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59화
159. 전쟁(4)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천지현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꺄아아악!!”
허벅지를 꿰뚫린 천지현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녀의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순한 관통상이 아니었다. 그녀의 허벅지를 파고든 새빨간 가시는 그녀의 살을 파헤친 후 장미의 가시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광경에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미친!!”
이에 마르바스가 반응했다.
“내가 그랬잖나. 저 녀석부터 상대해야 한다고.”
비릿한 미소를 지은 마르바스는 재밌다는 듯 눈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녀석과의 거리를 빠르게 벌리며 시야를 돌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마르바스 녀석이 아니었다. 갑자기 나타난 예상외의 전력. 지금 경계해야 하는 쪽은 마르바스가 아닌 갑자기 나타난 72 악마 쪽이었다.
조금 더 가까워진 72 악마는 혀를 내밀며 손톱으로부터 파생된 가시를 핥고 있었다.
“크큭.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나 보지? 아, 그게 아니라 내 연기가 너무 훌륭했던 건가?”
킬킬대는 악마의 눈이 반원을 그리며 휘어졌다. 천지현은 계속해서 세력을 넓혀가는 가시를 서둘러 잘라 냈다. 그녀는 고통이 상당한지 미간을 한껏 찡그리고 있었다.
“조심…… 크윽!”
나는 갑자기 터져 나오는 저릿한 살기에 빠르게 손을 뻗었다. 마르바스 쪽이었다.
쩌적-!
공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입자들이 얼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천지현을 신경 쓰는 동안 허점을 노리기 위해 공격을 날린 것이다. 나는 천지현을 걱정하는 와중에도 마르바스의 기척을 계속해서 쫓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손쉽게 녀석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다.
‘확실히 저번과는 다르군…….’
넓고 밝은 공간으로 나오니 마르바스의 공격에 대비하기 쉬워진 느낌이었다.
[주인, 방심하지 마라. 녀석은…….]
그 순간 목에 건 혹한 군주의 목걸이가 부르르 떨렸다. 걱정을 내비치는 반 페르데이스에게 괜찮다고 말한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에 박힌 가시를 빼내고 있는 천지현에게 소리쳤다.
“천지현!!”
그러자 살기 어린 시선이 날아들었다.
“네 할 일이나 잘해!”
자존심 강한 그녀는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 힘든지 분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피식 웃은 뒤,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천지현이 저렇게 말한 이상 그녀를 더 걱정하는 것은 그녀에 대한 모욕이다. 나는 완전히 시선을 돌려 마르바스를 바라봤다. 마르바스는 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설마 동료를 믿는다느니 하는 진부한 대사를 늘려놓을 셈인가?”
“아니.”
짧게 대답한 나는 녀석과 마찬가지로 웃기 시작했다. 마르바스는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반응에 조금씩 인상을 굳히기 시작했다.
“왜 웃지?”
“너희가 당연히 이길 거라, 생각하는 게 같잖아서.”
나의 대답에 마르바스는 진한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한낱 인간에게 자신이 무시 받았다고 생각했던 탓인지, 굉장히 굳은 얼굴이었다. 위압적인 살기를 내비친 마르바스는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크큭. 동료를 구하기 위해선 나를 등져야 할 텐데. 네놈이 정말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의기양양한 태도에 나는 어깨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뭔 소리야. 당연히 너부터 처리해야지. 그리고 저 녀석은 그렇게 쉽게 안 당해.”
“제정신이 아니군. 아니, 동료에 대한 믿음이 너무 과한 건가? 네가 나를 이기는 것도 너의 동료가 저 녀석을 이기는 것도 모두 불가능한 이야기다.”
싸늘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그에 나 역시 무미건조한 말투로 맞받아쳤다.
“그건 해 봐야 아는 거고. 무엇보다 넌…….”
잠시 말을 멈춘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
단순히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펌프질하는 평범한 심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온몸에 마나가 충만히 돌기 시작했다. 왼쪽이 아닌 오른쪽 가슴이 뜨거워졌다.
순화하던 마나는 이내 오른쪽 심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눈 깜짝할 새 일어났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마르바스의 눈이 커다랗게 변해 있었다.
“이게 무슨…… 너, 너! 설마……!”
마르바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한 눈동자였다. 나는 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하려는 공격은 마르바스도 이미 알고 있는 공격이었으니까. 모르는 것이 더 이상했다. 72 악마의 상위권에 위치한 그조차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아니 무시하기는커녕 조금은 두려워하고 있는 공격이었으니까.
드래곤 하트를 이용해 내뱉는 ‘진짜’ 브레스. 그것이 내가 준비하는 비장의 수였다.
넘치는 마나를 주체하지 못한 심장이 결국 응축된 마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목울대가 꿀렁거리기 시작한다.
“지켜야 할 게 있잖아?”
그리 말한 나는 시원하게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마르바스는 아차 싶었는지 등 뒤를 돌아봤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알이 태동하고 있었다.
입을 통해 거대한 힘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응축되고 응축된,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도 팽창해 버릴 때로 팽창해 버린 파멸적인 힘이었다. 브레스는 마르마스와 그의 뒤에 있던 거대한 알을 삼킬 듯 쏘아져 나갔다.
콰과과과과-!
내가 정한 속성은 붉은 용들의 왕 테론 페르몬드에게 빼앗은 염화의 불꽃이었다.
천진오 역시 사용하는 속성이었지만, 그 온도는 녀석과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브레스는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 나아가기 시작했다.
“젠장……!”
다급해진 표정을 지어 보인 마르바스는 빠르게 알을 감싸 쥔 뒤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녀석의 능력을 고려했을 때,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거리였다. 한방에 거의 모든 마나를 쏟아부은 공격이었기에 절대 실패하면 안 되는 한방이었다. 나는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한별에게 눈짓했다.
