의 시골을 떠돌고 있는 이유. 그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끔찍한 가정. 그러나 가능성이 큰 합리적인 추측.

“그렇게 된 거였군.”

허탈한 목소리를 내뱉은 중년 남성의 머릿속에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끔찍한 괴물들에게 넘어간 이탈리아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이탈리아가…….”

중년의 남성에 섬뜩한 두려움이 깃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는 헌터 대국이었다. 전 세계를 취합해 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헌터 강국. 그런 이탈리아가 이런 상황일진대, 대체 얼마나 많은 국가가 지도상에서 사라졌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중년의 남성은 현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한쪽에 모여 있는 무리에게로 다가갔다.

“말씀 좀 물읍시다.”

조심스러운 물음에도 한 곳에 몰려 있던 피난민들은 잔뜩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뭐, 뭡니까!”

“저…… 혹시 모두 이곳 근처에 사시던 분들이십니까?”

중년의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만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다른 곳에서 왔어요!!”

이에 화들짝 놀란 그의 아빠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아 내렸다. 그러고는 질문을 한 중년의 남성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이에 손을 내민 중년의 남성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해를 끼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궁금한 점이 있어서…… 대답하기 싫으시다면 안 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정중한 중년의 태도에 아이의 아빠는 한층 누그러진 태도로 대답했다.

“저희는 스페인에서 왔는데 무슨 일입니까? 궁금한 게 뭐죠?”

잠시 뜸을 들인 중년의 남성이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의 상황이 궁금합니다. 세상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통 알 방법이 없어서요…….”

중년 남성의 음성이 무겁게 떨어졌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 세계의 통신망은 끊긴 지 오래였다. 단순 일반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인지, 나라 간의 교류 자체도 아예 끊겨 버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민간인들은 현재 상황에 대해 조금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중년의 물음에 모여 있던 무리는 하나, 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 말 좀 들어 봅시다. 대체 다른 나라는 꼴이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처럼 완전히 멸망 직전입니까?”

갑자기 끼어든 젊은이의 말에 아기의 아빠는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희 스페인은 완전 폐허가 됐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무리는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현 상황은 돌연 미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스페인과 미국만 겪고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씁쓸한 아이 아빠의 말투에, 중년 남성이 물었다.

“그렇다는 건…….”

“예,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 남유럽 전체가 멸망 직전입니다.”

“이럴 수가…….”

돌연 무리에 다가왔던 중년 남성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사내가 말한 나라에는 프랑스…… 프랑스가 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 데이브가 살고 있던 나라였다.

쿵.

또 한 번의 절망에 사로잡힌 중년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가슴속 묻어 뒀던 사진을 한 장 꺼낸 뒤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밝게 웃고 있는 아들 데이브가 서 있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평생 잘해 준 것 하나 없이 꾸짖기만 했다. 모두 아들을 위해 한 말이긴 했지만, 그 방법이 잘못 됐다는 것쯤은 이미 오래전에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만둘 수 없었다. 습관처럼 되어 버린 잔소리와 폭력. 결국 아들은 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흐으…… 끅!”

평생을 참아 왔던 눈물이 미친 듯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직 데이브…… 데이브 생각뿐이었다. 얼굴을 감싸 쥔 두 손 위로 차가운 감촉이 더해졌다. 분명 누군가의 손이었다. 그런데 그 크기가 너무 작았다.

다니엘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조금 전 자신의 물음에 손을 번쩍 들었던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울지마, 아저씨. 데이브는 살아 있어.”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에 다니엘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분명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말한 적도 없는 아들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멸망했다는 나라에서 데이브가 살아 있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어린아이의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걸리는 점이 있었던지라, 다니엘은 아이를 똑바로 바라본 채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데이브가 살아 있다니.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

조금 격양되는 다니엘의 억양에 아이의 아빠가 나서며 말했다.

“제니는 조금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제니가 살아 있다고 하면 살아 있는 것이 맞아요.”

아이 아빠의 단호한 말에 다니엘은 희망을 엿봤다.

“그게 정말입니까? 이 어린아이가 플레이어라고요?”

믿지 못하겠다는 다니엘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입니다. 어리지는 않고요.”

“그게 무슨…….”

“어쨌든 살아 있다는 말입니다.”

검은 머리칼의 남성은 고개를 돌려 제니라고 불린 꼬마 아이를 바라봤다.