박한별은 내 시선을 받기도 전에 달려드는 중이었다.
“역시, 빠르네.”
작게 읊조린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감상했다.
콰앙-!
마르바스가 움직이려던 곳을 막아선 박한별이 도깨비방망이를 내리쳤다. 엄청난 굉음을 내며 쇄도한 도깨비방망이는 마르바스의 움직임을 멈춰 세웠다. 악귀처럼 변한 마르바스가 소리쳤다.
“이 개 같은 년이……!”
그의 주위로 엄청난 양의 바이러스가 터져 나왔다. 이를 직감적으로 느낀 박한별은 서둘러 청화의 불꽃을 온몸에 둘렀다. 청화의 불꽃은 평범한 불꽃과는 거리가 먼 성질이었지만, 그것의 기초는 분명 불이었다.
청화의 불꽃은 박한별에게 접근하는 바이러스를 모두 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르바스는 평범한 악마가 아니었다. 72 악마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전설적인 존재이자, 고룡들의 왕조차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악랄한 존재였다.
당연하게도, 마르바스에게는 황급히 만든 얇은 막 정도는 손쉽게 뚫어 버릴 힘이 있었다.
마르바스는 온갖 장신구가 끼어 있는 오른손을 뻗었다.
콰악-!
청화의 불꽃을 향해 손을 뻗은 마르바스는 순식간에 불꽃을 걷어 낸 뒤, 박한별의 얼굴을 틀어쥐었다.
“크윽!”
박한별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동시에 그의 손에서부터 무엇인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의 정체는 너무나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마르바스가 자랑하는 질병을 퍼트리는 바이러스.
“안 돼!”
나는 짧게 소리쳤다.
외침이 그녀에게 닿음과 동시에 브레스가 녀석의 지척에 달했다. 이를 느낀 마르바스는 황급히 박한별의 얼굴을 놓고는 알을 잡았다.
단숨에 반대편으로 빠져나갈 생각인 모양.
그러나 우리는 녀석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반대편에서는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서현우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박한별보다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마르바스의 움직임을 저지하기엔 충분한 힘이었다.
“크윽 이 개새끼가!”
마르바스는 이번에도 역시 손을 뻗으려다 멈칫했다. 서현우의 몸 주위로 신성력이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마기를 잔뜩 머금은 마르바스의 입장에서는 섣불리 만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얼굴에 패색이 드리웠다.
“이미, 늦었어.”
서현우의 비릿한 미소가 날아들었다.
동시에.
콰과과과광!
모든 존재를 지워 버릴 듯한 맹화의 브레스가 마르바스를 덮치기 시작했다.
* * *
재앙을 맞이한 건 돌연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세계 곳곳에서는 악마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갑자기 일어난 전쟁이자, 불시에 찾아온 외계인들의 침공이었다.
“꺄악!!”
“살려 줘!!”
“살려 주세요. 제발 목숨만…… 크헉.”
강대국, 후진국 할 것 없이 그들의 나라는 모두 망해 가고 있었다. 지옥도가 펼쳐진 끔찍한 상황에서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목놓아 울거나, 처절한 절규를 외치는 것뿐이었다.
“신이시여, 제발……!”
황폐해진 도심 속. 그 절망 속에서 누군가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믿는 그의 신께, 빌고 또 빌었다. 이 끔찍한 괴생명체의 습격으로부터 가족과 자신의 안위를 지켜 달라고…….
그러나 그의 간절한 기도는 결국 하늘에 닿지 못했다. 기도하는 그의 앞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목놓아 기도하던 중년의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직감했다.
여기서 죽는다고.
중년의 남성은 기도를 멈춘 뒤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검은 피부.
거대한 날개.
날카로운 송곳니가 차례차례 보이기 시작했다.
“신이 뭐? 하, 이 새끼 아까부터 거슬리는 말만 해 대네?”
히죽 웃는 악마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 해괴한 존재를 마주한 중년의 남성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바지가 얼룩지기 시작했다.
“씨발, 더럽게.”
인상을 찡그린 악마. 벌레를 바라보듯 중년의 남성을 바라보던 악마의 오른손이 사라졌다. 일반인들은 결코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빠른 공격이었다. 단순한 휘두름. 평범한 공격이라 치부하기에도 부족한 성의 없는 움직임에도 중년의 남성은 목숨을 잃을 것이 뻔해 보였다.
바지에 실금한 중년의 남성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짧은 순간 빠르게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남자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어린 아들을 생각했다.
‘제발 살아남아라. 데이브!’
속으로 마지막 기도를 한 남성은 서서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 얼굴을 향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동시에 얼굴 위로 후두둑 액체가 닿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는 이 모든 것이 이승을 떠날 때 겪는 기현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들려오는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에 의해…….
깜짝 놀란 중년의 남성은 서서히 눈을 떴다. 눈앞에 무서운 기세를 풍기며 서 있던 악마가 죽어 있었다. 서 있는 모습으로, 거대한 창으로 배를 꿰뚫린 채…….
서 있는 자세로 목숨을 잃은 모양이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중년의 사내는 눈을 비볐다.
그를 향해 젊은 남성이 다가오고 있었다.
중년의 남성은 악마의 배를 관통한 창과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젊은 남성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허, 이게 무슨…….”
중년은 자신의 눈앞에 위치한 거대한 창을 바라봤다. 어딘가 익숙한…… 창이었다.
“로, 롱기누스의 창?”
“네, 맞습니다.”
“그럼, 당신은?”
젊은 남성은 작게 미소 짓기 시작했다.