제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민간인들과 생존한 플레이어들은 모두 미국과 중국으로 모이고 있어.”

“그, 그게 정말이야?”

놀란 다니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약 이 여자아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데이브는 어쩌면…….

“응, 아저씨 아들도 아마 미국으로 올 거야. 기회가 된다면 캘리포니아 쪽으로 가 봐. 거기 있을 테니.”

단호한 제니의 말에 다니엘은 온몸의 근육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눈물이 흘렀다.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다니엘은 몇 번이고 제니를 향해 감사 인사를 건넸다. 동양적인 외모에 뛰어난 영어 실력. 거기에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을 가진 여자아이는 손을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고마우면 여기서 말 잘 듣고 있어. 괜히 밖에 나가지 말고. 캘리포니아로 이동하는 건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에. 오케이?”

“아, 알겠어. 정말,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내가 두고두고 갚으마.”

“별말씀을. 그나저나 너희들은…….”

무언가 말하려던 제니의 인상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동시에 먼 곳에서 목청 좋은 남성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 김진희!! 빨리 안 와?”

“아씨,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제니라고 부르라고 제니!! 아니 그리고 언제는 전투 능력 떨어졌다고 대피소 안에서 악마 새끼들이나 색출하라며!”

“근방 악마들 모두 처리했으니까 그렇지. 빨리 와! 가야 한다니까? 이 안에 악마 없지?”

“없어.”

“그럼 빨리 와! 대장이 불러.”

“알았어. 알았다고. 가자 루카.”

“그러지.”

제니의 말에 그녀의 아버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의 피부와 옷가지가 완전히 변하기 시작했다.

스스슥.

전형적인 동양의 외모에서 하얀 피부를 가진 서양인으로. 동그랗고 자그마한 코에서 콧대 높은 유럽의 귀족의 모습으로 눈 한 번 깜짝할 새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

그리고 놀랍게도. 바뀐 그의 모습은 전 세계의 대부분이 아는 얼굴이었다. 바가렐라가의 안토니오가 이끄는 롱기누스 팀. 그중 안토니오 다음으로 유명한 인물이었으니까.

“루카 바가렐라!!”

사람들의 시선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의 옆에 있던 꼬맹이는 전혀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그에게 말했다.

“또 한 번 연기인 척 내 머리 쓰다듬으면 뒤진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롱기누스 팀의 유일한 동양인 김진희였다.

* * *

“이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더러운 종자들이!!”

분노에 가득 찬 마르바스의 외침에 나는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모든 힘을 개방한 마르바스의 기운은 상상 이상이었다. 정말로 고룡들의 왕을 정면에서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허, 저 녀석이 상위 종 치고 무력이 약한 거라고?”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온몸이 녹아내리고 있던 마르바스의 육신은 천천히 재생되는 중이었다. 나는 그런 마르바스를 노려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용족만이 가능한 브레스를 억지로 익힌 나는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경우 한 시간에 한 번이 최대였다. 이 말은 즉, 앞으로 브레스를 사용할 수는 없다는 소리였다.

마르바스는 숨을 헉헉대며 우리를 노려봤다. 그 압도적인 패기에 우리는 몸이 굳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나와 박한별은 고대용들과의 훈련으로 인해 금세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서현우는 아니었다.

완전히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 차리세요. 서현우 씨.”

“이건, 이건…… 말도 안 돼.”

홀로 72 악마를 상대한 적도 있는 서현우는 계약자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완전히 넋이 빠져 있는 서현우에게 다가가 말했다.

“계약하죠.”

서현우는 ‘계약’이라는 말에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잠시 정신이 돌아온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제정신이라고는 볼 수 없는 느낌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등을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

엄청난 충격에 서현우는 정신이 돌아왔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뭐라고…….”

“계약하자고요.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서현우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현우 입장에서 나와의 계약은 손해 볼 필요가 전혀 없는 조건이었다. 내가 악마를 마주하고도 도망치지 않을 거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고, 지켜 줄 필요도 없기 때문이었다. 가끔 내가 다쳤을 때 힐만 해 주면 되는 꼴이었다. 반면 그가 얻는 힘은 엄청났다.

콰과과과과!!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순간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니까.

순식간에 옥죄어 오는 마르바스의 기운을 떨쳐 낸 서현우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해요? 지쳐 있을 때 얼른 공격하지 않고.”

서현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 온몸에 힘이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